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창호지 너머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톱으로 마룻바닥이나 창호지 테두리를 긁었는지 이상한 소리가 난다.
어 이상하네.
손톱으로 나무를 할퀴면 긁적이는 소리가 들릴텐데. 잠에서 덜 깬 내 귀에는 금속이나 단단한 돌로 긁는듯한 소리로 들린다.
불안한 달빛, 장지문에는 흐릿한 그림자밖에 비치지 않는다. 일어나서 불을 킨다는 건 생각은 안 든 나머지. 눈을 가늘게 뜨고 응시했지만 도대체 누가 이름을 부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누구야? 물어봐도 대답은 없다. 춥고 늦은 시간이니 이불에서 나가는 것도 귀찮다. 볼일이 있으면 들어오지. 장지문 너머는 어두컴컴하고 그림자는 어둠보다 깊은 색이다. 달이 없는 것처럼 불안하다. 용무를 물어도 혼자 투덜투덜 거릴 뿐,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으리, 나으리, 나으리. 있잖아요. 그게요. 저도 참 잘 자른답니다. 저도 정말이지, 매끄럽게 찌른답니다."
밖에서 무언가가 마룻바닥 위를 뛴다. 탁탁, 둔탁한 소리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둔탁한 소리에 반비례해 뛰는 무언가는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사랑해주세요. 아아 나으리. 저 참 잘 자른답니다. 그러니 저를 사랑해주세요. 귀여워해주세요. 저는 아주 착한 아이니까. 한 패에 넣어주세요."
부욱 부우욱.
뭔가 탄력 있는 물건 속에 칼이 들어갔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 시끄럽기 그지없네.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얼른 들어가라고 해도 안 들어가면 일찍 자야지. 내일도 아침 식사 준비로 일찍 일어나야하잖아. 하루종일 배고픈 건 싫지? 방으로 돌아가렴. 말해도 듣지 않았다.
"있잖아요. 있잖아요. 듣고 있죠. 나으리. 나으리, 저 정말 잘 자른답니다. 정말 그래요. 이렇게 깔끔하게 자를 수 있어요. 봐주세요 나으리. 보고 사랑해주세요. 착한 아이라고 칭찬해주세요. 머리를 쓰다듬어주세요. 나으리. 나으리."
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나으리
나으리
사랑해주세요
소녀처럼 높은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로 온 도검남사인가, 누군지 모르겠네.
봐야할 게 있으면 내일 볼테니 오늘은 일단 자라고 대답하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이제 들을 생각없다고 하니, 그림자는 천천히 장지문 끝으로 사라졌다.
아이고 이제 좀 자겠네.
다음날 아침은 끔찍했다.
장지문에서 비린내가 났다. 그리고 장지문에 어제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무늬가. 아무리봐도 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아침부터 맥이 빠져버렸다. 무슨 장난이야? 미닫이를 열었더니 발밑에는 죽은 물고기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연못에 풀어둔 잉어였나. 흰 비늘에 피가 튀어 비단결 같다. 불쌍한 것. 벌써 파리가 몰려들기 시작하고 지독한 냄새가 났다.
뭐가 원인인지는 금방 깨달았다. 썩은 물고기 쪽엔 커다란 칼자국이 나있고. 냄새가 심한 창자가 술술 쏟아지고 있었다. 누구 짓인지 모르겠는데 지독하다.
어젯밤 그 놈 짓인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도 도가 지나치네. 아침을 먹고 나면 조례 회의 연다. 죽은 잉어는 나중에 밭 구석에 묻어주자.
어깨를 으쓱이며 조리장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탁,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부엌칼이 망가진 듯 하다. 뭘 하면 부러지는 거지? 궁금했지만 꽤 오래 썼으니까. 수명이 다 된 게 아닐까. 부러진 칼을 쇼쿠다이키리가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좀 청소해야겠다 싶어서."
쇼쿠다이키리가 쓰레기통에 넣은 식칼의 칼날에는 하얀 물고기 비늘이 빛나고 있었다.
식사 전, 방 문에 나쁜 짓을 한 사람 누굽니까. 화내지 않을테니 손을 들어보세요. 조례회의를 열어보았지만 누구 하나 손을 들지 않았다. 잠이 덜 깨서 고양이를 잘못 본거 아니냐고 딱 잘라 말한 자도 있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단언할 자신은 없기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며 자리에 앉았다. 쇼쿠다이키리가 그런것보다 새 식칼을 사고 싶어. 내가 골라도 돼? 내가 다 잘라도 되지만. 웃으면서 부탁해왔다. 도검을 식칼로 취급할 수 없거든. 그리 대답하니 농담이라고 웃어넘겼다.
식사를 끝내고 잉어를 묻어주기 위해 정원으로 나갔다. 구석에 묻어주자. 겨우 길이 든 괭이로 부지런히 구덩이를 팠다. 말의 건초를 빌려서 굴 속에 깔고 그 위에 눕혔다. 편히 잠들길. 기도하고 꽃을 넣어주었다. 쓸데없는 살생은 좋아하지 않기에.
그날 밤.
목욕을 마치고 밭과 가까운 복도를 걷고 있으니, 서걱서걱 땅을 파는 소리가 났다. 오늘 내번 누구지? 이런 늦은 시간까지 밭일하라곤 안 했는데. 그렇께가지 무정하지 않거든. 크게 눈을 떠도 밤눈이 밝지 않은 탓에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구야?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일 그만해도 돼. 소리쳐도 흙을 파헤치는 소리는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소리 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거지. 둘러봐도 어중간한 어둠이 깔려 있을 뿐이다. 불이라도 가져올까. 발길을 돌리니 뒤에서 콰당하고 무언가가 쓰러졌다. 뒤돌아보니 괭이 한 자루가. 그 바로 옆에 이걸로 팠는지 흙 색깔이 다른 것보다 짙은 데가 있었다. 뭐야, 뭘 하고 있던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발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걸 깨달았다. 벌레 소리 같진 않은데. 낮은 소리네. 땅에 무릎을 꿇고 귀를 가까이 가져간 순간.
"지금 뭐하는 겨?"
뒤에서 누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펄쩍 뛰었다. 무츠노카미가, 몸 식는다고, 감기 걸리면 큰일이라면서 꽁꽁 언 손을 꽉 잡는 바람에 잠깐 들렀어. 그리 대답했다. 목욕이 끝난 후라 그런지 완전히 식어 한기가 들었디.
"그래서, 누가 오늘 괭이 썼어? 그냥 두고 갔네."
"그야! 이즈미노카미 그 바보 아니겠어. 분명 그럴겨!"
"이즈미노카미가 오늘 말 당번인데."
"그랬나?"
무츠노카미는 껄껄 웃으면서 괭이를 주워들고. "내한테 뒤는 맡기고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 분부를 받들어 뒤를 맡긴 뒤에 돌아선다. 저 밭 밑 구멍으로 들린 건 뭐였을까. 글쎄, 모르겠네. 하품이 나와서 소매에 양손을 숨기고 이불로 서둘러 뛰었다.
내일은 밭일을 도와줄까, 생각하던 와중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오늘 밭일은 토마토 수확으로 기억하는데. 채소 수확에 괭이를 써? 신기하네.
좋아좋아좋아좋아좋아해좋아해요좋아좋아해요좋아해요좋아해요좋아해요좋아해요좋아해요좋아서좋아좋아해좋아좋아해요사랑
"뻔뻔하게 시리."
구멍 밑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향해, 무츠노카미가 괭이를 휘두르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꿈속에 있었다. 따듯하고 기분 좋아.
이건 꿈이겠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꿈속이 아니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흐를리가. 싸우지 않아도 되고, 도검들이 다치지 않아도 되고.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누가 울지도 않아. 좋은 일 뿐이야.
동그랗게 누운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누군가의 손. 느긋하고 여유로운 리듬에 불필요할정도로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도 듣기 좋다. 그리운 느낌도 들어. 아아 기분 좋아.
평생, 함께 해주세요. 평생, 함께.
그래그래 평생 같이 있자. 여기서 평생 있고 싶네. 깨고 싶지 않아. 일어나기 싫어.
희고 윤곽이 없는 의식 속에서 끄덕이자 기쁜듯 웃는 소리가 났다. 몹시 흐뭇한 목소리였다.
"야! 언제까지 잘 거야!"
꿈의 세계가 날카로운 비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불이 벗겨지고 큰 소리로 잠이 깼다. 눈을 뜨자 도다누키가 "정오 지났거든!" 고함쳤다. 말도 안돼. 밖을 보니 해가 이미 중천이었다. 이렇게 늦잠을 잔 건 난생 처음이다. 일찍 일어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잘 일어나는 편이라고 자신했는데. 도다누키가 "오늘 출진 어쩌라고!" 화를 냈다. 기다리게 만들어서 화가 난 거 같다. 얼마나 화가 났던건지 쓰고 있던 이불을 밖으로 내던지더라.
힘껏 내던진 이불은 연못에 빠졌다. 최악이다. 한순간에 깃털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연못 밑으로 가라앉는다. 연못의 진흙이 살짝 올라오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너어! 무슨 짓을!"
"상관없잖아! 저런 거!"
"상관 있거든! 당장 오늘 밤부터 어떡하라고!"
밤은 아직 추운데. 이불 없이 어떻게 지내라고. 늦잠의 벌로서도 이 처사는 심했다. 사랑하는 이불을 불합리하게 빼앗긴 슬픔에 젖어 있으면 도다누키한테 어깨를 붙잡혀 바로 서게 됐다. 그리고 그대로 끌려갔다. 정말 너무하네. 이런 슬픔을 겪게 한것도 모자라서 바로 일을 시키다니. 도중에 훌쩍이며 원망의 말을 했더니 참지 못했는지. "버려진 이불 대신 해주랴?" 약간 진지한 눈으로 물어봐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런 난폭한 남사랑 하룻밤을 같이 자고 싶지 않거든.
"그럼 조용히 해!"
그가 조금 아쉬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탓이겠지.
조금 쉬고 싶어서 책을 폈다.
책을 읽을 때만 안경을 쓴다. 어릴 적부터 있던 습관으로. 그때부터 시력이 나빠지지도 않아서 계속 같은 안경을 쓰고 있다. 저 멀리서 단도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놀이라도 하는 걸까. 평화로운 시간에 마음놓고 책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돌연 "보렴." 그런 소리가 들렸다. 누가 왔나보다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한 것을 깨달았다. 모르는 사이 어두워진 건가.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나 놀랐지만, 한 권도 다 읽지 않았는데 그럴리가 있나.
이렇게 캄캄해서야 장지문을 열고 밖을 확인할 수도 없고. 함부로 움직이다 벼루를 엎어버리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사다. 어쩔 수 없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렸다. 거기 누구 없어? 부르자 곧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누시사마."
아아 코기츠네마루인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직 자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불 좀 켜달라고 부탁하니, 코기츠네마루는 의아한듯이 "불을, 말입니까?" 되물어왔다. 이렇게 어두운데. 불이 없으면 하나도 안 보이지. 호소하자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코기츠네마루는 밤눈이 밝은지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항상 털을 다듬는 동백꽃 향유 냄새가 난다. 근처에 있구나. 코기츠네마루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와."
갑자기 시야가 하얘졌다. 눈앞에 코기츠네마루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어 놀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방안을 둘러보니. 밤도 아니고 해도 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코기츠네마루가 쥐고 있던 안경알이 깨져 있었다. 코기츠네마루는 무엇인가 살펴보다가, 실수했다면서 잠시 뜸을 들이고 변명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안경을 관찰하다가 힘조절을 잘못했나보네. 평소 안경을 쓰지 않고, 독서할때 불편할 뿐이니까. 얼른 용서했다 코기츠네마루는 그다지 미안했던 건 아닌지, 깨진 안경을 홱 내던지며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누시사마, 누시사마. 머리 손질 해주세요. 봐주세요. 여기 털이 엉켜버렸답니다."
"그래."
머리카락 끝은 살짝 꼬여있었지만, 빗으면 금방 돌아갈 것이다. 코기츠네마루는 기쁜 듯이 앉아 기다리고 있다. 그러고보니 저 이상한 어둠 속에서 들린 "보렴"은 무슨 소리였을까. 저 어두운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라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 계속 되었다.
"어쩐지, 우리 주인은 신의 마음에 들기 쉬운 거 같구나."
미카즈키가 언제나처럼 잔잔하게 웃고 있었다. 그건 당연하지. 명색이 사니와라는 직책을 짊어지고 있다. 신과 현세의 중개를 맡는 존재다. 보통 사람과 더 신과 가까워야한다. 미움 받는다면 사니와로서의 힘을 잃는다. 사니와니까 백명에 가까운 도검남사와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자 미카즈키가 "무척 둔하구나." 이상한 소리를 했다.
"무슨 일이야?"
"무슨일이고 뭐고. 그런 거란다. 모두 탄식하고 있더군. 주인은 눈을 떼면 나쁜 벌레가 붙어 큰일이라고."
"벌레?"
모르는 이야기에 의아해 하니, 미카즈키는 다 끝난 일이라고 웃어넘겼다.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예 말하지 않아도 됐을 일인데. 짓궃다니까. 신경 쓰이잖아. 미카즈키는 그래도 허허 웃으며 아랑곳없는 태도였다.
"주인은 상냥하니까."
"무슨 소리야?"
"아니, 이쪽 이야기란다. 하지만, 걱정 말거라. 모두 손은 쓰고 있으니."
납득하기도 전에 이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이 떡을 내밀어 받았다. 팥소가 맛있네. 미카즈키가 차도 준비해주었다. 눈치가 정말 빠르다니까. 내 몫의 찻잔을 든 미카즈키가 불쑥 수면에 중얼거렸다.
"안심하고 우리에게 사랑 받으면 된단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백여개의 신이 미소 지었다.
호러다 호러
와 묘사 미쳤다...
와 개쩔어 분위기 너무 취향이다 개추 ㅠㅠ
분위기 너무 좋다... 번역 ㄱㅅ합니다 아륵지
물건들이 지멋대로 츠쿠모카미화돼서 저러는거임..? 아님 물건에 빙의?
전자인듯
떡? 차? 지금 혼례식 올리는거 아니냐
아륵지 이 소설 원본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4954441
밤중에 덜덜 떨면서 봤네. 와중에 못된 츠쿠모가미 처리해주는 남사들이 든든하다♡ 번역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