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슈 섬 전투>
1945년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소련군과 일본제국군 사이에 진행된 이 전투는 쿠릴 열도에서의 전투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의 마지막 전투로 여겨지기도 한다 .
소련은 독일 항복 3개월 후인 1945년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다음 날 동북아시아 에서 일본군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스탈린은 쿠릴 열도와 훗카이도까지 점령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1945년 8월 15일, 소련 극동 지역 소련군 총사령관인 소련 원수 알렉산드르 M. 바실레프스키는
제2극동 전선 사령관인 막심 A. 푸르카예프 장군과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관인 이반 S. 유마셰프 제독에게
소련 캄차카 반도 남단 바로 앞, 군도 북쪽 끝에 있는 슘슈와 파라무시로 섬을 점령하여 쿠릴 열도 정복을 명령했다.
웃긴건 그시점 일본은 이미 항복을 선언했고
일본군은 미국과의 전투만 예상했지, 소련군에 대한 대비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일본군 병력
- 8,480명 그리고 77대의 전차
소련군 병력
- 8,821명 그리고 64척의 함선, 40기 이상의 폭격기.
- 전투 개시 -
17일 오전 5시 30분, 일본 해안 포병대는 다가오는 소련군 상륙정을 발견하고 포격을 가해 5척의 상륙정이 파괴된다.
간신히 포격을 뚫은 소련군은 장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배를 타고 해안에 도달할 수 없었고, 헤엄쳐 상륙해야 했다.
상륙을 마치고 내륙에서 전투가 있어났는데
일본군은 미군과의 상륙전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소련군을 격퇴했고 (심지어 미국 상대로는 44년 10월부터 금지된 반자이 돌격으로 도륙내버림)
소련군은 나치독일과의 대전차전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군의 전차를 파괴하며 저항했다.
(소련군의 45mm 대전차포를 비롯한 대전차 무기들)
대본영측은 애초 18일 오후 4시까지 휴전 협상을 진행을 하려고 했기때문에 도중에 일본은 공격을 중단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산발적인 소규모 교전이 발생해서 양측 사상자가 늘어났다.
20일 오전 8시, 6척의 소련 함대가 진입을 시도해 일본 포병대와 전투가 일어났고
소련 함대는 15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
8월 23일, 이미 천황이 공식적인 항복 방송까지 했기 때문에 일본군은 더이상의 사상자를 피하기 위해 소련군에 항복을 결정한다.
- 양측 피해 -
일본군
- 사망 191명 , 부상 409명 , 전차 20대 파괴
소련군
- 사망 2421명 , 부상 또는 실종 1051명 , 상륙정 5척 파괴
일본군이 사망자 교환비는 12:1 로 개쳐발랐다.
소련 장교들은 나중에 이 작전이 적 영토에 대한 상륙 작전의 어려움과 경험 부족을 보여주었다고 자주 말했으며,
슘슈에서의 소련의 경험은 일본 본토의 홋카이도 섬을 침공 하지 않은 이유로 들었다.
사실 소련은 해공군 병신이라 일본 본토를 대규모 침공할 능력이 없었다.
(상대가 미국이라 가미카제까지 쓴거지 소련 해군쯤은 일본이 통상공격으로 털어먹음)
한국인들은 또 aigo !!
(소련은 함대,항공기 폭격 지원 받았지만) 일본군이 전차 끌고 싸워서 교환비를 압도했습nida!!!
이러면서 깎아내리던데,
같은시기 1945년 8월 12~16일, 만주에서 벌어진 무탄치앙 전투에서
전차,자주포 1100대 몰고온 소련 정예군 29만명 상대로
당시 일본제국 최약체였던 관동군 6만명이 대전차포랑 궤도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자폭공격으로 소련전차 600대 파괴함
교환비도 비슷하게 뽑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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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그 래전드노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