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 파괴 요소 있음
*죽음 소재 있음
"좋아한다."
사각사각 만년필 소리만 울리던 근시실에서 츠루마루가 뜬금없이 말했다. 순간적으로 잘못 들은 건가 싶어 펜을 멈추고 츠루마루를 보면 츠루마루는 어딘가 계산이 이상한 걸 발견했는지 주판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계산기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아무래도 츠루마루는 주판이 더 편하다고 했다.
"걱정 말아. 그대가 잘못 들은 건 아니니."
"...그래?"
"응. 좋아한다고 분명히 말했다네."
"갑자기?"
"갑자기."
"이렇게 뜬금없이?"
"놀랍지 않나?"
"기왕이면 좀 더 감동적인 놀라움을 원했어."
"그거 아쉽군."
다음에 참고하도록 하지, 그렇게 덧붙이고 츠루마루는 내게 서류를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일로 돌아가는 흐름에 떨떠름한 기분으로 나도 서류를 받아들였다. 그 날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가 끝이났다.
그리고 츠루마루가 말하는 '다음'은 없었다.
이후 츠루마루는 전장에서 부러져버렸으니까.
*
츠루마루와 흔히 말하는 '썸'이냐는 관계였냐고하면 전혀 아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데 서툴렀고 혼자가 편했다. 그건 도검남사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검남사들과도 딱히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츠루마루가 예외라면 예외였다.
츠루마루는 자유로운 새와 같아서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내 옆에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었다. 주로 일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며 간혹가다 점심 식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최근 츠루마루가 몰두하는 장난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다. 때로는 아무런 대화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둘이서 하늘이 잘 보이도록 근시실 문을 활짝 연 채로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여! 나같은게 튀어나와서 놀랐는가?!"
두번째 츠루마루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이전 츠루마루가 일과의 전장터에서 우연히 찾아왔었다면 이번에는 단도실에서 그를 맞았다. 어디에서 손을 넣었건 츠루마루는 여리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덧없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호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호쾌한 웃음과 다르게 정말로 덧없이 사라졌었는데.
두번째 츠루마루가 와서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첫번째 츠루마루가 사라지고 나서도 나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변화가 있을 리 없었다. 두번째 츠루마루도 초반의 첫번째 츠루마루처럼 혼마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도검남사들과 어울렸다. 가끔 오오쿠리카라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좋아한다."
그리고 두번째 츠루마루가 내게 고백을 해온 건, 그가 현현한 뒤 두 달이 지나갈 무렵. 어느날의 근시실처럼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타각타각 소리를 내던 키보드가 멈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놀랐는가?"
"...이런 놀라움은 좋아하지 않아."
"그래? 흠, 좀 더 고민을 해봐야겠군."
주판을 두드리며 츠루마루는 다시 제 몫의 서류를 봤다. 여기, 계산이 좀 이상한데. 자연스레 다시 일로 돌아가는 그에게서 또 다른 츠루마루가 겹쳐서 나는 숨이 막혔다.
*
"좋아한다."
지금의 츠루마루는 몇 번째였을까. 두번째 츠루마루는 첫 번재 츠루마루보다 더 오래 인간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하루 한치 앞도 모르는 전장터에서 그가 얼마나 더 오래 살았는 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그도 부러졌다. 이후로 몇 명의 츠루마루가 나의 혼마루에 찾아왔었던가. 지금은 몇 번째인가. 세는 건 그만두었다.
하지만 어느 츠루마루도, 정말로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에게 말한다.
이제 몇 번째인지 생각도 안 나는 츠루마루는 그나마 좀 나았다. 벚꽃이 휘날리는 하늘 아래에서 모두가 즐거운 듯이 꽃놀이를 하는 가운데였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전에 그대가 말했었지. 그대에게 '좋아한다'는 말만은 하지 말라고."
제 손에 든 술잔을 이리저리 기울여보며 그가 나를 바라본다. 속마음을 다 파헤치는 듯한 황금빛 눈이 나를 본다. 눈동자 위에 비친 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용서하게. 말하지 않으면 터질 것만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네."
좋아하네, 아마 어떤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와도 네게 말할테지. 그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너의' 츠루마루 쿠니나가인 이상.
"'나'는 꼭 너를 좋아하겠지."
참으로 지독한 저주라고 생각했다.
*
이번 츠루마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젊지 않으니까 당연할지도 몰랐다.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거리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었지만 그의 머리카락만큼 아름답게 빛나지는 않았다. 혼마루는 조용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현현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도검남사의 수가 줄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몇 번째인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나의 마지막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될 거란 건 분명했다.
"좋아해."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그의 눈이 놀란듯이 커졌다.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곧 죽음을 예감한 나는 나의 수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선물이라며 나의 초기도인 카센이 골라주고 간 수의였다. 츠루마루는 장지문 옆에서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듣지 않았어.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어."
"...왜."
"사실 처음부터 좋아했어."
정말, 맨 처음. 첫번째 츠루마루 쿠니나가가 나에게 고백하기 그 전부터.
사실 처음부터 대답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신이, 단순한 변덕으로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닌지 겁이 났었다. 그때 대답을 회피하지 않고 말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찌할 수 없다. '만약'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상상이다.
츠루마루가 내 손을 잡았다. 마주본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눈물로 일렁이고 있었다.
"좋아하네."
"응."
"정말 좋아해."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두 어깨가 떨렸다.
"그러니, 네 무덤에 나를 꼭 데려가게."
-그것이 이제 네게 바칠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진심의 전부네.
그가 덧붙인 말에 놀란듯이 그를 쳐다보면 그가 울면서 빙긋이 웃었다.
"...놀랐는가? 이번에는 감동적이었는지?"
"처음부터, '너의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나'밖에 없는 게 당연하잖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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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고 부러져도 몇번이고 다시 사니와의 손끝에서 현현하고 몇번이고 사랑을 고백하는 츠루마루가 보고 싶었다.
전부다 같은 놈이었던 건가 이런거 좋아
도검남사의 집착이 지나쳐서 자기대신 현현하려는 동소체는 막고 자신만 계속 현현하는 소재 좋지
이 츠루썰 안 본 놈들이 사랑을 알겠냐?
퍄
퍄퍄
순애 츠루마루 좋아요
아아, 이게 《순애》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