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 번역이니 문제시 자삭. 여기서만 봐.


원문 링크: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5631902

주소에서 ◆빼면 됨.


전편 링크: 필살 간병인 오오쿠리카라 히로미츠-1

◆◆◆◇◇


"주군!!"


히라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중심을 잃은 몸이 무너져 내렸고, 대화 도중 주인의 시선이 부자연스럽게 허공을 떠돌기 시작하는 걸 알아챈 호네바미가 재빨리 사니와의 몸을 받았다. 겉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이거나 기껏해야 한두 살 연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몸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자면 지금은 끼니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있다 해도 좀 더 영양을 섭취해야 할 듯했다. 사니와의 팔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고쳐 안으며, 호네바미는 달려오는 히라노에게 말했다.


"히라노. 주인의 침실에 이불을 펴줘. 빨리."

"...네!!"


긴장한 얼굴의 히라노가 호네바미의 옆으로 빠져나갔다. 가볍고도 민첩한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과 동시에 정 반대 방향으로부터 마룻바닥이 내지르는 메마른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에 발소리 하나 내지 않는 남자인 만큼, 이건 사니와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호네바미에게 자신의 접근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내는 게 분명했다. 경보라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평소보다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남자는 호네바미로부터 사니와를 받아 들면서 자신이 가지고 온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끓는 물에 우려. 탕약이다."


오전에 도통 보이지 않는다 싶었더니만 이걸 사러 나갔던 건가. 이 사니와가 자신을 위해 탕약까지 사다 먹을 이는 아니니, 아마 그가 멋대로 사 온 거겠지. 보통 잡화점에 장을 보러 나갈 때는 근시와 사니와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혼자 다녀왔다는 것은,


"상태가 안 좋은가 보군."


호네바미는 오오쿠리카라의 품에 안겨있는 사니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 사니와는 비겁하게도 자신의 몸이 아프더라도 얼굴에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대체로 건실하게 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관심해서 그런 기미 하나 내비치질 않으니, 곁에서 지켜봐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호네바미는 히라노와 함께 이 혼마루에서 처음으로 현현한 도검으로 나름 고참인 셈이었지만 아직도 이 소녀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도통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오쿠리카라는 사니와를 양팔로 안아 들어 옮기면서도 자신의 뒤를 따르는 호네바미에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서 두고 갔던 거다. 얌전히 있으라고 말했건만, 듣지를 않아."


화났군, 라고 호네바미는 남의 일 마냥 생각했다. 오오쿠리카라도 대체로 감정을 읽기 힘든 편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주인이 잘못한 거니까. 돌이켜보면 호네바미가 말을 걸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기 전, 사니와는 이상한 방향에서 나와 복도를 걷고 있었다. 화장실과 우물이 있는 방향이긴 했지만 그쪽에는 대장간도 있었다. 몰래 들어가서는 자원의 배합을 고민하거나 정리를 하거나 했을 게 분명했다.


사니와의 침실에 도착하자 양팔로는 사니와를 안아들고 있기 때문인지 오오쿠리카라가 눈으로만 신호를 보내왔고, 이에 호네바미는 무릎을 꿇으며 장지문을 밀어 열었다. 그리고 주인을 안아 옮기는 남자의 뒤를 조용히 따라 들어가 장지문을 도로 닫았다. 방 안에는 이미 이불과 수건, 갈아입힐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히라노가 호네바미를 바라보며 말없이 재촉했다.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지."

"그래."


간결한 대답이었다. 그러고는 한 번 돌아보지도 않은 채 사니와를 이불에 눕혀주기 시작했다.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으면서도 목소리는 한없이 고요했고, 소녀의 마른 몸을 내려놓는 그 동작은 몹시 신중했다. 호네바미는 그 모습을 곁눈질한 후 히라노와 함께 사니와의 침실을 나섰다. 한숨을 한번 흘리면서.


"히라노, 탕약이다. 오오쿠리카라가 사 왔다는군."

"알겠습니다. 부엌으로 가죠. 호네바비 형님도 함께요. 호리카와 씨가 계신다면 주군께서 일어나셨을 때 드실만한 음식도 함께 준비해 주실 겁니다."


히라노는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도 잘 챙겼다. 호네바미는 이 어려 보이기만 하는 형제의 그런 부분이 종종 감탄스러웠다. 두 사람이 이 혼마루에 현현한 날, 오늘처럼 상태가 나빠져 쓰러진 사니와의 모습을 얼어붙은 채 지켜보기만 했던 호네바미와는 달리 이것저것 배려하며 끝까지 곁에서 도운 것도 히라노였다.


―――히라노와 호네바미는 '이 혼마루'에서 최초로 현현한 두 자루로, 현재 8자루의 도검과 한 명의 사니와로 이루어진 이 혼마루의 진실을 아는 몇 안 되는 검이도 했다. 지로타치와 사요 사몬지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무언가를 알아챈 듯했고, 우구이스마루와 이마노츠루기, 호리카와는 짐작하고 있는 듯했으며 호네바미와 히라노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오래된 흉터로 뒤덮인 몸에 종종 건강이 나빠지곤 하는 주인. 이상할 정도로 깨끗한 혼마루. 절대 전장에 나서지 않는 근시와――――존재하지 않는 초기도.


그리고 호네바미와 히라노는 현현 직후, 사니와가 중얼거린 말을 두 사람은 절대 잊지 못했다. 이 혼마루는 오랫동안 우리 둘뿐이었으니까. 혀를 차며 두 사람에게 혼마루의 생활에 대해 가르쳐주던 오오쿠리카라가 이런 것에 아주 익숙한 듯이 보인 점에서도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상대적으로 보다 격렬한 일을 하고도 남았을,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 남자가―――전장에는 일절 나가지 않은 채 사니와의 곁에 머물기만 한다니. 그러면서도 때때로 내번을 하며 대련 상대가 될 때마다 아직 숙달되지 못한 다른 이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그가 강하다는 걸 통감하곤 했다. 숙련도의 차이를 감안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봐주지는 않는, 정말로 실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방식의 대련이었으니까.


히라노와 호네바미는 알았다. 자신들의 주인을 상처입힌 것이 무엇인지를.

그녀를 처음 만나고 이에 대해 모두 들었던 날, 항상 의연하던 동생은 자신의 무릎 위에 놓인 주먹을 보다 힘주어 쥐며 울었다.


강해지겠습니다, 주군.


떨리고 억눌린 목소리를 겨우 짜내는 동생을 향해 병상에 누워있던 사니와는 그저 웃었다. 사니와는 전장으로 향하는 도검남사에게 반드시 도장을 챙겨 주었다. 혼마루에 있을 때도 가능한 한 무장한 채로 지낼 것. 항상 인원을 반으로 나눠 교대로 불침번을 설 것. 사니와가 괴로운 얼굴로 처음에 내린 그 명령을 이 혼마루의 도검들은 반드시 지켰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혀를 차는 소리가 반겼다. 정말이지. 막 깨어난 사람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사니와가 쓴웃음을 지으며 눈꺼풀을 밀어 올리자, 언제나처럼 익숙한 근시의 무뚝뚝한 얼굴이 자신을 반겼다. 옮겨준 거야? 라는 물음에는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니와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굉장히 따갑고도 엄한 시선이 날아와서 마지못해 그만뒀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나가기 전에 뭐라고 했지."

"?"

"내가."

"...'곧 돌아오지. 일어나지 마.'"


두 번째 혀 차는 소리. 요약하자면 기억 하면서 왜 일어났냐 바보, 라는 뜻이었다. 사니와가 헤실헤실 웃자 그 흔들림에 이마에 올려져 있던 수건이 미끄러졌다. 근시는 이를 주워 물에 한번 담구고는, 차가워진 수건을 다시 이마 위에 올렸다. 바지런히 움직이는 게 몸에 익은 듯한 행동. 이불 안에서 꾸물꾸물 움직여보고 느낀 감촉에 의하면 옷까지 갈아입혀 준 듯했다. 이것도 익숙한 일이겠지만, 미안했다.


"이래저래 죄송합니다."

"상관없어. 이제 와서 새삼스레."


앗, 그 부분에 대해 화난 건 아닌 것 같네. 그보다 진짜로 신경 안 쓰고 있구나. 미안해라. 하지만 오오쿠리카라의 화가 풀린 건 아닌지 사니와를 바라보는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사니와는 어깨를 움츠리며 입 부근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당신은"

"...넵."

"당신은 왜 항상 그러는 거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았다. 오오쿠리카라는 굉장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사니와는 고개를 기울였다. 수건이 또다시 미끄러지려고 해서 한쪽 팔을 들려고 했지만 반사적으로 팔을 뻗은 근시가 다시 한번 수건을 제대로 얹어줬다.


"기분 나쁘니 그만해라."

"어어... 기, 기분이 나쁠 정도인가..."

"얌전히 있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막무가내로 출진을 거듭하는 버릇이 있던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진 않은데요..."


작게나마 말대꾸에 가깝게 중얼거렸는데 그게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오오쿠리카라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지는 모습에 사니와는 아차 싶었다. 남자의 손바닥이 사니와의 이마와 그 위에 올려진 수건까지 덮어버리더니 그대로 베개에 푹 파묻듯 내리눌렀다. 아프진 않았지만 위압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인간이다. 우리와는 달라."

"...그렇지."

"자신이 망가지기 쉬운 존재라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냥 멍청한 거고."

"그건 맞지만, 오오쿠리카라, 저기"

"뭐지."

"미안. 확실히, 그, 일어나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움직일만해서 자원 조합에 대해 이래저래 고민했던 건 잘못했지만, 그... 일어난 건, 그러니까, 그저 눈이 떠져서, 그래서"

"말이 많다."

"넵."


이 남자는 성미가 급했다. 이건 의외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였지만. 단칼에 말이 잘려 한차례 탄식한 후, 사니와는 최후의 저항을 하듯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냥, 일어났더니 오오쿠리카라가 없어서. 그래서 찾으려고."


별 내용 아니었지만 왜인지 그 직후 내려앉은 침묵에 급속도로 부끄러워졌다. 아무 목적 없이 일어났던 건 아니라는 사니와 나름의 변명인 셈인데, 뭐라도 좋으니 반응을 해줬으면. 사니와는 결국 오오쿠리카라의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자신의 눈두덩이를 손으로 가렸다.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잡화점에 갈 예정이었지."

"...맞아, 그랬지."

"효험이 있기로 유명하다는 탕약 이야기를 호리카와가 들었다고 했고."

"아, 설마 그것 때문에 자리를 비웠던 거야? 혼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말했잖아."

"미안 머리가 멍해서 제대로 못 들었어."


세 번째 혀 차는 소리. 정말 부끄러웠다. 사니와 혼자서 헛짓거리 한 거니까. 오오쿠리카라는 잠깐 침묵한 후, 옆에 가져다 둔 듯한 쟁반 위의 찻잔에 주전자를 기울여 따듯한 물을 따랐다. 그 동작보다 한 박자 늦게 탕약 특유의 강한 향이 코를 찔렀다. 사실 사니와는 이 향을 싫어하진 않았다. 다시 한번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근시인 남자의 팔이 가뿐하게 등을 받쳐주었다. 도검남사 중에서는 비교적 가는 편이라고 해도 사니와 입장에서는 억세고 강인한 남성의 팔이었다. 그렇게 내민 찻잔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두 모금. 향이 싫지 않다고 해도 혀에 남는 이 쓴맛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다 마신 후 우으에엑, 하고 입가를 비비자 이번에는 그가 한쪽 팔로 뚜껑을 연 돌솥에서 훅 하고 좋은 냄새가 났다. 호리카와와 그가 한 요리는 냄새부터 달랐다. 이건 분명 호리카와가 만든 요리였다.


"먹을 수 있으면 먹으라고, 호리카와가."

"...잠깐만, 나 얼마나 잔 거야?"

"지금은 저녁이다."

"엄청 잤구나."


돌솥에서 작은 그릇으로 잡탕 죽을 덜은 오오쿠리카라가 수저를 내밀었고, 사니와는 이를 받아 들―――었지만 땡그랑, 하고 다다미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사니와가 다급히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먼저 수저를 집어 든 오오쿠리카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헹궈다 줄 심산인 듯했다. 사니와는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죄송합니다."


대답 대신 한숨이 돌아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니와의 방은 부엌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꽤 시간이 걸렸지만 사니와는 내내 이불 위에 엎드려 있었다. 반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듯이.


"일어나."

"넵."


시키는 대로 얌전히 고개를 든 사니와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다시 한번 아까와 똑같이 곁에 정좌하고 앉은 근시가 한쪽 팔에는 그릇을 들고, 다른 팔에는 수저를 쥐고 자신을 향해 내밀고 있었다. 그것도 손잡이 쪽을 그가 단단히 잡은 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을 딱 한입 만큼만 떠서 든 채로. 돌솥 보온력 진짜 끝내주는구나. 가 아니라, 이건 사니와보고 "수저다. 들어라."라면서 내미는 게 아니라 입이나 벌리라고 재촉하는 그거잖아.


"진심으로... 거듭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서 먹기나 해. 어차피 익숙하니까."


으으으, 지당한 말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말을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말 부끄럽고 미안해 죽겠는 걸 이해해 주길. 반쯤 열린 입 속으로 수저가 들어왔다. 하지만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사니와의 혀가 수저를 감싸 죽을 끌어내린 타이밍에 맞춰 살짝 치켜올리기까지 정말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오늘도 근시가 너무나도 뛰어나네요. 일단 하면 익숙해진다, 라고 한때 그가 말했었지. 입에 머금은 부드러운 풍미를 씹어 삼키자 후, 하고―――옆에 앉은 남자의 표정이나 몸짓은 그대로였지만 그 분위기가 어렴풋하게나마 풀리는 것을 사니와는 느꼈다.


사니와는 다시 한번 굉장히 미안해졌다. ―――우리 혼마루의 근시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상냥하다.


"미안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흘린 말이었다. 남자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움직여 죽을 뜨고는 사니와의 입가로 가져왔다.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 사니와는 몇 번이고 말했다. 미안해, 오오쿠리카라, 미안해. 상관없다, 라고 그가 답해준 건 사니와가 마지막 한 숟갈까지 완전히 삼키고 나서 말한 물기 어린 사과에 이르러서였다. 비어버린 그릇과 의무를 다한 수저를 쟁반에 올려놓고 오오쿠리카라는 다시 한번 사니와를 도로 눕혀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울지 말고 자라."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눌러 삼켰다. 사니와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뒤집어쓰려고 하자 오오쿠리카라의 팔이 그러지 못하게 막았다. 어느새 그는 정좌가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앉아있어야 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이었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고, 어렵기만 한 오오쿠리카라가 실상은 정말 상냥한 남자라는 걸 예전에는 몰랐다. 그랬던 주제에 지금은 그의 손을 빌려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불현듯 한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입술을 짓씹었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우는 여자라니, 정말 못나 보이겠지. 사니와가 다 시한번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가 완강히 막았다. 본인이 자라고 해놓고 대체 뭐가 불만인 걸까.


"...안 가겠다."

"...?"

"...잡화점이든 어디든, 갈 일이 있으면 당신과 가지. 그러면 되나."


툭 던지는 듯한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다. 땅거미가 드리워져 어둑한 방 안에 황금색 눈동자가 소리 없이 흔들렸다. 사니와는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가? 확실히 눈을 떴을 때 그가 보이지 않아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당황하고 말았던 건 사실이었다. 그야 그는 항상 곁에 있었으니까. 사니와가 멍하니 생각하는 동안 눈을 깜빡일 때마다 툭 투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고―갑자기 짙은 그림자가 세상을 덮었다.


"어"


자신의 것이 아닌 숨결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 따듯하고도 미지근한 감촉이 눈가에 닿았다. 조금 까끌까끌한 것도 같은, 습기를 머금은 그것은 눈가를 따라 움직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시야에는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 없는 목덜미와 쇄골이 들어왔다. 한차례 강하게 빨려 나가는 느낌을 끝으로 그 무언가가―――입술과 혀가 떨어졌다. 기분 탓일까, 사니와의 관자놀이 부근에 코끝을 대듯이 움직이며 멀어진 그의 눈동자는 혼란에 빠진 사니와와는 대조적으로 차분했다. 무서울 정도로.


"오오, 쿠리카, 라"


손가락 끝이 눈가에 닿았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오오쿠리카라가 장갑을 끼고 있지 않다는 걸 사니와는 그제야 깨달았다. 손끝이 뺨을 타고 그대로 턱으로, 목덜미로, 그리고는 어깨죽지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사니와는 겨우 몸을 떨었다. 시선이 틀어졌다. 어두운 탓인지 평소보다 가늘어진 동공이 사니와의 목덜미를 응시했다. 오오쿠리카라. 사니와가 잠긴 목소리로 재차 부르는 것과 동시에 그가 머리를 숙였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을 느낀 찰나―――――――통증이 밀려들었다.


"아...?!"


콱, 하고 소리가 날 정도의 힘이었다. 그의 송곳니가 보통보다 날카로운 편이라는 걸, 짐승의 잔재와도 같은 그것이 부드러운 살을 파고들어서야 사니와는 처음으로 알았다. 정말로 뜯어먹히는 듯한 힘으로 온몸이 삼켜져 갔다. 사니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아, 아파."


"... ..."

"오오쿠리카라...!!"


파고들었던 치열이 살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혀가 핥는 느낌에 사니와는 히익, 하고 소리를 흘렸다. 생각보다 높게 내질러진 것에 놀란 사니와는 자신의 입을 꾹 눌러 닫았다. 그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던 오오쿠리카라의 한 마디.


"멈췄군."

"...네?"

"그럼 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오오쿠리카라는 물러나더니 옆에 있던 쟁반을 들고 일어났다. 사니와는 혼란스러웠다. 누구나 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휙휙 바뀌지 않는다고. 멈췄군, 라고 한 걸 보면 설마, 설마 눈물 이야기인 걸까.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핥거나 깨물 필요는 없지 않나? 필요니 뭐니를 따지는 시점에서 사니와는 여전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탁, 하고 장지문을 닫고 사라진 근시의 뒷모습을 사니와는 그저 멍하게 바라봤다. 방금 대체. 사니와는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그의 입장에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이쪽은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우니 하지 말았으면 했다―사실 당황하며 하지 말라고 막더라도 그 이유가 아파서일 뿐이라는 걸 사니와가 깨닫는 건 먼 훗날의 일이었다.



◆◆◆◆◇


오오쿠리카라는 조용히 눈을 떴다. 애초에 선잠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빠르게 의식이 떠올랐다. 옷차림도 취침 시 입는 잠옷이 아니라 무장만 해제한 평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이 혼마루에서는 인원을 반으로 나누어 도검남사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는 게 원칙. 말해두지만, 오오쿠리카라가 오늘 불침번이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평소에도 선잠을 자는 편인 데다 잠옷을 입고 취침하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 뿐. 이건 사니와를 제외한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불침번을 서는 것이 그렇게까지 유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혼마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검남사의 무장이 아니라 혼마루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결계와 정보다. 혼마루의 위치가 적에게 발각된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즉,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 한, 그리고 적이 곧 습격할 거라는 징조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 한, 혼마루의 결계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오오쿠리카라의 주인은 단 1초도 쉬는 일 없이 이 혼마루에 필요 이상으로 강력한 결계를 펼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니와는 결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도 단도를 하거나 도장을 만든다거나 하는 등 영력을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기에 보통은 사니와가 일상생활 하는 동안 일정 수준의 결계만을 유지했다. 즉, 결계 자체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고 업무를 보다 긴급사태가 벌어졌을 때 비로소 영력을 사용해서, 또는 혼마루에 있는 신검의 도움을 받아 결계를 강화했다. 그런데 이곳의 사니와는 일상 업무에 지장이 생기는 한이 있어도 결계를 계속 강화한 채로 유지했다. 그리고 이건 그녀가 이 혼마루에 부임한 날 이래로 변함없었다. ―――단 한 자루, 사니와가 살아남은 도검만을 데리고 이 혼마루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에 떨고 두려워하며, 사니와는 자신의 목숨을 모조리 태우는 한이 있어도 이 혼마루를 지키려고 했다.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오오쿠리카라는 생각했다.


오늘이 그날일 거라 예상했기에 평소보다도 더 얕은 잠이었다. 오오쿠리카라는 소리 없이 방을 나섰다. 최근 정부로부터 도종이 바뀌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애초에 전장에 나가지 않는 오오쿠리카라에게 있어서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밤눈이 밝아진 건 괜찮은 변화였다. 불과 몇 걸음. 그 정도만으로도 오오쿠리카라는 목적지 앞에 설 수 있었다. 근시의 침실은 야간경호를 위해 사니와의 침실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들어가지."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테지만, 오오쿠리카라는 굳이 소리 내 말했다. 거의 습관에 가까운 행위로 줄곧 바뀌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단 한 마디도 닿지 않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까 오오쿠리카라의 침실까지 흘러 들어왔던 소리는 사니와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당연하게도 더욱 커졌지만 여전히 미약했다. 흐느낌이었다. 그것도 낮에 울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허파를 전부 짓눌러 으깨겠다는 듯 억눌린 호흡의 흐느낌. 오오쿠리카라는 펴져 있는 침구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사니와가 끌어안은 채 자신의 얼굴에 짓누르고 있는 이불을 뜯어냈다. 아직 꿈결을 헤메는 팔이 끌어안을 것을 찾아 허우적거리자 자신의 한쪽 팔을 내주면서도, 반대쪽 팔로는 자신의 다리 위에 팔꿈치를 내려놓으며 오오쿠리카라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1년 반이나 지났다고 해야 할지, 고작 1년 반이 지났다고 해야 할지.

―사니와와 오오쿠리카라가 동료들을 모두 잃은 날로부터, 1년 하고도 반.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다. 그저 근면하고 고지식한, 굳이 표현하자면 지기 싫어하는 면도 있는 어디에도 있을 법한 이 소녀의 혼마루가 어느 날 공격받았고, 혼마루에 있던 도검 전부가―――그날, 평소 교대로 행하던 근시를 우연히 맡은 한 자루를 제외하고 서른아홉 자루 전부 파괴됐다.


혼마루 습격 사건, 이라고 하면 사니와와 도검 사이에서는 교훈과 애도를 담아 각자의 기억에 새긴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습격당한 혼마루는 총 스물셋. 순직한 사니와가 일곱, 저주를 받은 혼마루가 다섯. 그리고 사니와의 목숨은 건졌지만 재기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입은 혼마루가―넷.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 아마 이 사니와가 담당하던 혼마루였다. 정말로 대상을 고르지 않은, 무차별적인 습격이었다. 그중에는 습격을 알아채고 막아내는 데 성공한 혼마루도, 저주를 받아 불타면서도 단 한 자루의 검도 잃지 않은 혼마루도 있다고 했다. 오오쿠리카라는 정부가 전달하는 그 모든 정보를 모조리 차단하고, 그저 정부가 마련했다고 하는 새로운 혼마루로 이동했다. 인형이나 다름없게 된 주인을 데리고.


힉, 하고 새된 소리가 울렸다. 목 안쪽으로 눌러 삼킨 울음에 자신의 호흡조차 막아버리며 마른 체구의 소녀가 울었다. 괴로운 듯 이리저리 비틀리는 그 몸을 오오쿠리카라는 말 없이 안아 자신의 무릎 위에 눕히고는 그 등을 가볍게 문질렀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정도로 천천히 손바닥을 움직이고 있자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호흡이 가라앉았다.


사니와는 지금도 그날의 꿈을 꿨다.

오오쿠리카라도 잊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날, 오오쿠리카라의 주인인 소녀는 우연히 고열에 시달렸다. 평소 건강한 편이었지만 하필이면 목욕 후 한기가 들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 며칠 동안 근시였던 오오쿠리카라는 마냥 웃기만 하는 쇼쿠다이키리에게 떠밀려 그녀의 곁을 지켰다. 옷을 갈아입히는 것과 약의 준비는 미다레와 야겐이 도맡아 하고 있으니, 자신이 곁을 지킨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며 오오쿠리카라는 얼굴을 구기고는 했다. 오오쿠리카라는 지금도 생각했다. 만약 그날, 근시가 자신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서.




쿵, 하고 땅울림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혼마루가 크게 흔들렸다. 앓아누운 주인은 당연하게도 습격을 막아줄 결계를 강화할 여력이 없었고, 결계는 결국 파괴되어 적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운이 나빴다고 말한다면 그뿐인 이야기. 사실 사니와의 건강은 영력에 직결되고, 주인의 영력은 도검남사와 연결되어 있다. 즉, 주인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건 도검남사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소리다. 정말로, 그저 운이 나빴다.


주인을 끌어안은 채 문을 박차고 나온 오오쿠리카라를 향해 도망치라고 외친 건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손이 자유롭지 않았던 오오쿠리카라를 덮치는 적을 측면에서 돌려차기로 날려 보낸 건 츠루마루 쿠니나가. 두 자루 모두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다. ―――혼마루 내에서는 도검 대부분이 무장을 해제하고 있었다. 도장도 방어구도 없이, 있는 거라고는 그 손에 쥐고 있는 자신의 검뿐. 그럼에도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뽑지 않을 도검 따윈 단 한 자루도 없었다.


오오쿠리카라, 부탁하지. 오늘의 근시는 자네 아닌가. 그런 이유로, 그런 웃음을 지어 보인 하얀 하카마의 남자는 전투의 혼돈 속으로 사라졌고, 안심시키려는 듯 뒤따라갈 게 따위의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내뱉은 외눈의 남자는 이미 왼팔을 잃은 상태였다. ――혼마루 안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목숨은 자신들의 주인이었다. 모든 검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잔혹하게도 오오쿠리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초에 딱히 소원한 사이도 아니었다. 지기 싫어하면서도 말수가 많은 편은 또 아닌, 나름 명석한 이 소녀는 쇼쿠다이키리와 함께 종종 오오쿠리카라를 짜증 나게 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연약하고 가냘프더라도 자신들의 주인이었다. 우선은 이, 잃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을 안전한 곳까지 옮기는 게 최우선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떠올리는 광경이 있었다. 태도에게 찔릴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한 오오쿠리카라의 뒤로부터 한 외침이 들렸다. 주군, 하는 다급한 음성이 고막을 뒤흔드는 것과 동시에 날아온 단도가 적의 머리를 꿰뚫었다. 그리고―――그리고는, 등 뒤에서 살덩이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신음이, 적의 숨통을 꿰뚫은 채로 산산조각나 흩어지는 날붙이의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고열로 인해 몽롱할 텐데도, 그 순간 의식을 되찾은 주인이 부서진 단도 파편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


라고. 오오쿠리카라는 이를 악물었다. ―훌륭하다. 주인을 지키는 단도로서 그 존재 의의를 다했다, 고. 땅으로 떨어져 빛으로 화해 흩어지는 동료를 보며 마음 속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오오쿠리카라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반드시 돌아오마. 주인을 안전한 곳까지 도망치게 한 뒤에, 정부와 연결된 저 문 너머로 보낸 뒤에. 바로.


――――하지만 그 다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목적지인 그 문이 오오쿠리카라의 시야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휙 하고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오오쿠리카라가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한 박자 늦고 말았고, 그대로 등 뒤를 강타한 날카로운 충격이 달리고 있던 오오쿠리카라를 거세게 떠밀어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오오쿠리카라는 기울어진 몸을 필사적으로 비틀며 굴렀고 그 속도와 기세가 잦아들 때까지 등을 지면에 갈며 착지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안고 있던 주인과 함께 오오쿠리카라는 문을 넘어서까지 미끄러진 상태였다. 그리고,


"주인을, 부탁한다."


아마 가장 귀에 익은 목소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인은 다시 한번 그 눈꺼풀을 억지로나마 들어 올려―――망연자실한 오오쿠리카라를 한번 올려다본 후 그 시선의 끝에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봤다.


"――――――하치츠카?"


열 때문인지 어눌한 그 목소리에 부드럽고도 부드럽게―――그저 사랑스럽다는 듯 웃음 지으며 그토록 미려한 얼굴을 피와 먼지로 더럽힌 남자가 쥐고 있던 검을 높이 치켜올렸다.


"그만둬!!!"


그리고는 오오쿠리카라의 고함에도 아랑곳 않고, 문 너머와 혼마루를 연결해주는 회로를 파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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