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돌리려다가 그냥 내키는데까지 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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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바사니
인간이 어째서 시선에 미쳐가느냐고 한다면, 단순히 그 시선 안에 담긴 것만이 매번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깔끔하게 내떨어지는 애매한 두깨의 포는 오히려 존재를 부각시키는 듯 깨끗하고도 찬연했다. 언제나 기세를 가다듬어 묘한 선망의 빛으로 제 주인을 기다려온 검에게 주어진 것은, 이상하게도 그가 기대해 마지않았던 것과는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초조이던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저 자는 너무나 태연했다. 제 주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던 그 시간을 마주했을 때에, 쵸우기가 처음으로 자각한 타인의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황이었다. 고요한 눈동자는 물욕 따위는 조금도 없는 듯 했고, 발화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처럼 선선한 손짓으로 능숙히 부대를 다룰 뿐이었다.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 스스로의 몸뚱이와, 그에 맞게 딸려가는 무한한 명예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무욕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자는 것처럼 눈을 감아도 시야의 귀퉁이로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따라붙었다.
모든 것은 유리의 표면에 잠시 맻혔다 사라질 것 같은 피상적이기 그지없는 가벼움. 쵸우기는 그것이 견딜 수 없었다. 으레 저를 갖게 될 사니와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쿠니히로의 그조차도 서로 견줄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당황한 속내조차도 비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지다가도, 본성의 검들은 처음에 오거든 다 그런 법이라며 말없이 안타까운 시선을 흘렸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말로 위로를 할 만한 그런 대단한 관계가 아니었다. 주인을 닮아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듯한 본성의 적막,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 단 한마디 말의 무게. 찰나처럼 머무는 아주 잠깐의,
실토하며 고백하자면 그 시선에 제 존재를 밀어넣고 싶을 정도로, 머무르고 싶은 충동을 마주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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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땡볕
우리 주인은 손이 많이 가기도 하지. 투덜거렸지만 행색만큼은 개의치 않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검들이 제 주인에게 불만을 갖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불편할 만 한다면 알아서 먼저 신경쓰곤 하는 그 꼼꼼함 때문이기도 했다. 몇몇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투덜대는 듯 하면서도 눈꼬리 끝에 들이차는 기쁨은 감출 줄 모르는 바보들이기도 했다. 물론, 본성의 너구리도 그들 중 하나였다.
사니와가 곤란한 얼굴을 했다.
"내가 해도 되는데"
"뭐하러?"
힘쓸 놈들 널렸잖아. 단언 같은 말을 하다가 너구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부러 퉁명스럽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제 말을 들은 사니와가 어딘가 모르게 눈치를 보는 듯한, 쪼그라든 것 같은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많이 성가시니까 신경을 쓴다고 나름 하고 있는데도 들러붙은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미간을 한번 일그러뜨린 도다누키가 빈 손을 움찔거리다 먼저 정을 들었다. 본체로 해도 상관없었지만 분명 그랬다가는 또 사니와가 새하얗게 질린 것 같은 얼굴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물이 잔뜩 언다고 한들 이지 못할 정도로 무겁지 않았다. 가볍게 힘을 싣고 팔을 내려칠 때마다 날카로운 정 끝을 따라서 파편이 흩날리며 얼음은 쉽게 깨어져나갔다. 오락가락하는 더위는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매번 그 키큰 단도가 말하곤 했지만, 더위에 힘들어 하는 사니와를 보고 있으면 그런 결심 같은 것은 서다가도 무너지는 법이었다. 어쩌다 이러고 있담. 도다누키는 도처히 알 수 없는 형세에 처한 자신을 한심히 여기며 얼음을 쪼개는 손에 힘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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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야끼..?
시선이 마주치자 도다누키는 코웃음을 쳤다. 다른 이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으니 이러는 거겠지. 그러면서도 결국 매번 그 얕은 수에 넘어가는 저도 미련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럴 마음을 먹었다고는 해도 다른 검들에게서 쏟아질 비난을 잠자코 들어줄 검도 아니었기에, 턱짓으로 사니와를 불렀다. 단번에 화색이 된 사니와는 환한 얼굴을 하다가, 주위에서 쏟아질 수도 있는 눈초리가 신경쓰였는지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바꿔가면서도, 들뜬 기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감추려고 해봐야 그것이 완전하지 않아서, 주위의 몇몇 검은 또 난처한 얼굴로 도다누키를 슬쩍 바라보았다.
사니와가 말을 안 듣는걸 가지고, 물론 도다누키에게 그 책임이나 탓을 하려는 검들은 없었다. 그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도다누키가 사니와에게 무를 뿐이었다. 조금 재미있는 점이라고 한다면 도다누키는 그것을 애써 부정한다는 점이었다. 사니와를 한켠으로 조용히 불러낸 도다누키는 품안에 싸 둔 것을 가만히 건넸다. 이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아직도 희미하게 채 식지 않은 타이야끼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받아들자마자 상기되기 시작하는 뺨을 도다누키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다짐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내밀 때만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저 저 여자가 대가 없이 그저 자신을 쭉 응시했으면 좋겠다는, 언젠가의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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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한순간 당당한 듯한 목소리였지만 끝이 어딘가 모르게 한 풀 꺾였다. 시선은 조용했지만 사니와는 그것이, 카센 특유의 말없는 독촉이라는 것을 알았다. 반응을 보고 있자면 카센만 알고 있는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적어도 믿을 수 있는 점이라면 카센 카네사다에게 입을 다물기를 부탁한다면 분명 그는 사니와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검이라는 믿음이었다. 사니와는 애써 둘러댈 말을 생각하다가 포기하고서는 이젠 다 끝났다는 것처럼 카센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평소같았다면 몸가짐을 주의하는 건 어떻겠냐며 부드럽게 되돌려 세웠을 카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어딘가 모르게 매달리는 듯한 시선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는지 잠자코 사니와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무슨 일이야?"
들리는 목소리는 책망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이기에, 사니와는 마냥 기대고만 싶으면서도 그가 먼저 물을 때에 몸을 일으켜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상냥한 듯 하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단호한 말에 사니와는 어쩐지 눈물이 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약함을 야단치는 것과 같은 말에 카센의 품에서 다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를 믿어줄 수 있어?"
참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채로 사니와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센 카네사다. 그 눈동자는 묻고 있었다. 다른 모든 이들을 배반하더라도 나를 우선해줄 수 있어? 카센 카네사다는 대답하지 않고 사니와의 손을 천천히 마주잡았다. 그 어떤 확신도 전해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카센 카네사다는 손을 붙잡고 속삭였다.
"비가 눈으로 변하더라도, 그 엉망인 곳을 같이 나아가자고 해도,"
나는 기꺼이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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