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인이 살아있었을 때는 아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건 같은데 말이야. 그 사람이 죽고, 당신이 오고 나서, 언제부턴지는 몰라도 무츠노카미나 카센이 가끔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거야. 당신이랑 카센은 옆에서 봐도 특별하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거기다 원래 초기도는 사니와가 제일 먼저 고르는 유일한 칼이잖아. 첫 도검이라는 그 사실만큼은, 그 뒤에 어떤 칼이 생겨도 절대 변하지 않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보장된 위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러워서, 그래서 가까이에 있던 카센이랑 당신에게 화풀이를 한 건 인정할게"
내가 절대로 얻어낼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 주인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카센에게 짜증이 났고, 나를 첫 칼로 고르지 않았던 당신이 미웠어. 이상하지, 부조리한 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마치 그게 정당한 분노인 것처럼 계속 화가 났어.
어째서 내가 아니었을까, 어째서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거지, 하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동시에 자신을 구원할 해답을 절실히 갈망하는 고통스러운 카슈의 말이 혼잣말처럼 떨어졌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카슈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건지 속삭이듯 가만가만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버림받은 어린아이처럼 슬프게 보여서, 나는 무의식중에 위로하는 것처럼 얼굴을 들여다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나는, 카슈도 사랑해"
그래. 분명 이 감정은 사랑이다. 내가 혼마루의 도검들에게 가지는 감정. 어떻게 접해야 할 지 모르고 망설이면서도 맞닿는 것을 바라고, 곁에 있어도 없어도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가 없다. 미움받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누군가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했던 적도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원했던 것은 나만의 것이었다. 그러나 긴 인내 끝에 얻어낸 도검들은 이전 주인을 마음 속에 남긴 채, 나를 봐 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두통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괴로웠고, 그들의 마음이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사랑하는데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괴로웠고,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슬펐다. 그들의 현재 주인은 나라고 하는 얄팍한 생각을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기면서도 웃으면서 사리분별을 잘 하는 주인을 연기했던 것은, 그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비추지 않는 눈동자가 밉다. 심장이 꽉 조여들어 괴롭다. 피라도 토하는 것처럼 아프다. 그들을 위해서 내가 있어도, 그들은 나를 위해서 있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그들은 확실히 내 것이다. 그들의 목숨 모두를 이 손에 쥐고 있는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언젠가 내가 봄날 햇살 속에서 봤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던 순수한 정경이 세월과 함께 일그러지고 말았어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의외로 카슈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얼굴을 찌그러트리듯이 쓰게 웃더니 나를 보았다.
"그래도 당신의 특별한 존재는, 카센이잖아?"
그 말에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대답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카슈는 다시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 말이야, 언제였더라, 카센이 중상으로 돌아왔을 때, 울었던 적이 있었지. 항상 우리 상대로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흐트러진 적이 한 번도 엇었으니까, 충격이었다고.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정신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카센 뿐이라는 걸 곧 깨달았지 뭐야. 나, 사실은, 나도, 당신의 미소가 아니라, 눈물을 원해. 나를 위해서 울기를 원해. 내가 당신에게 바라고 있었던 건, 그런 거였어"
본부 부지 안 전역에 걸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역시 여기서도 지고 있었다. 가벼운 바람에 실려 얇은 분홍색 꽃잎이 천천히 내려온다.
"당신은, 우리를 평등하게 사랑해 주지만, 나는 특별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팔랑팔랑 춤추던 꽃잎은 마지막으로 딱딱하고 어두운 땅 위에 떨어졌다.
카슈의, 아마도 가장 본심을 드러낸 말에는,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달관이 엿보이는, 그러면서도 손에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는 듯한, 갈망하듯이 피어오르는 열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쩌면 하고 채 버리지 못한 바람 때문에 애를 태우는 거나 마찬가지다.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는 소년처럼 순수한 바람이었다. 언제 어떤 때에도 마치 뿌리를 내린 저주처럼 떨어져내리는 엷은 봄의 축복을 보면서, 그 옆얼굴은 평소보다 더 위험한 아름다움을 내비치고 있었다.
카슈의 말에 나는 얼어붙은 듯이 입을 열 수 없었다. 미치도록 애절한 카슈의 말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벌처럼 품어 왔던 바람과 같았다. 나는, 나도, 사랑받고 싶었다. 내 태생도 배경도 사정도 아무것도 상관없는 곳에서, 나는 나만을 유일하게 바라보고 미소지어 줄 누군가를 절절하게 바라 왔다. 다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진실되게 나만을 위해 있어주는 나의 것을 원하면서도, 나 자신은 원하는 것과 같은 것을 상대에게 되돌려줄 수 없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야트막한 욕심이라는 것을 폭로당해 경악했다. 평등하게 사랑한다. 그래, 나는 나의 도검이 된 그들을 모두 평등하게 사랑해 왔다. 카센 외에는, 분명히 평등하게. 나 본인은 카센과 그들을 취급하는 데 우열을 만들어낸 기억이 없었지만, 애초부터 그 혼마루 안에서 나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칼인 카센은, 그것만으로도 옆에서 보기에는 특별했고, 나도 카센에 대해서는 줄곧.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심장을 쥐어 짜듯이 잘게 떨리는 손을 가슴에 올렸다. 그래, 나는, 카센에 대해서는 줄곧, 줄곧, 어렸을 때부터 집착해 왔다. 내 몸의 한가운데에 있는 심장처럼 망집으로 불들어버린 그것을, 새삼스럽게 벗겨낼 방법도 없었다. 지금 이 때까지 나는 그것을 의문으로 삼았던 적도 없었다. 카센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그가 나라고 하는 작은 인간에게 느끼는 연민과, 함께 지내 온 세월동안 길러준 자그마한 정으로,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었으니까. 나는 카센을 나의 에고로 속박했다는 자각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나의 도검이 된 그들에게도, 잔혹한 짓을 해 왔다는 것을 이제서야 자각하고 한치 앞에 보이지 않는 기분이 되었다. 나는 내 도검들을, 평등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평등이라는 것은, 다른 것과 같으며 유일무이한 특별이 아니다. 그런 건, 내가 누구보다도 가장, 그 괴로움과 함께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도.
"그래도"
혼돈과 뒤섞여 경종처럼 아파오기 시작한 생각이 멈춘 것은, 조용한 카슈의 목소리였다.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숨소리와 함께 뺨에 닿는다. 이끌리듯 옆을 보니, 방금 전과는 반대로 카슈가 내 쪽으로 몸을 내밀듯이 서 있었다. 내 얼굴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그 얼굴에 놀랄 틈도 없을 정도로 진지한 눈빛을 띈 카슈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당신을, 믿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카슈와 나 사이, 춤추며 떨어지는 벚꽃잎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가까이에서, 그 눈동자 속에는 확실하게 내가 비치고 있다. 그리고 내 눈 속에도 지금 이 때 만큼은 카슈만이 비치고 있다.
"믿고 싶다고는, 생각해"
훅 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쓰다듬으며 지나가고, 카슈는 몸을 되돌렸다.
고양이처럼 애교가 느껴지는 그 눈을 미소짓듯이 가늘게 좁히고, 그는 나를 본다. 그 눈에는 이제 험악함도 악의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진 외로운 아이같은 불안정한 분위기도, 봄의 햇살에 녹아 사라져 없어져버렸다. 그 얼굴을 멍하니 보면서, 내 머릿속은 멈춰 있었다. 몸 안을 좀먹다가 몸을 찢고 나올 것 같았던 자기혐오가, 고개숙인 개처럼 순식간에, 확실하게 존재하지만 수축되어 간다. 무언가 말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뇌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기 전에, 입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하고 머릿속 한쪽 구석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때,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평소처럼, 애매하게 웃었다고 생각하지만 들리는 내 목소리는 왠지 조금 떨고 있었다.
"나도, 네가 나에게 다가오려 해 준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해"
눈이 데굴데굴 굴러나올 만큼 커다랗게 뜬 카슈의 눈에 비치는 내 얼굴은, 역시 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미적지근한 그 바람이 우리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훑었고, 동시에 어디선가 '앗'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
그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소리여서 나도 카슈도 서로를 마주본 채 눈만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카슈 쪽은, 뭔가 짚이는 곳이 있었는지 미심쩍은 표정을 곧바로 확 구기더니 '설마.....' 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얼굴을 돌려 주위를 주의깊게 쏘아본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멈추더니, 얼굴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고는, 이거이거, 정말이지, 하며 작게 중얼거리면서 일어났다. 그 틈에 주웠는지 손에는 주먹 크기의 돌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내 눈 앞에서, 카슈는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것을 치켜들었다.
"...어?! 카슈?!"
"아얏!!"
"아-, 역시 있네. 정말, 뭐 하고 있었냐고 물어봐야 되는거야?"
당황한 내가 이름을 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방금 들렸던 목소리가 또 나고는 눈 앞에 있는 풀숲에서 무언가가 굴러나왔다. 질렸다는 표정을 한 카슈의 시선을 받으며, 의상이나 머리 군데군데 나뭇잎을 붙인 그 인물은 반쯤 웃으며 시선을 피한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앉은 채로 '안녕' 하며 손을 든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등 뒤에서, 새롭게 두 개의 그림자가 일어나 나타났다.
"안녕, 환담 중에 방해해서 미안해"
조금 곤란한 듯이 웃으며 말한 것은 쇼쿠다이키리다. 그 옆에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직 본의가 아니어서 참을 수가 없다고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오오쿠리카라가 불만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함께 어딘가로 가버렸던 그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에, 나는 눈을 깜빡였다. 한편 카슈 쪽은 그리 놀라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저 또다시 깊은 한숨만 쉬었다.
"저기 말이야"
"아니, 엿들으려는 짓을 한 내가 잘못했다. 하지만 기다려 보게, 여기는 깊은 사정이...!"
"안 들어줄 거야! 어차피 내가 감정적으로 주인을 상처입히지나 않을까 신경쓰였던 거겠지! 네에네에 덕분에 문제없었고말고요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아니아니 좀 들어주게 카슈, 잠깐잠깐 왜 칼에 손을.......왜 이쪽으로 오나?!"
"당연히 창피하니까 그렇지! 죄인은 오라나 받아라!"
이거 놀랍구만! 하고 비명처럼 소리치며 물러나는 츠루마루를 카슈가 칼을 휘두르며 쫒아간다. 일단 칼집에서 뽑아들지는 않은 것을 확인하면서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 지 몰라 뛰어다니는 둘을 멍하니 보았더니,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츠루마루를 쫒아가버린 카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를 향해서 다가온 쇼쿠다이키리가 씁쓸하게 웃고는 '괜찮아?' 라고 묻기에 정신이 들었다.
"저 둘이라면 걱정할 것 없어. 어쨌든 사이는 좋으니까"
"어, 어째서 셋 다 거기에....."
"아니..................츠루상한테 말려들었다고 할까, 흐름이 그랬다고 할까, 좀......"
"어이, 나는 이제 간다"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피하는 쇼쿠다이키리 옆에서 오오쿠리카라가 불쾌한 듯 말했다. 어떤 흐름을 타고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억지로 함께 있었던 듯 명백하게 본의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카슈와 함께 츠루마루가 달려가버린 방향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두통을 억누르듯이 이마에 손을 가볍게 올리고 오오쿠리카라가 등을 돌린다. 그리고 재빨리 떠나버렸다. 그 등을 따라서 처음에 해산했을 때처럼 쇼쿠다이키리가 걸음을 돌려 따라간다. 떠나기 전에 반쯤 몸을 이쪽으로 돌려서, 쓴웃음을 지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도. 나중에 또 봐, 아루지"
내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폭풍처럼 지나가버린 일행을 보면서, 나는 멍하니 움직이지 못했다. 드디어 충격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미 낯익은 모습이 아무도 없었고, 그저 유려한 햇살을 받는 한적한 세계에 홀로 남아 있었다. 대체 뭐였던 거지. 고개를 기울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문득 깨달았다.
"..........당고, 남았네"
지금 앉아 있는 널찍하고 긴 의자에는 텅 빈 내 찻잔과,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남은 카슈의 찻잔, 그리고 아무도 손대지 않은 당고가 두 개 남았다. 엄청난 양은 아니어서 혼자서도 처리할 수는 있지만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애초에 먹는 것에는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가볍게 한숨을 쉰 다음 당고에 손을 가져간다. 그 때, 갑자기, 머리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카슈가 돌아왔다고 생각해 고개를 든 내 눈에 뛰어들어 온 것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 중 그 누구도 아니었다. 예상 밖의 존재에 눈을 깜빡인다.
다른 도검들처럼, 아까 전에 헤어졌던 하세베가 무표정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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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려들어갈 것 같은 빛깔의 보라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채, 시간이 멎어 있다가 하세베가 먼저 움직였다. 거기에 헉 하며 반사적으로 그의 의상에 길게 뻗은 스토라 자락을 잡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마주 보고 있던 하세베의 눈이 약간 커지고,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당황해 손을 놓았다. 그대로 묘하게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을 즈음, 입을 다물고 있던 하세베가 시선을 맞추듯이 자세를 조금 낮췄다.
"--------죄송합니다. 혼자 계시는 아루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렇게 곁으로 오고 말았습니다"
마치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흰 장갑을 낀 손을 한 쪽 가슴에 대고 친근하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곤혹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을 솔직하게 얼굴에 드러내는 것이 꺼려져, 눈만 깜빡이던 나는 앉은 채로 하세베를 올려다보았다.
일단은 서서 이야기하기도 그러니까, 하며 옆에 앉으라고 권하니 하세베는 얌전히 따랐다.
방금 전가지 카슈가 앉아 있었던 자리에 이번에는 하세베가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쩐지 기묘한 감각에 빠지면서, 아까 카슈 때와 같은 긴장을 느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거리를 띄우고 바른 자세로 등을 꼿꼿이 세운 채, 긴 다리를 예의바르게 모아 앉아 있는 하세베는 시선이 마주치면 빙긋 웃어 준다. 나와 얼굴을 마주했을 때 하세베의 대응 치고는 평소보다 적극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 자체는 그렇게까지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더라고 그가 볼일도 없이 스스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세베는 새로운 주인으로서 나를 정중하게 대한다. 하지만 결코 사적으로 얽히려 하지는 않는다. 대화조차도, 나와 그는 거의 주인과 가신의 입장에서 나누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볼일이 있나 하고 말을 꺼내기 쉽도록 잠시 별로 내용 없는 대화를 이어가며 기다려 봤지만, 그럴 기색이 전혀 없다. 어떻게든 미소를 유지하면서도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이미 텅 빈 찻잔에 무의미하게 입을 댔다. 그러다 문득, 하세베 몫의 차가 없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일어났다.
"앗, 하세베 것도 받아 올게"
"아니오, 괜찮습니다"
빠르게 제지당하고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 하세베 옆에 놓인 찻잔에는 내 것과는 다르게 차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 카슈가 마시던 것에 하세베가 입을 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본인에게 거절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차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나는 그 대신 남아 있는 당고를 가리켰다.
"그럼 이거 하나 줄 테니까, 먹어줘"
"아니오, 부디 저는 신경쓰시지 마시고....."
"아니 정말로 사양하지 마. 사실은 곤란하던 참이거든"
나를 도와 준다고 생각하고, 하면서 다시 권하는 말이 효과적이었는지, 아니면 내 표정이 정말 곤란해하고 있었는지, 하세베는 다시 무어라고 말하려다가 삼키는 것 같았다. 그 대신 잘 먹겠습니다, 하고 예의바르게 인사한 뒤에 정중하게 꼬치 한 개를 손에 들었다. 흰 장갑을 끼고도 늘씬한 거 손가락이 당고를 입가로 가져가는 것을 보고 나도 남은 하나를 손에 들었다.
"카슈 키요미츠는 어땠습니까"
하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입 안에 넣은 당고가 목에 걸릴 뻔 했다. 별로 충격적인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너무나 맥락이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입 안에 든 것을 삼킨 다음에 말했다.
"어땠냐니......"
대체 무슨 의도에서 나온 질문일까.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망설임이 드러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세베는 동요하지 않고, 아름다운 작법으로 당고 꼬치를 쥐면서 내 곤혹은 조금도 개의치않는 모습으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눈만 동그랗게 떴다.
"그 칼은 불안정하니까요. 언젠가 그 감정의 흔들림 때문에 주인께 이를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주명이라고 하신다면, 제가 먼저 손을 써도 상관없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정도로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말하는 내용은 날씨 화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이었고, 가볍게 입에 담을 만한 것이 아니다. 너무나 놀란 탓에 당고 꼬치를 떨어트렸고,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버린 당고를 하세베가 주웠다. 이건 이제 먹을 수 없겠군요, 하고 중얼거리며 빈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하세베의 얼굴을 응시하는 나를 눈치채고, 하세베도 나를 본다. 그 눈 한가운데에 내 얼굴이 비치고, 그 한순간 하세베의 눈 속에 희미하게 스친 냉철함을 본 순간, 나는 어쩐지 기묘하게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세베"
"예"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그 눈이 순수하게 나를 본다. 재미있어하는 것도, 흥미있어 하는 것도, 또는 나를 시험하려는 의도도 없이, 유리구슬처럼 조용한 눈. 그 눈 안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주 어렴풋한 감정을 드러내는 명확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비슷한 것을 꼽자면 아마도 '기대'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조차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았다. 하세베는 말없이 내 말을 기다리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해답처럼 보였다.
"나한테는, 카슈보다 네 쪽이 더 불안정하게 보여"
하세베의 눈이 약간 커졌다.
야겐의 몸을 걱정하던 하세베의 모습을 훔쳐봤던 것이 바로 저번 일이다. 요령은 없지만 함께 지내 온 동료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던 하세베의 그 모습은, 아마 그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그런 그가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동료인 카슈에게 손을 대겠다는 발언을 간단히 하는 데 위화감을 느낀다. 하세베가 그런 말까지 꺼내고 말 정도로 최근 카슈가 거칠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하세베의 근본이 좀 더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면으로 하세베의 얼굴을 본다. 그는 드물게도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동요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무어라고 이유를 붙이며 도망다녀 온 것을 눈 앞에 들이댄 듯한, 자신의 상처를 헤집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욱신거리고 고통을 주장하는 그 경종같은 것을, 나는 지금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빼낼 수 없을 만큼 깊게 박힌다고 해도, 억지로 뽑으려고 하면 오히려 피가 나듯이. 그러니 나는 거의 자해 행위처럼,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듯이 절망과도 비슷한 빛깔을 품은 하세베에게 손을 뻗었다.
"...."
"아............."
하지만 그 손은 하세베가 날카롭게 쳐내버렸다. 무심결에 목소리를 흘리고 만 것은 내가 아니라 하세베다. 그는 자신이 손을 얻어맞았다는 표정으로, 자기 손을 봤다가 나를 보았다. 그가 혼란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이해한 나는 다시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 장갑 낀 손을 살며시 만지니, 하세베는 움찔 놀랐지만 억지로 참아 이번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상처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조금 상처받았다. 그래도 할퀸 상처같은 그것을 곧바로 내 가슴 속 안쪽에 밀어 넣고, 나는 뻗은 손을 되돌린 다음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산책 좀 할까"
좁은 길에서는 나란히 걸을 수 없다.
그것이 지금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을 딱 좋은 변명인 것 같았다. 서로에게 조금 거리를 띄우고 걷고 있는 곳은 돌로 빼곡히 포장된 좁은 길이다. 부지 안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식 정원은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풀 속 깊은 곳까지 꼼꼼한 손길로 정비되어 있다. 길을 둘러싼 수풀은 내 키보다 크고, 커다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 아래로 시선을 돌리면 수선화가 조용히 피어 있어서, 엉망진창인 계절감과 함께 새삼스럽게 이곳에 있는 것이 날씨조차도 모두 인공물이라는 것을 느낀다. 유지에 드는 비용 문제로 정원에 있는 초목은 영력을 매개로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애초에 이 공간 모두가 가짜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 것은, 되도록 등 뒤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몇 번인가 등 뒤에서 걷는 하세베가 앞서 걷는 내 얼굴을 살피려고 했던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시선이 마주치면 이 어색한 침묵이 한층 더 깊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핑계로 나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시선이 교차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봄 햇살을 가로막는 우거진 나무들이 천장처럼 머리 위를 뒤덮고 있다. 어두컴컴한 숲 속을 말없이 걸었다. 그리고 나서야 도착한 정원 안쪽 깊은 곳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무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엷은 빛에서, 갑자기 뻥 뚫린 장소로 나온 탓에 강렬한 빛이 순간 온 시야를 뒤덮었다.
빛에 익숙해진 눈으로 처음 본 것은, 바람에 실려 눈 앞으로 떠밀려 온 꽃잎이었다.
눈 앞에는 나이가 몇백 살이나 될 법한 풍채를 가진, 장엄한 벚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 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한, 뿌리내린 생명의 강인함마저 느끼게 하는 거대한 줄기 끝은 무수한 가지로 나뉘어 아낌없이 꽃잎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오늘은, 일단 꽃구경도 겸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아는 한, 이 본부 안에서 벚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여기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있어서 좀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 내가 아직 본부에 살던 시절, 때때로 불쑥 없어지던 카센은 찾으러 다녀 보면 거의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카센이 없어지는 것은, 대부분 그가 기분이 나쁘거나 무언가 짜증나는 일이 있었을 때였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서 카센을 찾아낼 때 즈음에는 항상 조금 기분이 나아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세베에게도 해당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냥 데리고 와버렸다. 이 벚꽃은 나에게 있어 아름다운 것의 대명사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던 카센의 모습이, 이 위에서 춤추며 내려오는 엷은 꽃잎이, 먼 옛날 내 망막에 새겨져버려서 지금도 더욱 선명하게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 때, 내가 예전 이 자리에서 얻어 인생의 기반으로 삼은 충격을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이 타인에게도 똑같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눈에 어느 날 무엇보다 아름답게 비쳤던 이 장소의 풍경을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먼 옛날의 광경이 눈 앞에 되살아나, 순간적으로 향수에 잠기는 기분이 들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뒤돌아서 본 하세베는 멍하니 벚꽃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나를 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은 곧 다른 곳으로 흘렀다. 어딘가 굳은 듯이 보이는 옆얼굴은 망설이는 것 같은 빛깔과, 그 이상으로 강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강하고, 고집스러운 무언가.
"카슈가 있지, 나한테 특별한 건 카센이라고 그랬어"
방금 전 카슈와 나눴던 말을 머릿속에서 곱씹으면서 말한 나에게, 하세베가 주의를 기울이는 기색이 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없이 그 뒤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나는 한 박자 텀을 두고 웃었다.
"하세베도 그렇게 생각해?"
".............질문하시는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세베는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처음 나에게 보여준 엷은 미소가 입가에 없는 것은, 아마 그에게도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주 선 내가 미소를 띄우는 것 밖에 눈 앞의 상황에서 도망칠 방법이 없는 것처럼. 나에게 미소란 방어를 위한 가면이지만, 아마 하세베에게는 공격의 수단이다. 서로의 행동을 살피며 무슨 말을 할 지 철저하게 방어해야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참 요령도 없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매우 성실한 칼일 것이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난점일 정도로, 성실한 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 모르겠어. 아니, 카센이 특별하다는 건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어. 나는 카센과 처음 만났을 때까지, 타인에게 집착해본 적이 없었거든. 명확하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처음부터 관심의 범주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 타인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 내가 어떻다고 생각할 권리도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내가 띄우고 있는 미소가 평소처럼 잘 만들어져 있는지 불안했다. 내어놓는 목소리는 매끄럽고 유창했지만, 음색은 표정과는 다르게 감정이 모두 떨어져나갔다는 듯 담담하게 울렸다. 동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 때 내 마음 속에 스스로 흙발로 쳐들어가 모두 파헤치려고 했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던 것은 나 자신도 몰랐기 때문이다. 카슈의 말에 경악해 충격을 받은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사실이 눈 앞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 주위 인간이란 나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 특별하다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감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속삭이는 망령처럼, 나를 조금씩 저주해 죽이는 무언가일 뿐이었다. 나에게 있어 카센 외에는 모두가 적이었다. 그래서 카센이 특별하다기보다는, 내 세계에는 카센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지금 나한테는 카센 뿐 아니라, 너희들도 있어. 너희들은 이전에는 어쨌든 지금은 내 거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생각해. 너희는, 나에게 있어 카센 외에 처음으로 내 세계에 생긴 존재니까. 나는 너희에게 관심이 있어. 너희를 좀 더 알고 싶고, 사랑한다고 생각해. 카슈 말대로, 나에게 있어 카센은 특별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카센이 그렇다면, 너희도 그럴 거야"
나의 부드러운 곳을 하나하나 파헤치고 드러난 속마음을 토해내는 듯한 행위는, 거의 자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말했던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해 관계가 아니라, 내 마음이 눈을 돌리면 안 된다고 고통스럽게 호소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분에 넘치도록 끌어안은 것을 어느 것 하나 떨어트리기 싫다고 떼를 쓰며 우는 어린애같은 정신인 채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 그런 나를 모르는 하세베는, 그런 나의 본성을 꿰뚫어보았을 것이다. 나중이 되어서야 이해했다. 이 때 하세베가 전부 다 옳았다는 것을. 그의 지적이, 말이, 그의 감정이 흔들림에 따라 냉정함을 잃기는 했어도, 그래도 나보다는 훨씬,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당신은 모르시는군요. 당신께서 카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착각입니다. 당신이 모르실 뿐"
씁쓸하게 시선을 돌린 하세베는, 짜증과 혐오와 절망같은 것이 뒤섞인 격한 감정을 담아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은 메말라 있었을 텐데도 금방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 같은 소년이 떠오른 것은, 어째서였을까.
"줄곧 당신의 '특별' 이지 않은 다른 것을, 세계에서 내쫒아 왔기 때문에 모르실 뿐입니다. '특별' 에 우열을 매긴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실 뿐입니다. 우리와 카센이 당신의 마음 속에서 똑같은 위치에 있다니, 그럴 리가 없죠. 우리는 본래 당신의 칼도 아니었는데----"
나는 하세베가 말하는 동안 떠밀리듯이 귀를 기울였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알아차렸을 때에는, 결코 말해서는 안 되는, 내가 저 안쪽 깊숙한 곳에 엄중하게 자물쇠를 걸어 미소라는 벽을 치고 필사적으로 지켜 온 별 볼 일 없는 긍지가, 빈틈을 타고 입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원래, 너희들을 현현시킨 다른 주인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울 것처럼 일그러져 있던 것은, 분명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때, 확실히 웃고 있었다.
"그런가, 그렇구나. 너희는, 너희에게는, 전임 사니와님이 '특별' 했던 거구나. 그러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네. 나랑 이전 주인을 비교하고, 너희에게 '특별' 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니까"
하세베의 얼굴에 눈에 띄게 경악이 스민다. 그리고 순식간에 핏기를 잃어버리고 얼어붙었다. 나는 내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 칼날처럼 상대를 베어내는 것을 보고 말았다. 마치 다정하게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것처럼 부드럽게, 상대의 급소를 찌르고 있었다. 나는 심한 짓을 했다. 아직 흉터조차 되지 못한 남의 상처 위에 앉은 딱지를, 억지로 벗겨내 소금을 뿌렸다. 나는 심한 짓을 했다. 나랑 똑같이 상대도 상처받았으면 좋겠다는 폭력적인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내 것이 아닌, 내 것이 되어 주지 않는 것을 눈 앞에 두고, 나는 비탄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슬펐다. 괴로웠다. 어린애가 떼를 쓰는 것처럼 화가 났다. 내 것이 아니라면, 아예 상처를 입혀서 내가 낸 그 상처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고양감과 비슷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뒤에 남은 것은, 씁쓸하고, 쓸쓸하고, 견디기 힘든 후회 뿐이었다. 너덜너덜해진 가면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끼고, 나는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고는 그저 비참하게 속삭였다.
".................미안해. 나, 나......... 나는, 너희가 믿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애정을 표시하던 상대에게 부정당해, 나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이 갈 곳을 잃은 채 맴돌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사랑에 우열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눈을 돌려 봤자,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본의 아니게 드러난 순간, 상처받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손톱만큼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를 믿고 있지도 않았다. 누구보다도 사랑을 갈망하면서,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것을 바라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타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인간인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안고 있던 나의 죄가 또 하나, 눈 앞에서 늘어난다. 그 모습을, 가슴에 십자를 새기면서 벌을 받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저는, 이 몸을 얻었을 때, 이번 대의 주인을 마지막으로 섬길 주인으로 여기고 생애를 다할 각오를 했습니다"
하세베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손이 희어지도록 주먹을 쥐고, 격정이 그대로 입을 통해 튀어나오기 직전 이성으로 틀어막고 있는 듯한, 위험한 균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마주 보는 거울처럼, 자신이 상처입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상대를 상처입히고 있다는 것을, 둘 다 알면서도 치켜올린 나이프로 눈 앞에서 새로운 상처를 새기고 있었다. 하세베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조하는 듯이 입끝을 끌어올리고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이 몸은 부러지기 쉬우며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주인이 바뀔 일은 없을 거라고. 대를 이어 물려내려갈 일도, 주인을 먼저 보내는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짧지요. 변할 틈도 없을 거라고. 그러나 주인은 죽었고, 저는 당신의 것이 되었습니다"
아아, 괴로웠겠지. 힘들었겠지. 불만이 컸을 것이다. 현세에 불려 내려와 그 생의 마지막을 바칠 주인을 정하고, 생애를 다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도 먼저 떠나버리고,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한 사이에 감정도 사정도 도구처럼 무시당하고, 다른 인간을 주인이라고 불러야 했다. 무엇을 위해 인간의 몸을 얻었는가. 무엇을 위해 불려내려왔는가. 스스로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을 주고, 단순한 도구가 아닌 존재로 만든 것은 인간인데, 그 의미를 준 존재를 빼앗긴다. 아아, 알다마다. 나는 절절하게 그 비애를 알고 있다. 나도 나를 인간으로 만든 존재에게 버림받으면 분명 살아갈 수 없다. 그저 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손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잃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주인이 저를 원하는 한, 그에 응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바람을 알아차릴 때 까지는"
하세베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것처럼 작아졌다. 나의 바람. 그 말이 뇌에 도달한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내 귀를 막고 웅크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라는 존재가 전부 없어져버리기를 바랐다. 없어지고 싶다. 없어지고 싶다. 없어지고 싶다! 나 같은 존재는, 나 같은 존재의 괴로움을 늘리는 것 뿐이라는 걸 알면서, 그러면서도 나는 왜 아직 후안무치하게 이 생을 살고 있는가. 그것은 강렬한 수치였다. 과거의 인생에서 경험한 실패나, 확실하게 나에게 잘못이 있는 일을 들이댄 것 같은, 그런 종류의 격한 자기혐오였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바람이 뭔지, 그런 것은 사무치도록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소멸하기를 바라도 내 몸이 기적처럼 흩어지는 일도 없었으며, 내가 실제로 웅크리고 귀를 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마도 색을 잃은 얼굴로, 잎사귀를 잃은 알몸의 겨울 나무처럼 거기에 가만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목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께서는, 우리들 도검같은 것은 사실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도검남사여도, 사람이어도, 신이어도, 아니면 괴물이라고 해도, 당신께는 그런 것은 별 일이 아닐 겁니다. 당신은 우리를 칼로밖에 보지 않으니까요. 아니오, 사실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실 겁니다. 당신께서 보시는 것은 항상, 자신의 '것' 뿐입니다"
"그만......미안해.......미안해............."
"당신은, 우리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입맛에 맞는 장난감이 가지고 싶으신 겁니다"
하세베의 작은 목소리는 조용하고 메말라 있었다.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없었다. 마치 찔리기라도 한 듯 한걸음씩 물러난다. 더 이상 파고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나는 이미 내가 가장 수치스러워해야 할 곳을 더 파낼 것도 없을 만큼 모조리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의 바람. 나의 기도. 살아 있는 의미.
나만의 것을 원했다.
나를 사랑해 줄 것을 원했다.
내가 사랑해도 되는 것을 원했다.
나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나는 타인의 의사를 가볍게 여기고, 희생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얄팍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정말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바로 지금까지 속박해 왔던 소중한 존재의, 엷은 벚꽃잎 속 풍경이 머릿속에 되살아나서. 그래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미안.....미안해......."
덜덜 떨면서 스스로의 몸을 끌어안듯이 팔을 두르고, 점점 몸이 웅크러들었다.
이 추악한 감정을 피와 살로 만들어 몸 전체에 돌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나를, 세계에서 지우듯이. 나는 지금 이 순간 수치스러운 내 존재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세베의 시선이 나를 꿰뚫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피부에 깊이 박혀 뽑히지 않을 시선을 나에게 던지며, 똑같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로, 하지만 마지막 일격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아니어도, 당신께서는 괜찮으시죠?"
당신의 것이라면 누구라도.
처음부터 특별했던 카센 외에는, 누구든지.
혹시 목소리에도 빛깔이 있었다면 그 속삭임은 깃털처럼 부드럽고, 칼날처럼 예리하고, 피를 토하는 색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분명. 하세베는 나를 잘 관찰하고 있었다.
아마도 남들보다 더 섬세하고, 상처받기 쉽고, 성실하며 정이 깊은 곳이 있는 이 칼은 다른 도검들과는 다르게 나에게 악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말을 잘 듣는 충견처럼, 얌전한 충신처럼,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의, 내가 숨기고 있는 나를 철저하게 드러내려 하는 그 예리한 눈이, 결코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게 아니면서도 순종적으로 말을 잘 듣는 모습이, 그러면서도 나를 주인이라며 존중하며 배려하는 모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하고 무섭게 보였기 때문이다.그리고 내가 눈을 돌렸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나를 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알았다는 말일까. 이 흉측한 나의, 본심을.
폭로당하고, 전시당하고, 규탄당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뚝 부러질 것 같았던 다리는 아직 땅을 밟고 있었다. 공황에 빠질 뻔 했던 머릿속이 갑자기 전원이 꺼진듯이 생각하기를 멈췄다.
기묘할 정도로 정적이 흐르는 침묵 속에서, 나는 평정을 찾고 있었다. 적어도 그런 착각을 할 정도로는 떨림도 멎었고, 표정이 잘 움직였고, 혀가 더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 잇었다. 마음은 그 내용물을 전부 다 긁어다 버린 것처럼 가벼운 텅 빈 구멍이고, 바람에 실려 그대로 어딘가로 날아가버릴 정도였는데, 몸은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듯이 땅에서 움직이지 않고 발을 붙이고 있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자각시키는 것 같아서, 나는 거의 달관에 가까운 감각을 어딘가 먼 곳에서 생각하면서, 사과하는 뜻을 담아 웃었다. 하지만 평소대로 웃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는, 잘못이 없어"
그래도.
"내가, 잘못했네"
그래.
네가 모든 일의 원흉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세베의 강한 눈빛이 나를 꿰둟는다. 그의 마음 속 고통이 전해져 오는 듯한, 조금 울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이 무엇을 호소하는지, 무엇을 나타내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저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 빠직 빠직 하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미소를 유지하는 게 고작이어서,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기력이 없었다.
굳게 다문 입술을 파르르 희미하게 떨던 하세베는, 결국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정신을 차려 보니 없어져 있었다.
<#12 END>
시발 사니쟝 행복하라고...
봐도봐도 갓글이야 감사합니다 아루지
아루지 나좀 봐줘 빼액인데 사니와가 움츠러들고 다 내탓이야맨인 바람에 그만..
일녀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