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하고 과거의 기억이 한꺼번에 흘러들어온다. 10년 전.
내가 10살이 되었을 때. 높이 치켜든 칼의 날카로운 빛과 잘려나간 내 발.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던 둥그렇고 흰 발끝. 신기관과 본부의 사이에 골이 깊어진 결정적인 원인인, 그 사건.
몸 안족의 장기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한기를 동반한 고통에 사로잡혔다. 얻어맞아 의식을 잃었을 때의 둔한 통증이 되살아난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얕은 호흡을 반복하면서, 나는 메마른 목으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멍한 내 목소리를 차가운 눈을 한 소년이 주웠다.
"10년 전.........그, 사건......?"
"그래요. 신기관 안에서 부르던 당신의 별칭을 따 이름붙인, 10년 전 '미카게의 아이 사건'. 당신을 떠받들어 신기관의 권력을 확대시키려 했던 일부가, 당시 사니와계 한쪽 구석에서 몰래 전해지던 '인신공양' 의식을 사용해 일으킨, 당시 10살이었던 아동 살상 미수 사건. 그렇죠, 미카게 님"
그것은 조용한 목소리였다. 깊은 늪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어두운 눈매였다. 그는 나를 보고 있다. 자신의 칼도 보잘것 없는 긍지도 빼앗기고, 바닥을 기면서, 눈물을 흘리고 힘없이 고개만 들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다. 자신이 낸 상처 자국을 덧그리듯이, 가만히 쓰다듬어보듯이, 흔들리는 불꽃같은 증오를 가지고 조금도 웃고 있지 않은 눈으로 천천히 웃었다.
"그 사건 때, 당신을 마중하러 갔던 아이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번개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눈이 극한까지 커지고, 그 소년을 보았다.
순수한 놀라움 때문에 커진 눈가에 달려 있던 물방울이 떨어졌다.
내가 한쪽 발을 잃은 10년 전의 그 사건.
'할아버님께서 기다리세요' 하고 내게 말을 건 것은, 아직 7살 혹은 8살 정도로 보이는 또랑또랑한 소녀였다.
신기관에 소속된 가문 중에서도, 명가로 손에 꼽는 가문의 아이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묶여 있는 일이 많다. 가문에 따라서 다르게 전해지기도 한다는 그러한 인습이나 풍습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나도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신기관의 아이는, 종종 그 유소년기에 반대쪽 성별의 옷을 입혀 키운다.
그것은 성별의 경계를 일부러 애매하게 만들어 아이를 재액에서부터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고, 음과 양의 성질을 혼동시켜서 영력 소양을 높이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신기관의 풍습 중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은, 취임 의식 같은 곳에서도 그 편린을 찾아볼 수 있는 가치관이었다. 그 때의 소녀가 소년이었다고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7, 8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순조롭게 나이를 먹었다면, 지금쯤은, 그렇다.
딱 눈 앞에 있는 소년 정도일 것이다.
"그 때, 그 아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작게 새어나온 목소리에, 소녀의 모습을 한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서 부족했던 퍼즐 조각이 들어맞는 것을 무자비하게 바라보는 그 눈은, 형형한 어두운 빛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말없는 긍정이며 대답이었다.
숨 쉬는 소리도 들릴 법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인형같은 동작으로,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붙인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방금 전까지 연기하던 소름이 돋도록 달콤하고 부드러운 소녀의 목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나왔다. 치밀어오르는 어린애같은 웃음소리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10년.
10년, 지났네요.
오랜 세월이었어요. 이 날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당신을 하루도 잊어버린 적이 없었거든요. 이 날을 위해서, 신에게 기도하는 신자처럼, 어머니에게 손을 뻗는 아기처럼, 매일매일, 그저 일편단심으로, 신선한 마음으로 계속 저주를 걸었어요. 당신을. 당신을 저주하며 이 10년간, 이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증오와 굴욕과 원한을 양분 삼아, 오늘날까지 살아 왔습니다.
"사실은 조금 더 빨리 이 원한을 해소할 생각이었죠. 실제로 지긋지긋한 본부의 눈을 어떻게든 속여, 당신이 정식 사니와로 취임하는 18살이 되기 2, 3년 정도 전부터 수많은 선물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기억하시나요? 당신의 옷에 독을 바른 바늘을 찔러 둔 것도, 피를 바른 부적을 보낸 것도, 당신의 물건을 숨겨서 버리거나 주술에 사용하거나 한 것도, 전부 다 제가 한 짓이었어요. 그런 애들 장난같은 짓은 어차피 괴롭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어린애였던 저에게는 그 정도가 고작이었거든요"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던 의문들이 급속하게 제 모습을 찾아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과거의 괴롭힘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나는 그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과거의 나에게 있어서도, 지금에 이르른 나에게 있어서도, 그리 크게 신경쓸만한 일이 아닌 사소한 일이었다. 보낸 이의 성격도 나이도 목적도 의도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나는 그것을 한 번도 의식했던 적이 없었다. 기분나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어째서 그런식으로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당연한 의문조차 품지 않고, 그저 생각을 멈춘 채 아무렇게나 날아들어오는 악의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명백하게 나의 죄였다. 내 손 안에 있는 것 외에는 일절 눈길도 주지 않고, 정도 품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는, 이기적이고 마음이 없는 나의 인간성이 놓친 업이었다. 과거의 내가 그저 스스로가 살아가기 위해서만 쌓아올린 뒤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버려 온 것이, 지금 이 때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 나를 향한 벌이었을 것이다.
"바늘을 꽂아넣고, 물건을 숨기고, 원한을 날리고, 그렇게 주술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주술을 반복하면서, 당신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까 하고 그것만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이름을 빼앗아 간접적으로 저주하려 해도, 당신에게는 숨겨둔 이름은 커녕 애초부터 이름 자체가 없었죠. 그렇다면 제가 직접 해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 성장해 나가면서 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지만, 괴롭힘 이상의 행동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기 전에 당신은 사니와가 되어 혼마루라는 폐쇄 공간으로 도망쳤지 뭡니까. 그렇게 되고 나니 본부의 눈을 피해 외부의 인간이 접촉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그야말로 이러한 공적인 대연련 때 정도밖에 없었어요. 당신은 자기 혼마루에서 좀처럼 나오는 법이 없었으니까, 더 그랬죠. 그래서 오늘은 제가 오랜 숙원을 다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어요"
황홀해하는 표정으로, 목덜미를 나이프로 긁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장본인의 분위기와 똑같이 , 그 어조는 아까부터 고정되지 않고 소년과 소녀 사이를 오가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뭐라고 끼어들 수 없는 위험한 분위기를 가진, 우스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품에는 내 카센을 여전히 끌어안은 채, 소년은 더 시원하고 밝게 소리쳤다. 마치 그것이 매우 기쁜 일이라는 것처럼.
"미카게 님. 저는 이제 18살이 되었습니다"
꿈꾸는 듯한 말투로,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소녀처럼 순수하게 소년이 속삭였다.
그 눈은 나를 똑바로 쏘아보면서도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나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처럼, 거기에 매달리는 것처럼, 세계의 축복을 받겠다는 듯 팔을 벌린 소년의 손에 들린 칼을, 그저 보고 있었다.
"그래요, 영력이, 발현했다는 말이에요"
사니와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18살 때 결정된다.
그것은 유서깊은 신기관 내부 혈족의 인간이라 해도, 츠쿠모가미에 대한 것은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이라도, 모두 평등하게 나타나는 현실이었다.
재능도 아니다. 피도 아니다. 환경도 아니다. 영혼이 아닐까 하는 말들은 하지만, 그렇다면 혼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대대로 신기관에 소속되어 온 가문들에는, 비교적 영력이 많이 발현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도 연구자들의 입을 빌리면 특필할 정도로 현저한 특징은 아니라고 한다. 원래 사니와를 생업으로 삼는 일족은, 영력이 발현된 일반인을 양자로 받아들여 일족에 편입시키는 일도 많으며, 그 긍지와 자부심 때문에 영력이 발현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사니와가 되기에는 부족한 정도의 아이까지 사니와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니와가 될 사람을 고르는는 것이, 과연 신의 선택인지 우연의 산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자비하고 잔혹하고 균등하고 평등하게, 본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아무런 작위도 없이 사니와가 될 영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기관의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18살 때까지 기도하듯이 지낸다고 한다. 그리고 사니와로서의 힘이 발현되면, 일족의 명예라며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죠, 나는 평생 사니와가 될 수 없다고 하지 뭐에요"
기쁨으로 튀어오르던 목소리가, 갑자기 소름이 돋도록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무언가 저항하기 힘든 힘이 억지로 작용하는 것처럼, 나는 떨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년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만 번은 죽인 것 같은 강한 눈매로 나를 보면서, 소름이 돋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고 머릿속에 이해가 스며들었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까지 이 소년에게 원한을 샀는지, 그 이유가 그의 말 속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었다.
나는 이 때가 되어서야 그의 증오를 모두 이해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나 나를 비참하게 짓밟기를 바라고, 상처입히고 싶다고 기도하고, 원망하며 살아왔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사실은 눈 앞에 있는 인물이 그 2의 사니와의 손자를 자처했던 때부터, 알고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정중하게 원한과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범행을 고백하고 나서야 내 가슴 속에 실감과 함께 떨어진 것은, 눈 앞에 선 인물이 스스로를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카센을 빼앗겼다는 일이 그만큼 나를 동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설령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도 남을 원망할 수 있는 생물이다. 사람은 항상 감정에 따라 남을 원망하고, 남을 증오한다. 원한이나 증오는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에 따라 사람을 안쪽에서부터 잡아먹는다. 하지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인간을 원망하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인간을 원망하는 것이, 그 증오가 선명해지고 본인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는 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은 밉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밉다면, 한 번 본 뒤에는 그것이 자신과 같은 세계에 살아있다는 것조차 용서할 수 없다는 격정을 누구나가 쉽게 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에 있는 인물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처럼, 처음부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아온 인간에게는 없는 열정. 본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소년은, 나처럼 달관을 익히고 포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그 저주는, 세월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고, 그 젊음을 빌려 순수하도록 올곧았으며, 오늘까지 사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그를 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원망한다는, 그 증오 하나가.
나도 분명 알고 있었다.
그 시건 이후로, 그 사건에 관계되었다고 의심받은 관계자는 모두 본부가 개입해 예외없이 엄격한 처분을 내렸다.
선도해 사건을 일으킨 파벌에 소속된 주요 일족 대부분은, 본부에 대한 발언권 뿐 아니라 신기관 내부 정치에 대한 개입권도 사라졌다고 들었다. 그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사니와에 종사하는 자를 제외하고, 사건에 관계된 일족의 인간은 이후로 무기한 사니와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례적인 숙청이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본보기였을 것이다. 신기관의 조력을 얻어 정부 아래에서 역사수정주의자 대책본부가 발족된 이래로, 권세를 자랑하던 신기관 세력은 그 건을 계기로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사니와 후보를, 그것도 유소년기부터 교육을 받으며 영력이 발현되면 우수한 소양을 가지게 될 후보들을 배제하게 된다 하더라도, 본부는 낡은 인습에 사로잡힌 신기관 세력을 깎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신기관의 아이는 언젠가 영력이 발현될 거라고 유소년기 때부터 기대를 받고,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자란다.
특히 명가들 사이에서는 그 중압이 대단히 무겁다고 한다. 그야말로 사니와가 되지 못하면 일족에서 배제되는 가문도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진실은 모르지만, 신기관에 소속된 오래된 집안에 태어나 영력이 발현되지 않는 아이와, 사니와가 될 수 없는 아이는 그때까지 받아왔던 기대만큼 손가락질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것을 넌지시 느끼고는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사건 이전 신기관 내부에서 필두가 된 이름있는 일족에서 태어나, 장래가 유망한 아이였던 소년. 신기관의 권력을 몰락시켰다며 다른 파벌 사람들로부터 경원시되고, 그 때까지 지냈던 환경과는 정 반대의 상황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라바지않던 대망의 영력이 발현되어도, 그는 처음부터 사니와가 될 길이 없었다. 그런 아이의 어떻게 할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어디로 갈 지, 상상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 사건만 없었다면. 그건 어린 아이의 마음 속에서 '미카게의 아이' 라고 불리던 아이만 없었다면, 하는 사고로 전환된다. 거기다 그에게는 그런 생각을 바로잡아 줄만한 어른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일족은 모두 나를 위해서 몸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나에게 원한을 가진 건가.
"미카게 님. 다름아닌 당신이라면 아시겠죠? 사니와가 되기 위해서, 그것만을 보고 자란 뒤에 그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지"
오히려 다정하게도 들리는 목소리 뒤에, 몇 중으로 억눌러 놓은 감정을 숨기고 소년이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긍정하는 말도 부정하는 말도 목 안쪽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불에 데인 듯이 머릿속에 흐리멍텅했다.
그것 외에 다른 삶은 허락되지 않았는데. 그런 어느 날 갑자기, 미래를 빼앗기는 것은 지금가지 자신이 믿어 온 세계를 모두 부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말대로, 다름아닌 나야말로, 사니와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을 듣는 나야말로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죄를 위해 내가 나를 바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내 카센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설령 그것이 나의 목숨이며, 나의 모든 것이라는 걸 상대가 알고, 그렇기 때문에 그곳을 찔렀다 해도. 나는 나의 목숨보다도, 그리고 내가 망가뜨린 누군가의 인생보다도 나의 칼이 소중했다.
그래서.
"저는 좋을대로 해 주세요. 분명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겠지요"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일까.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최대의 수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몸과 나의 칼만이, 내가 나의 인생에서 가질 수 있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이 세상에 매어두는 몸보다, 나의 마음을 만들어 준 것을 지키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인 이야기였다.
"미카게 님, 나는 당신이 정말 싫어요"
어째선지 목 안쪽에서 숨이 떨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시야에 비친 표정은 미소의 형태로 웃고 있었지만, 왠지 마치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흐지부지한 생각도 곧 뻗어나온 손이 제공한 고통에 사라졌다.
그 뒤로는, 그저 폭력에 의한 유린이었다.
------------------------------------------------------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피같은 저녁 노을에 그림자를 떨어트린 꽃잎은, 불길한 색으로 물들었다.
시선 끝.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꿈처럼 현실미가 없는 경치가 바닥에 쓰러진 내 시야에 비쳤다. 팔을 쭉 뻗은 가지에 달린 꽃잎은 하늘하늘 흔들리다가, 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지면에 떨어진다. 연분홍빛 꽃잎이 땅에 머무르고, 거기에 엷은 어둠과 붉은 햇빛이 닿아 마치 피바다 같았다.
옆으로 쓰러진 얼굴에서 생리적인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뺨을 적셨다.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오열같은 비명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진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간 감각도 머릿속도, 쉬지않고 자극당하는 통각에 의해 이미 마비되어 있었다.
하나 하나, 사랑스러워 하는 것처럼 정중하게 손톱을 뽑아내고.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어 피로 젖은 손가락은, 지금은 힘없이 바닥에 늘어져 있다. 짐승의 단말마 같던 신음소리도 찢어지는 소리도 아닌 소리를 지르던 목은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웠고, 사람의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설령 나의 마음이 완전히 망가져, 한 조각 저항의 의사조차 이 몸에서 빠져나갔다고 해도, 도를 넘어선 고통에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게 되어 있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날뛰는 몸을 봉인하기 위해, 뼈를 부러뜨릴 것처럼 괴롭힘당한 손목의 감각도 이미 없었다. 한쪽 손의 다섯 손가락에 붙은 손톱이 모두 빠질 즈음에는, 몸이 감당하지 못할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비틀어대던 몸통도 근력을 모두 사용해 힘이 빠졌고, 고정되어 있던 손에 멍만이 짙게 남았다.
"뭐가 미카게의 아이야, 뭐가 운명의 아이야, 뭐가 뭐가 뭐가 뭐가 신의 아이야. 실낱같은 힘밖에 없는 여자가 웃기시네. 그렇게 다들 미치게 만든 네가, 바로 네가 죄인이잖아. 왜 우리가,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야. 도대체 왜"
왜일까, 하고 억양 없는 저주를 들으며 한쪽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의미 따위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의 죄가 아닌데도 부조리한 환경에 떨어진 것도, 내가 지금 이렇게 내 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분명 모든 것에 의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 반드시 밤이 오듯이,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듯이. 자연의 섭리처럼 평등하고 무자비하고 잔혹한 불행의 별은 그게 누구의 곁이든 쏟아져내린다.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에게 귀결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깊은 업이라는 말일까. 그러니 분명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의미 따위는 없다. 내가 태어난 것도, 누군가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다. 아아 그래도. 아아. 아아. 내가 잘못한 것일까. 정말로 모든 것이 내 죄이고, 그러니 내가 지금 이렇게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라,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그저 등줄기가 한기에 떨렸고 몸에서 열이 나는 것처럼 그저 뜨겁다고 생각했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나라는 의식이 분리되어서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았고, 눈에 비치는 벚꽃 지는 광경이 환상적이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배를 터트려 버릴까"
억양 없는 목소리가 말한다.
안구를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서 미약한 숨만 흘리고 있으니, 반응이 없는 것을 질책하듯 뺨을 얻어맞았다. 이를 깨물 수도 없었던 입 안이 터졌는지, 쇠 비린 맛이 퍼진다. 얼굴을 맞는 것은 이제 두 번째다. 어떠한 집착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소년은 처음에 뺨을 때린 것 외에 얼굴에는 이렇다 할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어딘가 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억지로 그쪽에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의도를 깨달았다. 동공이 열린 눈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남김없이 관찰하려는 것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짐승처럼 온 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모습에서는, 방금 전까지 의도에서 연기하던 가련함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악의가 형태를 만든 것처럼 희열이 번진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 손톱을 뽑던 소년은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존재 가치는 당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특이성에 있지. 태어나면서부터 영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 힘이, 피나 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 뿐이고 그 뒤로 이어지지 않는 돌연변이인지. 신기관의 늙은이들도 본부의 연구자들도, 누구나가 다 알고싶어하는 그 진실을, 검증도 못하게 뿌리채 뽑아 버리면 얼마나 유쾌할까"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처럼 아주 즐겁게 속삭인 소년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침묵했다. 나는 입을 열려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작게 기침했다. 위에서 토해낼 것은 이미 없었고, 투명한 위액만이 목을 태우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가진 칼이 나에게 휘두를 무기로써 효과적이라는 것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확실히, 아마 내 본래의 가치란, 나의 뱃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니와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한 존재라는 말을 듣기는 해도, 규격 외의 영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특별하게 여길 만큼 사니와로서 우수한 것도 아니다. 그런 나라는 존재에게 주위 사람들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지켜주고, 소꿉놀이처럼 완성된 혼마루나 관위까지 부여한 것은 연구를 위한 일이다. 그러니 그는 내가 그 가치에 어떻게 해서라도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연구 재료를 빼앗아 간다면, 그저 그것만을 위해 살아온 나는 어떻게 되어버릴 지 모른다. 볼일이 없어지고 사니와로서의 가치도 그다지 없는 나는, 혼마루에서 쫒겨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의 비원을 잃게 된다. 만약 내가 없어지면, 혼마루에 남겨두고 온 나의 도검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다가. 그래도, 나는 충동적으로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드디어 신음하듯이 꺼낸 목소리는 꺼끌꺼끌했고, 그대로 불어 날아갈 것처럼 약했다.
"그렇게 해서, 카센을 돌려준다면"
그 순간, 눈 앞의 얼굴에서 표정이 빠져나갔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것처럼 가깝던 얼굴이 천천히 멀어진다. 그대로 올라타 있던 내 몸 위에서 비킨 그는, 등 뒤에 놓아두었던 칼을 손에 쥐고 조용히 나를 보았다. 그 갑작스러우면서 기묘한 변화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불길할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빛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어둠을 연상시키는 눈동자가, 동굴처럼 뻥 뚫려 있었다.
큰일이다, 하고 근거도 없는 예감이 덮쳤다.
"역시 이게, 이것만이, 당신의 아킬레스건이군요"
".........잠, 깐"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지금 무언가 명백하게 좋지 않은 짓을 저질렀다. 상대의 분위기가 변화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가진 애매한 확신이, 확실한 예감이 되어 나를 현실로 끌어들였다. 초조함이 생긴다. 발에 차이고, 손톱을 뽑히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던 때도 품지 않았던 공포가, 내 목을 조인다.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소년의 귀에 확실하게 닿은 모양이었다. 그것을 무시한 그는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칼 끝을 위로 들었다. 입을 굳게 닫고 선 모습은 유령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그 모습과는 반대로 몸 안에는 지금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영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상반신을 일으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 몸에 전율이 흘렀다. 츠루마루 때와는 다르게, 예고하는 듯한 말도 없었고 나를 괴롭히기 위해 가학적인 의사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 망설임 없는 동작에 견디지 못하고 소리없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기다려! 제발, 그것만은, 그것만은 하지 마! 정말, 정말로 그것 말고 다른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뭐든지 할 테니까........제발, 그러지 마세요......"
매달리는 눈빛은 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역효과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것 외에 교섭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내 심장을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에게 애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소년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 몸에 소용돌이치던 영력이, 아직 거칠기는 하지만 사그러들어 작아지는 것을 보면서, 피를 토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뭘 하면 돌려 줄 거야?"
울며 매달리라고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무릎을 꿇고 발을 핥으라고 한대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내 뱃속이 증오스러우면, 도려낸다 해도 상관없었다.
카센을 잃는 것에 비하면, 어떠한 치욕도 고행도 견딜 수 있다. 카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카센이 없는 세계 따위는 생각할 수 없다. 나에게 카센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러기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희생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나의 모든 미래를 바친 것처럼.
하지만 나의 공황을 바라보던 소년은 조용히 입을 열었고, 이번에야말로 내 얼굴에서 완전히 핏기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달이 죽은 밤 같은 어두운 눈동자가 보인다.
그것은 아직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의 아이가 가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증오였다.
사실은 이 소년도 분명,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 되어서야 생각했다.
그래도 이 아이의 눈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나의 업이었다.
분명 모두가 다, 내 탓이다.
"죽어 주세요, 미카게 님"
세계의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는 생각과 함께, 감각을 잃은 뺨에 수정구슬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것만을 잘 기억하고 있다. 눈물은 피와 같다고 들은 적이 있다. 손끝에서 흐르는 핏방울도, 눈에 차올랐다가 굴러떨어지는 눈물도, 모두 내 몸 안에서 생긴 추악함이었다.
"그 칼로, 스스로를 찔러 죽어 주세요. 당신의 무엇보다 소중한 이 칼로 자살한다면,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 때 내가 들은 말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나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 대신이라는 듯이 이것을 보고 있는 내 머릿속에 되살아난 것은, 언젠가 내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가슴 속에서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 어째서 나를, 배신한 거야. ""
혹은 어째서 나는, 이었을지도 모른다.
"망설일 필요는 없겠죠? 나는 이 10년 동안 당신을 잘 관찰해 왔거든요. 당신은 다름아닌 이 칼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잖아요? 처음 당신의 역할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바라봐 준 존재이지 않습니까. 불쌍한 여자. 칼 정도밖에는, 계속 당신 옆에 있을 사람도 없었던 거군요"
말을 잃은 내 머릿속에, 녹아내리듯이 목소리가 침투했다. 그 말의 대부분은 내 가슴 속에서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소리가 되어 울렸지만, 그래도 지금 무엇을 원하는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년의 말이 맞았다.
그래, 나. 나는. 나는. 나는 분명.
"카센이 있어서, 살아올 수 있었어"
살아올 수 있었다,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 말이 맞았다. 아아 하지만. 그래도, 모르겠다. 나는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생각이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의미도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째서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일까. 유일하게 나만을 위해주는 카센이라는 존재를 얻고, 나는 나라는 인간을 획득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사실은 분명 카센과 만나기 이전의 나도, 설령 주위의 누구 하나 '나'를 보아 주지 않았다 해도 거기에 있었을 텐데.
숨이 막힌다. 폐가 불타는 것처럼 뜨겁다. 어라, 이건 어느쪽의 내가 느끼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째서 살아 있는 걸까. 어째서 태어난 걸까. 이 세상에 첫 울음소리를 냈던 것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인간으로, 왜 태어난 것일까. 괴롭다. 울고 싶다. 모르겠다. 카센이 그래도 된다는 말을 해 줄 때까지, 만족스럽게 숨도 쉴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못한 것이다. 아아. 괴롭다. 왜 괴로운지도 모르면서 이렇게나 괴롭다. 살고 싶지 않다. 숨을 쉬는 것이 이렇게나 아프다. 그런데 어째선지,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 죽을 수도 없었다. 그런 나의 죽음을 처음 자각하고, 깊고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것은 실망에 가까웠다. 죽고 싶다면, 살아 있는 것이 괴롭다고 울며 소리칠 거라면, 지금 당장 목을 쥐어뜯어 죽으면 된다. 내가 없어져서 곤란해할 사람이 있어봤자, 이미 죽어버린 나에게는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런데. 아아. 그런데. 나는 겁이 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손에 떨어진 작은 조각의 온기를 알아버린 어렸던 그 날부터, 나는 죽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카센이 없으면, 살아 있을 수도 없는데.
하, 하는 엷은 비웃음 소리가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것은 그야말로 나약한 나 자신을 경멸하는 소리였다.
나는 이 때, 확실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죽는 것이 무서웠다. 이제 두 번 다시 카센을 볼 수 없는 것이.
이런 나의. 이런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어린애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나의 어디가.
"정말, "
어디가, 미카게의 아이라고.
자조하는 듯한 속삭임을 흘리고, 그래도 나는 이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살려 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내일이 올 거라면, 그런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아도 좋다.
아까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카센이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결국 하지 않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네가 도움이 안 된다니, 그런 일은 없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동시에.
그렇게 말하고, 하지만 몸 안에 있는 감정을 잘 부숴내지 못한 것처럼, 대단히 괴로워하며, 어딘가 짜증스럽게, 그래도 진지하게. 카센은 나를 똑바로 보면서 나를 긍정해 주었다. 카센 뿐이었다. 그의 말대로 계속 카센 뿐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줄곧, 나를 알면서도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곁에 있어 준 것은. 그러니 이제 와서 그 마지막 말의 뒷부분을 들어 두었으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에게 뭐라고 말하려 했던 것일까. 그것만이 굉장히 신경쓰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구속되어 있던 탓에 저린 다리를 움직여 기어서 소년과 거리를 좁힌다. 목덜미로 천천히 미끄러져내리는 도신에는 아직 그 힘을 억제하기 위한 부적이 붙어 있었다. 그것이 붙은 칼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나는 살며시 그 도신을 만졌다. 나와 소년의 영력 차이는 명백하다. 조금이라도 부적을 벗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소년이 지금 칼을 쥐고 있는 곳에서부터 영력이 흘러들어 부러질 것이 뻔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무서워서 저항하지 않았던 나는, 이 칼이 내 피로 더러워지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칼이 나를 상처입힌 것에 상처입지 않기를 바랐다. 카센은 한 번도 나를 상처입힌 적이 없다. 상처입기만 해 왔던 내 인생 속에서, 카센만은 항상 상처투성이인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
그러니 분명,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된 것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센은 항상 나를 상처입히는 것에 대해 나보다 더 화를 냈다. 나를 상처입히는 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그것을 처음 이해한 것은, 10년 전에 내 발목을 잘라낸 그 칼을, 그가 산사조각으로 부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곧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믿었어?"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기척에,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빠직, 빠직 하는 작은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에 균열이 생기고 붕괴하기 시작하는 소리. 눈 앞에서 커다란 영력의 소용돌이가 부풀어오르고, 둔한 빛깔의 도검 안쪽으로 스며들어간다.
소년은 무표정했다. 흥분으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에는 증오와 분노와 살의와 슬픔과 희열이 뒤섞인 빛이 떠 있었다. 천천히 입 끝이 올라간다. 머리를 흐트러트리고,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무서운 형상을 한 그 입가를 웃는 모양으로 일그러뜨린 그는 진심으로 유쾌하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꼴 좋다"
내 시선은 그보다 앞에 나타난 인물로 옮겨갔다.
그리고, 못박힌 듯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주, 인........"
다행이다, 하고 그 목소리가 속삭였다. 진심으로 안도했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고. 크게 뜬 내 눈에 그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선명하게 붉었다. 바로 지금 사람의 모습을 얻은 칼은 그 잔해인 꽃잎을 어스름 속에 흩어내고, 마주보는 내 위에, 마치 축복처럼 그것이 떨어졌다. 나는 정신을 놓고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카센의 피웅덩이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천천히 이해했다.
얼굴에도, 옷에도, 손에도, 끈적끈적하고 강렬한 붉은 것이 묻어 있었다. 주르륵 하고 머리카락 위로 미끄러지는 미적지근한 액체에, 멍하니 벌린 입에도 혀 위에도 피가 번져 녹았다. 쇠 맛이 난다. 고통도 열기도 괴로움도,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세계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새하얀 머리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내 입이 제멋대로 말을 솓아내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카----"
카센.
"내"
나만의.
"카센"
나는 분명 카센이 있다면, 뭐든지 좋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눈 앞의 칼만이 나의 세계였다.
줄곧, 그랬다.
카센은 나의 꿈이었다. 나의 세계였다. 나의 심장이었다. 나의 동경. 나의 이상. 나의 전부. 그것이 지금 눈 앞에서 소리를 내고 무너져간다. 부서져간다. 죽어간다. 그래. 이 때 확실히 나의 카센 카네사다는, 한 번 죽었다.
그의 칼로 상처입지 않은 나를 보고, 다행이다, 하고 속삭인 그 입이 닫힌다.
휘청 하고 그 몸이 기울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카센의 가슴 위에 있는 모란이, 소리도 없이 떨어졌다.
세계가 새빨갛게 변했다. 보이는 곳이 모두,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광경이 불타오르는 저택과 겹쳤을 때. 이것을 보고 있는 나는, 이제 그만 하라고 울고 있는 나는,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다음에 올 광경을.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는 종막의 발소리가 들린다.
-----쨍강.
공허할 정도로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이 때, 나의 세계는 무너졌다.
-------------------------------------------------------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멍하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그저 보기만 했다.
감정도 감각도, 모든 것이 멀었다. 머리 위로 쓰러진 몸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그 무게와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휩싸여 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빈틈없이 피를 뒤집어쓰고, 그래도 아직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머리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그 기척을 느껴도, 나는 아직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제 이걸로 똑같아졌네요.
움직이지 않는 카센의 몸을 끌어안고, 움직이지 않는 내 앞에 웅크려 앉은 소년이 즐겁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의식에서 밀어낸 나는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는 카센의 등에 손을 올렸다. 천천히 몇 번 흔들면서, 물어보듯이 불렀다.
"카센?"
어감을 확인하는 것처럼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부른다. 카센. 카센. 카센. 어린 아이같은 힘없는 목소리로, 나는 그 몸을 흔들었다. 카센은 대답하지 않는다. 칼에서 사람의 형태를 취했는데도, 입은 꾹 닫힌 채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정말로 인형처럼 정숙하고 아름다웠다.
"죽은 겁니다, 그 칼"
툭 떨어진 목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소년이 있었다. 그 눈에는 승리했다는 기쁨이 떠올라 있다. 아니야, 하고 내가 중얼거렸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하고 퍽 다정한 목소리로 소년이 자애롭게 미소짓는다.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끌어안은 등에 팔을 두르고, 일어나, 하고 부탁했다. 카센은 대답하지 않는다. 눈을 떠, 언제나처럼 나를 불러 주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어. 카센이 죽을 리 없어. 설령 내가 죽는다 해도, 카센이 죽으면 안 돼. 그런데 어째서, 대답해 주지 않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 그런 건 거짓말이야"
염불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입에서 부정의 나열이 흘러나온다. 말과는 반대로 내 가슴은 계속 떨고 있었다. 손가락도, 무릎도, 입술도, 눈도 떨고 있었다. 소년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나는 끌어안은 카센의 뺨을 쓰다듬었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뺨에 피가 튀어 있었다. 그 몸에서, 마치 배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있다. 옷이 피를 빨아들여 순식간에 검붉게 변색되어 가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금이 가고 무참하게 부러진 칼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번개를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말이 흘러들어온다.
카센이, 부러졌어. 부러졌어. 부러졌어. 부러졌어?
카센이, 내 눈 앞에서, 부러졌어. 그 몸은, 안 움직여.
"............아"
격렬한 충격이 심장을 꿰뚫었다.
산산조각난 마음이 엉망으루 무너져버리는 착각을 느꼈다.
내가 갈기갈기 찢어진다.
"아, 아, 아아아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생각이 흩어진다. 내 정신과 함께 몸을 좀먹는 영력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다. 평소였다면 폭주할 정도도 아닌 힘이, 끝에서부터 붕괴하듯이 제어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와 도검들 사이를 이어주던 인연의 끝까지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생리적인 것인지 아닌지도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저 머리가 아프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둘로 나뉘는 기분이었다. 눈물에 젖고 절망으로 물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카센은 나 때문에 부러졌다. 내가 있으니까, 나 같은 것이 불러내렸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인간이어서, 카센은 나 때문에 부러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면서, 그러면서 그 때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타인을 증오하며 불타오르는 강렬한 분노가 형성되었다. 손에 닿은 칼자루를 꼭 쥐었다. 원한의 충동은, 내 몸을 잡아먹을 듯이 부추겼다. 금이 가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아직 무너지지 않고 온전한 한 자루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칼을 들고. 완전히 긴장을 풀었던 듯한 소년을 쓰러트리고 그 몸통에 올라앉았다. 방금 전과 반대 입장이 된 소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박자 뒤에 그 얼굴에 이해가 찾아왔다.
흐음, 하고 조소하듯이 중얼거린 소년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그 칼로 나를 죽일 거야? 좋아, 어디 찔러 봐. 당신이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못 하겠으면 이번에야말로 그 칼을 써서 뒤따라 자살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요?"
"윽........흐, 으, 으윽......."
흘러넘치는 눈물을 멈추지도, 오열을 씹어 죽이지도 못하고 그저 소년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는 칼을 치켜들었다. 아무리 부러진 칼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도신에 붙어 있던 부적은 벗겨졌고, 둔하게 빛나던 도신은 그 몸에 새겨진 균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째서, 하고 생각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내가 아니라 카센을. 어째서 나한테서, 카센을.
그리고, 어째서, 하고 반복되던 물음이 비명이 되어 안쪽에서 터진 순간. 정신을 차리니 들고 있던 칼날의 존재를 느끼면서, 얕은 호흡과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오열이 정적 속에 울리고 있었다.
"...................이것 봐, 당신은 못 해"
손이 더 심하게 떨린다. 칼끝은소년의 얼굴 옆에 서서 바닥을 긁을 뿐이었다. 힘이 빠진 손 위로 쓰러지듯이 칼자루가 돌아온다. 가슴아픈 모습의 도신이 내 행동 때문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만이, 절망 속의 기묘한 안도가 되었다.
소년의 말이 맞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노에 자아를 잃고 어째서, 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을 때. 나는 그 질문을 하는 나 스스로가 어째서 살아있는 거냐는 타인의 규탄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소년의 축복받았을 인생을, 나라는 존재가 짓밟은 것은 분명 나의 죄일 것이다. 누구나가 살아있는 한 누군가를 짓밟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위해서 아무도 짓밟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싶지 않다고 기도하면서 살아왔으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신을 꼭 쥐고 있던 손바닥이 피로 젖어 있었다. 아아. 더러워졌네, 하고 생각했다. 내 피를 카센에게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카센은 이제 나를 혼내 주지 않는다. 카센밖에는, 나를 위해서 화내 주는 이가 없는데. 그렇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카센이 용서해 줄까. 내 곁에 있겠다고 약속해 주었으니까. 내가 곁에 있어도 용서해 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나는, 용서받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자기본위인 인간이었다. 나는 카센이 나를 위해 보여준 모든 감정을 사랑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내 마음 속에 떨어트린 선명한 감정들은 나의 모든 동경이었다. 나는 줄곧 카센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카센에게만큼은, 미움받아도, 혼이 나도 좋으니 그저 옆에 있고 싶었다.
처음부터 계속, 그것만 바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와 카센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그 중에서 서로를 직시하며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카센은 나를 똑바로 봐 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카센은 나의 동경, 나의 모든 세계였으며 봄의 햇살같은 존재인 그를 똑바로 보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카센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만, 그를 보았다. 태양을 직접 보면 눈이 망가져버리듯이, 카센은 항상 내가 똑바로 볼 수 없는 빛 그 자체였다.
결국 나와 카센 사이에 있었던 마음은, 그런 식으로 시간이 얼마나 지나도 결코 교차되지 않는 평행선이었던 것이다. 곁에 있는 것이 고작이어서, 말로 마음을 전달한 적도 없다. 나도 카센도 제각기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서로와 눈길이 마주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우리 사이에 운명은 없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옛날 이야기같은 축복도 없었다. 처음부터, 어느 쪽이 자세를 무너뜨리면 쉽게 금이 가 깨져버리는, 얇고 위험한 얼움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니, 어쩌면 붕괴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그러지고 유치하고 요령도 없는 그 관계는, 확실히 나의 마음을 구원해 주었다.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그것만큼은, 거짓이 아니었다. 설령 내가 나라는 인간을 격렬하게 증오하고 그 소멸을 바란다 해도, 결과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만든 과거의 모든 것을 동시에 없애 버린다 해도, 그것은 분명 과거의 나를 구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깊은 죄 때문에 그 구원을 잃었다고 믿었던 나는, 광기 속에서 스스로를 산산조각으로 부숴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도록 가슴 속 깊은 곳에 가라앉혔다. 나의 구원할 길 없는 나약함이 초래한 죄값을,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봤던 경치와, 거기에 내가 남긴 저주에 관한 것 뿐이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위에는 만개한 벚꽃이 지고 있었다. 아마 정원으로 내려가 밖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어둠이 응고된 것 같은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둥둥 떠 있는 듯한 흰 벚꽃이 춤추고 있었다.
그 아래에 웅크려 앉은 나는, 한 자루 칼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이 흐트러지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떨어지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간다. 드러난 칼날을 세게 쥔 손이 데이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래도 그것을 놓으면 마치 내 목숨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쥐고, 의미도 없이 머리 위를 올려다보는 나는 이 작은 세계를 뒤덮은 가지 아래에서 그저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닥쳐 무정하게도 몇천 개나 되는 덧엎는 꽃잎들을 흩어버린다. 그 꽃바람 속에서, 나는 아무 의미도 없이 멍하니 생각했다.
어째서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사람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냥 인간까지 신이라고 잘못 볼 일은 없었을 텐데. 아무도 나를, 신처럼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그들의 혼이 사람의 모습을 취하는 것으로, 내가 나의 신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 사실이었다. 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그들의 혼이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분명, 그들은 내 눈에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것이다.
만개한 벚꽃이 몇천 개의 꽃잎을 난무시키는 모습이, 마치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시야는 바쁘게 하늘을 날고 사로잡히고 떨어져내리는 벚꽃으로 가득 찼다. 여기서 죽으면 나도 쌓이는 이 벚꽃 속에 파묻혀 아름답게 썩어갈 수 있을까. 잿가루 같은 새하얀 연분홍빛이, 차례로 내린다. 어둠의 틈새에서 춤춘다. 양수와 비슷한, 미적지근한, 이대로 그 온도에 빠져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봄바람이 온 몸을 감쌌다.
전부 다 아름다운 악몽같았다.
"차라리, "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었다면.
그렇게 자조하듯이 내놓은 말은 오열 속으로 사라졌다. 입끝이 자연스럽게 올라가 울면서 웃었다. 누구를 위해서 살고,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누구를 위해서 울고, 누구를 위해서 웃고, 누구를 위해서 죽고,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는가.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이제 편해지고 싶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다름아닌 내 탓으로 잃었다는 것에 대한 무게에, 내 힘없는 정신은 맑고 또렷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모래자갈을 밟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아루지, 하고 경악으로 물든 작은 소리가 들리고, 나는 눈물 젖은 눈으로 그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이 자리에 데리고 온 나의 도검들이 있었다.
나중에 되짚어 보면, 아마 그들은 카센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마음 속에 생긴 동요 때문에, 그들과 나 사이를 잇는 영력의 연이 흔들려 어떠한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마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햇을 것이다. 가만히 선 그들의 발치에 봉오리를 매단 벚나무 가지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들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카센은 나의 구원이었다. 하지만 구원받고 있었던 것은 분명 나 하나 뿐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어디까지나 나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부터, 어떻게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면 되는지, 어떻게 나의 소중한 것을 이 세계에서 망가뜨리지 않고 지켜낼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그것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미워해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보다 싫어하고 증오해야 했던 것은, 만지면 떨어져버릴 것 같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우스울 정도의 나약함이었다. 내 괴로움은, 내 한탄은, 내 비탄은, 언제나 남들이 웃으며 발끝으로 굴릴 뿐인, 별 것도 아닌 괴로움이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게 과연 나였는지, 아니면 세계였는지.
그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의 의미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꼭 쥐어 피로 젖은 칼을 목에 가져다 댔다. 누군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일그러진 미소를 띄우고, 그리고 나는 말했다.
"너희가 모두, 정말로 내 것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나는 이런 말을 해 버린 것일까. 분명,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늦어버린 지금 생각하면. 이 때 나는, 그들에게 저주를 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그 저주를 충실하게 지켰다.
얇은 거죽 한 장 너머로 꿈틀거리는 동맥을 느끼면서, 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피부 위에 뜨거운 감각이 다려나가고,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어딘가 먼 곳에서 '어떻, 게, 살아..........설마, 부적' 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지만, 곧 놓아버린 내 의식 속에서 그 말은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스러졌다.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 같았다. 초조함으로 가득 찬 노성이 들린다. 제대로 된 말로 의미를 담지 못한 몇 개의 목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몸을 안아 일으켰다. 이미 멀어진 의식은,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데 이상하게 뺨에 떨어지는 물방울의 존재는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울고 있다. 울면 안 되는데.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 누군가가 울고 있으면, 내가 너무 괴로웠다. 손을 뻗어 닦아 주고 싶지만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미칠 듯한 감정이 가슴을 메운다. 부디, 제발 울지 마. 당신은, 나의 소중한.
그것이 내 기억이 끊어지기 직전, 마지막 의식이었다.
다음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이 날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였다.
옛 나의 모든 세계였던, 영원한 봄 속에 있었던 기억과 함께.
-------------------------------------------------
이것이 너의 죄야, 하고.
머릿속에서 내 목소리가 말했다.
<#13 END>
이만한 분량을 꾸준히 해내는 이 아루지 진심 존경스럽다......... 감사합니다 아루지
와 글 올라온거 못볼뻔했네 항상 잘읽고있어
아루지 항상 잘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아루지 고마워..존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