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베->사니와->초기도
주군의 초기도가 부러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처음 소식을 들은 주군은 끈이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그 자리에서 실신했고 이튿날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으며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인간의 몸은 그래선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아무리 검인 우리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시인 나는 억지로라도 주군께 미음을 흘려 넣어보려 했지만 주군은 끝끝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것은 물 이외엔 모두 게워내고 말았다. 몇 주가 지나자 주군은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이 되었다. 안 그래도 남사인 우리들에 비해 가냘팠던 그 몸은 이제 앙상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푹 꺼진 눈에선 이제 더 이상 눈물은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그 전에 얼굴 가득히 우리들에게 미소 짓던 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흔적조차 남지 않아있었다. 조금씩 미음이나 죽을 입에 대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인간이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정도로 끝, 도저히 식사라고 할 수 없을 양만을 입에 댔고 그 이상은 주군의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쇼쿠다이키리나 아즈키같은 녀석들이 주군이 좋아하던 음식들을 매일 만들어 가져올 때마다 한 술 뜨려고 했지만 주군의 몸은 그것을 격렬히 거부하여 위액과 함께 토해 내버린다. 음식을 토해내고 고통스럽게 가슴을 움켜쥐고 몸을 비틀며 가쁜 숨을 내쉬는 주군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팠다. 근시로서, 그런 주군의 힘이 되어야만 하는데 나의 행동 하나도 주군에겐 의미가 없어보였다.
초기도와 주군은 딱히 연인관계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를 뿐 그런 관계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주군에게 있어서 초기도가 특별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주군......”
“.......”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주군의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텅 빈 눈동자는 내 옆 언저리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 녀석을 찾는 것일까. 눈물마저 말라버려 사막 같은 눈동자가 잠시 나를 향하다가 이내 감긴다. 침대에 앉아있는 주군에게서 이내 잠든 듯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마저도 꺼질 것처럼 미약해 손을 뻗어 그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안아 올려 제대로 뉘였다. 입술이 달싹이는 모습에 황급히 귀를 갖다 대자 돌아오는 것은 작게, 초기도를 부르는 갈라진 목소리. 아아. 한줄기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 주군의 눈가는 부르터 있었다. 바싹 마른 손을 꼭 잡고 뺨에 갖다 댔다.
“주군......”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손의 온기가 두려웠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주군의 침대 곁에서 눈을 감았다. 잠시라도 곁에서 떨어지면 이 온기가 식어버릴 것이 겁나서.
핫, 하고 위화감에 눈을 뜬 것은 한밤중이었다. 아무리 인간보다 체력이 뛰어난 도검남사라고 해도 일단은 인간의 몸을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에 요 한 달간 주군의 곁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깜빡 잠이 든 것이 꽤나 깊게 잠이 들었었는지 일어난 내 눈 앞에는 주군의 모습이 없었다. 철렁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에 당황해서 방을 뛰쳐나갔다. 아무리 몸에 무리가 있었다고 하나 주군이 일어나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잠에 빠져 있던 자신을 탓하며 주군이 갈 법한 곳을 뒤졌다. 하지만 요 근래, 주군은 일어나 걷는 것 조차 힘겨워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주군이 갈만한 곳은 몇군데 떠오르지 않았고, 그곳에 주군의 모습은 없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불길한 예감만이 떠올라 미친 듯이 혼마루를 뛰어다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불꺼진 혼마루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아 더더욱 불길함만이 더해졌다.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발걸음을 멈췄다. 진한 백합향. 어두운 정원에, 새하얀 인영이 서있었다.
“주군!”
마치 유령 같다고 생각했다. 주군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이 주춤주춤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었다.
“주군...!”
달려가 주군을 잡았다. 하지만 주군의 눈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백합이 잔뜩 피어있는 정원 안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군, 바람이 찹니다. 이런 복장으로 밤에......”
서둘러서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치려고 하는 순간, 주군의 입에서 아아, 하는 작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아아...가지마, 안 돼!”
“-주군?”
그제야 나는 주군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
검을 빼 들었다.
그곳에는 분명 부러졌을 초기도가 서 있었다. 마치 주군을 당장이라도 안을 듯이 양 팔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하세베-하세베...봐...그가 돌아왔어...!”
“주군, 주군...물러서십시오. ‘저건’...그가 아닙니다!”
이건 악몽인가.
저 멀리 마치 주군을 손짓해 부르듯이 하고 있는 저 형체가 정말 주군의 초기도일 리가 없었다. 그가 부러지는 것을 나는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무언가 지독한 장난, 아니면 그 이상의 함정이 분명했다.
“놔...놔! 하세베...가야해...나를 부르잖아...”
“안됩니다!”
“놔아...!”
검을 빼들고 다른 쪽 팔로 주군을 안았다. 여태까지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던 그 사람이 맞는 건가. 팔 안에서 격렬하게 저항을 한다. 당장이라도 ‘저것’이 있는 곳으로 달려갈 것처럼. 하지만 놔줄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자 그제야 느껴지는 기는, 분명히......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기묘한 기운은 역행군과 닮아있었다. 역행군의 함정인 것인가, 아니면...아니면. 설마 ‘저건’ 진짜 그인 것인가. 어느 쪽이든 주군을 보낼 수 없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세베, 놔줘, 놔줘...! 주명이야...놔줘...놔줘.....제발!”
“......”
힘 하나 남아있지 않은 주군이 내 팔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다. 이내 저항해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버린 건지 그녀는 울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주명’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내 팔에 힘이 빠진 것을 느낀 주군은 바로 내 품에서 벗어나 ‘그것’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주, 주군!”
핫, 하고 정신이 들었다. 빠르게 뒤쫓는다. 바로 몇 시간 전만해도 고개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보이던 사람이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은 걸까, 그렇게나 당신에게 그가 소중한 건가. 주군의 손이 ‘그것’에게 닿기 바로 직전.
나는
주군의 눈앞에서 ‘그것’을 베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치 환영처럼 ‘그것’은 흩날려 사라졌다. 대체 뭐였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남은 것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진한 백합향과, 마치 자신이 베인 것처럼 울부짖는 주군 뿐.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안돼...안돼...! 안돼!”
빛처럼 흩어져버린 ‘그것’을 손에 쥐려는 듯 허우적대면서 주군은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그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머리가 아프다. 독을 들이마신 것 같이.
“네가...네가! 죽였어...? 하세베...!”
눈물에 가득 찬 눈이 드디어 나를 향한다. 아아...얼마만인가. 당신이 나를 봐주는 것이. 하지만 그 눈동자 가득 차 있는 것은, 멍한 머리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주군이 내게로 손을 뻗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그녀의 몸은 더 없이 가벼웠지만 어딘가 정신적으로 깊이 지친 내 몸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백합향이 한결 더 진해진다. 몸 위에 올라타는 무게와 목에 감겨들어오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느껴졌다.
“네가, 죽였어...네가 죽였어!”
주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 얼굴로 흐른다. 아아...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가 비치고 있다. 목을 졸라오는 손아귀의 힘은 너무나 나약해서 그녀가 원하는 효과는 볼 수 없겠지.
“주군......”
“같이...다시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네가...! 네가!”
“주군.”
팔을 들어 올려 그녀를 껴안았다.
내가 부러졌어도, 당신은 이렇게 행동했을까?
아니.
“아아...주군.....”
“차라리, 네가...네가 부러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네가 대신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겠지.
내 뺨에 흐르는 게 주군의 눈물인지, 내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당신은 저를 버리고 가시려고 한 거군요.”
순간 안 그래도 나약했던 손가락의 힘이 사라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주군을 끌어당겼다.
“......!”
“그렇게...그렇게 함께하고 싶으신 게...끌려가고 싶으신 게 소원이시라면.”
깊게 입을 맞추고, 그녀를 불렀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나약하게 싫어-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것’에게 홀린 건 그녀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또한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초기도가 그렇게 가버린 후, 언제나 머릿속을 지배하던 걱정이 있었다. 그녀가 우리를, 아니 나를 버리고 가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지만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마음이 더 없이 가벼워졌다.
아루지! 핫산 감사합니다!
퍄 꽃뱀뽕 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