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후기자본주의 + 플랫폼 시대.
이 시대를 겪으며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공통 정서가 생김.
- 노력해도 안 됨
- 정의가 작동 안 함
- 인간이 숫자로 환원됨
- 끊임없이 연결돼 있는데 외로움
이게 글로벌 보편 정서가 됨.
근데 이 감각을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콘텐츠화한 게 한국임.
한국은 이미 한(恨)을 갖고 있음.
한은 "해결되지 못한 슬픔"인데
지금 시대가 만들어내는 좌절이
딱 그 모양임.
비교해 보면 더 선명함.
일본의 모노노아와레는
"끝나는 것의 아름다움"이라
체념의 결이 강함.
근데 지금 시대는 체념을 미화하기 어려움.
사람들이 슬픈 게 아니라 화나 있음.
받지 못한 정의가 있고, 빼앗긴 시간이 있음.
모노노아와레는 그 분노를 담아낼 그릇이 못 됨.
아름답게 끝나는 정서는
끝나지 못한 분노 앞에서 무력함.
미국의 프론티어는
"개척하면 된다"는 정서인데
지금 시대는 넘어가도
똑같다는 걸 알아버렸음....ㅠ
서쪽 끝까지 갔는데도
똑같은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다는 감각.
실리콘밸리도, 우주도, 메타버스도
결국 같은 자본의 다른 얼굴이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챘음.
그래서 프론티어 신화의 약발이 빠지는 중임.
미국 콘텐츠 자체가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
중국의 협은 체제 밖의 정의를 그리는데
지금 글로벌 시청자에게 깊게 닿기 어려움.
체제 자체가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임.
누가 강호이고 누가 관인지 구별이 안 됨.
플랫폼은 체제인가 강호인가.
알고리즘은 권력인가 자연인가.
협의 윤리가 작동하려면
선악의 경계가 선명해야 하는데
지금 시대는 그 경계가 흐려진 시대임.
협은 낭만있긴 하지만 똑똑한 현대인에게
더 이상 답이 되기 어려움.
북유럽의 얀테는 튀지 않음의 윤리인데
지금 시대의 감각과 정면으로 충돌함.
지금 사람들은 "왜 나만 손해 보는가"라는
분노와 억울함에 빠르게 반응함.
SNS는 끊임없이 누가 더 잘 사는지 보여주고
플랫폼은 1등만 살아남게 만듦.
이런 시대에 "너는 특별하지 않다"는 윤리는
위로가 아니라 모욕으로 들림.
얀테는 닫힌 공동체 안에서만 작동하는 정서고
지금처럼 비교가 전 지구화된 시대엔 힘이 빠짐.
그래서 남는 게 한국임.
"눌렸는데 안 풀린 감정"
"받지 못한 정의"
"잘못 돌아간 세상"
이걸 가장 오래,
가장 정교하게 다룬 정서가 한임.
그리고 지금 세계가 거기 도달함.
근데 한만으로는 부족했을 거임.
한만 있으면 무거워서 못 봄.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작동하는 진짜 이유는
한이 정과 흥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임.
한은 깊이를 만들고
정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흥은 그 무거움을 견디게 함
이게 세트로 작동하는
문화권은 사실상 한국밖에 없음.
일본은 체념에 갇혀 있고
미국은 확장에 매달려 있고
중국은 협으로 단일화돼 있고
북유럽은 평준화로 묶여 있음.
한국만 세 가지 정서가 동시에 작동함.
그래서 한국 콘텐츠가 가진 진짜 무기는
"한"이 아니라 '한·정·흥 풀세트'임.
글로벌 후기자본주의 시대가
이 세트를 비로소 필요로 하게 된 거임.
사람들이 채워지지 않은 채로 사는 시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서는
체념도 아니고
극복도 아니고
"같이 견디는 감각"임.
그게 한국 정서의 코어임.
한국 콘텐츠가 세계에 통하는 건
한국이 갑자기 잘하게 돼서가 아니라
'세계가 한국이 살아온 정서의
자리에 도착했기 때문임.'
국경선을 500년동안 정적으로 유지한 나라는 한국 밖에 없지
국경선이 고정된 세상이 되니까 미쳐버리는 거임
현상유지는 한국이 전문가긴 한
근래 3갤에서 본 글 중 가장 가치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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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데 내용이 일리 있어서 가져온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