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가치관의 도가니
벚꽃도 지고, 하쿠레이 신사는 푸른 잎으로 뒤덮였다.
떡잎에는 인간에게 활력을 주는 마력이 깃들어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기다.
하쿠레이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에게 바깥 세계의 학생인 우사미 스미레코가 찾아왔다.
「아아─, 알바라. 안 하면 안 되나아.」
「알바라니, 일한다는 소리야?」
「네, 아는 사람 중에서 알바를 시작한 사람이 있거든요. 뭐, 일단 교칙위반이긴 한데….」
「분명 스미레코 너 학생이라고 했었지? 학생도 일을 해? 부모님이 돈 안 주셔?」
「으음, 뭐랄까. 꼭 돈을 벌려고 일하는 건 아니거든요. 사회공부라고 해야하나, 일을 하는 게 어른처럼 보이잖아요. 공부만 맨날 하는 학창시절은 질리니까 다들 먼저 어른이 되려고 필사적인 게 아닐까. 주변에서 다들 알바를 하니까 나도 해야하나 초조해져서. 그래도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역시 알바죠. 뭐어, 어른이 되면 일하는 게 싫어질 지도 몰라도, 지금은 해보고 싶다고 해야하나…」
변명하듯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며 스미레코는 레이무의 얼굴을 봤다.
「그러고보니, 레이뭇치는 벌써 일을 하네. 무녀 일.」
「뭐? 뭐어, 응…. 그러네.」
「역시 대단해. 환상향의 사람들은. 전부 어려서부터 일을 하고─」
「그, 그런가?」
「무녀 일에, 요괴퇴치에 그밖에도 이결 해결 같은 것도 이것저것 하고…. 제대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아니─, 별 대단한 것도 아닌데, 뭐.」
갑자기 칭찬받은 레미우는 쑥스러워 했다.
「고등학생이 가능한 알바는 편의점 알바 같은 거지, 요괴를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지키는, 뭐 그런 화려한 게 아닌데─」
스메리코는 편의점에서 지루하게 알바를 하는 자신을 상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무녀나 요괴퇴치 일하면 많이 받죠?」
스미레코는 검지와 중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사인을 한 채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레이무는 스미레코의 손동작을 따라했다.
「…그래. 화려한 일이라, 요괴들한테서 질릴 정도로 받아.」
그걸 들은 스미레코는 화색이 돌았다.
「에, 질릴 정도로!?」
「그렇다니까─. 아주 이러다 죽겠어─. 잔뜩 탄막 받는다고.」
「탄막!?」
그 말을 들은 스미레코는 축 쳐졌다.
「말고! 벌이 말이에요, 벌이! 얼마나 돈을 받냐고 묻는 거에요!」
착각했던 레이무는 얼굴을 붉혔다.
「아, 돈? 어, 어어, 으음….」
「뭐어, 딱히 많이 버는 것 같진 않아 보였는데요.」
「돈이라…, 왜 그걸 묻는 거야?」
「왜긴요, 궁금하니까요. 일자리를 찾을 때 제일 먼저 따지는 게 그거라도 해도 될 만큼 중요하거든요, 돈은.」
「아─, 그러네. 나도 돈 많이 벌고 싶어. 그래도 난 이 일을 돈 때문에 선택한 거 아니거든. 무녀 일은 태어났을 때부터 했던 일에다가 이변을 해결한다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에, 자원봉사였어요?」
「그렇지 않을까.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는 뭐라도 돈이 되는 걸 받긴 해. 새전도 벌이라고 하면 벌이고…. 그래도 나한텐 일이란 건 그냥 하는 게 당연한 거야.」
「흐음, 대단하다아. 멋지다아. 일을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하는 게 당연하니까 한다라.」
「너도 아까 그렇게 말했잖아. 학생은 돈 때문에 일하는 게 아니라며?」
「에? 아뇨아뇨, 그거랑 이거는 별개죠! …아니, 그것도 아닌가? 잘 모르겠네.」
─독기가 충만한 마법의 숲 가까이에 세워져 있는 도구점 『향림당』
주로 바깥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다. 그곳의 점주 모리치카 린노스케는 넘치는 고도구들 정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컴퓨터가 이렇게나 많다니. 이거고 저거고 죄다 불량재고 천지로군. 뭐가 팔려야 말이지……. 아깝지만 정리하는 수밖에.」
그는 쌓여있는 컴퓨터 산을 보았다. 세로형 컴퓨터, 가로형 컴퓨터, 노트북에 타블렛까지. 이미 시대도 성능도 엉망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거 곤란하군. 정확한 처리기준을 세울 수 없어. 『작을 수록 새 거에 고성능이니까 가치가 있다』고 스미레코 양이 말했다만, 도구는 대개 오래 되고 큰 물건일 수록 가치가 있지 않은가. 대체 뭘 남겨두고 뭘 버려야할 지 알 수가 없으니.」
린노스케는 가까운 시일에 전문가를 불러 정하자고 생각한 다음, 바로 재고정리를 포기했다.
「─그래서 말이다만, 오늘 자네 보고 오라한 것은 별일은 아니다. 여기 있는 컴퓨터들을 감정을 좀 해줬으면 싶다만.」
스미레코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놀라워했다.
「우와─, 컴퓨터 엄청 많다! 가게 수준인데요!」
「여기 가게 맞다만.」
「아, 여기 가게였지. 미안해요, 중고 컴퓨터 가게 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스미레코는 자신만만하게 부탁받은 의뢰를 하기 시작했다.
「…이거 참 본 적 없는 것들만 잔뜩 있네요. 가져가면 가치가 있는 물건이 있을 거 같긴 한데…, 아마 전부 듣보잡 같은데.」
「듣보잡? …쓰레기란 소린가?」
린노스케는 한숨을 쉬었다.
「뭐어, 그렇네요. 쓰레기요. ……어라? 이 노트북 프린터 같은 거 딸려있네. 이런 노트북도 있었나?」
스미레코는 본 적 없는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노트북에 손을 뻗었다.
「무슨 소리지, 바보 같은 질문이로군. 아까부터 거기 있었지 않나.」
「음………, 에!?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처음 보는 거라는 뜻이라고요!」
「자네도 처음 보는 거였나. 참고로 그건 『워드프로세서』, 통칭 『워드』라고 불리는 거다. 우리 가게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워드』…? 뭐지, 그게?」
「워드를 모르나? 문장을 쓰는 기계다.」
린노스케는 보는 것만으로도 물건의 용도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잘 안다는 듯이 말했지만만 실은 그도 사용법을 전혀 몰랐고, 실제 가치도 알지 못 했다.
「문장을 쓴다고요? 그런 거, 어지간한 컴퓨터는 가능하거든요. 근데 워드, …워드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학교에서 배운 거 같기도….」
스미레코는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려고 했지만 권외라는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집에 가서 찾아볼게요.」
(※ Brother 사의 워드프로세서. 일본에선 80~90년대, 즉 ZUN 학창시절에 유행함.)
─반나절이 지나 대부분의 컴퓨터에는 색지가 붙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빨간색이었다.
「…빨간색은 가치가 없는 거. 그러니까 버리거나 하는 게 좋은 거고. 파란색은 아마도 아직 쓸 수 있는 거. 하얀색은 보관할 거.」
「그렇군. 거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었나. 이걸로 고민할 거 없이 재고를 처분할 수 있겠군. 고맙다. 이건 자네밖에 못 하는 일이었어.」
「저기, 이거 제가 일한 거 맞죠?」
「음? 물론이지, 중요한 일을 한 거다.」
스미레코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우물쭈물거렸다.
「저기, 그러면, 그…, 뭐냐.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스미레코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흐음, …그렇군. 자네는 품삯을 바라는 건가.」
「그, 그렇긴 한데요. 품삯이라고 표현하지 마요. 표현할 거면 임금! 급료! 급여!」
「…알았다. 임금을 원할 거라고는 생각 못 해서 미안하군. 그래서 얼마나 받고 싶나?」
스미레코는 곤혹스러웠다. 이제껏 일한 적이 없거니와 돈이든 뭐든 원하는 건 전부 부모님께 이야기해서 받았었다. 그래서 가치를 따지는 법을 몰랐다. 하물며 임금협상이라니 스미레코에겐 인터넷에 검색해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 얼마면 적당하죠? 이 감정 일은?」
린노스케는 책상 서랍을 열어서 뭔가 종이다발 같은 것을 꺼냈다. 스미레코는 그가 손에 든 종이의 매수보다는 종이의 외견에 더 흥미가 갔다. 마치 지폐 같기도 했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그게 뭐에요?」
「스미레코 양…. 임금을 받고 싶다고 했으면서 이게 뭔 줄 모르는 건가? 이건 돈이다.」
「돈…, 아니 그럴 거 같긴 했는데. 언제적 시대의 돈이에요?」
「…그렇군. 이건 바깥세계의 돈이다만 스미레코 양이 모른다는 건 이제 바깥세계에서는 이걸 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소리겠군.」
「환상향 돈은 이렇게 생겼어요? 어, 이건 누구지?」
스미레코의 흥미는 인생에서 처음 받는 임금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폐의 초상화에 쏠렸다. 그녀는 본 적이 없는데도 왠지 알고 있는 거 같은 지폐에 현기증이 날 거 같았다.
………평소처럼 스마트폰 알람이 부드럽게 음량을 높였다.
분명 신사적이고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그 멜로디는 스미레코를 깨웠다. 부드러운 음색이 정신을 후벼팠다.
그녀의 기상은 항상 좋지 않았다. 그녀는 꿈 속에서는 환상향에 가기 때문에 꿈 안에서 활동적이라 자도 피로가 가시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조사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베개 옆에 있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검색하려다가 금방 그만뒀다.
몸을 일으키고 책상에 가서 닫힌 노트북을 펼쳤다. 평소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했을텐데, 확실히 조사하고 싶은 것이 있어 노트북을 키기로 했다.
「워드, 워드, 워드……. 그렇구나. 문장을 쓰기 위한 기계로,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있던 거구나. 들은 적은 있는데 생각이 안 났었어. …『비극, 요즘 세대는 워드를 모른다』는 건 뭐야, 모르는 게 아니라 생각이 잠깐 안 난거야. 누굴 바보로 알아.」
스미레코는 악담을 하며 기사를 비웃었다.
「─워드는 이제 생산이 종료되었고, 지금은 일부 애호가들에게 팔린다라….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을 지도 몰라.」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린 다음, 신경 쓰이던 것을 조사했다. 그것은, 본 적이 없는 초상화가 그려진 지폐였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화면과 검색결과를 비교했다.
─다른 날, 향림당. 스미레코는 흥분한 상태로 린노스케를 방문했다.
「야마토! 어, 그러니까 야마토타케루의 지폐는! 엄청난 가치 있다니까요!」
「그, 그런가?」
「그래요! 어차피 환상향에서 그거 별 가치 없는 돈이죠? 그렇다면 바깥세계에 갖다 팔면 대박난단 소리에요!」
「…그렇군. 자네 말에 일리가 있는데.」
「말고도 가치가 엄청난 지폐가 있을 지도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요, 그거 제가 밖에다가 팔아 환전해줘요?」
몹시 흥분한 스미레코에 비해 린노스케는 냉정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가. 하지만, 바깥 세계에 팔아 돈을 번다고 뭐가 달라지지?」
「에? 돈을 벌면 좋은 물건도 살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고, …또. 음.」
「한심한 일이다. 바깥 세계의 돈은 이 환상향에서는 아무 가치도 없다.」
「그래요? …그래도 낡은 돈이지만 여기서 실제로 야마토타케루 천엔 지폐을 사용하잖아요. 가치가 있다는 소리 아니에요?」
「분명 환상향에선 사용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야마토타케루 지폐 이외에도 일상적으로 쓰고 있지. 하지만 그건 그저 바깥세계에서 들어온 화폐를 재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환상향에서는 지폐에 쓰인 액수나 초상화를 포함해 그 자체에도 커다란 가치는 없다.」
「? 무슨 소리에요?」
「환상향에선 기본적으로 물물교환이다. 여기서 바깥세계의 화폐는 휴대가 쉬운 교환물품에 불과하다. 교환할 때 가치가 정해질 뿐 화폐 자체에 고정된 가치는 없다. 애초에 그런 종이쪼가리에 누가 공통된 가치를 부여한단 말인가?」
스미레코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린노스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본래 가치가 없는 종이쪼가리에 가치가 있다고 여겨, 실제로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신의 일이거나 신을 사칭하는 극악인(極悪人)들의 짓이다. 자네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지?」
「…신이 했을 리가 없다는 뜻이니까 지폐를 만드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란 소리에요?」
「그래. 그 증거로 악인일수록 필요 이상으로 돈을 모으려고 집착하지. 그저 종이쪼가리인데도.」
「아, 그렇긴 한데….」
「훗, 자네는 이 일에 적합하군.」
스미레코는 그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 한 채로 동의하고 말았다.
「그럼, 돈을 벌려고 일하는 게 나쁘다는 거에요?」
린노스케는 목을 까닥이며 조금 유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로 돈을 선택하는 건 매우 지당한 일이오, 오히려 올바른 돈의 사용법이다. 악인들은 그게 아니라, 비인도적인 행위를 해서 모으거나 화폐에 가치를 부여하지. 『이 종이쪼가리에는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소.』같은 말장난으로 남을 믿게 만든다는 소리다.」
「아─, 알겠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사용하면 사기네요.」
스미레코는 납득하며 무언가를 결의했다.
「저기, 린노스케 씨. 저 역시 여기서 알바하고 싶어요. 바깥 세계의 도구 감정 같은 거 하면서.」
「알바………? 아, 심부름을 하겠다는 소리인가.」
「다르거든요! 심부름이 아니라 일을 하겠다고요!」
스미레코는 독립해서 어른으로서 일을 하고 싶었다. 심부름이나 품앗이 같은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임금을 받고 싶었다.
「흠,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만…, 그거 다행이군. 도통 알 수 없는 외래품 재고가 잔뜩 있어 고민이 되는 참이었다. 그래서, 품삯…, 아니 임금은 어쩔 거지? 아까 말했던 대로 환상향과 바깥세계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니 돈을 받는 건 무의미하다.」
「……이러면 어때요? 처분할 가치가 없는 도구는 제가 하나 가져가고, 그걸 밖에다가 팔아서 환전하기. 환상향 관습에 따라서 현물지불해줘요.」
린노스케는 조금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하쿠레이 신사에서 레이무와 마리사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뭐? 스미레코가 향림당에서?」
「그렇다구, 정식으로 향림당에서 일하게 된 거 같더라.」
「헤에. 일하는 거에 무슨 동경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설마 그런 한가한 곳에서 일을 하겠다고…, …결국 그냥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네.」
「그렇지? 향림당에 무슨 할 일이 있겠냐, ……그래도 너한텐 잘 된 거 아니겠냐.」
마리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레이무를 봤다.
「응, 그렇네. 확실히 잘 된 일이야. 스미레코가 향림당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지. 걔 감시도 쉬워지니까.」
레이무의 숨겨진 임무에는 스미레코의 감시도 있었다. 스미레코는 바깥 세계의 인간이었고, 게다가 한계를 알 수 없는 힘도 가지고 있다. 레이무에게 있어서 스미레코는 그 자체로 현재진행형인 이변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행동하며 스미레코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거리에 이상한 카드가 돌고 있다는 거 알고 있냐?」
「카드?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었어. 일부 요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더라고. 뭔가 의미불명인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여기저기서 거래가 되고 있다던가.」
「네가 알고 있다니 안심이구만. 그래, 일부 카드에 부당한 가격이 붙어서 팔리고 있는 거 같다구…. 누가 가격을 붙이고 있는 거지. 뭔가 오싹한 이야기라 무섭구만.」
「…그냥 일회성 유행인 건지, 아니면 이변인지. 주의해서 가볼 거야.」
(야마토타케루 지폐. 1945년 종전 후 일본에서 최초로 유통된 천엔 지폐였으나 반년만에 물가가 2배 이상 오르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상실된 지폐.
그때의 천엔은 지금의 50만엔, 즉 원화로 500만원 상당의 초고액 지폐였음. 워낙 고액에다가 유통도 반년이 되지 않았기에 매우 희귀한 '환상의 지폐'임.
수집가들 사이에선 원화로 최소 몇 십만에 몇 백만 가까이 되는 가격에 팔린다는 듯.)
─언제나 평온하고 안녕한 이 땅, 향림당.
약속대로 스미레코 양은 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재고정리를 맡겼더니 「와, 오랜만이다─」라던가 「이건 처음 보는데─」라던가 시끄러웠다. 그래도 그녀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해준다고 생각하여 감사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새로 입하한 물건을 손에 든 채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점장 님! 이거 무지막지하게 쩔어주는 거에요! 감정단에 내놓을 게요! …점장 님, 그거는요?」
「……점장 님? …아니, 됐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하도록.」
나는 꺼냈던 수수께끼의 종이를 치웠다.
「아, 신경 쓰이거든요! 그거 뭔데요? 그냥 카드 같은데.」
「내게도 겉으론 그냥 카드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뒤에서 터무니 없는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는 듯 하군. 누군가 물건의 가치를 조작하고 있어.」
나는 스미레코 양에게 하나 거짓말을 했다. 이건 그냥 카드가 아니다. 나는 고도구점을 운영하기에, 저주 받은 도구나 츠쿠모가미, 혹은 마법아이템 등도 취급해왔다.
하지만, 이 카드는 뭔가 다르다. 강한 힘이 깃들어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상상할 수 없었다.
「보여줘봐요. 얼, 이거 레이뭇치 물건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 그거 그 카드에서 무녀스러운, 그런 느낌 들지 않아요? 게다가 알기 쉽게 음양옥 그림도 그려져 있고.」
레이무 같은 느낌이 든다고? 감각을 믿고 이러다니 혹시나 스미레코 양은 어이 없을 정도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식에 의존할 뿐인 나는 그것을 부끄러이 여겨 그녀의 의견에 편승했다.
「스미레코 양.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참이었다. 아까는 거짓을 말했다만, 이건 평범한 카드가 아닌 것 같군. 이 종이쪼가리에 가치를 부여하는 놈이 어딘가에 있는 게 틀림 없다.」
「그러니까 종이쪼가리를 사용해서 가치관을 지배하려는 대악당이 있다는 소리에요? 그거 레이뭇치가 말하는 이변 아니에요?! 그렇죠!?」
스미레코는 흥분하며 말했다. 나는 아직 이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여 웃었다.
─과연 이상한 카드는 환상향 전역을 지배했다. 무녀가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선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그래도 무녀가 움직이자 이변은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고, 환상향엔 무녀의 명성이 울려퍼졌다.
나는 새삼스레 알고 있었다. 이 가치관의 이상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숨어서 가치를 조작하는 녀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녀석이 이변을 일으킬 것이란 것을.
(마지막의 수수께끼는 신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 향림당에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경사났네, 경사났어.
명시된 설정.
1. 환상향은 알려진 대로 물물교환이 주류이며, 화폐를 감독하는 기관이 없으므로 화폐가 물물교환 이상의 가치가 없음.
2. 레이무는 기억이 조작되지 않은 이상엔 적어도 기억이 있을 때부터(즉 어렸을 때부터) 하쿠레이 무녀 일을 해왔음.
3. 발행 당시에도 500만원(당대 일본인 공무원들 월급 수준)에 호가하는 비싼 초고액화폐를 아예 다발로 책상 안에 놔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린노스케 부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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