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피어난 꽃잎을 똑똑 따며 무심코 속으로 읊조린다. 하세베는 나를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뭘?”
“나를-이 아니라......니혼고.”
“오우. 뭐 하고 있는 거냐?”
“별거 아니에요.”
“뭐야뭐야. 이건 보나마나네. 사.랑.고.민.이.지?”
“와하~사랑고미인~? 진짜야?”
갑자기 니혼고의 뒤에서 미다레 토시로와 지로타치가 튀어나온다.
우와...묘한 조합이다.
“꽃점이잖아, 꽃점. 이런건 100% 사.랑.고.민.이라고.”
“아루지가 사랑고미인? 와하핫 지나칠 수가 없네에!”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시끄럽다.
나는 서둘러 들고 있던 꽃잎 없는 꽃을 손에서 털어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사실 맞아.
“흐음. 꽤나 소녀 같은 짓을 하는구만. 아루지는 그런 나이 대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니혼고가 말 한다. 그걸 들은 즉시 고개를 휘저었다. 안타깝게도 전혀 그런 나이는 아닙니다.
“아니라니까요.”
“아니기인! 그럼 뭐하고 있던 건데~? 자자, 아~루지. 아루지도 이거 한잔 하면서 어디 고민이나 시원하게 털어놓으라고! 기분이 좋아질걸~? 신주다 신주!”
“도검남사와 술자리는 곤란해요. 다 알면서, 지로타치......”
“그럼 술 없이 털어놓으면 되지~이 미다레가 잘~들어줄게, 응? 응? 으으응~?”
나를 사이에 끼고 온갖 방정을 떨어대는 통에 정신이 없다. 니혼고를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게 보일 리가 없지. 재밌다는 듯이 그냥 보고 있을 뿐이다. 제발.
“자아. 그래서, 좋아한다는 건 뭔지 말해보실까.”
아니 보고 있을 뿐 아니라 참여까지 했다. 이럴 수가.
“그, 그,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세 명이서 동시에 소리를 높인다.
“좋아하는, 저녁, 메뉴를 고민한......”
눈에 띄게 미다레의 표정이 무서워진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둘러대는 말이긴 했지.
“주~인님......거짓말을 못하네.”
내가? 아니? 전혀! 이 상황에서 둘러댈 말이 생각이 안 났을 뿐이라고.
그, 그래!
“맞아요, 거짓말이에요.”
“오...그럼 이제 순순히......”
“여러분들이 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그냥 궁금해서 그랬어요.”
사라락, 긴 소매로 어차피 안 보이는 얼굴부근을 부끄러운 듯 감싼다. 메소드다, 메소드 연기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린 모두 주인님을 제일 좋아하지!”
당연한걸 고민하고 그래! 하며 내가 그런 고민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다레가 발을 구른다. 하지만 이 말에도 니혼고와 지로타치는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으로 흐응~하면서 술병을 기울일 뿐.
“하지만 미다레, 모두 내 성별도, 얼굴도 무엇 하나 모르잖아요. 혹시 아나요, 사실은 내가 한 명이 아니고 돌아가면서 사니와인척, 당신들의 주인인척 하는 걸지도......”
“푸하......”
“와핫핫핫! 그건 아니지!”
시큰둥하던 니혼고와 지로타치가 동시에 반응했다.
말하면서 어, 뭔가 그럴싸해...하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렇게 비웃음 당하면. 아무리 그래도 좀 자존심이 상한다.
“왜, 왜요? 말투 같은 건 그냥 일부러 똑같이 쓸 수도 있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가려도 얘기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니까. 성별이라고 했는데...우리 혼마루에서 아루지가 여자인거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엇, 아니......어째서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건데요?”
“드러나는 체형 같은 것도 있지만.”
니혼고에게서 술을 받아먹으며-어느 샌가 둘 사이엔 이미 선 채로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지로타치가 눈을 굴리며 말한다.
체형이라니, 여리여리한 남성일 수도 있는 건데!
“오오, 마침. 어~이! 오오쿠리카라~”
갑자기 저 멀리서 지나가는 내번복 차림의 오오쿠리카라를 부르는 니혼고. 멈칫, 발걸음을 멈춘 오오쿠리카라가 이쪽을 본다. 결코 그 이상 이쪽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너, 아루지가 여자라고 생각하냐, 남자라고 생각하냐?”
“......”
뜬금없는 질문에 얼굴을 찌푸린 오오쿠리카라는 그대로 무시하려는 듯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다시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중얼거리듯한 목소리는 틀림없이 여기까지 전해져 들렸다.
“여자.”
“거봐.”
어깨를 으쓱하며 니혼고가 어쩐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오오쿠리카라까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내심 조금 놀라웠다.
“푸후...말하다보면, 여자인지 확신을 할 순 없어도 남자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단 느낌이 온 달까.”
“뭐어, 그렇지.”
“응...거기다 주인님......이런 말 실례인지 미다레, 잘 모르겠지만...꼭 한 달에 한 번씩은 컨디션 나빠지잖아?”
아...그건...못 숨기지......
무심코 납득해버린다. 내심 다들 성별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있었다. 나름 예리하군.
“음...사실 성별 같은 거 우리한테 그다지 상관없지만. 가리거나 말거나, 알게 되거나 말거나 한 느낌?”
“뭐어, 그렇지.”
니혼고가 똑같이 반복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다른 녀석들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상관없음.”
“응 미다레도~!”
“뭐어, 도검남사라는 녀석들은 대개 그렇지.”
“그거야, 인간적으로...주인으로서 좋아하는 건 당연히 성별이 상관없는걸테고......카미카쿠시를 할 정도의 호감이란 건 조금 다르지 않나 해서...”
갑자기 술을 들이키던 니혼고의 손이 딱 멈췄다. 표정이 눈에 띄게 굳으며 눈을 슬슬 돌린다.
“카미카쿠시 말이지......”
낮게 한숨을 쉰다. 갑자기 공기가 조금 변한 것 같았다. 지로타치도 조금 어려운 얼굴을 한다.
“주인님, 진짜 왜 그래...? 고민이라는 게 그런 고민이야...?”
“어......? 아뇨, 그냥......”
“혼마루 안에서 누가 주인님한테 그런 얘기 했어?”
“아뇨, 전혀.”
사실, 그냥 업무적으로 카미카쿠시에 대해 말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남사들과 카미카쿠시를 개인적인 화제로 내놓는 건 처음이어서 이런 태도는 생경했다.
“왜, 왜 그래요?”
“인간들은 꽤 카미카쿠시란걸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가볍게......?”
니혼고가 평소의 느슨함과는 거리가 먼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한다. 지로타치도 옆에서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미다레는 여전히 뭔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전혀, 가볍지 않아요! 그것 때문에 사니와 복장부터 이런 건데.”
“그거 말이지...일방적인 카미카쿠시라면 예방이 되겠지. 근데 합의하라면 그 옷 정도로는 방지가 안 되는 거잖아.”
그렇다. 남사 쪽에서 강제로 사니와를 카미카쿠시 한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이 복장은 최고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니와 쪽에서 공개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소용이 없다.
...나처럼.
“그렇긴 하죠.”
“그리고...카미카쿠시란거...도검남사가 꽤 가벼운 기분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들 나름대로도 심각한 사안이란 말이지.”
“있잖아, 주인님. 일반적으로 혼마루에 있는 도검남사는 모두 분령이야. 그건 알지?”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만약에 그 분령이 카미카쿠시를 하게 된다면 말이야...모체에서 개별적으로 떨어져 나오는 걸 뜻해. 우리는 죽으면-깨지면-사라져서 결국 돌고 돌아 모체로 돌아가는 거나 다름없지만, 카미카쿠시를 함으로써 자신의 신역을 만들고 개별적인 영혼을 가두어버리면 우리 자체가 독립되어 버리는 거야.”
“영혼과 영혼이 묶여버리는 거지...영원히.”
멍한 눈빛으로 지로타치가 영, 원, 히. 하고 악센트를 줘서 말한다.
“뭐, 그렇지 않으면 같은 도검남사한테 카미카쿠시 당한 인간들은 한곳에 모여 버리는 게 되는걸. 그건 좀 우습지.”
“인간은 감이 안 잡힐지도 몰라도 영원이란 게 꽤 쉬운 일이 아니거든. 싫어져도 취소할 수 없단 건 말이야.”
“그.래.서 카미카쿠시 할 정도란 건 꽤나 심각하단 얘기야. 그냥 좋아한다 정도가 아니라고. 알겠어, 주인님?”
네...알겠습니다...
마치 나를 타이르는 듯 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경직되어 답한다. 그렇게 가볍게 다룰 주제가 아니라고~하며 미다레는 왜인지 모르게 씩씩대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데? 주인님한테 누가 카미카쿠시 하고 싶다고 했어?”
“엣. 아니, 전혀. 그런 말 들은 적 없는데...”
“그럼 아까부터 뭔데~? 진짜 이상해.”
“으응...그냥 카미카쿠시는 예를 든 건데요...”
“가능하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니혼고의 목소리, 그 말의 뜻이 뇌로 채 가기도 전에 척추에서부터 자르르하게 소름이 올라오는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가능해? 뭐...가...?
“아루지가 말하고 싶은 건...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아루지를 ‘그런 식으로’ 좋아할 수 있겠냐는 거지? 그렇다면 답하겠는데 가능해.”
니혼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얼굴 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도검남사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츠쿠모카미...신이다. 인간들이랑은 달라. 명심하라고.”
니혼고의 말이 어쩐지 무겁게 머릿속으로 내려앉았다.
“하세베 씨.”
“...뭐지.”
차가운 표정임에도 의외로 순순히 대답한다.
그날 이후, 나는 하세베에게 며칠에 한 번씩 초콜릿을 사오도록 부탁을 했고 하세베가 나갈 때마다 이렇게 우연인 듯 가게 앞에서 서성이며 그를 만났다.
“오늘은 대답을 해주네요.”
“아루지께서 그렇게 명하셨다.”
어딘가 하세베는 살짝 불쾌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처음 몇 번인가는 만나도 그냥 아아, 넌가-하는 표정만 지었을 뿐으로 크게 반응하지 않던 하세베였다.
하세베가 불쾌해 보이는 이유는 명백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다.
정부에서 주최하는 사니와 간의 연회가 있던 날이었다. 서로 간의 정보 공유도 하고 친분도 나누는 주기적인 연회였다. 연회는 크게 1기와 2기로 나뉘어 1기는 모두 똑같이 차려 입은 사니와들이 주로 정보 교환이나 새로 밝혀진 중대한 사실이 있을 경우 회의 및 브리핑 등을 하는 등의 자리로 근시 동반이었고 2기는 근시는 따로 떼어놓은 뒤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맨 얼굴로 만나 친분을 나누는 말 그대로의 연회자리였다.
2기의 연회가 끝나고, 하세베와 만나 돌아가려는 그때였다.
‘59번 사니와님.’
‘아, 20번 사니와님.’
자신의 근시를 데리고 있는 연회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남성 사니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돌아가시는군요.’
‘네. 아까는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몇 기나 선배여서인지 나에게 꽤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줬다. 예를 표하고 돌아가려는 그때 그가 다시 불러 세웠다.
‘괜찮으시다면 바래다드려도 될까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이건.
아무리 내가 둔감해도 이건 누가 봐도 확연한 대쉬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고민했다. 단번에 거절하는 것도 뭐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사이를 찢고 들어왔다.
‘아루지껜 제가 있기 때문에 타인이 주제넘게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경어였지만 말투는 차가웠고 내용은 더 심했다. 내 앞으로 나선 하세베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대 사니와의 근시의 표정마저 험악해진 걸로 봐서 아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하세베!’
나는 사회적인 체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내가 하세베를 좋아한다고 해도, 설령 이게 하세베가 이성적으로 날 좋아해서 나타낸 질투라고 할지라도 이걸 용인해야할 때가 있고 아닌 때가 있는 것이다.
‘제 근시가 실례를 범했네요...죄송합니다.’
하세베를 끌어당기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헤시키리 하세베는, 이런 검이란걸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요.’
상대방은 꽤 가볍게 웃으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렇겠지. ‘헤시키리 하세베는 이런 검’이다. 그건 헤시키리 하세베를 데리고 있는 사니와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
‘오늘은...근시가 이런 탓으로. 다음 연회 때 다시 뵙고 말씀 나누도록 하지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나는 하세베를 끌고 정부 건물을 나섰다. 하세베는 말이 없었다. 내가 붙잡은 팔을 빼려는 생각도 없이 내가 끄는 그대로 걷고 있을 뿐.
‘하세베.’
‘네.’
돌아 본 하세베의 표정은 꽤 불만스러워 보였다.
‘반성하고 있는 건가요.’
‘......’
입을 꾹 다문다.
하세베는 주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이 굴지만 동시에 프라이드가 높았기에 이런 일에 관해서는 자기 고집을 세울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주인이다. 기선 제압을 할 필요가 있지. 하세베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나도 먼저 말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한동안 우리는 조용히 서로 바라보기만 하며 서 있었다.
그렇게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히 있던 하세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왜 그 사니와에게 사과해야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세베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했어요.’
‘제가 사과해야할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고집스런 얼굴로 대든다.
사실...이런 모습마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내가 한 편에 있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주인! 아루지! 공사는 구분해야만 하기 때문에 일부러 엄한 태도를 유지 했다.
‘하세베는 때때로 타인에게 너무 무례하네요. 가끔 혼마루 내에서도 얘기가 들어와요. 오늘 이 일을 계기로 반성하도록 하세요.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요. 이건 주명입니다.’
‘......’
잠깐 하세베는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이 숨을 골랐지만 곧 포기를 한 건지, 순순히 머리를 숙였다.
‘......주명이시라면.’
...그렇게 된 것이다.
아마 하세베가 말 한 명이란 건 십중팔구 이걸 말하는 거겠지.
“명령이라면, 무슨 명령?”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한 태도를 가장하여 나는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숨기고 하세베에게 묻는다. 질문에 하세베의 표정이 한 층 더 불쾌해진다.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명령.”
“하하하! 그렇구나. 좋은 아루지를 두셨네. 근데 하세베 씨, 이런 태도는 전~혀 친절하다고 말할 수 없는 걸? 좀 더 친절한 표정으로 친절하게 대답해주실래요? 웃으면서~내 눈을 보면서 대답해야죠?”
웃음이 계속 새어나온다. 귀여워. 내가 보는 곳이 아닌데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더 없이 귀여워서 왠지 모르게 괴롭혀주고 싶어져서 일부러 짓궂게 말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갑자기 하세베가 나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대답한다.
“예?”
이런 반응을 생각한건 아니었기에 실없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화들짝 놀라 마주친 눈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뚫을 것 같이.
“...너는...대답해줄 수 있나?”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표정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뭐, 뭐, 뭐야...이거! 꼭...꼭 상처 입은 대형견 같아...이거 뭐야...뭐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드, 들어보죠...일단...어...저기, 저기 앉을까요?”
당장은 괜히 괴롭혀주고 싶어서 짓궂게 말했다지만 이런 표정을 하는 걸 보고 싶었던 건 아닌데다가, 하세베가 이런 표정을 보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그대로 하세베를 끌고 한적한 찻집으로 데려간다. 하세베는 순순히 끌려왔다. 며칠 전처럼.
“자, 말 해봐요...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요?”
“......감히 아루지께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녀석에게 내가 왜 친절하게 대해야 하지.”
“아...아아...그건 일리가 있는 말인데. 나, 나는 딱히 그쪽 아루지한테 흑심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으니까 친절하게 대해줘도 되지 않을까요?”
“대답이 되지 않는다만.”
번뜩,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게 된다. 달래듯이 자자, 하며 주문했던 음료를 하세베에게 건네며 은근히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주인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한 사람을 쫓아낸 모양이죠...? 그래서 친절히 대하라는 명령을 들었고......”
말없이 음료를 벌컥 들이키는 하세베.
“하지만 하세베 씨...그 사람이 흑심이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잖아요? 그냥 그쪽 주인과 친하니까 접근한걸 수도 있고.”
“아니.”
단호한 표정으로 컵을 탁 내려놓는다.
확실히. 그 사니와는 나한테 관심을 표한 게 맞지만.
“그리고 주인 쪽이 그 사람한테 호감이 있었을 수도 있고......”
“......”
순간적으로 하세베는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보랏빛 눈동자가 안쓰럽게 방황한다.
“그럴 리가......”
신음처럼 흘러나온 목소리는 작았지만 내 마음에 울려 퍼지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 살짝 떨리는 목소리. 아아. 그렇구나. 하세베는 나를......
“하세베...당신은......”
“아니라고 말해.”
어느 샌가 보랏빛 눈동자에는 이상한 열기가 차 있었다. 꽉 붙들린 손목이 아팠다.
“하, 하, 하세―”
“취소해, 아니라고 말해! 아루지가, 그럴 리가 없어.”
고통과 함께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겹쳐서 보였다. 조심스레 붙잡았던 손, 끌어당기던 힘. 그 무엇도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절하지 않고 거칠게 잡아당기는 힘에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나게 된 내 눈 바로 앞에 하세베의 눈이 있었다. 가끔씩 느끼던 열기어린 눈동자가 날 바라본다. 하지만 하세베가 보는 게 정말 지금 눈앞에 있는 나일까?
“아, 아파요...아파! 놔요!”
“......”
“미안해요, 실언이었어요! 그냥 별 생각 없이 말한 거 맞아요, 당신 주인이 그럴 리가 없어요.”
그제야 하세베는 내 손을 놨다. 욱신욱신한 팔목을 주무르며 자리에 다시 앉는다. 작게 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온 것 같았다.
“......당신......당신 주인을 좋아하는군요.”
“......”
그 말에 하세베는 눈을 내리 깔았다. 아무 말 없이 내 손목을 바라보던 그가 잠시 후에 대답한다.
“당연히...경애하고 있다.”
“......”
나는 지금 그동안 하세베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던 사실을 깨닫고 확신하게 됐다.
하세베는 나를 좋아한다.
착각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주인을 향한 충심과는 다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앞의 나는 좋아하지 않아.
이걸 좋아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세베가 좋아하는 게 과연 나일까?
‘그걸’ 나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하세베가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흰 옷을 뒤집어쓰고, 좋은 주인, 좋은 사니와를 연기하는 나다. 지금의 내가 아니야. 진짜 내가 아니야. 그걸 하세베가 나를 좋아한다고...정말 말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하세베의 주인이다.
하세베는 그의 주인을 좋아한다.
나는, 하세베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니와’인 그의 주인은, 하세베를 좋아할 수 있나?
하세베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보답 받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군요.”
“......”
“당신은 영원히 그 마음을 돌려받지 못해.”
나도 모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왜냐면, ‘사니와인 내’가 그럴 생각이 없는걸.
“......보답 같은 건.”
작게, 하세베가 대꾸했지만 그 뒤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 누군가 당신 주인에게 흑심을 가진다고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결국엔 다른 ‘인간’과 이어질 거예요.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사니와는 결코 도검남사와 이어질 수 없으니까.”
“......”
“그러니까 나는 어때요?”
달콤하게 속삭인다.
“나라면 돌아오지 않을 애정을 갈구해야 할 필요도 없고...난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니까.”
응? 웃으며 어때요? 하고 그를 바라본다. 달콤하게, 달콤하게, 테이블 위 장갑 낀 손 위로 손을 뻗어 끈적하게 쓰다듬는다. 하세베는 미동도 없었다. 조용히 자신의 손을 쓰다듬는 내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생각해봐요. 짝사랑이란 건 힘드니까. 사실, 당신의 주인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름도, 뭣도 모르잖아요. 눈앞에 나랑은 다르게......그런걸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 주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꽉, 하세베가 했던 것처럼 거칠게 그 손을 쥐어짜듯 붙잡는다.
“아니. 아닐걸? 그러니까......괜히 어려운 길 가지 말고 쉬운 길을 선택해. 우리는 잘 할 수 있어요. 영원히는 아니지만 서로 마음의 위안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니까. 응?”
내 말이 끝나고 붙잡았던 하세베의 손을 놓자 싱긋, 하세베가 웃어 보였다.
“......”
멍하니 날 바라보며 자상하게 웃는, 마치 사니와 앞에서 웃는 것 같은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의 입이 열렸다.
“내겐 언제까지나 아루지 뿐이야.”
“......”
“명심하는 게 좋아.”
잘. 마음에 새겨둬라. 하고 하세베는 내 손을 톡톡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등 돌려 가버렸다.
“......”
그게 나라고.
네가 좋아하는 게, 그게 나라고.
남겨진 나는 그냥 한동안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어서 돌아가야 하세베가 혼마루에 도착해서 내게로 오는 시간에 맞출 수 있는걸 알면서도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서 동시에 마음 속 어딘가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건 흡사 질투에 가까웠다. 질투가 향하는 대상은 ‘사니와인 나’
하, 내가 그렇게 좋아? 그런데 눈앞의 나는 왜 안 되는데? ‘사니와’인 나는 결코 그 생활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이렇게 그를 만난 거였다. 그런데 그런 내 앞에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니. 하하, 이렇게 어이가 없는 경우가 있나.
문득 내려다 본 손목 위쪽으로 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까 붙잡혔던 곳이다. 옷을 갈아입으면 가려질 부위였지만 어쩐지 서러워서 소매를 끌어내렸다.
돌아가면, 또 나를 열렬히 바라보는 하세베를 마주하게 되겠지. 기분이 이상했다.
어쩐지
만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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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올리는데 자꾸 짤려서 올라가고 난리도 아니라 지웠다 올렸다 해서 죄송합니다
캐릭터 어투나 호칭 캐붕이 있으면 미안한데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주세여
세계관 설정도 그냥 내 마음대로임
사실 처음엔 그냥 짧게 쓰고 말거라고 생각해서 아루지 호칭을 그대로 썼는데 이상하게 길어졌네
저번에 댓글들 보고 끝까지 다 쓰고 올리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영원히 끝까지 못쓸거 같아서 일단 여기까지만 올림
1편부터 여기까지 약 2만 7천자
아니 아루지 자기입으로 다 불고있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ㅗㅜㅑ 합쳤네 그리고 하세베 댕청미 넘모 커엽고
기다렸읍니다 아루지... 상상을 뛰어넘는 분량에 놀랐고 흥미진진에 한번더 놀라고 갑니다
너무재밋서요아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