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졌다

오늘이 바로 혼마루가 혼노지로 변하는 날이구나

기겁해서 불끄러 뛰어오는 남사들을 보고 싶은 가을 아침이다

먼저 오전 업무 중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책을 한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마당에 나가서 주위를 둘러보아야 한다

언제나처럼 한적한 툇마루에는 영감들이 몇 앉아서 따뜻한 가을 햇살과 선선한 아침의 바람을 즐기고 있다

딱히 불에 탔던 영감들은 없는 것 같으니 세이프다

기본적으로 엉덩이가 무겁기 때문에 구경거리만 주어진다면

굳이 아루지의 탈주를 초기도에게 일러바침으로써 앞으로의 계획을 저지당하고 쓸쓸히 집무실로 쫓겨나도록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쪽에 눈인사를 건네는 할배들에게 시크하게 고개 한 번씩 까딱여 주고는 옆에 있는 근시한테 쩌어그 가서 갈퀴 하나만 가져 오너라 하고 엄근진하게 주명을 내려야 한다

그걸로 청소당번이 정갈하게 쓸어다 모아놓은 낙엽더미를 마당 구석으로 끌어 모은 다음

넓은 소매 속에 넣어 둔, 호일로 포장된 고구마를 열 몇 개 정도 꺼내서 낙엽 사이사이에 잘 파묻히도록 쏙쏙 숨긴다

어젯밤에 몰래 부엌 창고에 잠입해서 몰래 빼돌려 둔 것들이다

미리 집무실 서랍 속에 꿍쳐뒀던 호일로 근시랑 같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싼 다음 챙겨왔다

하 어디서 본 게 있어서 은밀하게 소매 속에 숨겨서 들고 온다고 들고 왔는데 생각과 달리 고구마들이 그대로 넓은 소매통 제일 아랫부분으로 떨어져서 쌓이는 바람에 무거운 데다 소매 핏 이상한 것도 그대로 다 보여서 몰래 가져오느라 개쫄렸다

원정이랑 출진을 보낸 다음 움직여서 혼마루가 한산해 다행이야

어쨌든 성공적으로 가져왔으니 내가 이겼다


이제 반대편 소매를 뒤적거려서 찾은 보라색 ××노래방 라이타로 낙엽 더미에 불을 붙인다

이 노래방에 가 본 적은 물론 없거니와 이 노래방이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하여튼 소소하게 유용한 물건이다

잔불이 낙엽에 알 수 없는 모양을 그리며 느리게 타들어가는 예쁘지만 속터지는 모양을 잠시 지켜보면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서서 기다리면 어느새 예쁘게 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낙엽더미를 마주할 수 있다

대련장 뒤편에서 주워온 끝이 부러진 목도로 불붙은 낙엽더미를 요령좋게 쏘삭여가며 불씨가 낙엽더미에 균일하게 옮겨 붙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조금 기다리면 본격적으로 연기가 나기 시작해 근심어린 표정의 근시가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을까요" 물어보지만 말없이 근엄하게 어깨를 툭툭 침으로써 안심시킨다


이제 조금 지나면 확정적으로 들키겠지만 이것 또한 계획의 일부로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쟤랑 나랑 둘이서 저걸 다 쳐먹고 입 싹 닦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특별히 달달한 호박고구마와 꿀고구마를 반반씩 섞어 준비했는데, 그걸 한번에 다 먹으면 신인 쟤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인간 나부랭이인 나는 혈당 스파이크가 와서 울면서 강제 운동 확정이다

때문에 소중한 혼마루를 위협적인 가을 산(?)불로부터 지키기 위해 있는 힘껏 뛰어오는 선량한 칼놈들에게 맛있게 잘 만들어진 군고구마를 하나씩 나누어 줌으로써 포상할 것이다

나는 부르는 수고를 덜어서 좋고 칼놈은 군고구마를 얻어서 좋고

이것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복잡한 얼굴로 불멍을 하고 있는 근시도 분명 동의할 것이다

어 잠깐만 얘 이치고였네

아ㅎ
미안하니 얘한테는 특별히 두 개를 주기로 한다

손으로 직접 까 줘야지


이윽고 바깥에서 밭일하던 애들이 제일 먼저 달려올 것이다

햇살이 반짝이는 아침이라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역시 칼놈이라 유능함의 정도가 다르다

건물 안에서 일하는 쪽은 아직 연기를 보지 못한 것 같다

트라우마 없는 놈들은 ??아루지가 왜 여기 있어 하고 황당해하고

트라우마 있는 놈들은 !!!아루지 빨리 나와 하고 구조를 시도한다
두 쪽 모두에게 나는 지금 이 혼마루의 아루지로서 군고구마를 만드는 중대한 일을 수행중이며,완성된 군고구마는 여기 온 칼놈들을 대상으로 따뜻할 적에 하나씩 나눠 줄 것이라고 선포한다

군고구마? 그거 주방에 말하면 에어프라이어로 만들어 주잖아

현현한 지 오래돼서 현대문물에 익숙해진 칼놈은 이래서 싫다

낭만을 몰라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입에 넣으면 눈물을 흘리며 직화 군고구마의 우수함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 둘 찾아오는 칼놈이 늘면서 제법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이제는 내가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상황을 전달받고는 기다리며 서 있다

둘, 넷, 여섯, 여덟, 열, 둘, 넷...

대충 수가 맞다

마침 불씨도 잦아들었고 고구마도 익었을 시간이니 이제 배급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얘, 이치고히토후리야

나랑 같이 저걸 뒤져서 군고구마를 하나씩 꺼내자꾸나

이치고야?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 있구나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혼자서 해야 할 것 같다


아까 던져뒀던 목검으로 파묻어둔 군고구마를 잊어버리거나 하는 일 없이 모두 회수해 한 쪽으로 빼내는 데 성공하면

이치고의 굳어있는 주먹 안에 꽉 잡혀있는 목장갑 한 쌍을 뺏어서 끼고는 쪼그려 앉아서 손짓으로 칼놈들을 부른다

와서 줄들 서라


그렇게 잘 익은 군고구마를 나눠먹으며 혼마루에 남아있는 칼놈들과 함께 다같이 사이좋게 오전을 공치다가

원정에서 돌아와 이 작태를 발견한 초기도가 가아아아알!!!하고 불호령 시전하면 칼놈들과 함께 초원에서 사자 만난 가젤들처럼 사방팔방 흩어져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허접 아루지라 바로 잡혀서 잔소리 100배 시전당하는데

전혀 반성하지 않고 네 것이 없어서 아쉬우냐며 품속에 소중하게넣어둔 내 몫의 군고구마를 해맑은 미소와 함께 수줍게 내밀고 싶다

화내지 말고 이거 좀 봐 아직 따뜻해

초기도 하치라 마음이 약해서 하, 정말... 하고 한숨 쉬면서 또 언제나처럼 넘어가 줄 듯ㅎ


하 20키로짜리 고구마 상자 하나 다 비울때까지 그짓 반복할 자신 있는데 칼놈들 다 혼마루에 놔두고 나만 현생 살고 있네


아니 분명히 처음 쓸 때는 문단 제대로 가독성 있게 잘 썼는데 뭐가 문젠지 자꾸만 가독성 개똥망돼서 이런 똥글을 몇 번이나 수정하고 있네

칼놈들아 빨리 아루지 혼마루로 데려가라고...

+) 군고구마 먹고싶어져서 점심으로 구워먹고 뇌절하면서 초기도 반응도 같이 생각해 옴 어디까지나 혼바혼임..ㅎ

아니, 우리 초기도는 이렇지 않은데요
-> 저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댓글로 님의 초기도가 보일 반응에 대해서 5만자 아니 500자 아니 50자만 써 주시면 눈물 흘리면서 기립박수치고 주워먹음



무츠:
처음에 고구마 사는 단계에서부터 공범이라 아루지랑 같이 호박고구마를 살지 꿀고구마를 살지부터 의논하고 있다.
낙엽이 모자라면 뒷산에 널려있는 소나무 갈비라도 한 보따리 가져와서 같이 불 피워줄 것이다. 불 잘 붙제, 연기 안 나제, 꺼지지도 않제. 소나무 갈비가 딱이여! 하면서...
같은 고구마라도 무츠가 고른 고구마는 유독 맛있을 것 같다는 지역적 편견에 기반한 예상을 해 본다. 무츠라면 아루지가 사니존 뒤져서 고구마 주문하기도 전에 혼마루 밭에서 쿠와나랑 같이 기른 끝내주게 맛있는 유기농 고구마 품종별로 준비해서 먼저 군고구마 데이트 제안할지도 모름...

요즘 바빴잖여. 주인헌티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마당에 준비해 놓은 참인디, 같이 가 보겠는감?(미안하다 사투리 이게 최선임) 하면 거절할 수 있는 아루지? 없을 것이다
고구마 미끼로 카미카쿠시해도 상관없음
쉬벌 열 일 제껴놓고 따라감

고구마가 완성되면 아루지가 까주기도 전에 먼저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까서 아루지 한 입 주고 자기가 한 입 먹고 맛있구만! 하고 호탕하게 웃을 것 같다.


카슈:
카슈들은 스펙트럼이 다양할 것 같다. 아루지가 준비하는 거 하나하나 보면서 귀엽게 훈수 두는 소꿉친구같은 카슈가 있는가 하면, 또 어디에서는 "정말, 고구마를 너무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고? 아루지, 얼마 전에도 슬퍼했잖아?" 하고 약간 얄밉게 걱정해 주는 건강 지킴이 카슈도 있을듯.
이것도 나름 이벤트라면 이벤트인데, 아루지가 자기한테 말 안 하고 준비했다면 그 점에서 다들 약간씩 서운해할 것 같다. 깜짝이벤트라고 말해주면 이해는 하는데 다들 "다음번에는 나한테도 말해 줘야 해? 나, 그런 부분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한 마디씩은 하고 넘어갈듯
근데 이제 카슈들이 가장 신경쓰는 포인트는 다름아닌 <그래서 주인이 내 걸 따로 챙겨뒀냐>일 것이다...
우리 카슈 건 당연히 맨 처음 빼뒀지ㅎㅎ 하고 먼저 나서서 챙겨서 애정을 증명하면 잔소리 두 번 할 게 0.5번으로 줄지만 카슈 몫이 없다? 그러면 이제 좆된거임
약간 찐으로 상처받을지도 모름...

꼭 제일 모양 예쁜 걸로 챙겨뒀다가 예쁘게 까 주면서 아루지의 사랑에 행족해하는 카슈의 미소를 감상하도록 하자


만바:
내 안의 만바는 정체성 문제로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은근 인싸라는 이미지가 있어서(극 달면 더욱) 아루지 옆에 내내 붙어있지는 않고 사고칠 때 한정으로 딱 좋은 타이밍에 와서 수습하면서 일침 놓는 그런 타입이다.
그래서 아루지가 마음 먹고 이런 이벤트(?) 기획하는 건 모르지만 혼마루 어디에서 불이 났다? 그러면 저기 산에서 붓시 따라 수행하고 있다가도 귀신같이 그거 보고 달려와서 "또 불을 질렀군. 저번에는 선향 불꽃의 불씨가 잘못 옮겨붙었다고 했지. 이번엔 뭐지?" 할듯.
근데 아루지가 딴 칼들이랑 오손도손 평화롭게 둘러앉아서 군고구마 먹으면서 "너도 먹을래? 맛있어." 하면 딴말 1도 없이 손 내밀어서 달라고 할듯.
극이면 "단도들에게는 까 주더니, 내게는 시커먼 것을 그냥  주는 건가?" 하면서 자연스럽게 까 달라는 요구까지 하는 개체도 있을 것이다.
특이면 "나는 그냥 껍질째 씹어먹으면 되는 건가. 우츠시에게는 이것도 과분하긴 하지" 하는 애들도 있을듯.

근데 이제 특일 때 그러는 애들은 아루지가 사랑 진짜 퍼부어서 키운 초기도 개체들 중에서도 진짜 몇몇이고 극은 초기도면 한 반절은 다 저럴 것 같다.
근데 얼굴 보잖아? 거절 못하잖아? 까서 바치고 있잖아...
그것이야말로 만바의 매력이라고 생각함...


하치:
하치스카들은 잔소리를 안 하진 않을 것이다. 잔소리 포인트가 두어 개 정도 있는데 하나는 업무 시간에 일을 안 하고 다른 칼까지 일 못하게 방해했다는 정석적인 내용.
근데 이제 다른 하나가 포인트가 좀 독특할듯. "혼마루에서 불을 피우면 불편해 할 칼들이 있잖니. 당장 옆에 이치고히토후리 공부터 그래. 사니와 연수원에서 배웠을 텐데, 수많은 칼들을 다스리는 입장이니만큼 이런 일을 할 때에는 한 번 더 다른 칼들의 입장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다이묘 도구인 칼들을 여럿 다루는만큼 주인이 그 특성들을 잘 알고 제대로 다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 하는 애들도 있을 것 같다. 특히 극 달고 온 하치들...
얘네는 저렇게 주인이 뭐 실수하면 피해자 칼들한테 꼭 가서 사과하고 내가 말해놓겠다고 약속한 다음 마음 굳게 먹고 아루지한테 설교할듯.
근데 자기는 잔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주인한테는 마음이 워낙 약해지는 개체들이 대부분이라서 우라시마한테 하는 것보다 더 상냥하다... 결과적으로 사니와한테 1도 타격 안 들어가는데 또 자기는 아루지 혼냈다고 마음 아파할듯
고구마를 주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칼들에게 이런 방법으로 넘어갈 수는 없어. 주인도 잘 알고 있겠지? 언제까지나 이럴 수는 없는 거야" 하면서도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받음...
그렇게 주인이 준 고구마 소중하게 받은 뒤에는 하루종일 손수건에 싸서 들고 다니다가 밤에 자기 방에 가서 한참 들여다보고 자기 전쯤이나 돼서 예쁜 서양식 다기에 군고구마 세팅해서 홍차랑 같이 먹을듯.


카센:
아... 고구마 살 때부터 약간 난관임. "너는 탄수화물을 왜 그렇게 좋아하니, 방금 칠첩반상을 싹 비웠는데도 돌아서서 입을 끄는구나" 할 듯. 극 카센보다 특 카센이 더 엄격할 것 같다.
그리고 아루지가 '자기 몰래' 고구마를 '빼돌려서' 심지어 '업무시간에' 이걸 '자기 손으로 구워서' '딴 놈들 불러다가' 나눠 먹고 있다'? 특이든 극이든 일단 못마땅해하는데 포인트가 갈릴 것이다.
특카센이 못마땅해하는 포인트는 혼마루의 주인인 아루지가 당당하지를 못하고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이 부엌에서 뭔가를 빼돌린다는 부분이랑, 휴일까지 좀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업무시간에 튀어나가서 일 벌리고는 수습도 안 하고 고구마 구워먹은 자리 그대로 방치한 채 튀었다는 부분일듯.
극 카센도 '빼돌린다' 부분은 좋아하지 않긴 하는데, 그건 "주인이 그런 귀여운 면이 있긴 하지. 정말, 그럴 필요 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면 된다고 해도 그 아이는 변하질 않는구나." 하면서 애교로 봐 줄듯.
이제 "자기 몰래" "주인이 직접" "딴 놈들이랑" 이 부분이 진짜 문제라서 그렇지. 이 부분은...설명 필요 없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