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는  본격적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보다 앞서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는 태양이 도는 원의 중심에 있지 않으며, 우주의 중심도 아니다'라는 메모를 남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 주장하기 40년전)

참고
그가 써놓은 메모 중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글이 있다. 그것은 그때까지 일반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음악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양음악사 100장면, 2002. 7. 20., 가람기획)>

다빈치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40년 전에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는 태양이 도는 원의 중심에 있지 않으며, 우주의 중심도 아니다”라고 기록했다. 뉴턴보다 200년 앞서 “모든 무게는 가능한 한 최단거리로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아직 어둡고 잠들어 있을 때 너무 빨리 깬 사나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로맨스> 작가 드미트리 메레시콥스키의 말은 그의 시대를 앞선 천재성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출처] [학습지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배우다.|작성자 백점코치


2015-382= 1633

1633년은 갈릴레이가 지동설로 종교재판을 받은 해, 판결이 6월 여름에 나옴

고로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메모를 남겼던 다빈치가 갈릴레이로 환생해서 본격적으로 지동설 주장하다 종교재판을 받았거나 
아니면 귀신이 되어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을 보러갔다는 말쌈 ㅎㅎ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1642)

 참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 Dialogo sopra i due massimi sistemidel mondotolemaico e copernicaon》의 집필에 힘써, 제1차 재판의 경고에 저촉되지 않는 형식으로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이 책은 1632년 2월에 발간되었지만, 7월에 교황청에 의해 금서목록()에 올랐으며, 1633년 1월에 로마의 이단심문소의 명령으로 로마로 소환되었다.
4월부터 심문관으로부터 몇 차례의 심문을 받고, 몇 가지 위법행위가 있었음을 자인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심문소 당국이 증거로 제시한 서류 중 몇 가지는 그 진실성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6월에 판결이 내려졌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절대로 이단행위를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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