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1945년 7월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CA-35 USS 인디애나폴리스함이 오키나와 남부, 괌에서 레이테 섬으로 이동하던 중 함의 대처 능력을 벗어난 일본 제국 해군의 잠수함 I-58의 뇌격을 받고 침몰하였고,
이후 해군의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희생자 수가 늘어났음에도 임무 실패의 책임을 인디애나폴리스함 함장 맥베이 대령에게 전가한 사건.
1945년 7월 16일, 승조원 1196명과 원자폭탄의 재료, 즉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인디애나폴리스는 무사히 화물을 실어나른 후 다음 작전을 위해 필리핀 레이테섬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7월 30일 새벽. 일본군 잠수함 I-58이 이를 발견하고 어뢰 6발을 발사, 2발을 명중시켰다. 이 공격으로 인디애나폴리스호는 치명타를 입었다.
피격 직후 함장은 즉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승조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려 빠르게 탈출하여 이 시점에서 생존자는 900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구조는 오지 않았다.
결국 격침 후 나흘이나 지난 8월 2일 구조가 시작되었고 최종 생존자는 3분의 1 남짓한 316명으로 줄어들었다.
해군의 실책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해군은 책임 떠넘기기로 함장 맥베이 대령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결국 해군의 책임까지 모조리 떠맡고 유족들의 비난을 혼자서 뒤집어쓴 맥베이 제독은 1968년 향년 70세로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결했다.
인디애나폴리스 생존자들 중 일부는 함장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하였으나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고 반세기가 넘은 시점인 1997년, 전혀 다른 곳에서 이 사건이 재조명받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헌터 스콧(Hunter Scott)이라는 이름의 한 12세 소년이 영화 죠스가 인디애나폴리스 침몰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 흥미가 생겨 자료를 모았다. 그런데 실제 기록이 별로 없어서 인디애나폴리스 생존자 150명 가량을 직접 인터뷰하여 자료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맥베이 제독이 억울한 누명을 썼음을 알고는 제독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는 탄원 운동을 시작했다.
이 소식은 언론에까지 보도되었고, 1999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이 미의회 공식 결의안으로 올렸다.
그리고 이후에는 엄청난 편지가 존 워너 의원의 앞에 전달되었다.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 일본 잠수함 I-58의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 당시 중좌가 직접 편지를 보낸것이다.
자신이 편지를 보낸 목적은 맥베이 제독의 명예 회복임을 밝혔다.
이 편지가 공개되자 미 의회는 이견없이 곧바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때마침 시기적절하게 그 당시의 보안 문서들이 모두 보안이 해제되며 공개되었고, 맥베이 제독이 구조 신호를 분명히 보냈지만, 해군 수신소가 의도적으로 구조신호를 무시했음이 밝혀졌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맥베이 제독을 복권하고, 그를 포함하여 당시 생존자 316명에게 은성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과거 적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친구가 된 미해군을 위해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일본 잠수함 함장...
무사도와 기사도를 보여준 진정한 남자들이다....
- dc official App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