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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예전에 캐해석글 쓰면서 극뱀과 2대 사니와 얘긴 모르겠으니 아무나 써달라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내가 쓰고 있읍니다














"......하세베."

방 안에 조용히 앉아있던 하세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어둑어둑한 방 안.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앉아있기만 했던 것 같다.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는다. 옛날과 아무것도 바뀐게 없는 자상한 미소였다.

"아가씨."

그리고 아무것도 바뀐게 없는 호칭.

"잘 적응하시고 계신것 같더군요."

다가가 마주 앉자 웃으며 그렇게 말한다.

"이 방에서 나오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알아?"
"쇼쿠다이키리나 니혼고가 묻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식사나 술 같은걸 들고 와서 떠들다가 가거든요. 잘 하고 계시다니 기쁩니다. 아루지께서도 마음 놓고 쉬실 수 있겠네요."
"......"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너무 바뀌지 않았어.
그래서 더 뼈저리게 느낀다. 옛날부터 그가 보는 나는 그저 자신의 주인의 딸 일 뿐이었던거라고. 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그저 엄마의 부속물일 뿐이었던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바뀐 지금도 나를 똑같이 대하는거라고.

"마음은 바뀌셨나요?"
"......"
"아니군요."
"차라도 드시고 가세요. 카센이 마음대로 떠안기고 갔습니다. 당신이 찾아오면 드리라면서."

가볍게 웃으면서 일어나 방을 밝히고 다구를 꺼낸다.

"필요없어."
"...그러신가요. 알겠습니다."

조용히 다시 다구를 집어넣은 하세베는 다시 내 앞으로 와 앉았다.
엄마의 은퇴 이후 하세베는 혼마루 구석의 창고로 쓰이던 이 방에 자리잡고 정말 최소한의 필요한 일 이외에는 절대로 밖에 나오지 않았다. 식사도 하루에 한 번 정도 다른 칼들이 일어나기 전 이른 시간에 식당이 아닌 주방으로 직접 와 간단히 떼우고 간다며 아빠네 카센이 코 끝을 찡그리며 전했다.
이러한 하세베의 행동을 아빠의 혼마루에 있던 칼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해했다. 실제로 취임 첫날, 하세베가 찾아간 나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카센은 검을 뽑으려고 할 정도로 불같이 화를 냈다. 어쩌면 그걸 알기때문에 더더욱 하세베는 이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건지도 모른다. 쭉 하세베와 함께 있던 엄마의 혼마루 칼들은 하세베를 옹호하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했던 시간도 있고 하세베가 얼마나 엄마를 특별히 여기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복잡한 심경을 가지는 듯 했다.

"하세베."
"네. 아가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하세베를 도해 할 생각 없어. 절대로."
"......"

말 없이 하세베는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표정은 흔들림 없이 언제나처럼 자상한 미소 그대로.

"하세베야말로 마음 안 바꿀거야?"
"......"
"내 근시가 되어줘."
"죄송합니다, 아가씨."

자상하지만 단호하다.
이 대화는 언제까지 되풀이 되는걸까. 일주일 한달 일년 십년 내가 늙어 죽을 때 까지?

"하세베."
"네, 아가씨."
"좋아해."
"저도 아가씨를 좋아합니다."
"그럼 안아줘."

순간 하세베의 미소가 흐려졌다. 하지만 이내 손을 뻗어 내 등을 감싸고 토닥였다.

"열심히 하세요. 당신의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훌륭한 사니와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하세베."

하세베의 품 안에서, 그 옷깃을 잡아쥔다.

"내가 말하는게 이런거 아닌거 다 알잖아."
"......"
"좋아해."
"아가씨."

등을 가볍게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옛날부터 쭉 좋아했어."
"...감사합니다."

그런 대답을 듣고싶은게 아니다.

"하세베랑 함께 있고 싶어."
"......"
"키스해줘."
"......"
"안아줘."

어렸을때처럼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언제나 변함없는 하세베의 향이 느껴졌다. 어릴때부터 쭉 이 향기는 나를 안심시켰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는걸까.

"아가씨."
"응."
"제 대답은 이미 알고 계시겠죠."
"몰라."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다. 마치 어릴 적 울던 나를 달랠 때 그대로.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

"당신을 좋아하는건 진짜에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어요. 그것을 아루지께서 원하셨으니까."
"근데 왜 안돼...? 그러면 되잖아?"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잖아. 왜 안된다는건데. 엄마도 주명이라고 하는거 다 들었어, 주명이라면 다 듣는다면서. 엄마가 나를 주인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거 다 들었단 말이야.

"용서하세요."
"......"
"당신이 제 주인으로서 부족하다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분명히 좋은 사니와가 되실거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의 부모님보다도 훌륭하고 완벽한 사니와가 되실거라고, 진심으로."
"근데 왜......?"
"그것과는 다른 얘기니까요...이건 제 문제 입니다."
"......"
"아루지는......당신의 어머니는 제게 있어서......"
"하세베는......"

꾹 입술을 깨물고 숨을 삼킨다.

"하세베는...엄마를 사랑해?"
"......사랑하고 있지요. 당연히...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제 주인이시니까요."
"......"
"아가씨. 당신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어요. 아아. 당신이 태어나고 곁에서 돌보며 어찌나 행복했던지."

하지만 안됩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세베는 나를 자신에게서 떼어냈다. 마주친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한 자상함을 품고 있었지만 어딘지 쓸쓸했다.
나를 향해 나만의 헤시키리로 만들어 달라고 하던 열기를 담은 눈과 분명히 똑같이 생긴 똑같은 색의 눈일텐데.

"제 주인은...당신의 어머니 뿐이시니까."
"좋아. 알겠어."
"그럼......"
"아니. 나를 주인으로 생각 안해도 돼. 그러니까 안아줘."
"......"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을 뻗어 안으려 들자 하세베가 양손으로 내 팔을 잡아 멈췄다. 여태까지 한 번도 이렇게 나를 막은 적 없었는데. 안아달라고 손을 뻗으면 언제나 한번도 빠짐없이 나를 안아줬는데.

"......아가씨. 제가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를 아시나요?"
"아빠네 칼들이 싫어해서? 그런건 상관 없어. 이제 내가 주인인걸. 하세베를 건들지 말라고 할게. 하세베를 기분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 해줄게. 그러니까 내 연인으로서 있어줘."

내 대답에 하세베는 내 팔을 놓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들이 저를 싫어하는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들이 저한테 덤비거나 할까봐 무서운게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머무는건 당신을 위해서예요."
"나를 위해서?"
"혼마루 내에 사니와를 주인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칼이 있어서야 혼마루 기강에 영향을 줄 뿐이죠. 아루지의 부군의 칼들이 옳습니다. 제 존재는 당신에게 있어서 해악일 뿐. 하루라도 빨리 도해하는게 옳은 판단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눈에라도 띄지말아야하죠. 사실 아가씨가 이렇게 절 찾아오는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세요. 저를 도해하지 않으실거라면 최소한 존재를 지우셔야합니다. 이 혼마루에 존재하지 않는것처럼."
"싫어, 나는......"
"스스로 부러질까도 생각해봤습니다."
"하세베!"

심장이 순간 멈추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을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싫어. 하세베가 세상에서 사라지는건 싫어. 내 손으로 도해하는것도, 부러지는것도 싫어.

"울지 마세요."
"부러지면 안돼......."
"아가씨. 저 스스로는 부러질 생각은 아직은 없으니...그렇게 울지 마세요. 예전에 아루지와 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약속?"
"네. 자...울음을 그치세요. 계속 우실거라면 지금 당장 절 도해해주시죠. 그 편이 우시기 편하겠지요."
"무슨 말을 하는거야......"

도해하고 마음 편히 울라는 말인지.
언제부터 이렇게 잔인한 말을 하게 됐을까. 하세베는 어째서. '헤시키리 하세베'는 어째서 이렇게 나를 혼란스럽고 아프게 만드는걸까.

"아가씨. 저는, 제 존재는...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사니와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칼 따위 곁에 둬선 안됩니다. 만약...만약 제 주인이 당신이고 혼마루에 그런 칼이 있었다면 제 손으로 부러트렸을겁니다. 용서해선 안되는 일이에요."
"내가 괜찮다는대도?"
"훌륭한 사니와가 되셔야죠. 저와 아루지를 위해서."
"......"
"그러니 부디. 저를 도해시켜 주세요. 당신이 이 혼마루의 훌륭한 주인이 되길 바라는 아루지를 위해서, 저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자상한 손길로 눈물 한방울 한방울을 닦아준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러넘쳐서 하세베는 한숨을 쉬고 다시 나를 끌어당겨 안고는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 손길은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릴때 내가 울면 언제나 이렇게 해줬다. 안아올려 눈물을 닦아주고 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담고 등을 토닥여주며 내 눈물이 그칠때까지 괜찮다고 끊임없이 속삭여줬다.

괜찮아요 아가씨. 하세베가 있습니다. 울지 마세요. 이제 무서운건 없어요.

하지만 당신에게서 상처 받은 나는 대체 어떤 말로 당신에게 위로 받아야하는걸까. 손길은 똑같고 안심되는 그 품 안도 똑같은데 귓가에 들리는건 그때와는 다른 작고 쓸쓸한 한숨 뿐.
어째서.

"엄마가 하세베를 데리러 오는 일은 없어."
"......"
"엄마는 하세베를 나한테 준거야. 하세베 전 주인 같이 나한테 버리고 간거야!"


엉엉 울며 하세베의 가슴을 두드렸다.
스스로도 틀린 말이란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끝까지 하세베를 믿었다. 지금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딸인 내게 하세베를 남기고 간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하세베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아픈것처럼 하세베도 아프게 만들고 싶었다.
분명 나는 훌륭한 사니와를 꿈꿨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든 뒤 혼마루를 떠나 공부도 했다. 그야말로 열심히 배웠다. 정부에선 그냥 당장이라도 내 혼마루를 마련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거절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배우고, 능력을 길렀다. 모든것은 훌륭한 사니와가 되기 위해서.
훌륭한 사니와가 돼서,
엄마처럼 하세베의 훌륭한 주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하세베 주인은 나야! 엄마가 나한테 주고 갔으니까 나야!"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소리쳤다. 그야말로 떼쓰는 어린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세베의 마음을 찢고 상처내서, 그 안에 내가 들어갈수만 있다면.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 나를 박아넣을 수만 있다면.
내가 이렇게 아픈 만큼, 나 때문에 아팠으면.
가슴을 두드리던 내 주먹은 어느새 손톱을 세워 박아 넣고 있었다. 나는 아파. 나한테 도해 시켜달라고 말하는 당신 때문에 너무 아파. 상처 받았어. 잔인해. 나빴어. 좋아해.

"아가씨."

하세베는 저항도 없이 그 모든걸 받아낸다.

"저에게 화 내셔도 됩니다. 욕하셔도 괜찮아요."

그러고 있어.

"하지만 아루지를 욕되게 하진 마세요. 그 분은 그런 분이 아니시니까."
"......"

그 말에 순식간에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힘 없이 머리를 떨군다. 단단한 어깨에 이마를 올려놓자 다시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가씨."
"......"
"저는 당신의 어머니의 헤시키리 하세베입니다.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가 아니에요."
"......"
"저는 잊고 당신의 헤시키리 하세베를 만드세요. 당신의 어머니가, 나의 아루지가 내게 그러셨던 것 처럼 당신만의 행복한 헤시키리 하세베를 만들어주세요."

그 말은 천둥처럼 내 마음 속을 찢고 울렸다.

'그럼 저를 당신만의 헤시키리로 만들어주시죠.'

달콤하게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눈 앞에서 놀랍도록 잔인한 말을 하는 것과 동일한 그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