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음모론을 당연한듯이 떠벌리는 놈들이 있는데 전부 과학적 도식의 산출물임
사실 박정희 집권 초기에만해도 네덜란드식 균형개발모델이 우세했었다 근데 나중에 계량경제학쪽에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불균형 개발로 수정한거고 그래서 한국 산업화가 성공할수 있었던거고 전자를 따라한 인도는 폭망
호남은 슨상님 전까지만해도 공화당 텃밭이였음 그래서 유권자 유지 차원에서라도 나중에 중국과 교역을 대비해서 수도이전과 함께 여수에 대규모 산단을 지을계획이였고 물론 암살후 흐지부지
그래서 영남지방은 더 잘됐을까? 부산,경남,대구 등지에 위치했던 경공업단지가 망하면서 덩달아서 몰락
내막을 알고보면 박정희만큼 지역차별 논란에서 억울한 인물도 없을꺼다
참고로 저때 슨상님은 뭐하고 계셨냐고? 빨치산 출신 사이비 유사학자한테서 들은걸로 대중경제론 집필하고 계셨다
깨시민 진보여러분 비추만 박지말고 반박을 좀 해보세요
아무 생각도없이 고향이 경북이라서 지었다니 어이가 없어서 ㅋㅋ
뚜기 쩔뚜기~ 쩔뚝쩔뚝~
구미는 애초에 박정희 아니였음 깡촌으로 남아있었을 도시였음
구미빼고 인정. 호남이 입지가 안좋긴 했지 ㅠㅠ
그래서 전주에 박정희 좋아히는사람들 꽤많고 거기서 박정희 미니동상도 봤다(단 1명뿐인 호남 자한당국회의원도 전주지 아마?)
순천 이정현은 이제 무소속이고
구미는 경부선이라 당연히 후보지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 고향 버프아님??
호남석화(현 롯데캐미칼)고 박정희 때 아님?
저때 경공업의 몰락이 부마 소요사태같은 정권 몰락의 단초를 제공했다는게 아이러니
그래서 슨상님하고 일대일로 붙을 때 중정 끌어다가 지역 갈등 조장하고 하나회 밀어줬구나...
광양제철은 전두환때 한거라
솩통피/71년 대선때 호남사람은 호남출신 인물 뽑아야 신토불이론 후에 4자 필승론 전략적으로 밀어 붙이면서 영남은 버리는 카드로 쓰고 호남은 자기 텃밭 구도로 만들면서 보신을 위해 누구보다 지역감정을 잘 이용해 먹은 슨상님은 어따 팔아먹었당갘ㅋㅋㅋㅋ
위의 이유도 있겠지만.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서쪽이 막혀 버려서 어차피 서울-부산-일본-미국라인이 생명라인이 되다보니 경상도에 공장을 많이 짓게 되었을거구,전라도 출신들도 고향을 버리고 부산지역에 공장을지었지.미원,금호철강(실업),등등,
구미만 봐도
27.35// 미국 갈꺼면 서해안, 남해안이 더 빠르고 일본 가도 대부분 도쿄 오사카로 가기 때문에 서해안 남해안이 더 빠른데?
219//71년 대선은 쿠데타 이후 최초로 민주당계 정당이 박정희하고 대등하고 붙은 일대일 구도 대선이었는데 뭔 4자 필승론? 그건 87년 대선이겠지 ㅋㅋㅋ 슨상님 소리만 나오면 흥분해부러?
응 구미 민주당 승리~ 경북괴 독립~ - dc App
하다하다 할말이 없으니깐 물고 늘어지는게 구미ㅋㅋ 누가보면 구미에만 공단 조성한지 알겠네
1968년까지 구미는 농촌의 소·도읍으로 공업도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부고속도로9) 의 착공으로 그 주변에서 공업단지를 물색하던 정부는 구미를 선정하여 1969년 3월 지방공업단지 로 개발하였다. 1973년에는 1단지의 일반단지와 전자단지 조성을 완료하였다. 공업단지가 가동되면 서 점차 인구가 증가하자, 무질서한 택지개발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기존 시가지 인근에 구 미 신공업도시를 계획하였다. 1977년 7월 23일 「구미신시가지조성사업계획」이 대통령 재가를 받았 으며, 1977년 12월 일단의 주택지 조성사업에 착수하였다. 개발기간은 1977년부터 1985년까지 8 년간이었으며, 개발계획 면적은 약 107만평에 목표인구는 5만 4000명이었다. 2007년 말 현재 구 미시의 인구는 약 3
9만 명이다. 행정구역의 조정 등으로 인해 주변지역을 포함한 인구이지만, 초기 에 계획되었던 목표인구의 약 8배 정도로 성장하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당시 한국의 주요 교역상대는 이미 미국과 일본으로 바뀐지 오래라 최소한의 경로를 요구하는 입지내에서 찾아냈어야 했는데 남해안이 교통의 요지냐? 남해안 고속도로 개통이 언제더라?
특히 양적으로 한국전쟁의 결과로 부산이 팽창되며 경제 규모가 커졌고 이 풍부한 노동력과 기존의 기업(예들 들면 신발사업) 거기에 기술 가진 사람들이 새로 옮겨와 만든 기업들과 대외무역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줬고. 정부는 경부축을 중심으로 전후복구사업을, 박정희 정권기에는 산업의 중심으로 둘 수 밖에 없었음. 그리고 규모는 커졌지만 50년대 부산 노동 상황은 역시 전후 혼란 속에 전쟁 전보다 별로 안좋아짐. 50년대 후반 수도권 중심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들은 특화 산업이 자리잡기 시작한 상황에서 '박정희는 집권 후 그 상황을 인식하고 이용한 것임'
70년대 후반 넘어가며 중공업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하고(애초에 투자액도 이쪽이 많고) 대외의존적 경공업 중심의 부산은 이미 하락세로 돌아서기 시작, 정치적 소요가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부산과 주변지역은 고도성장기 초중반을 이끌다 역할을 다하고 내려오기 시작한 것임. 이제는 중국과 교역이 열린지 20년이 되고 경부축이라는 말조차 쇠퇴한지 오래지. 박정희 정권은 대내외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고 그 과정은 6.25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결과물의 하나였던 것이지
결코 어디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와서 이런 단순한 결과가 아님. 그런 수준의 지도자였으면 나라 망쳤지. 어디 지역에서 대통령 나와서, 어디 지역에서 표 얻어야 해서. 이런 정치공학적인 자기 당파의 이익을 되지도 않는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서 표 따내면서, 실제로는 국민, 국가에 별 도움 안되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이후임
그리고 군을 매개로 한 충성심과 학연이 70년대 들어가서 강해지기는 했는데. 이때도 최고 피해자는 전라도가 아님. 60년대 박정희 집권 초기 권력경쟁에서 밀려난 것은 이승만 시절 중용되던 이북출신들
구미는 누가봐도 박정희빨로 큰 도시인데 뭔 합리적 선택이여 유신도 합리적 선택이냐?
하긴 대구는 소외받았다던 전라도보다 못사니 - dc App
구미가 산업단지 된건 낙동강 덕분에 전력수급이 쉬운거랑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서 그런건데 차라리 경부고속도로도 구미 밀어주려고 지었다고해라
박정희가 억울한건 이제 막 경부선 중심 개발에서 탈피하려고 한 즈음에 암살당해버림 그 증거로 신 수도, 가로림만 프로젝트 모두 호서지방에 위치했었음
ㄴ근데 지만원 같은 애들이 박정희 안죽었으면 목포광역시도 있었을 거라 주장하던데 근거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