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짤방은 영동선 이설 공사의 전체 공사 개요도요. 이 공사에서 가장 주가 되는 것은 전장 16.24km에 이르는 솔안 터널 공사라 할 수 있소. 위 그림은 이 터널 공사의 전체적인 개요를 잘 보여주오. 아래 짤방은 제2사갱 출입부의 전경이오. 산자락의 절개부 만으로도 이 곳의 험준함이 느껴지지 않소? 이상의 화상 자료는 대우 컨소시엄 측의 홍보 사이트에서 빌려왔소. 영동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게 뭐하는 노선인지 잘 모르는 노선이오. 또는, 강릉 넘어갈 때나 타는 낡아빠진 노선 정도로 희미하게 아는 경우가 많소. 조금 더 아는 사람은 그 험준한 산맥과 눈으로 기억되는 강원도의 산악철도 노선 정도로 알 것이고, 여기서 더 들어간다면 양원, 승부 같은 간이역이나, 억지춘양의 춘양역, 철암역 정도를 아는 사람이 있을게요. 그러나, 일부러라도 이 철도를 타러 오는 사람은 생각만큼 흔한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철도건설사에 있어서 가장 혼이 담긴 노선이 바로 영동선이라 할 수 있고, 또한 한참 가난했던 시절에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철도였기도 하오. 1950년에, 광복의 기쁨과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도 군관민이 한덩어리로 피땀을 흘려서 건설한 노선이기도 했고, 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필수적이었던, 또한 동력원으로서도 중요했던 석탄을 공급하는 중추였으며, 말 그대로 거대한 장벽과도 같던 강원도를 가로지를 수 있던 귀중한 길이기도 하였소. 지금은 태백선의 개통과, 석탄산업의 합리화, 고속도로망의 확충으로 그만한 중요성은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서, 또한 지역의 충추로서 기능하고 있소. 이 노선의 가장 중핵이라 할 곳을 꼽으라고 할 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백산에서 도계에 이르는 통리재 구간을 들 수 있소. 어떤 의미에서 이 나라 철도 중 가장 험준한 구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 꼽는 3대 고개들을 다 합쳐도 이 구간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소. 이 구간의 개업은 일제 당시 삼척철도주식회사라는 사철에 의해서 1940년에 이루어졌소. 당초의 건설은 묵호항에서부터 철암까지로, 그 노선의 선정을 봐도 알겠지만, 여객 수송 자체보다는 철암이나 도계 일대의 석탄이나 임산자원을 동해나 묵호같은 동해 인근 항만을 경유하여 수송하기 위한 철도였소. 따라서, 이 구간의 철도는 신속성이나 운전의 편의성 보다는, 가급적 염가로 화물을 수송하는데 그 목적이 맞추어져 있던 노선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오. 이 구간 노선의 구성을 보면 동해에서 도계 까지는 그런대로 곡선과 구배는 있지만 별다른 특별한 장치 없이 운행하는 것이 가능하였소. 그러다가, 도계에 이르러서 거대한 벽을 마주치게 되오. 그것이 바로 통리재 되겠소. 이 통리재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해서, 철암선은 두 가지 운행기법을 도입하였소. 하나는, 나한정과 흥전 사이에 30퍼밀 경사를 이루는 1.7km의 스위치 백 선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심포리와 통리 간에 설치되었던 15도 경사, 최대 282퍼밀에 달하는 1,080m짜리 인클라인 철도였소. 이 두 시스템은 일제 패망 이후, 또 영암선(영동선 영주-철암간) 개통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던 시스템이었소. 그로 인해서, 동해를 출발한 열차가 철암까지 가기 위해서는, 나한정 역에서 후진해서 흥전까지 올라가고, 여기서 또 심포리까지 운행하고, 심포리에서는 객차나 화차를 하나씩 분리하여 와이어가 연결된 완급차에 연결, 와이어를 감아 한대씩 통리로 올려보내야 했소. 그러다 보니 이 구간의 수송용량은 참으로 허접해서, 1회 운전에 13분씩, 올리는 것은 화차를 포함 34톤 남짓, 내리는 것은 화차 포함 60톤 남짓씩 밖에는 수송하지 못하였소. 실제, 하루 이 구간의 수송능력은 745톤으로 지금의 경부선 화물 1대 분을 겨우 처리하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오. 거기다가 여객의 경우는 아예 이 1km 남짓 구간을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해서 그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또, 차량의 운영에 있어서도 강삭의 파괴로 인한 폭주 사고의 위험, 두 개로 분단된 선구를 운영해야 하는데 따른 비효율이 존재하는 만큼, 이 구간의 해소는 절실히 요구었소. 그래서, 이 구간의 개량 공사가 계획되어, 1961년 8월 8일에 착공에 들어가게 되었소. 착공 당시에는 이 구간을 황지 본선이라고 하였고, 그 공사 구간은 통리에서 심포리에 이르는 8.5km의 구간이었소. 1.1km의 개량을 위해 8.5km를 새로 뚫어야 할 만큼, 그야말로 험준함 그 자체라 할만 하였소. 이 구간에는 터널만 11개소에 달하였는데, 이 터널들이 또 공사가 쉬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산허리께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받는 압력의 불균형도 문제였고, 또 지질 자체도 사암이나 석탄층이 많아서 시공의 안정성도 심히 불안정한 편이었다고 하오. 실제로, 노반 문제였는지 구간의 안전성 문제였는지, 이후에 한차례 개량이 이루어져서 전체 구간이 7.7km로 단축, 터널 개소도 13개소로 증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소. 어찌되었건 이 구간은 1963년에 완공되어, 인클라인을 철도박물관에 걸린 사진 한장으로 만들어 버렸소. 일단 이 시점에서, 해당 구간의 수송 애로는 해소되어, 하루 10개 열차 4,950톤의 수송이 가능해 졌다고 하오. 실제 2005년도의 철도통계연보를 찾아봐도, 이 구간의 계산된 선로용량은 다른 태백선, 영동선 단선구간과 비슷한 31회이고, 현재 운행 실적은 37회에 달하고 있어(이는 전기운전 등의 영향이오) 사실상 수송용량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오. 그런데 왜 솔안 터널을 포함한 영동선 이설을 결정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대해서 들은 바로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하오. 하나는, 이 구간은 보조기관차 사업구간, 즉, 디젤기관차를 편성 후방에 연결하여 열차운행을 보조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이에 따른 기관차 투입이나 회송, 연결/해방 작업 등이 소요되어 전체적으로 효율이 나쁘다고 하오. 그 덕에 동호인들로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전기기관차+디젤기관차의 협조운전을 볼 수 있기는 하오만,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소. 둘째, 보기를 연결해야 한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형이 열악하다는 문제가 있었소. 태백선도 그렇지만, 이 구간은 특히 30퍼밀 구배가 도처에 깔려있기도 한데다가, 스위치 백의 경우 여객열차는 후진운전으로 이를 운행해야 하오. 또한, 곡선도 잦은 편이어서, 대개 65km/h 내외로 운행했고, 특히 스위치 백 구간에서는 후진운전이건, 보조기관차에 의한 운전이건 간에 25km/h를 준수해야 했다고 하오. 물론, 이렇게 다녀도 열차는 잘만 다니겠지만, 기관사의 부담이 크고 사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해소가 필요하였소. 마지막으로, 스위치 백 구간의 노후화 문제가 있소. 스위치 백 구간은 건설된지 이미 60년이 넘은 상태였고, 그래서 축대등의 구조물 노후화가 상당한 상태라고 하오. 따라서, 중량 화물열차를 투입하는 것은 여러모로 부담이 큰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걸 그냥 유지한 채로 개량이나 보수 공사를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도 안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소. 그런 전차로, 이 사업의 착수가 결정되었는데, 그 입찰은 1999년에 이루어졌소. 입찰 당시의 계획은 착공 후 96개월, 공사의 전체 구성은 동백산 역 및 교행역 등 정거장 2개소, 선로연장 17.8km로 이 중 터널이 16.3km였으며, 당초의 추정예산액은 3,782억에 달하는 공사였소. 특히 16.3km짜리 터널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유래가 없는 장대터널이었는데, 근래 큰 논란이 생겼던 천성산의 원효터널 전장이 13.28km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날 최장의 터널이라는 명예이자 부담이 걸려 있었소. 착공은 2001년에 대우 컨소시엄에 의해서 이루어졌소. 우선 착공에 앞서 선형을 어떻게 뺄 것인가 등을 설계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했었소. 당초 검토안은 해당 컨소시엄 측의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따르면, 더블 루프를 그리는 방식을 고려했었소. 즉, 전체 터널에서 루프를 2개소 설치하여 300m에 달하는 고저차를 극복하는 방안이 제기되었소. 그러나, 일단 선형이 너무 복잡한 면이 있었고, 또 이렇게 할 경우 지하공간을 넓게 차지하게 되는데, 이 공사지역의 지반이 문제가 되었소. 석탄이 많은 지질 특성상 광산의 폐갱이 매우 많고, 또한 단층대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선형으로는 도저히 이걸 피하기 어려웠다고 하오. 그래서, 연화산을 빙 도는 한 개의 대형 루프 터널로 설계가 확정되었다고 하오. 그 건설의 방법은 당초 TBM(Tunnel Boring Machine)에 의한 기계 굴착이 고려되었소. 이 TBM 공법은 커다란 드릴 머신을 가지고(물론 만화처럼 터널직경만한 드릴이 아니라, 실제로는 복잡하게 생긴 기계덩어리라오) 터널을 파는 공법인데, 정숙성이나 굴착 속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뛰어나긴 하지만, 거대한 기계를 여기까지 어떻게 끌고 올 것인지(영동선이나 태백선이나 만만한 루트는 아니오. 고속도로도 그렇고), 또 굴삭 도중 튀어나올 수 있는 폐갱 등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NATM(New Austrian Tunnel Method)를 채용하여 착공하였다고 하오. NATM은 널리 쓰이는 암반 터널 공사 방법인데, 폭약을 써서 막장부를 굴삭하고, 터널의 내부는 숏크리트(뿌리는 콘크리트쯤 되오)와 락 볼트(벽면에 박아넣는 기다란 볼트를 의미하오)를 써서 안정화 하는, 구식과 신식을 혼합한 공법이라고 할 수 있소. NATM 공법은 다만 굴삭 속도가 느린 편이다 보니, 공사에 있어서 중간에 사갱을 뚫고, 터널 중간에 막장면을 추가해서 공사 속도를 벌어야만 했었소. 이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는데, 우선, 사갱을 뚫게 됨으로서 추가적인 공사가 생기고 자연의 훼손이 발생하게 되오. 그러나, 또 장점으로, 이 사갱을 이용해서 탈출이나 환기가 가능하다는 점이 있소. 실제, 이 솔안 터널 공사에서는 사갱을 이런 용도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하오. 터널의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에 유래가 없던 것들이 많소. 우선, 사갱과 수직갱을 중간에 그대로 둔다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었소. 물론 3km이상의 장대터널들의 경우 환기등의 목적으로 이미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갱 2개소에 수직갱 1개소까지 설치되는 터널은 이것이 처음이오(기존에는 2개소 까지 있는 경우가 있소). 또한, 환기 시스템도 발달해서, 열차운행에 따른 기압변화를 이용하거나, 단순히 기계로 바람을 불어넣는 식의 수동적인 환기가 아니라 터널 내부의 압력을 조절해서 적극적으로 내부 공기를 교환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하오. 그래서 터널의 전체 길이가 엄청난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디젤 기관차의 운행도 허용될 것으로 보이오.   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지하 교행역이 건설되는데, 만약 개업하게 된다면 일반 열차의 터널 내 역 설치는 최초가 된다고 할 수 있소. 위치는 동백산 방향에서 8.8km 지점, 여기서 종점까지는 6.0km이라고 하오. 일본처럼 여객취급역으로 쓰는 건 무리긴 하지만(아마 해당 역의 위치가 지표로부터 300m쯤 들어가 있던가 그럴게요-_-), 우리도 특이한 시설을 하나 두는 셈이니 그 의미는 적다 할 수 없소... 그리고, 이 공사와 함께 동백산 역이 이설 내지는 신축될 예정이라고 하오. 이는 터널 입구 공사의 문제도 있고, 구 선로의 기능 유지 등도 있어서 그런 듯 한데... 일단 조감도로 보았을 때에는 측선 2개 정도를 포함한 섬식 승강장을 가진 교행역으로 설계되고 있었소. 또, 다른 영동선/태백선 역과 달리 1선 통과선화를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동백산역의 현재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여러 열차가 통과하게 될 듯 싶소... 솔안 터널은 전체적으로 단선 터널로, 중간에 교행역이 신설되지만, 동시에 향후 복선화를 배려해서, 개착 공사 구간에서는 미리 복선화를 대비한 시공과 부지 확보를 하고 있다고 하고, 또 교행역도 단순히 복선터널화를 하는게 아니라, 단선 병행식의 터널 형태로 시공을 하였다고 하오. 물론, 선로의 합류부는 대단면 터널로 시공을 하긴 하겠지만 말이오. 또, 전체적으로 선로의 규격은 120km/h운전을 전제로 해서 선형을 잡았으며, 구배 정도는 일단 기준은 12.5퍼밀로(어쩌면 20퍼밀까지 허용할지도 모르겠소), 보기 운용이 필요없는 수준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오.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굴리면서, 사고가 없다면 그것도 참 드물다 할 수 있겠소. 일단 산업재해에 관해서는 당장 자료를 가진 것이 없으니 일단 논외로 하고.... 우선, 엄청 큰 일이었긴 한데, 굴삭면 두 개가 관통을 내고 보니, 그 단차가 2m씩이나 나는 어마어마한 일이 난 적이 있었소. 영동선 공사때는 그 열악한 시설을 가지고도 2cm밖에 오차를 내지 않았던 일도 있을 만큼 저정도의 오차는 좀 상식 외의 것이라 할 수 있었소. 그런데, 설계나 시공에서의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소. 원인은 측량 원점에 있었다고 하오. 안그래도 동해나 삼척, 또 도계 같은 곳은 탄광이나 석회석이 많아서 지반 침하같은게 자주 일어나는데, 이때 측량 원점 하나가 그만 2m정도 가라앉아 버린 것이었소. 물론 정밀하게 따졌다면야 이런건 일찌감치 확인이 되었겠지만, 당시엔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측량 원점들 관리가 시원찮았던 모양이라고 하오.... 그래서 이걸 기준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단차가 나 버린 것이었는데, 일단 설계변경 등을 통해서 이를 해소했다고 하오. 이후 측량원점에 대한 일제 점검이 이루어지고, 시정조치가 따랐다고 하니 큰 일 나기 전에 잡았다면 잡은 셈이오. 또, 하나는 근래 문제가 된 듯 하지만, 이 일대의 침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오. 특히 터널 관통지역 인근에서 발생하는데, 크게 난 곳은 1.5m 이상 가라앉아 버린 곳들이 있다고 하오. 이는 터널 굴삭이 이루어지면서 해당 지역의 지층에 있던 공동들이 무너져 내리거나 해서라고 생각되는데, 안그래도 광산이 많다 보니 이게 더 심해진 경향이 있는 모양이오. 이건 황지본선 공사때도 문제였는데, 솔안터널도 곱게 넘어가긴 힘들었던 모양이오... 강원도에서 탄광하던 지역 치고 이런 문제가 없는 곳이 드문 만큼, 꼭 공사의 탓만 하기는 어렵다면 어렵소. 여기까지는 희망적인 이야기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이야기도 있소. 바로 현재의 루트인 도계-나한정-흥전-심포리-통리-동백산에 이르는 노선이 그러하오. 당초에, 이 루트의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초기에는 화물 열차의 일부 편성 우회 가능성이 언급되었었소. 이는 디젤기관차 운용이나 장대터널에 따른 화물 운행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추정하였는데, 이 문제가 어느정도 해소되었기 때문에 구선의 유지 이유가 현재는 없어졌다고 할 수 있소.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현재로서는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소. 다만, 여기에 대해서 삼척시 측에서는 이를 해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오. 그러나, 어려움은 너무나 많소. 일단, 요코가와-가루이자와 간의 우스이 고개 처럼 수도권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요. 현재 청량리에서 통리나 도계까지는 4시간 40분에서 5시간이 소요되고 있소. 청량리-원주간의 선형 개량을 하더라도 이 구간의 시간 절감은 20~30분 정도, 제천까지 해도 40분 정도의 단축이 기대될 뿐이오. 우스이 고개의 경우에는 도쿄에서 135km거리, 신칸센+재래선 보통열차를 조합하면 1시간 30분에 접근이 가능한 만큼 관광에 부담이 적은데 비해, 역시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는 부담이 지나친 편이라고 할 수 있소. 또한, 이 구간에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한정된다는 것도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오. 현재 철도 관련 관광 상품으로 널리 이용되는 것은 레일바이크지만, 30퍼밀이 넘는 구간에서 레일바이크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고려하기 어렵소. 그렇다고, 일본처럼 디젤견인의 토롯코 열차를 도입하는 것도 무리인게, 하구배에서의 억속 대책이 없이 이 구간에 열차를 투입했다가는 위험하고, 또 운전규정에도 위배된다는 부담이 있소.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먹힌다는 보장도 없고 말이오. 아울러, 도계나 철암, 통리 쪽에 특출난 관광 명소가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요. 신기역의 환선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 온천이나 카지노, 스키리조트 같은 시설이 개발되어 있지 않아서, 여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물었을 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되겠소. 통리재의 험준함 하나 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지만, 그래도 무언가 사람을 유인할 것이 더 있어야 해 볼 수 있지 않겠소? 그러나, 그냥 확 버려버린다는 것은 좀 부담이 있소. 일단, 터널이 차단되거나 할 경우라던가, 특수 화물을 운송해야 할 경우라면 장대터널은 매우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오. 따라서, 일종의 잉여적 차원에서 현재의 구선을 유지해 둔다면 해당 구간의 운행 안정성 보장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또, 향후 동해선 연결이 이루어졌을 때, 한시적이긴 하지만 용량 부족의 가능성도 예상된다는 점도 있소. 물론, 이 경우 터널의 복선화를 한다면 쉽게 해결되지만, 이를 위해서 거의 6년 가까이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터널은 돈 바른다고 바로 개통되는 것도 아니오) 대응에 시간이 걸릴 수 있소. 또한, 해당 구간의 역사적 가치가 적은 것이 아니오. 현재도 남한 전체에 유일한 스위치백 구간이기도 하고, 이 곳을 건설하면서 흘린 피와 땀은 기념할 만한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오. 일제 시대에 건설된 스위치 백,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 건설된 황지본선 구간은 우리 산업화 과정의 귀중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런 만큼, 이 구간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지역 진흥과 편익에 일익이 될 수 있도록 시도를 하고, 역사적 가치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좀 의견을 펴 보자면, 철암-도계 간에 현재의 전동차 시스템을 베이스로 해서, 2량 정도의 단 편성 관광용 보통열차로 투입해서, 하루 6~8 왕복 정도를 다니게 하거나, 이를 좀 더 확장해서 강릉-정선이나 강릉-영주간의 단거리 수요도 동시에 취급하거나, 지역내 관광지 연계의 도구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오. 물론, 고상 승강장을 올리고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전차선이 이미 깔려있는 만큼, EEC의 간략화 버전 식으로 만든다면 비용효율성과 관광 편익, 로컬 교통의 편의 제공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소. 안그래도 도로교통마저 개판이니, 어느정도 흥행만 받쳐준다면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싶소. 삼척시의 분투를 기대하고, 또 응원하겠소. 이러나저러나 해도 그 긴 악전고투 끝에, 2006년 12월 7일인 내일이면 한동안 국내 최장이 될 이 터널의 관통이 달성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이야기라 할 수 있소. 물론, 터널이 관통되더라도, 터널 내부의 시설 설치나, 역 개량 등의 일이 잔뜩 남아 있으니 실제 열차를 타고 여길 지나게 되려면 2~3년은 더 걸릴 듯 싶지만, 그래도 영동선 역사의 한 획이 그어지는 날이라 할 수 있소. 우리나라 철도가 요즘 적자 문제다, 노사 문제다 해서 여러모로 곤경에 처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축하할만한 날은 축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오. P.S.: 생각해보면 이 구간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라이벌이자 조력자는 다름아닌 강원선 철도(원주-강릉간)이 아닌가 싶소. 이쪽 루트가 정비되고, 청량리-강릉간이 2시간으로 압축된다면, 영동선 쪽의 관광지들도 시간단축의 편익을 누릴 여지가 다분하다 할 수 있소. 물론, 그 수혜가 거의 강원선 연선에만 집중될 가망이 꽤 되지만, 그래도 시간단축 덕에 체감하는 거리가 짧아진다면 무언가 돌아오는게 있지 않을까 싶소. 또, 정선군에서는 정선선의 평창 연장을 주장하는데, 이걸 잘만 잡는다면 나름대로 관광지로 수혜를 누릴 여지도 없잖아 있기도 하고 말이오. 가능성은 떨어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