그 시절 경제관료들 보면 만주국 출신 별로 없고 대부분 구미 유학파 출신일개 사관생도였던 박정희가 3년 남짓한 기간 안에 만주국 경제체제를 이해할 수 있었겠냐만주국이랑 다르게 재벌 밀어준 것 등등
거품 아니라 봄
다만 경로가 좀 다른데 만주 관료 - 일본 대장성 관료 - 한국 경제기획원 관료 머 이런 연줄 한국도 교수나 수석급이면 미국 유학인데 관료 집단 자체는 철저히 일본식이긴 했어서
한국 관료들이 일본 관료들하고 커넥션이 있었음?
ㅇㅇㅇ
한국 대법원이 경성고등법원은 물론 시모노세키 지방재판소 판례도 인용해 쓰던 시절임
@140.248유 독립 이후에도 계속 커넥션이 있었던거임? 그게 아니면 그냥 식민지 시설 잔재같은데 글고 만주국 영향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선 총독부도 똑같이 했던게 있어서 만주국만 콕 집어서 특별시해야하는지 의문임
80년대 한국 관료들이 시행령 만든다 하면 어느 나라 시행령을 보겠음 도쿄 출장 가는 거 가령 국립공원이란 제도를 만든다 하면 일본 제도 그대로 본떠오지 금융, 체신, 교통, 지하철 안배낀게 없음
아 그게 핵심이 전후 일본 관료에 만주 관료 영향이 거센거임
@140.248유 만주->한국 직통이 아니라 만주->일본->한국 루트라는 소리지?
맞음
로스토의 지도편달이 더 큰 영향을 미쳤지만 중화학공업 육성은 박통의 야성적 결단
근데 중화학 공업 그거 브라질 터키 멕시코 다 한거 아니였나 한국만 파산 안하고 성공한거지
@ㅇㅇ(122.128) 여하튼 미제가 하지말라는거 해낸거니
@당공산월남 3차 때부터 주체적으로 계획 짜기 시작한거잖음 맨날 경공업 하청따리만 하면 발전에 한계가 있으니
@ㅇㅇ(122.128) 그런 나라들은 수입대체산업화같은 헛짓거리했지 박통처럼 수출로 중공업화 이런게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