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우>
일본인들에게 그는 본토 폭격을 위해 내습한 미군 B-29기를 들이받아 격추시킨 ‘황군의 영웅’ 가와다 세이지(河田淸治)로 기억돼 있다.
1922년 12월23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에서 태어나 그는 인천북상업학교를 마치고 1941년 4월 경성법학전문학교(지금의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육군에 지원한 노용우는 1943년 10월 육군특별조종견습사관(특조) 1기로 선발돼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당시 특조 지원조건>
특별조종견습사관 시험은 경성과 도쿄에서 1·2차로 나눠 치를 만큼 매우 어렵고 까다로웠다.
1944년 10월1일 정식 소위로 임관 후. 노용우가 배치된 곳은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B-29 폭격기의 수도권 공습의 길목에 해당하는 아이치현 기요스 비행기지 제5전대였다.
1945년 5월29일, 이날 오전 8시 노용우는 B-29 편대의 기습 통보를 받고 출격했다.
시즈오카현 가와네초 부근에서 B-29 대부대와 조우한 노용우의 비행기 Ki-45 토류는 적기의 공격으로 날개가 꺾인 상태에서 M. R. 클라크 주니어 중위가 조종하는 B-29를 몸체로 들이받아 격추시켰다.
노용우는 추락하면서 탈출했지만 불행하게도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추락사 하고 말았다.
노용우 소위는 야스쿠니에 이름이 새겨졌고 그의 유골은 후생성 원호국에 보관되어있다가 다른 조선인 전사자들과 함께 도쿄 메구로구의 사찰 유텐지로 옮겨졌다.
그의 유골은 6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여동생에게 전달 되어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묻히게 된다.
대체 왜 60년이나 지나서 돌아오게 되었을까?
일본이 "응 안줄거야" 라고 해서 그랬을까?
그 이유는 .....
충격적이게도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동포의 유골을 하찮은 도구쯤으로 취급하며
일본과 기싸움하다가 늦어진것뿐이었다...(유골 운송비 등 비용 일체는 일본 정부가 부담했다..)
항상 일본은 사과와 반성도 안하고 보상도 안하는 그냥 악마라고 거짓으로 가르치지만
사실 비겁하고 치졸한 짓을 했던것은 바로 한국 정부였던것이다...
자매품으로 소년병 참전용사들 기록 말소도 있다.
함께 싸우다 전사한 조선인을 군신으로 기억해줬던 일본 vs 목숨바쳐 싸운 자국 젊은이들 토사구팽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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