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연재..는 아니고 그냥 짧글 짧글만 쓸 생각










"......"

햇살에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어느샌가 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이상한 따뜻함이 느껴져서 슬며시 눈을 떠보면.

"일어나셨군요."

하세베의 단정한 얼굴이 있었다.

"......"
"......"

마지막 기억은 앉아서 서류 작업 중이었던 것 같은데 왜 하세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주무실건가요?"

미소 지으며 하세베는 장갑 낀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가져다 입을 맞춘다.

"......"

아무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있자 하세베가 하하하고 웃었다.

"거절하지 않으신다면 이대로 키스해도 될까요?"

그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쉬운듯 하세베가 비어버린 손을 쥔다. 그 모습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어째서.

"왜 내가 당신 무릎베개를 하고 있었지?"
"왜일까요."

당연한걸 물어본다는 표정이다

"어릴땐 해달라고 먼저 말하셨으면서."
"......!"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는거지 이 남자는.
안그래도 그 시절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으로 정부에서 내 사니와로서의 자질을 평가하기 시작한 날.
하세베가 마지막으로 밤에 내 곁에서 잠을 재워준 날.
...이 하세베가 아니라 엄마의...하세베가.

"아루지."
"......"
"취임 한지 얼마 안 되셨으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쉬셔도 됩니다. 명만 내리신다면 무엇이든 해 보이죠."

그 스트레스의 일부 주제에 잘도 말한다.

"왜 이러는거야, 대체."
"왜라니."

하세베가 빙긋 웃을 짓는다. 어렸을때부터 유독 이 하세베는 속을 알기 힘들었다. 똑같은 헤시키리 하세베일텐데.

"당신이 어릴때부터 그렇게 말해왔잖습니까."

'내게 명령을 내리려거든---'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어렸을 적 몇번이고 들었던 그 목소리가 겹친다.

"......됐어. 취임하자마자 남한테 일 맡기는 사니와로 보이기 싫어."
"훌륭하십니다. 과연 나의 주인."

하세베가 얼굴로 손을 뻗어와 반사적으로 피했다. 허공을 잡은 손은 잠시 그대로 있다가 떨어진다.

"흐음."

그는 웃었다.
이 모습.
이거야말로 내가 20년을 알아왔던 그의 모습이다. 알 수 없는 표정. 가면으로 가린 듯한 웃음. 조금 전처럼 다정한 모습이 절대로 아니라.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무릎베개 해달라고 했다가 단호히 거절 당했던 때.

"......헤시키리."
"......"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되도록이면 하세베라고 불러주시죠. 아시겠지만 전 주인의 행패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주명이라고 하면?"
"......"

잠시 무표정하게 굳은 그대로 하세베가 보랏빛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주명이시라면."
"......"

아아.

"아루지께서 진심으로 그렇게 원하신다면. 저 스스로는 그다지 원하지 않는 호칭이지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원한건...내가 원한건 이런게 아니다. 내가 원한건.

"......"
"아루지. 가엽게도."

어느샌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모양이다. 뻗은 손을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하세베의 손이 내 입술을 부드럽게 누른다.

"그렇게나 '헤시키리'가 가지고 싶으신거라면 저도 헤시키리 하세베란걸 잊지 말아주세요."
"......"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입니다."
"거짓말쟁이......"

참지 못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어차피 당신도 내 헤시키리 하세베가 아니야."

'저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건 아루지 뿐이니까요.'

어릴때 말했던 그 목소리 그 말투로 똑같이.

'저는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했다.
잔인하도록 자상하게. 잔인하도록 상냥하게.

"아루지."

어느샌가 코 앞에 와 있는 '하세베'는 뺨으로 한방울 두방울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준다.
너무나 자상한 손길로. 마치 내가 좋아했던 하세베 처럼.

"제가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가 아니라고 하신건가요?"
"그래."

어차피 똑같다. 눈 앞의 하세베는 아빠의 헤시키리 하세베니까.
그가 엄마의 헤시키리 하세베이듯이. 끝끝내 내 헤시키리가 아닌 엄마의 헤시키리이듯이.

"당신은."
"...윽?"

얼굴을 감싸쥔 손에 힘이 들어가 깜짝 놀랐다. 억지로 위로 향해져 하세베와 마주 바라본다.

"...당신은 저를 버릴 생각입니까?"
"......아?"

그건 처음보는 표정이었다. 엄마의 하세베에게서도, 아니 이 하세베 자체로도. 20년 간 이런 표정의 하세베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마치 눈동자에 휙 하고 불길이 치솟은 것 같았다. 어느 강렬한 감정이 와 부딪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건 분노였다.

".....하세베?"
"아루지."

뺨을 타고 내려간 손이, 손가락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 어깨를 잡는다.
단호한 목소리의 뒤엔 많은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당신이 나의 주인입니다. 내가 누구의 하세베라고 하실 생각이시죠? 내 존재를 부정하시는겁니까?"
"......아빠가 현현시켰잖아."
"전 주인이시죠. 지금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

아아. 이 말을 그에게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빠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부친께선 훌륭한 주인이셨습니다. 사니와로서 더할나위 없는 분이셨죠. 하지만 당신께 맡기고 떠나셨습니다. 전 혼마루의 모두가 그 분에 대한 충심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얘기죠. 지금의 주인은 틀림없는 당신이고 전 주인보다 우선해야 할것도 당신입니다."
"하지만......하지만 엄마의 하세베는......"

순간적으로 인상을 찡그린 하세베가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줘 당겼다.
그대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품에 안긴다.
이 하세베는 대체 왜 이러는걸까.

"그렇다면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는 저 뿐인거지요."
"......!"
"영광입니다."

어째서 이러는걸까. 왜 이러지? 뭘 바라는걸까.
마음이 흔들린다. 어릴땐 그렇게나 냉정하게 굴더니 이젠 이렇게 입 안의 혀처럼 군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는데. 대체 왜 이러는걸까.


하지만 확실히,
이 하세베가 하는 말은 하나하나 너무나 달콤했다.

"...언뜻 듣기엔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결국 내가 떠나고 다른 주인이 와도 똑같이 이러겠다는 소리 아니야?"

너무나 달콤해서.

"그럼 저를 당신만의 헤시키리로 만들어주시죠. '그 헤시키리'처럼."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