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비슷하지
이 나라 붕당 연장선 맞고
남인 소론은 노선이 같이 갔음
소론이 정권을 잡고있던 경종 2년에 노론파 유생들이 경주에 송시열의 인산영당을 세웠다. 이때 소론인 경주부윤 권세항과 울산부사 홍상빈이 경주권 남인 유생 1백여 명을 동원하여 훼철해 버렸다. 노론파 유생들이 저항했지만, 권세항은 50여명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군사와 승도 1천여 명을 풀어 단번에 철거해버렸다. 이 와중에 노론파 유생 한시유가 혹심한 장형(杖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경종이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정권이 확립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노론이 이 사건을 간과할 리 없었다. 영조 원년(1725)에 채명보 등 경주의 노론파 유생들이 사건의 전말을 상소했고, 이에 따라 조정은 권세항과 홍상빈을 삭탈관직하고, 남인 유생들을 대거 형벌을 가하고 유배형에 처했다. 남인 유생들은 경주 육영재(育英齋)의 하과(夏課)에 참가한 영천·경주·울산의 28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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