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거짓말쟁이 공주와 눈먼 왕자」라는 게임에서 따왔음

동화체 주의

혼바혼

세세한 고증 오류는 그냥 눈감아주셈






어느 혼마루에 수줍음 많은 나키기츠네가 살았습니다.

어찌나 쑥스러움을 많이 탔는지, 다른 이와 대화할 때도 항상 곁에 붙어 있는 친구 여우가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어느날 친구 여우가 말했어요.

  "이야이야, 나키기츠네. 저는 내일 아침 코기츠네마루 님과 유부 박람회에 가기로 했습니다. 같이 가시렵니까?"

  "......괜찮아. 잘 다녀와."

나키기츠네도 유부를 참 좋아했습니다만, 코기츠네마루와 아직은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에 거절했습니다.





다음날 나키기츠네가 정오 조금 지나서 잠에서 깨니 친구 여우는 이미 나가고 없었습니다.

친구 여우 없이 남들과 만나기 부끄러웠던 나키기츠네는 방에 그대로 있기로 했습니다.

꼬르륵

그러나 야속하게도 나키기츠네의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렸어요.

아침도 굶어서인지 배가 너무나 고팠기에 나키기츠네는 몰래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나키기츠네는 조용히 복도를 걸었습니다.

모퉁이를 돈 순간 앗, 반대편에서 누군가와 마주쳤습니다!

나키기츠네의 주인인 사니와였어요.

사니와는 눈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다른 검들이 그러하듯 나키기츠네도 주인을 아주 좋아했지만, 친구 여우가 곁에 없었기에 조용히 벽가에 붙어서 주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거기 누구야?"

그러나 눈이 먼 대신 다른 감각이 그만큼 더 날카로운 사니와는 주변에 누가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오오쿠리카라?"

이대로 오오쿠리카라인 척 하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주인과 오오쿠리카라의 사이가 틀어질 테지요.

  '어떻게 하지?'

그러는 동안에 사니와는 나키기츠네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에서 나키기츠네는,

  "이야이야, 주군님. 나키기츠네를 못 알아보시다니 조금 섭섭하옵니다."

자신도 모르게 친구 여우의 목소리를 따라했습니다.

  "응? ......아, 나키기츠네였구나. 미안해."

  "괜찮사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나키기츠네는 재빨리 자리를 피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잠깐만. 마침 나키기츠네에게 볼일이 있었어."

사니와가 나키기츠네를 붙잡아세웠습니다.

  "그,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사니와는 한손에 든 보따리를 앞으로 내밀었어요.

  "오늘 아침 먹으러 안 왔었잖아. 점심 때도 보이지 않는다고 밋쨩이 걱정했어. 이거 밋쨩이 만든 유부초밥이야. 나키기츠네에게 전해달래."

  "오오, 이렇게 감사할 데가! 미츠타다 님께는 제가 따로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응. 그런데 저기......."

  "왜 그러시옵니까?"

사니와는 살짝 망설이더니 말했습니다.

  "나키기츠네가 괜찮다면, 같이 있어도 될까?"





햇볕이 따뜻한 툇마루에 나키기츠네와 사니와는 나란히 앉았습니다.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친구 여우인 척을 해버렸으니 조금 더 뻔뻔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키기츠네는 보자기에서 유부초밥을 꺼내 크게 베어물었습니다.

  "맛있어?"

  "음음, 역시 미츠타다 님의 요리는 천하일품이군요. 주군님, 나키기츠네도 맛있게 먹고 있사옵니다."

  "다행이다."

사니와는 빙긋 미소지었습니다.



  "나키기츠네는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잖아. 불편한 점은 없니? 다른 도검들과는 잘 지내고 있어?"

  "나키기츠네는 타인과 어울리는 게 서툴러서, 대신 제가 모두와 교류하고 있사옵니다."

  "그렇구나. 언젠가 나키기츠네가 직접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얼마간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은 나키기츠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번주에 말 당번을 했을 텐데 어땠는지("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나키기츠네는 힘냈사옵니다!"), 출진해서 다쳤다는데 괜찮은지("뭘 이 정도쯤!") 등등. 주인이 자신에게 이렇게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키기츠네는 쑥스러우면서도 기뻤습니다.



그 후 나키기츠네는 때때로 친구 여우가 없는 틈을 타서 주인과 대화했습니다.

코기츠네마루와 유부초밥을 겸상할 정도로 친해졌다는 이야기,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유부우동을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 이번에 새로 온 햐쿠산 요시미츠도 유부를 좋아할까 궁금하다는 이야기...

나키기츠네는 어느 순간부터 주인보다 자신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친구 여우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기보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주인과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주인과 이야기 한 상대는 친구 여우가 아니라 나였다고 고백할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키기츠네는 수줍음 많고 겁도 많은 거짓말쟁이 여우였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눈을 뜰 방법을 찾았대요."

세상에, 그럼 주인님이 우리 얼굴을 볼 수 있겠네! 주군, 다음엔 꼭 저희랑 꽃놀이를 가요! 사니와와 여러 가지를 할 생각에 혼마루의 도검들은 들떴습니다.

딱 한 자루만 빼고요.

  "호오, 주군님께서 시력을 회복하신다니 이렇게 경사로울데가! ...나키기츠네? 어디가 아프십니까?"

"...괜찮아."

물론 나키기츠네도 기뻤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슬펐습니다. 주인이 눈을 뜨면, 비록 거짓으로 가득했지만 행복했던 둘만의 시간은 영영 작별일 테니까요.



주인이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날 밤, 쌕쌕 숨을 쉬며 꿈나라로 간 친구 여우와는 달리 도저히 잠들 수 없었던 나키기츠네는 방을 나섰습니다.

비척비척 걷던 나키기츠네의 눈에 툇마루에 앉은 주인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홀로 달빛을 아래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덧없었습니다. 인기척을 느꼈을까요? 사니와는 등을 곧추 세웠습니다.

  "나키기츠네?"

  "이런이런, 주군님. 어떻게 아셨습니까?"

  "발소리가 나키기츠네인걸."

  "역시 주군님이십니다."

나키기츠네는 사니와 곁에 가서 앉았습니다. 옆에서 들여다 본 주인의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달빛이 없어도 빛나겠지요.

  "그런데 어찌 아직도 깨어계십니까?"

  "그냥 왠지 잠이 안 와서."

사니와는 스르륵 나키기츠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습니다. 나키기츠네는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주인의 어깨에 팔을 둘렀습니다.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우는 소리를 들으며 둘은 한동안 그대로 있었습니다.

  "어쩌면 무서워서 그럴지도."

  "주군님이라면 잘 이겨내실 겁니다."

  "나키기츠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힘내볼까?"

사니와는 배시시 웃었습니다.

  "하나만 약속해줘."

  "무엇이옵니까?"

  "내가 눈을 떠도 지금처럼 대해줘야해?"

  "...물론이옵니다."





며칠이 지나고 사니와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축하연회를 열고, 얼굴을 익힌답시고 퀴즈대회도 열고, 도검남사가 만든 벚꽃으로 때아닌 꽃구경도 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니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 모든 소동에서 나키기츠네는 한발 물러서 되도록 주인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습니다.

주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지금부터라도 친구 여우가 아닌 나키기츠네 본인으로서 다가갈까요? 그런데 잘할 수 있을까요?

나키기츠네는 친구 여우 흉내를 시작한 그 옛날의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나키기츠네? 나키기츠네 맞지?"

나키기츠네가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 틈엔가 주인이 곁에 다가왔습니다.

  "......."

  "친구 여우는 없네?"

  "......."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주인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한 데다가 하필 수줍음까지 터진 탓에 나키기츠네는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나키기츠네 앞에 서서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습니다.

  "그럼 이러면 다시 대화해줄래?"

  "어떻게......."

드디어 나키기츠네의 말문이 트였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직접 코기츠네마루와 친구 여우의 배웅을 해주었으니까."

  "...그랬구나"

주인은 모든 사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코기츠네마루가 외출 신청을 냈던 것, 아침 일찍 혼마루를 나서는 두 여우를 근시와 함께 배웅했던 것, 그래서 나키기츠네의 속임수를 알아챈 것, 그러나 나키기츠네가 귀여워서 모르는 척 했던 것 등등을 털어 놓았습니다.



  "너무 기뻤어. 친구 여우 없이 나키기츠네와 이야기할 수 있었으니까. 뭐, 친구 여우인 척 하는 나키기츠네였지만 말이지!"

  "주인, 나키기츠네는 부끄럽다."

  "헤헤, 미안. 그래도 지금부터는...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나키기츠네와 얘기하고 싶어. 그래 줄 거지?"

나키기츠네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나키기츠네와 사니와만의 작은 비밀입니다.

다만 누군가 말하길 그 주변을 지나가다 바람결에 실린 즐거운 웃음소리를 들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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