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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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전편과는 다르게 소설체 주의. 검들 여럿 깨지고 난리나니까 취향 아니면 읽지 마 



     영력이 넘치면 처음 신병이 왔던 날 처럼 몸이 자주 아팠다. 아무리 남사들과 혼마루에 힘을 써도 담아낼 수가 없었다. 특히나 어떠한 이유로건 부정이 낀 날이면 사니와는 죽은 듯 잠들었다. 원래 말을 못하는 사니와지만 숨소리조차 나지 않으면 검들은 처음 겪는 일처럼 분주했다. 불도며 신사며 저마다 마음 가는 곳에서 사니와가 일어날 때까지 촛불을 키며 비는 이도 있었고, 지식에 의존하며 온갖 약병이며 책들을 어지러 놓으는 야겐과 난카이 같은 이도 있었으며, 병마를 베어보겠다며 사니와의 방 밖에 진을 치고 앉아있는 천하오검과 그 동생, 겐지형제 같은 이들까지 있었으니 온 혼마루가 조용히 들썩였다. 그러나 이 일상적인 비일상은 어느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처음으로 본인의 힘이 아닌 적의 손에 사니와가 죽음 같은 잠에 빠진 날이었다.

     그 날은 달이 뜨지 않는 밤으로 사니와는 일찍부터 불안해 했다. 인간의 영력은 달을 따라 차고 기우는 것, 늘 힘이 넘쳐 곤란하던 이는 힘이 줄어들 때 더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찮아, 괜찮단다"라며 달을 눈에 품은 검이 달래보아도 '내가 약해져서 틈을 보이면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떨리는 손으로 적어냈다. 그저 인간의 기우라면 좋았겠지만 영력이 좋은 자는 별을 읽는다고 불렸던가. 약해진 결계의 틈 사이로 역행군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각 결계의 방향은 신검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고 혼마루의 기둥에 칼이 박혀버린 그들은 순식간에 대문을 내어주고 말았다. 신격으로 폭풍우가 불고 곳곳에서 진검을 뽑는 소리가 들리니 사니와는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피투성이가 된 대태도들에게로 몸을 던졌다. 어째서 호타루마루의 몸이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는가. 어째서 타로타치와 지로타치는 등을 맞댄 채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가. 제발, 네네키리마루. 당신은 신이잖아. 빨리 일어나서 피 묻은 소매만 보이는 이시키리마루 좀 어떻게 해줘. 그러나 그 몸은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공중으로 낚아 채졌는데 핏발이 선 사니와의 눈 가득 하얀 나기나타가 떠올랐다. '내려줘, 토모에! 제발!' 소리 없이 외쳤지만 토모에는 들어주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붉은 눈빛을 한 그는 사니와의 뜻을 따라주지도, 미소를 띄워주지도 않았다. 그저 몸부림 치는 주인을 낀 채 달릴 뿐. 나기나타는 밤이 뜨면 휘두를 수 없는 것, 그 간단한 이치를 알고도 시즈카는 칼부림을 멈출 수 없었지만 토모에는 달랐다. 그는 애초에 전투를 위해 태어난 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평생 느낄줄 몰랐던 토모에가타의 완력에 짓눌린 몸부림을 치는 새 토모에가타는 복도의 끝으로 향했다. 본채에 붙은 불을 피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더 내달릴 바닥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니와를 감싼 채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한 순간 혼마루가 전부 눈에 들어온 찰나, 사니와는 부서지는 창틀 사이로 마당에서 반짝거리는 흰 빛들을 보았다. 검들이, 너무나 많은 검들이, 저마다 최후의 빛을 내며 달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살아서의 모든 움직임을 다하겠다는 듯 반짝이고 있는 자들과 움직일 수 없을 터인데 움직이는 자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 모두. 

    "그만해!" 시간이 멈춘 사이로 사니와가 외쳤다. 수년간 잠겨있던 목소리가 댐이 터지듯 밤하늘 가득 터져나왔다. "주인의 목소리는 이런 느낌인가." 오니마루가 붉은 실을 입에 문 채 말했다. 그 외에도 혼마루에 현현한지 몇년 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순식간에 별채의 기둥 뒤로 사라지는 비명소리를 귀에 새기며 저마다의 감상에 빠졌다. 

  "아아, 모처럼 주인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못한다고... 하는것은 멋지지 않겠지." 

  "아하하! 놀랐다고...주인! 이 나를 놀래키다니 제법인데!"

  "여전히 풍류인 목소리구나. 시끄러운 것들만 다물면 더 잘 들릴텐데."

  "주명.. 받들지 않을 수 없단 말이다!"

  "뜨겁구나... 주인의 목소리를 들은 분 만큼은 일해보도록 할까."

  이 밤의 끝에 긴 잠에 빠지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듣는게 저 목소리라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는 누구인가. "들었냐, 네놈들. 모처럼 우리 주인의 명이라서 말이야. 이제 그만 날뛰어 줘야겠다." 야겐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수행 후 두르고 있던 흰 천은 이치고의 얼굴 위까지 끌어올려져 난도질 당한 그 몸을 감싼 채였다. "복수해 줄거야... 복수...." 기둥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코우세츠의 손만 쓰다듬던 사요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혼마루에 들이닥친 죽음이 그 몸을 불렸다. 

   그 사이 토모에가타는 사니와를 안고 달려 창고로 쓰이는 별채 앞까지 다다랐다.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몇개인가의 창에 바람이 불었지만 밤에 먹혀버렸다. 타도와 협차, 단도 같이 날뛸 수 있는 자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 본채에 묶여있었기에 사니와는 눈 앞에서 쓰러지는 칼들을 보고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안돼, 니혼고! 톤보키리! 도망쳐, 도망치라고!"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어째서 들어주지 않는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은 토모에역시 마찬가지였다. 나기나타인 몸이 단도에 따라잡히는 것은 당연한 일. 몇 발인가 총을 맞은 그는 창고 앞에 다다랐을 무렵에는 제대로 서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붉게 물들어버린 토모에를 보며 사니와는 제발 너만이라도 도망치라며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더 이상 사람의 소리라고 믿기지 않는 것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일어날리 없는 일이 일어난 밤, 토모에는 끝까지 주인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주인. 곧 돌아오겠다." 그 말을 끝으로 사니와는 굳게 잠겨버린 문과 함께 창고 속으로 내던져졌다. "안돼, 토모에! 열어! 열라고!" 내장을 찢고 터진 비명은 문을 두드리는 두 주먹이 되어 문 앞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어두운 창고를 울렸다. 

   동이 틀 무렵 꺼내졌을 때, 광인같은 눈을 하고 손톱이 빠져버린 손으로 바닥을 긁고 있던 것은 이미 전날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다. 검의 반은 타버린 본성 어딘가를 헤메었고 나머지 반은 쇠로 돌아가 사니와의 품에 안겨있었다. 혼마루의 끝과 끝에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조용해진 사니와는 파편들을 어지러 놓은 채 타버린 벽에 등을 기댄채 웅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나기나타도, 창도, 대태도도 사라진 혼마루에 무엇이 남았는가. 아와타구치는 맏형을 잃었고 코테츠 형제는 아직 수행을 가지 못한 채였던 동생을 잃었으며 소우자와 사요는 말을 잃었다. 산죠와 오사후네, 그리고 라이는 단도뿐인 도파가 되었는데 더 이상 남은 것을 헤아려 무엇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아직 지킬 것이 남아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사니와에게는 닿지 않았다. 처음부터 혼마루만이 세계였던 그녀에게 반쪽뿐인 세계라도 세계라는 말을 닿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을 잃고 땅이 남은들, 해를 잃고 달이 남은들 그것은 존재해서는 안되는 이물. 그렇다면 정화하는 자로써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사니와가 깨진 검날 중 큰 것을 들어 가슴 가까이 대고 소중히 품었다.

    "길을 잃었구나." 어디선가 코가라스마루의 목소리가 울렸다. 원정을 이끄느라 화를 피했던 그는 모든게 불타버린 와중에 홀로 완전하고, 홀로 아름다웠다. 

    "아아, 까마귀 동자님.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네요. 당신이 남아주었으니 더러워진 이 장소도 언젠가 빛을 되찾을 수있을까요?" 가슴에 가까이 댔던 날은 어느새 올곧게 서 사니와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아비일지라도 나역시 한 자루의 검. 주인이 없다면 어디로도 갈 수 없지." 코가라스마루는 움직이지 않았다. 밤을 닮은 눈동자는 읽을 수 없었으나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올곧게 사니와와 맞추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좋은 주인이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 당신이 이끈다면 모두 더 나은 길을 가줄 수 있겠죠." 발을 딛고 선 검이 뒤꿈치에 힘을 주었다. 사니와의 가슴에서 작고 붉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좋은 주인이 되어주겠다면서 이 아비를 두고 어디로 가는게냐?"

    "아하하... 저 같은 실패작이 어떻게. 분명 저보다 더 좋은 주인이 찾아올거에요.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주인이." 사니와의 가슴에 선 검이 한발자국을 더 내딛었다. 이제 한 치만 더 달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뻔한 순간, 순식간에 주인의 등 뒤에 나타난 코가라스마루가 검 위로 제 두 손을 겹쳤다. 눈보다 하얀 코가라스마루의 손에서도 붉은 꽃이 피어나 바닥을 수놓았다.

    "보이느냐, 주인? 너와 나의 피가 합쳐 하나의 줄기를 이루는 것을." 사니와의 손이 떨렸다. 검을 세게 쥔 탓에 어딘가 힘줄이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코가라스마루는 겹쳐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다른 자가 주인을 칭한들 하나가 된 피를 나눌 수 있겠느냐. "

    "놔줘요, 코가라스마루. 나는 이제 검이 다치는 걸 볼 수 없어요."

    "그러하면 네 눈에 보이지만 않게 되면 다쳐도 되는 것이냐?"

    "제발 그만."

    "만일 네가 사라지면 우리는 네가 베어왔던 귀가 되어버리고 말텐데, 너는 그래도 괜찮느냐?"

    "그만!"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얼마 안 남은 세상의 전부가 세상을 끝내버린 것과 같아진다니. 숨과 같은 검들이 역행자가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니와는 두 다리를 세울 수가 없었다. 여전히 검에 칼의 일부를 박은 채로 미끄러지는 사니와와 함께 코가라스마루가 무릎을 꺾었다. 한 그루의 산사나무처럼 사니와를 감싼 코가라스마루는 사니와를 감싼 제 손을 고쳐잡으며 허리를 세웠다. 마치 배를 가르는 장수처럼.

   "코가라스마루!" 코가라스마루의 의도를 눈치챈 사니와가 부숴지는 비명을 질렀다. 사니와가 들고 있는 도신의 크기라면 그대로 사니와를 뚫고 코가라스마루까지 가를 수 있는 길이였다. 그러나 절망은 끝나지 않았는데 제발 그만하라며 울어대는 사니와의 앞에 살아남은 남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온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제 앞에 제 본신을 내려놓았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버린 사니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먼 허공만 보았다.

   "네가 없는 세상은 어차피 어둠. 길을 잃고 헤매느니 너와 함께 데려가 주지 않으련?" 코가라스마루가 사니와의 어깨에 고개를 얹었다. 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째서 검들을 움직이는가? 사니와의 앞에 무릎꿇은 다른 검들이 모두 제 검날을 빼어들고 가슴으로 향하게 고쳐잡았다.

   "야겐...분명 자살따위 하지 못하게 한다고....."

   "그러니까 이러는 거야. 대장을 막을 방법이 달리 떠오르지 않아서 말이지. 만약 우리가 전부 부러져도 괜찮다면, 그대로 손에 힘을 주면 돼."

   "이런거.... 너무해 .... ."

   "너무한 건 대장이라고? 이미 한 번 대장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는데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오니라도 되버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꼴을 보이느니 대장을 따라 어디로든 가겠어."

   "그래서 주군, 어찌했으면 하느냐? 이 아비에게....이대로 네 운명을 맡기겠느냐?"

   "알았어....알았으니까..... 이제 죽는 다는 생각은 안 할 테니까....." 

   그 한마디에 방안 곳곳에서 신음같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본인들이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닌, 주인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숨쉬고 움직일 영력을 불어넣은 사니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가슴에 박혀있던 검을 단숨에 뽑아내고 상처를 누르는 코가라스마루의 손에 야겐의 손이 겹치는 걸 보면서, 사니와는 피로 물든 손으로 사랑스러운 두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너희들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겠지

  ".....내가 무엇이라도 되는 수밖에" 너무 작아서 듣지 못한 코가라스마루가 사니와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뭐라고 했느냐? 아픈 것이냐? 치명상에는 닿지 못하게 했을 터인데." 아아, 역시 그랬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니와가 그를 부러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칼인가. 사랑스러운 칼들이란 말인가. 사니와가 미소 띈 얼굴로 방 안의 칼들과 눈을 맞추었다. 

  "정말 너희들한테는 당해낼 수가 없네." 그 말이 더 잘 들리기 하기 위해 코가라스마루가 사니와의 몸을 일으킨 순간, 본 적 없는 방대한 영력이 터져나와 빛처럼 방 전체를 감쌌다. 인간의 몸이기에 다들 얼굴을 돌릴 수 밖에 없었으나 코가라스마루만이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눈을 올린 채 사니와를 움켜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어찌 그의 탓이겠느냐. 애초에 사니와가 하려고 하는 일은 인간의 영력으로 가능할리 없는 일이었을텐데

   "대신.... 대신 물드는 것은 나 하나로 끝내도록 하자." 그 말을 끝으로 영력을 코가라스마루마저 밀쳐내고 온 혼마루를 집어삼켰다. 내장마저 밀어내는 듯한 강한 바람에 칼들이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고, 그 다음 순간 나타난 것은...

   "아겐? 이게 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이치고가 사니와의 피가 묻은 야겐의 손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파괴되었을 모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방 곳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살아남았던 칼들이 저마다 단말마같은 울음을 토해내며 잃었던 자들을 움켜쥐었다.

   "아니 소승이 왜 본당에? 본인은 분명 도다누키공과 함께 역기를 들고 있었다만?"

   "갑자기 와 이리 눈이 부신교? 벌써 아침인교? 아, 잠깐, 아이젠, 목! 목 누르지 말....!"

   "형들 잠깐만, 숨막혀! 아니 하치스카 형, 우는 거야? 에엑- 나가소네 형 까지?!"

   "하카타, 그렇게 달려들면 술병이 깨져버린다니까! 정3위한테 단체로 행패부리는거냐?"

   "사요....소우자.... 울지 마십시오."

   저마다 아우성으로 혼란한 와중에 코가라스마루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사니와를 올려다 보았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흰 제사복을 입은 사니와가, 분명 깊이를 알 수 없는 밤하늘을 닮아 그를 자랑스럽게 했던 검은 눈동자 대신 피처럼 붉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이야, 다정한 아이야. 꽃가지 하나 꺾지 못하겠다며 맨 발로 산을 걸어오던 아이야. 네가 어찌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느냐."

    "미안해요, 코가라스마루.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못해도 좋아요. 다만... 지금은 그저 무례를 용서해줘요." 사니와가 눈물로 젖은 미소를 띈 얼굴로 코가라스마루의 영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잠시 허공을 헤매던 까마귀 동자의 눈이 감기더니 그는 늘 그렇듯 모든 것을 품은 표정으로 두 팔을 들어 사니와를 받아주었다.  

    "검이 주인을 사랑하지 못한다니, 이 아비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하는 구나." 제 어깨를 따라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코가라스마루는 아이를 어르듯 사니와를 도닥여주었다. 그러나 둘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으니 토모에가타가 안경이 코 끝에 걸친 것도 모르고 손을 떨며 다가왔기때문이었다.

   "주인...주인이... 지금 말을 한 것인가?"

   "아아, 토모에가타. 내 소중한 나기나타. 이제 두번 다시 내 말을 거역해아 할 상황따위, 없을테니까."

   "내가 주인을... 거역... 이라니...." 코가라스마루의 품에 파묻혀 있던 사니와가 한 팔을 뻗어 토모에가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을 겹쳐쥔 토모에가타의 손이 떨리고 기어이 눈물마저 떨어지며 주저앉자 키가 큰 나기나타의 등 뒤에 가만히 선 채 주변을 둘러보던 미카즈키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며, 기뻐하며, 저마다 주인과 그 목소리에 한조각 이라도 닿고자 에워싼 칼들을 내려다보며 긴 숨을 쉬었다.

   "핫핫핫. 좋구나, 좋아. 뭐, 조금 바뀌면 어떻겠느냐. 우리들의 역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느니라." 천천히 떠지는 눈에 시린 달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