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

2층에 준비된 파티 홀. 경쾌한 외침과 함께 유리 잔들이 허공에서 몇 차례 부딪쳤다.
비록 전부 모이진 못하였으나, 시작을 끊어야만 또 다음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첫 연회의 막을 올렸다.



오늘 만큼은 현세의 나이 따윈 잠시 잊자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코가라스 씨의 짤막한 덕담을 듣는 동안 미츠타다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미성년자들의 잔을 교체하였다.
치사하게 줬다 뺏느냐고, 이마노를 포함한 몇몇 아이(현재 기준)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였으나, 카센이 흉흉하게 안광을 번뜩이며 '정숙' 한 마디를 외치자 마지 못해 술잔을 내놓았다.
볼을 잔뜩 부풀린 13개월 야겐과 13세 이즈미의 맞은 편에서, 술을 전혀 못 한다고 손을 든 고코타이와 사요가 대비되며 괴리감이 느껴졌다.
츠네츠구와 카네히라는 하필 이 타이밍에 자진 납세를 하는 바람에, 어린이 동지들에게 원망 가득한 눈초리를 받았다.
바보들.



여태 식탁에 손도 안 댄 아카시가 폰 게임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의 잔과 바꿔치려던 아이젠이 호타루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미다레의 주스에 찔끔찔끔 부어주다 적발된 히게키리는 덤이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이치고와 히자마루가 서로 마주보며 맹렬하게 사죄를 하였고, 그 뒤에서 호타루가 아카시의 등짝을 사정 없이 후려갈겼다. 죄송합니다와 미안하다 사이로 철썩 철썩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묘한 박자를 이루었다.
이 와중에 묵묵히 햄버그 스테이크를 썰던 검은 용의 아이, 히로미츠가 제 머리를 과장해서 쓰다듬는 손길에 울컥 짜증을 내며 발을 굴렀다.
그 반응에 더욱 신이 난 쿠니나가는 옳지 착하다 추임새까지 넣으며 괴롭히다가, 결국 미츠타다의 수도 한 방을 맞고 카페트 위로 나뒹굴었다.



처음부터 찻잔을 들고 있던 나는 적당한 데에 앉아서 느긋하게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옆에 설치 된 그물 침대를 천천히 흔들어 주자 히라노가 활짝 웃으며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듣자하니 아와타구치는 고코타이와 아츠를 제외하곤 전부 친척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휴가 때 일일이 허락을 구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특히나 히라노는 이치고가 무릎까지 꿇고 빌어서 데려왔다고 전해 들었다.
오직 한 사람, 내게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울망울망한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었다. 가볍게 스친 뺨이 발그레 해지며 히라노가 몸을 뒤집었다. 옆구릴 잡고 일으켜 주자 잼잼을 했다.
마루에 앉아 카스테라를 나누어 먹던 어느 날의 오후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과자를 먹을 수 있게 될 때쯤, 한 번 더 만들어 보아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생의 나는 요리 솜씨가 서투르니, 그럴 듯한 맛이 날 때까지 카네히라가 시식을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미적지근하게 식은 찻물을 머금으며 히라노에게 곤지 곤지를 가르쳐 주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술냄새가 확 풍겨온다 싶더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히자마루가 뒤에서 단단히 끌어 안고 찻잔을 가로챘다.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히게키리의 잔까지 뺏어 마시다 가장 먼저 취해 버린 모양이었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형제가 코가라스 씨와 대작을 할 만큼 술고래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는 내용물을 단숨에 꿀꺽 해버리고는, 찻잔을 거꾸로 탈탈 털며 역시 너는 기특한 녀석이라고 실없이 웃었다.
칭찬 같지도 않은 칭찬을 잠자코 듣는 시늉을 하다가, 서둘러 부축하러 달려 온 이시키리마루에게로 냅다 떠밀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