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제목은 거창한데,  내용은 별거 없을겁니다. 초등학교를 강원도 정선의 고한 이라는 곳에서 다녔던 터라..  또 당시 그곳의 특성상 마을이 계곡을 따라 형성이 되었고 철도또한 계곡을 따라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곳 출신들은 철도가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이거.. 꼭 일기 쓰는 기분이네요.-- 일단 제가 고한이라는 좀 외지고.. 험하고.. 높은 곳에 살았던 터라,  서울로의 접근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곳이 해발 600m가 넘었던거 같고.  서울방향으로는 사북과 증산이 있고 강릉방향으로는 태백과 도계가 있습니다. 서울서 오자면 청량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원주를 지나서 제천에서 중앙선과 갈리게 됩니다.  제천에서 조금 오다보면 대궐같은 양식을 띄고 있는 영월역이 나오고 거기서 도로와 개천이 뱀처럼 철도를 중심으로 수없이 지나가는 구간이 나옵니다.    그 구간이 끝나는 부분이 예미가 되겠구요.    보통 비둘기나 몇몇 통일호의 경우 함백역을 경유하지만 새마을이나 무궁화와 몇몇 통일호는 함백역을 거치지 않고 증산역으로 바로 가게 됩니다. 함백역의 또아리굴은 치악산의 또아리굴과 같은 형식이며 좀더 길고 지루한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어릴때는 터널에 들어가는걸 싫어하는게 보통이라 그런가 봅니다. 함백역을 지나면 조그만 간이역이 나오고..  그 역을 지나서 조금 가다보면 긴 터널과 터널의 출구에 자미원역이 나옵니다.   조그만 역이지만 한때는 무궁화호도 정차를 했던 역이며 탄광이 매우 발달했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증산으로 내려오다 보면 좌측에 펼쳐지는 맞은편 산의 절경은 한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합니다.  그 구간의 절경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그 맞수를 찾을수 없는 아주 훌륭한 곳입니다.       그곳을 지날때 주간에 그 풍경을 볼수있는 창가측에 앉았다면 신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셔도 좋을거 같습니다. 증산역은 정선선과 갈라지는 분기점이 됩니다. 그곳에서 대부분 환승열차가 많았는데,  어떤경우 2-3시간 기다려야 환승을 할수있는 시간대도 있어서 불편을 겪는 사례를 많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구절리까지 대략 7-8량의 열차를 끌고 하루 십여회 정도의 열차가 왕복했던걸로 기억합니다. 81년즈음.  여름에 정선역 앞에서 베지밀b를 빨대로 빨아먹으며 죽치고 앉아서 일행을 기다리는 어린 소년을 봤다면.. 그게 접니다.--     당시 놀러갔다가 집에 가기위해 정선역에서 베지밀을 먹다가 어머니 품에서 잠들었는데,  잠에서 깨보니 열심히 달리는 기차안에 있더군요.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 아직도 기억에 또렸하게 생각이 납니다. 증산역에서 강릉쪽으로 가면 먼저 사북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고한역인데,  흔히들 정선 카지노가 있는 곳이죠.    처음 카지노가 저희집에서 아주 가까웠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부모님이 고한에 사셔서 가끔 가서 카지노에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고한역은 약간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고한역에서 태백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정암터널 이라는 당시 국내 최장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그 터널 입구부근에 삼척탄좌가 있습니다.   그곳의 갱도에서 고한역까지 약 5-6km의 석탄운반을 위한 소형 철도가 있었구요.   그 철로로 작은 디젤기관차와 그 기관차가 끄는 조그만 탄차가 대략 30량 이상이 됐던거 같습니다.   작은 기차지만 2개 이상의 제법 긴 터널과 1-2개 정도의 교량이 있는 구간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릴적 그 석탄차가 지나가면 친구들과 맨 뒷칸의 석탄차에 올라타는 놀이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주한미군을 무색하게 하는 검은 얼굴은 당연한 거구요. 그 석탄차가 고한역이 위치한 산의 중턱까지 다다르고 거기서 석탄을 산 밑의 저탄장으로 쏟아 놓습니다.   저탄장에서는 그 석탄차와 덤프탄차들이 날라온 엄청난 양의 석탄을 서울로 가는 본선의 탄차에 알맞은 양으로 부어줍니다.   고한지역에만 약 30여개 이상의 탄광이 있었고 지금의 읍이 아닌  리 였을때 인구가 3만 5천에 달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구와 경제활동이 있었습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대포집이 술렁였고 끝없이 이어지는 삼척탄좌와 동원탄좌로 향하는 통근 차량과 탄차들 하며..  당시 강릉에 가는 태백선 경유 열차들은 고한역과 태백역에서 승차인원의 3/2가 내릴 정도로 아주 발달했었습니다.     태백선에 새마을호가 생기더니 고한역에서도 정차를 하더군요.   읍에 정차하는 새마을호는 아마 태백선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비둘기호 시절 아침 동차가 고한에서 출발해서 청량리역에 도착하면 대략 빠르면 8시간30분 정도 걸렸으며 통일호의 경우 오후 4시30분경 차 였고 청량리역에 8시 45분 정도에 도착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때가 82년도 즈음 일겁니다. 태백선이 얼마나 주행하기 힘든 철로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때는 1996년 여름. 서울서 살던 제가 가끔 고한에 왔다갈때 입니다.    주말을 지내고 새마을호를 타기위해 고한역으로 갔으나 열차가 막 떠나고 있더군요.   누나의 차에 올라타고 언제나 하는것 처럼 "따라잡자..  증산역으로 가!"를 외치며 십수년 산악운전 경력의 운전솜씨를 뽐내며 증산역에 가서 멀리서 오는 새마을호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마.. 고한이나 사북에 사셨던 분이라면 한번쯤은 겪어 보셨을 겁니다. 사실 그 구간은 길이 개천을 따라 있기에 드리프트가 가능할 정도의 구간인데,  그런 악조건에도 열차를 따라잡는다는건 태백선의 열악한 주행여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이 되는군요. 나한정 역의 구간은 중1때 처음 가봤습니다. 철암까지 갈때 였는데,  태백을 지나 좀 가더니 열차가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열심히 내려가더군요.  비가 왔던터라 안개가 자욱 했는데,  정말 구름속을 떠다니는거 같았고   밑으로 내려오니 우리 열차뒤의 탄차가 따라 서 내려오는데,  구름에 떠있는 열차같아서 아주 인상적 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쪽 사람들은 별로 안좋아 합니다.   시간이 너무 걸려서 도계쪽 사람들은 다 싫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겨서는 안될구간이지요. 물론,  지금은 아쉽지만.  그곳에 살때는 정말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던 구간 입니다. 지금은 이미 본좌 자리를 내줬지만,  한때 국내 최장터널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던 정암터널과 그 터널을 지나면 국내 가장높은 곳에 위치한 조그만 기차역이 나옵니다.       정암터널은 터널의 중앙부가 쐐기 모양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양쪽 어느 쪽에서나 터널 입구에서 부터는 올라가기 시작해서 중앙부쯤 다다르면 그때부터 열차는 동력을 끄고 관성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그런식으로 운행 안할거 같은데,  예전에 비둘기호는 가끔씩 디젤차가 끌었는데,  디젤차는 그 내리막에서 동력을 끄고 그냥 운행을 하더군요. 열차가 다 부서져서 공중분해 되는 느낌을 얼마간 받다가 터널출구로 나오면 그 시끄러운 비둘기호도 정막함으로 느껴질 정도로 터널안의 소음은 알아줘야 합니다. 태백산맥을 단 하나의 터널로 관통하는 곳은 정암터널 하나밖에 없습니다.     뭐.. 쓰고보니 전문적인 내용도 아니고  좀 내용이 후집니다. 이미 초등학교때 고한~청량리간 역명과 구간마다 걸리는 시간과 거리.  눈을 감고 있어도 어디쯤 가고 있음을 정확히 인지할 정도로 수없이 기차를 타고 다녔던 터라 무지하게 관심이 많았는데,  세상 살다보니 사는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나이 먹어서 세상에 끼어 돌아갈때 그 때 좀더 원하는걸 해볼껄.. 하고 후회하지 말고 시간 있을때 맘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한때는 정선에서 청량리로 가는 무궁화열차도 있었습니다.   지금같이 관광열차가 아닌 탄을 가득 실은 탄차와 사람이 빽빽히 타고서 플랫폼이 모자르도록 긴 열차들이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다시는 안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