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언어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매우 유력하게 여겨지는 반도 일본어 학설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두 가지 언어가 사용되었다. 북방 고구려계 출신인 백제 지배층이 사용한 언어인 한국어족과, 일반 백성인 피지배층이 사용한 언어인 반도 일본어(일본어족)이다. 고대 백제 지배층이 쓰던 한국어 단어 중 일부는 현대 한국어로 이어졌고, 피지배층이 쓰던 반도 일본어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 일본어가 되었다.

백제는 한성에 성립된 초기 단계부터 북방계 고구려인들과 한반도 남부의 토착 마한 집단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다. 이 과정에서 상층 지배층은 고구려어(고대 한국어족)를, 하층 피지배층인 마한 주민들은 반도 일본어족을 구사하는 명확하고도 깊은 이중 언어 구조가 성립 초기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단순히 사투리가 조금 다른 수준이 아니라, 어족(Language Family) 자체가 완전히 분리된 두 집단이 결합한 국가였던 것이다.


중국 사서인 《양서(梁書)》 백제전에서 "백제는 지배층의 말과 백성의 말이 다르다"고 기록한 점은 바로 이러한 언어 구조를 정조준하고 있다. 한성백제 지배층의 두 주축 중 하나인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방계 언어를 고수했다. 

반면, 경기·충청·전라 서부 해안과 남부 침미다례 지역으로 이어지는 토돈분구묘인(마한 선주민)들은 현대 일본어의 뿌리가 되는 반도 일본어족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삼국사기》 지리지 등 고대 지명에 남아 있는 '밀(密, 3을 뜻함. 일본어로는 mitsu)', '무라(牟羅, 마을·읍락을 뜻함. 일본어로는 mura)' 같은 어휘적 증거들은 당시 마한 주민들의 언어적 실체를 방증한다.

따라서 백제가 국가 형성 초기에 경기·충청·전라 동부 내륙 쪽을 비교적 쉽게 통합해 나간 과정 역시, 이 확고한 이중 언어 체계를 바탕으로 통치 시스템을 정교하게 운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침미다례를 이룬 토돈분구묘인들이 고조선계 예맥 및 훗날 왜(일본)의 전방후원분 집단과 연합하는 동안, 한성 지역의 토돈분구묘인들은 고구려인들과 연합하여 국가를 세웠던 만큼, 이 과정에서 발생한 계층 간의 언어적 격차는 백제 사회에 한국어족 지배층어와 일본어족 피지배층어라는 뚜렷한 이중 언어 체계를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구조는 백제 중기 이후 점차 상층어(한국어족)가 하층어(일본어족)를 흡수·동화시키기 전까지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통치적 특성으로 기능했다.

이는 고대 한국어족 사용자들이 북방에서 남하하여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어족 사용자들을 몰아내고 지배했다는 알렉산더 보빈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국어학 잃어버린 고대 한국어 ‘백제어’를 찾아서: 이 문서의 상당 부분은 이 글을 참고해서 작성되었다. 도수희 교수는 이기문 교수처럼 백제가 '이중 언어 체계'로 나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고구려어와 현대 한국어가 친연성을 가지며 백제어가 신라어와 유사하다는 결론으로 도달했기 때문에 해당 교수의 주장을 전부 수용하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보빈은 진한 변한 이중언어설을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