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력사적인물들에
대하여 다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애국주의가 생기고 민
족적긍지를 가지게 됩니다.》
세계에는 자기 민족고유의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크고작은 수
많은 민족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조선민족처럼 인류의 발생기부터 자연을 정복하
고 사회를 개조해나가는 자주적인 활동을 통하여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그런 민족은 드물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진리를 사랑하였으며 의
리를 귀중히 여기였다. 그리고 례절이 밝고 겸손한 품성을 지니고
백두대산줄기로 잇닿은 한강토에서 단일민족으로 화목하게 살아
왔다.
조선인민은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그 어떤 침략자들과도 용
감히 맞서 민족의 존엄과 조국의 명예를 견결히 고수하였으며 인
간의 자주적권리를 찾기 위한 반동적통치배들과의 대중적인 투
쟁을 끊임없이 벌려왔다.
이와 함께 일찌기 인류문명의 려명기부터 자기의 근면한 창조적
로동과 지혜로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켜 자랑찬 전통을 이룩함으로
써 인류의 과학문화발전에 기여하였다.
나라와 민족을 제일로 사랑하시고 민족자존의 정신을 무엇보
다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유구한 력사와 더불
어 배출된 력대의 명장들과 명인들에 대하여서도 학생들과 청
년들에게 잘 알려줄데 대하여 여러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
였다.
1
《조선력사인물》의 제3권에 해당한 이 책에서는 리준, 안중
근, 안병찬 등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의 우국충신들, 사회
적진보에 기여한 박지원, 홍대용, 김정호 등 이름있는 학자
들에 대하여 주었다. 그리고 당대 력사를 리해하는데 도움을 주
기 위하여 우리 민족사에 치욕을 남긴 부정적인물들도 일부 넣
었다.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깊이 간직하
고 김일성민족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쳐나갈 결심을 새롭
게 가다듬기 바란다.
편 집 부
2
차 례
허준과 《동의보감》 ………………………………………… ( 5 )
울릉도를 지켜낸 안룡복 …………………………………… (12)
선왕을 살해하고 왕자리에 오른 광해군 ………………… (20)
생물학자 박세당 ……………………………………………… (28)
국문소설작가 김만중 ………………………………………… (33)
풍경화가 정선 ………………………………………………… (41)
실학자 리익 …………………………………………………… (47)
자연과학에 뜻을 두었던 홍대용 …………………………… (55)
실학자이며 작가였던 박지원 ………………………………… (62)
풍속화가 김홍도 ……………………………………………… (73)
나라를 위해 한생을 바친 박제가 ………………………… (78)
실학의 대표적인물 정약용 ………………………………… (83)
생활의 시인 김려 …………………………………………… (95)
금석학자 김정희 ……………………………………………… (107)
평안도농민전쟁의 지휘자 홍경래 ………………………… (114)
다재다능하였던 시인 조수삼 ……………………………… (127)
방랑시인 김삿갓 ……………………………………………… (134)
지리, 지도학자 김정호 ………………………………………(146)
4상의학의 창시자 리제마 …………………………………… (154)
애국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반일의병장 최익현 ………… (162)
3
13도의병도총재 류린석 ……………………………………… (168)
조선화의 전통적화법을 계승발전시킨 장승업 …………… (176)
대원군과 민비 ………………………………………………… (181)
갑신정변과 김옥균 …………………………………………… (192)
피의 교훈을 남긴 고종 ……………………………………… (204)
봉이 김선달 …………………………………………………… (216)
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 전봉준 …………………………… (227)
조선의 얼을 보여준 리준 …………………………………… (246)
의병대장이며 독립군대장인 홍범도 ……………………… (253)
애국적인 어학자이며 교육자인 주시경 …………………… (263)
이또를 쏴눕힌 렬사 안중근 ………………………………… (272)
매국역적을 처단하려 했던 리재명 ………………………… (281)
애국변호사 안병찬 …………………………………………… (287)
력사가, 작가인 신채호 …………………………………… (295)
4
허준과《동의보감》
날마다 허준은 해종일 앓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무거운 다리를 끌
며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다.
치료를 하고 또 하는데 환자는 좀처럼 줄어들줄을 모른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의원의 방조없이도 자체로 치료를 할
수 있을가. 약재는 산과 들 그 어디에나 무진장한것이니 그들이 알
아볼수 있도록 우리 글로 책을 써주게 되면 극히 중한 병이 아
닌 다음에야 자체로도 얼마든지 치료를 할수 있지 않겠는가.…)
벌써 젊은 나이에 명의로 된 그는 날마다 환자들이 부르는 곳으
로 다니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거듭 생각을 익혀나갔다.
《옳다, 책을 써주자. 그러면 누구나 의사가 될터인데…》
허준은 아무때나 볼수 있는 책을 써주기로 마음다졌다.
허준은 1545년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약 40리 내려가 자리를 잡
은 경기도 김포군의 한 마을에서 량반가정의 서자로 태여났다. 그
곳에는 허씨가문이 많이 살았는데 그중에서도 허준의 가정은 빈한
한 부류였다.
그때문인지 그의 집안래력에 대하여 기록된것은 별로 없다. 그
의 자는 청원이라 하였고 호는 구암이라 일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기로 소문이 났던 허준은 20대에 당
시 명의로 알려졌던 류이태선생에게서 고려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당시 명의는 시험을 쳐서 그 칭호를 받아야 하였는데 그것은 매
우 힘든 일이였다. 리조초시기부터 중엽까지 명의시험은 3년에 한
번씩 치르었다. 그것은 초시, 복시 두 단계로 나누어 보았으며 선
발인원은 한번에 3명을 넘지 못하도록 되여있었다. 그리고 초시에
합격된 다음에야 복시를 치며 여기에 모두 통과된 의사들에게
《명의》라는 칭호를 정식으로 주었다.
5
허준은 30전에 벌써 여기에 모두 통과하고 공식적인 명의자격을
가지고있었으므로 민간에서도 환자들의 존경을 받고있었다. 그
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된것은 1575년에 국왕 리공(선조)의
병을 치료하였다는것이다.
당시 선조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여 날마다 앓고있었으므
로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병이 위독해진 상태에 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의 명의들을 모두어 치료를 하게 되였다. 이때 허준도 국왕의
병치료에 선발되여 궁중에 들어가게 되였다. 이것은 허준이 벌
써 이른나이에 명의로 온 나라에 명성을 떨치고있었다는것을 말해
준다.
이때로부터 허준은 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3년간을 왕의 주
치의사로 있었다.
그러나 허준은 왕의 주치의사였다는데 그 공로가 있는것이 아니
라 자신이 의도하고 결심한대로 만사람을 위하여 고려의학을 집대
성하여 체계적으로 묶어놓았고 우리 나라의 약제법과 침구료법
을 더욱 심화시켜 새로운 의학과학분야를 개척하였다는데 그 업적
이 있는것이다.
그는 먼저 고양성이 편찬한 《찬도맥결》을 수정보충하여 1581년
《찬도방론맥결집성》(4권)을 훌륭히 편집출판하였다. 이 책은
진맥(손목의 맥을 짚어 병을 진찰하는것)에 대하여 주로 서술한것
이였다.
그리고 허준은 우리 나라의 3대의학고전으로 불리우는 《의방류
취》, 《동의보감》, 《향약집성방》가운데서 당시까지의 고려
의학의 모든 성과들을 하나의 정연한 체계로 묶어놓은 저서인
《동의보감》을 집필하였다.
그의 《동의보감》집필과정은 어려운 시련과 난관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은 오직 의학자로서 그의 남다른 책임감
과 의지의 결과에 이루어진것이다.
그가 《동의보감》저술을 시작한것은 1596년경부터였다. 허준
은 이 책의 집필에 정작, 양례수, 김응탁 등 6명의 고려의학자
들을 동원하여 편찬조를 뭇고 부문별로 과업을 주었다.
6
허준은 집필에 앞서 편찬조성원들에게 책의 저술목적에 대하
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벽촌시골에 의원과 약이 없어서 제 나이를 다 살지 못하는 사
람이 있고 우리 나라에는 약초들이 많은데 그에 대한 이름을 모르
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의학책들은 단편적인 기록
으로 되여있으므로 보잘것이 없는것이다.》
당시 의학을 한다고 으시대는자들은 대부분이 우리 나라의 의술
과 약재들에 의거하는것이 아니라 걸핏하면 중국의 의학책들을 펼
쳐놓고 《박식》을 자랑하는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여있었다. 때문
에 허준은 백성들이 의료상 방조를 받지 못하는 페단을 없애고 외
국책이나 또는 비싼 외국의 약재를 바라지 말고 우리 나라 그 어
디에나 있는 좋은 약재를 찾아내여 마음대로 쓰도록 하려고 하
였던것이다.
편찬조가 집필을 시작하려고 하던차에 또다시 왜놈들이 쳐들
어와 온 나라는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편찬조성원들은 모든것을 집어던지였다.
《의학책들이 불에 탔거나 볼만한 책은 왜놈들이 빼앗아갔으
니 무엇을 보고 책을 쓴단 말인가? 또 이런 형편에서 책이나 만들
어 무엇에 쓰며 도대체 우리 힘으로 한다는것자체가 타산이 없
는 노릇이다.》
이렇게 한탄하면서 모두가 제 일을 찾아 뿔뿔이 헤쳐갔다.
그러나 허준만은 굳게 다진 결심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락심하지 않고 한다면 능히 혼자서도 할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엄
혹한 환경속에서도 굴함없이 불철주야로 분투하였다.
그런데 이때 천연두까지 성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의
사들도 별다른 도리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물러섰고 사람들은 의사
도 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허준은 이 병을 막기 위한 사업에 달라붙었다.
《의원들이 병앞에서 물러서는것은 의원의 본분을 저버리는것이
다. 약을 쓰는 경우에도 병에 맞는 처방을 써야지 무턱대고 좋
다고 하는 약을 쓴다고 하여 만병이 다 낫는것이 아니다.》
7
허준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예방치료활동을 벌리는 한편 《언
해두창집요》라는 책을 알기 쉬운 우리 말로 서술하여 사람들이 널
리 리용하도록 하였다.(언해―조선말을 언어라고 하면서 조선말로
번역한다는 뜻.)
허준은 뒤이어 질병에 대한 구급치료대책을 서술한 《언해구
급방》과 산부인과치료책인 《언해태산요록》을 써냄으로써 사
람들의 불행을 덜어주었다.
뿐만아니라 허준은 임진조국전쟁이 더욱 확대되자 다리병을 심
히 앓고있어 걷기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었지만 주저없이 용약 싸
움터에 나가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였다. 그는 싸움터에서 부
상병들을 성의껏 치료해주었고 질병으로 앓고있는 군사들도 형
제와 같은 정으로 돌봐주었다. 그리하여 허준의 덕망은 더욱 높아
지게 되였고 깊은 존경을 받게 되였다.
그 후일인 1608년 2월 허준이 어머니의 묘를 보려고 고향으
로 내려간 사이 리공은 미처 약을 써볼 사이도 없이 급작스레 사
망하였다.
이때라고 생각한 야심군들은 좋은 기회라도 만난듯 입을 모아 그
를 깎아내렸으며 모든것이 《허준의 죄》때문이라고 피대를 세
워 몰아댔다.
그리하여 아무런 죄도 없는 허준은 기약할수 없는 귀양살이를 떠
나게 되였다. 그를 시기하던자들은 이에도 만족하지 않아 그에
게 다시 《통행을 금지시킨다.》는 형벌을 더 가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모략책동도 허준의 의기를 꺾지 못하였다. 그는
귀양살이기간에도 《동의보감》집필을 중단하지 않았다. 귀양살
이에서 풀려난 후 허준은 집필사업을 계속하여 1610년 드디여
《동의보감》을 완성하는 성과를 이룩하게 되였다.
이에 대하여 리조정부에서까지도 허준의 공로를 찬양하지 않
을수 없었으며 이런 령을 내리였다.
《양평군 허준이 일찌기 먼저 임금때에 의서편찬의 지시를 받고
여러해를 두고 노력을 계속하여 귀양살이로 떠돌아다니는중에서도
그 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허준에게 태복마 한필을 변대하여
8
주어서 그 공로에 보답하고 이 의서는 내의원에서 사무국을 두
고 재빨리 출판하여 중의에 반포하게 하라.》
《동의보감》은 무려 15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집필편찬되였는데
그것은 전 25권, 25책으로 구성되여있다.
《동의보감》은 목록 2권, 내경편 4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 등으로 되여있다.
이 책의 내경편에는 신형, 정, 기, 신, 혈, 진액 등과 5장6부의
기능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서술되였으며 외형편에는 머리, 얼굴,
눈, 귀, 코, 입과 혀, 이발, 목구멍, 목 등과 함께 등가슴, 배, 허
리, 옆구리, 피부, 손, 발 등에 대한 해부생리, 병리학적인 내
용들이 구체적으로 씌여있다.
잡병편에는 진찰법에 대해서와 발병원인, 여러가지 외상질병
들에 대하여 적었는데 허리상한것, 게우기, 기침, 황달, 창만, 소
갈, 부종, 학질, 온역, 옹저, 외상들에 대하여 밝혔다. 그리고 이
편 마지막에서는 산부인과와 소아과학에 대하여 썼다.
또한 탕액편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많이 쓰이고있는 1 400여종의
고려약들에 대하여 그것의 산지와 약효, 적응증, 채취법, 가공
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실례를 들어주었다.
침구편에서는 침자리와 침놓는 법, 뜸뜨는 법, 그 적응증에 대
하여 썼으며 경락(고려의학에서 경맥과 락맥을 아울러 일러오는 말)
에 대해서까지 언급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3 600여가지 병증에 쓰는 1 800여개의 고려
약처방과 민간료법들을 실례를 들어주면서 알기 쉽게 썼다.
허준은 또한 우리 나라 어디에나 있는 향약을 귀히 여기고 병마
다에 향약처방을 주면서 탕액편 고려약의 이름밑에는 사람들이 알
기 쉽게 민간에서 부르는 약명을 우리 글로 보충하여 써줌으로
써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구하도록 하였다.
특히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우리 나라는 동방에 자리잡고있으면서 의학의 전통이 끊기
지 않고 하나의 줄처럼 계승되여왔으니 우리 나라 의학을 동의
학이라고 말할수 있다.》
9
이것은 허준의 애국지심을 잘 말해주고있다.
그는 이 책의 진의에 대하여 철저히 예방의학이 치료의학에 선
행되여야 한다는것을 말하면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것이 선
차적이고 약과 침은 그다음이라고 하였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매개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을 기
록했을뿐아니라 국내에서 취할수 있는 명처방을 주고 그에도 부족
하면 침구로 해결할수 있도록 그 방법을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도 어디까지나 치료에서 심신단련과 규칙적인 생활조직에 1차적인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약물치료는 2차적인것으로 보았다.
《동의보감》에서는 매개 특이한 질병들의 치료뿐아니라 예방의
학적대책까지 세밀히 지적하였다. 물론 저자의 준비정도의 미숙성
으로 하여 미신적이며 비과학적인것들도 없지 않다.
《동의보감》이 편찬출판되게 됨으로써 의사들은 치료의 지침을
가지게 되였으며 일반가정들에서도 상식적인 귀중한 자료들을
볼수 있게 되였다. 따라서 허준이 그토록 념원하던 일반의료상 방
조를 줄수 있게 된것이다.
만사람이 칭찬하여마지않는 《동의보감》은 허준이 애국적열
정과 과학적량심을 가지고 온갖 시련을 박차며 집필완성한 고려의
학의 백과전서이다.
하기에 문인이였던 리정지는 《동의보감》에 대하여 다음과 같
이 썼다.
《이 책이 고금을 포괄하고 여러 학설을 절충하여 근본을 더
듬고 근원을 찾아서 제강을 짜고 요령을 틀어잡아 상세하되 산
만하지 않고 간명하면서 빠뜨린것이 없다.》
《동의보감》은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이웃나라들에서도 이구동
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중국의 한 사절단은 이 책을 보고
너무도 탐이 나 특별히 요청하여 한부를 가지고가서 여러번에 걸
쳐 출판하였다.
중국학자 릉어는 《동의보감》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책이름을 보감이라고 한것은 마치 해빛이 조그마한 구멍으
10
로 들어오기만 하여도 오랜 어둠이 당장 가셔지고 피부의 살금
까지 환히 보이는것처럼 이 책을 펼쳐보는 사람은 거울처럼 환
히 알수 있기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지금까지 나온 의서들의 부족점을 보충하고 누
구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게 하였으니 이 책을 인쇄
하여 널리 보급시키는것은 천하의 보배를 온 천하사람과 나누는것
으로 된다.》
또 일본학자 후지라는 의학서적이란 그 리론이 명확하고 정밀하
여야 의혹이 생기지 않고 사람의 생명에도 도움을 줄수 있는데
《동의보감》이야말로 오늘에는 물론 후세에도 높이 평가할만
한것이라고 하면서 《동의보감》이 나옴으로써 의학부문에서 걱정
이 없어지게 되였다고 평하였던것이다.
뿐만아니라 한 력사학자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동의보감〉 은 〈의방류취〉 의 방대한것에 비하여 간결하며 그
체계와 내용이 잘 구성되고 째인것으로 하여 사실상 동방의학의 최
고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할수 있다.》
이와 같이 허준의 《동의보감》은 우리 나라 3대의학책의 하
나로서 의학자들과 사람들의 절찬을 받게 되였다. 그후 《동의
보감》은 서유럽 여러 나라 말로 각국에서 번역되여 연구의 대
상으로 되였다.
허준은 이후에도 당시 굉장히 퍼지고있던 온역(급성전염성열
병)과의 투쟁을 위하여 1612년 《벽온신방》을 저술하였고 1613년
에는 《신찬벽온방》(권1)을 집필하는 성과를 올리였다.
우리의 고려의학을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킨 허준은 1615년 11월
자기 생애를 마치였다.
허준은 일생 우리 나라의 고려의학을 연구하였다. 그의 《동
의보감》을 비롯한 저서들은 현대고려의학을 과학화하고 민간료법
을 체계화하는데서 귀중한 자료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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