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레밀리아 너 평소에 흡혈귀는 최강의 괴물이라느니,
드라큘라의 피를 물려받았다느니 하는데 그게 얼마나 굉장한 건지 잘 모르겠어.
엑? 지금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던 거야?
하지만 일본인인 걸.
유럽의 요괴가 어쩌느니 해도 감이 잘 안 온단 말이지.
그렇지, 네가 설명해주면 되겠네.
응? 그... 그렇게 물어보면 정확하게 설명은 못하겠지만...
뭐야, 사실은 시시한 요괴인 거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이런 건 파체한테 설명해 달라고 해야지.
이럴 때를 위해서 있는 식객인 걸.
그래서 나를 찾아온 거구나?
흠... 흡혈귀와 드라큘라란 말이지.
일단 드라큘라(Dracula)라는 이름부터 볼까?
사실 루마니아의 드라큘라는 흡혈귀와 무관한 사람이야.
왈라키아 공국(Wallachia)의 블라드 3세(Vlad III)는
드라큘라(Drăculea)라는 별명을 사용했는데 용의 아들이란 뜻이야.
그의 아버지 블라드 2세는 헝가리의 용 기사단(Order of the Dragon)의 기사였기 때문에
용의 블라드(Vlad Dracul, Vlad the Dragon)라고 불렸거든.
그는 평생을 반대파의 귀족, 오스만 등과 싸운 장수였는데
전쟁 중 포로들을 꼬챙이에 꽂아서 처형했기 때문에 꼬챙이 블라드(Vlad Ţepeş)라는 별명을 얻기도 해.
이런 그의 면모는 영국 작가 아브라함 스토커(Abraham Stoker)에게 큰 영감을 줘.
이미 19세기에는
피에르 쥘 테오필 고티에(Pierre Jules Théophile Gautier)의 죽은 여자의 사랑(La morte amoureuse),
조지프 셰리든 레 퍼뉴(Joseph Sheridan Le Fanu)의 카르밀라(Carmilla)
같은 흡혈귀 소설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지.
아브라함, 통칭 브람 스토커는 드라큘라 블라드와
루마니아 전설의 스트리고이(Strigoi)나 모로이(Moroi) 등의 전설에서 영감 받아서
소설 드라큘라를 쓰게 되지.
루마니아의 모로이나 스트리고이는 무덤에서 깨어난 일종의 유령들로 피를 빠는 괴물들이지.
조류나 작은 짐승들로 변하며 밤에 사람들을 습격하거나 호수에 숨어 사는 괴물들이야.
무덤에서 일어나 배회하는 이런 괴물들의 전설은
서양의 기독교 매장 문화, 그리고 의학 지식의 부족으로 발생한 조기 매장,
페스트 등의 전염병,
그리고 마녀나 정령 따위에 대한 기존 미신이 결합한 결과로 여겨져.
그렇다면 흡혈귀 드라큘라라는 건?
완전한 개뻥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여기 진짜 흡혈귀가 떡 하니 존재하는 걸?
흡혈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건 아니라구.
전 세계에는 광범위하게 흡혈귀에 대한 전설과 신화가 있으니까 말이지.
차라리 드라큘라 말고 이들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건 어때?
(신 아시리아 제국의 청동패. 중앙에 당나귀를 탄 라마티슈가 새겨져 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라마티슈(Lamashtu)는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혹은 괴물로서
당나귀의 귀와 이빨을 가진 괴물이야. 암사자의 얼굴과 새의 발톱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었지.
라마티슈는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릴리스(Lilith)와 동일시 되거나 같은 기원에서 변형된 걸로 여겨져.
그리스의 스트릭스(strix 복수형-striges)의 경우, 새의 몸에 여자의 얼굴을 지닌 괴물들이야.
아까 말한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도 이들을 기원으로 두고 있어.
안토니누스 리베라리스(Antoninus Liberalis)의 책, 그리스 변신 이야기집(Metamorphoses)을 따르면
이 괴물의 근원을 폴리폰테(Polyphonte)라는 여성에게 두고 있어.
폴리폰테는 아르테미스에게 영원한 처녀성을 맹세한 탓에
아프로디테의 저주로 곰과 정을 통해 아그리우스(Agrius)와 오리우스(Oreius)란 두 쌍둥이를 낳아.
이 곰과 인간 양쪽을 닮았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지.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을 습격하며 잡아먹었어.
이들의 식인에 대한 죄로 이 집안의 모두가 시체를 뜯어먹는 새로 변하고 말아.
그 중 폴리폰테는 올빼미를 닮은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고 스트릭스라고 불리게 되었지.
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올빼미들로 날아다니며 피를 빨고 전쟁을 알리며, 아이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괴물들이야.
그리스인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도 새는 특별하게 여겨졌지.
새는 신들의 전령이나 영혼의 상징으로도 여겨졌지만 반대로 불길한 새들도 있지.
까마귀나 독수리처럼 시체를 뜯어먹거나 쏙독새, 올빼미 같은 밤새들은 불길한 소식의 전조로 여겨졌어.
그 때문에 이들 말고도 많은 흡혈귀들이 밤새로 변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지지.
당나귀나 사자, 곰이라니... 뭔가 전부 별로인걸.
올빼미는 나쁘지는 않지만 반인반조라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아.
뭐 괜찮아. 아직도 흡혈귀들은 많이 있으니까.
필리핀의 경우 피를 빠는 존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보통 아스왕(Aswang)이라 하는데 밤새 따위의 동물들로 변신 능력을 지니고 빨판 같은 긴 혀로 피를 빨거나 임산부의 배꼽으로 태아를 빨아먹는 마녀들이야.
그 외에도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서 다양한 흡혈 괴물들의 이야기가 존재해.
마나랑갈(Manananggal)은 밤이 되면 박쥐 같은 날개가 솟아서 피를 탐하러 다니는 여성이야.
재밌는 건 마나랑갈은 밤이 되면 하반신과 하반신이 떨어져서 하반신은 자신의 침대 위에서 자고 상체만 날아다닌다는 사실이지.
그 외에도 흡혈 짐승인 왁왁(Wakwak)이나 타아낙(Tiyanak)도 있어.
티아낙은 갓난아기 모양의 흡혈귀인데 사람들이 집으로 들이면 덤벼들어 피를 빨지.
그 외에도 필리핀의 피를 빠는 존재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지. 어때?
엑... 태아를 빨아 먹는다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떨어진다느니,
너무 징그럽잖아.
무엇보다 내가 따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든다구...
정말이지... 까다롭네.
그럼 몇 개 더 읊어볼게.
수쿠이안트(Soucouyant)는 도미니카 , 세인트 루시 , 트리니다드, 아이티, 과들루프 등 카리브 해 지역의 제도들의 흡혈귀야.
이들은 늙은 노파의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피부를 벗고 본모습인 불덩어리로 변신하지.
이들은 좁은 창문의 틈새나 열쇠구멍 같은 작은 구멍을 통해 침입해서 피를 빨아가지.
학자들은 수쿠이안트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럽의 흡혈귀 전설이 전파되어 변이한 결과로 추측하고 있어.
이들이 벗어 놓은 피부는 마술의 좋은 재료로 쓰인다고 해.
마술의 좋은 소재라니... 관심이 생기는 걸. 어때?
그러니까 못한다구!
그건 유감인 걸.
호주 원주민 전설의 야라 마 야 후(Yara-ma-yha-who)는 정말 괴상함의 끝을 달리는데
이들은 붉은 피부에 큰 머리를 가진 개구리 비슷한 생물이야.
무화과나무에서 살면서 희생자가 아래로 오면 그들이 잠을 자는 틈을 사서 피를 빨아들이는데
놀랍게도 손과 발의 빨판으로 피를 빨아들이지.
멕시코의 틀라휄푸치(Tlahuelpuchi), 중국의 강시, 동부 케이프의 임팔루루(Impundulu)는?
서아프리카의 오바이포(Obayifo)는 어때? 밤에 겨드랑이와 항문에서 빛이 나.
밤에 그곳이 빛난다니... 반딧불이가 아니라구...
환상향에 반딧불이 요괴는 하나면 충분하잖아?
그리고 하나같이 무리야... 난 흡혈귀 자격이 없는 걸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궁금한 게 몇 가지 생겼어.
하나는 흡혈귀의 전설이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거야.
둘째로는 어쩐지 흡혈귀 전설은 여자 형태의 흡혈귀가 많은 것 같은 걸.
어머. 역시 하쿠레이의 무녀. 예리한 걸.
맞아. 피와 살을 먹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부터 광범위하게 존재했지.
흡혈은 말하자면 식인이잖아?
흡혈귀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존재, 즉 신, 괴물, 악마 등에서 유래한 거야.
이런 신이나 정령, 괴물들은 시대가 흘러 악마나 마녀로 불리게 되지.
달리 말하자면 흡혈귀와 마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 전설이라 할 수 있겠네.
특히 밤에 몰래 스며들어 정기를 빼앗아가는 흡혈귀는
유혹자의 면모도 갖추면서 여성의 형태를 띄는 일이 더 잦아지지.
결국 마녀와 흡혈귀는 한 세트일 수 밖에 없단 거야.
그래서 레미와 내가 단짝 친구인지도 모르겠네.
우우... 파체...
역시 너밖에 없다구...
앗. 그러고보니 말레이 반도의 흡혈귀를 얘기 안 했네.
말레이의 유령 전설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존재인 페낭가랑(Penanggalan)은
머리만 날아다니는 흡혈귀야.
낮에는 여인의 모습이지만 밤이 되면 목이 떨어져 날아다녀.
그것도 특이하게 위나 창자를 비롯한 내장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머리가 날아다니지.
피를 잔뜩 마시고 오면 식초가 가득한 통에 내장을 담그고 피를 빼낸다네.
엑... 내, 내장?
우와! 내장! 언니 내장 꺼낼 수 있는 거야?
나 내장 보고 싶어, 언니! 내장 꺼내 줘, 응?
한 번 해봐, 언니! 응? 응? 응?, 응?
언니, 내장!
그런 거 못한다구...
걱정 마, 언니! 내가 도와 줄게!
(꾸욱-)
그리고 오늘도 홍마관은 폭발하고 말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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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과 신뢰의 홍마관 폭발 엔딩.
애들 만담 넣는다고 초상화 넣다보니 중요한 자료 사진이 몇 장 빠졌다...
영어나 원어 표기 항상 고수하고 있으니까 궁금한 건 구글링.
이런 거 좋아하니까 더 씁니다. 추천하고 싶은 캐릭터, 혹은 궁금한 것은 댓글로 남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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