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도 전후 태백선에 대해.-2
고구마(221.147)
2006-12-0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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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릴때 "영감탱이는 꺼져버려.. " 라는 리플이 달릴줄 알았는데.. 잘 읽어들 주시니 고맙네요.^^
고한에 있는 우리집은 2층짜리에 1층에 가게가 있는 목조건물 이었습니다. 2층이 살림집 이었는데 거기에 난 창으로 보면 태백으로 넘어가는 열차가 잘 보였습니다.
석탄을 나르는 차를 흔히 "탄차"라고 불렀습니다. 그 탄차는 앞에서 전기기관차2대가 끌고 맨뒤에 디젤기관차1-2대가 밀어서 태백산맥을 넘어다니는 형태로 운영이 됐습니다. 탄차는 길면 거의 30량 가까이 되기도 했는데 주로 탄차와 시멘트를 나르는 차로 이루어 졌구요.
고한역방향으로 내리막길이 있는데 거기는 "제동금지"라는 푯말이 크게 좌측에 세워져 있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제동을 금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내리막이면 제동을 적절히 하면서 감속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어릴적 친구들과는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 못을 가져다가 기차가 지나갈때 즈음 해서 철로에 올려놓으면 기차가 지나간후 멋진 화살촉이 만들어 지곤 했습니다. 가끔 재미삼아 차돌도 올려놓고선 부서지는걸 보고 환호성도 지르구요. 철로위에 납작하게 눌려서 부서진 차돌부스러기를 만지면 따땃~ 한게 좋았던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자르르~ 합니다.
철길 부근에 살면 열차의 주행소음이 많이 나는 편인데 살다보면 기적소리만 들어도.. 열차의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기관차인지 어떤 열차인지 눈감고도 알수가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극강의 소음을 자랑하는게 초등학교 6학년 당시 태백선에 처음 투입된 최첨단 무궁화호 되겠습니다. 당시엔 우등 이라는 명칭으로 불렸구요.
기관차가 따로없이 동력분산방식으로 지금의 지하철과 같은 동력방식을 택해서 가감속이 훌륭한 덕에 청량리 까지의 소요시간이 20분 가량 획기적으로 단축되었구요. 또한 내부시설과 승차감 등에서 매우 획기적인 차량 되겠습니다. 지금이야 가끔 짤방으로 옛추억을 되살리는 차량에 불과하지만, 5년전쯤 오이도 차량기지에 한동안 있더군요.
그 차량은 다른 일반 열차와 주행소음이나 동력소음이 달라서 확실히 구별이 가능 했구요. 소음도 또한 다른열차의 1.5배 정도 시끄러웠습니다. 출발시 우~웅 하면서 가속을 하면 그 가속감이 아주 매력적이었구요.
열차내에 급수대도 있었고 승차감은 매우 말랑 말랑 했습니다. 겨울방학때 청량리역에서 처음 타고 집에갈때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멀미를 했을 정도여서 확실히 기억이 납니다.
식당칸의 음식은 비싼 편이어서 부담없이 사먹기에는 무리였는데, 당시 좀 사는 덕에 항상 식당칸을 이용할수 있었습니다. 주로 먹던건 돈가스나 햄벅스테이크. 더불어 아버지께서 맥주를 많이 드셨다는거.
아직도 처음 그 열차를 타고서 멀미덕에 먹다 만 햄벅스테이크가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초기 도장은 옅은 연두색이 가미된 미색 에 창문과 하단에 주황색으로 이루어 졌던걸로 기억합니다.
서스펜션은 바퀴에 2개씩. 그리고 차대에 2개씩 해서 차륜 한개에 총 24개 정도씩 스프링이 있었습니다.
태백선 하면 뭐니 해도 극강의 포스가 있는 전기기관차 되겠습니다. 그 도장형식은 얼마 전까지 바뀌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 됐구요.
터널에서도 조용하고 냄새나 연기도 없어서 열차운용에 아주 적합한 기관차 였습니다. 또한 가속력도 디젤보다 앞섰던 걸로 기억합니다.
기차를 탄지 7년여가 된거 같습니다.
어릴적에 그림 그리면 대부분 기차그림만 그리고 다녔는데.. 당연하게 탄차를 많이 그렸습니다. 탄광지대다 보니..
기차를 타고 가장 기분좋은 순간중에 하나는, 1998-9년 즈음에 기차를 타고 양평을 지나 청량리로 가던중 양수리부근에 끝도없이 정체에 시달리는 차량의 무리들을 비웃으며 나름대로 고속으로 달려가는 무궁화호를 탔을때 느꼈습니다.
물론 기차도 정체에 시달릴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을 보장해 주니까 아주 좋습니다.
초딩때 고한에서 출발해서 제천에서 부전발 청량리행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청량리에 도착하니까 제천에서의 대기시간을 빼고도 12시간이 넘게 걸렸던게 기억납니다.
중학교때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디젤기관차가 끄는걸 보고 친구들과 저런기차 타는 사람들이 불쌍하다면서 동정을 보내던게 생각이 나는군요.^^
뭐.. 글이 뒤죽박죽이 됐는데, 다음에 다시 정리해서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 기억나는게 있어서 몇줄 더 적으려구요.
초등학교 3-4학년때 즈음 이었는데, 친구들과 철로 옆에서 놀고있는데 완행열차가 태백에서 넘어와서 고한역으로 가더군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보고 있는데 열차가 약간 속도를 줄이는 경사가 진 커브길에서 문에 매달려 있던 남자가 떨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뒹굴면서 낙법까지..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는데 옆에있던 친구가 "아빠~" 하면서 뛰어가 그 아저씨 품에 안기더니 우리옆을 지나가면서 "우리 아버지 이렇게 집에 오셔.." 라고 말하던 황당한 기억이 나는군요.
제가 본거니까 실화구요.
열차속도가 느리다고 느낄만한 속력은 아닌걸로 기억합니다.
아뭏든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 명장면 이라 아니할수 없습니다.--
낙법-_- 제 외할머니댁도 충북선 증평-내수 사이에 있는 산골자기입니다.(증평에서 시내버스 10분타고 도보로 20분..) 근데 집 바로옆으로 기차가 지나가는덕에 옛날에 수동문통일호 살아있었을때 저기서 뛰어내려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문득 했었습니다..(근데 그구간은 시속 100까지 내는것 같더군요..덜덜덜..-_-) 암튼 잘 읽었습니다.
"제동금지"는 공압 브레이크를 남발할 경우에 화차 등의 제동용 공기가 다 소진되어, 제동이 걸리지 않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걸로 알고 있소. 또 잘못 제동을 걸 경우에는 접지력을 잃고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갈 위험도 있고 말이오. 아마 억속 제동(회생이나 발전제동)은 쓰는 듯 하긴 한데, 자세한건 기관사 분께 물어봐야 할 것 같소.
보조기관차 연결(전기기관차+화차 뒤에 붙는 디젤기관차)도 제동 문제때문에 연결하는 걸로 아는데, 기관차의 컴프레서로 후방쪽 화차에 압축공기를 공급해서, 뒷 차륜의 브레이크 동작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 큰 것으로 알고 있소. 물론, 급구배에서 협력운전(총괄제어와 달리, 보기 쪽에도 운전원이 탑승하여 선두 차량과 별개로 조작하오)을 통해 부족한 등판력이나 출력을 보완하는 용도도 있고 말이오.... EEC는 2편성 20량만 생산된 대략 레어차량이고,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485계와 근연관계가 있는 차량이라고 하오. 동력부는 저항차와 큰 차이는 없지만, 치차비가 바뀌어 속도가 조금 더 높던가 그럴게요. 편성 수가 적다 보니 아무래도 운용이 어려웠는지, 현재는 폐차되어 선두차만 보존중이라오.
예전에 운행중 맘대로 내리고 타던 시절에.. 어떤 젊은 처녀가 동네사람들이 다 그렇게 내리니 자기도 내리다가 치마가 걸려서 -_- 열차밑으로 -_-;;;;;;; 아무튼 살긴 살았는데 양다리를 절단해서 결혼약속도 파토나고 인생 꼬였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봤는데... 5년쯤 전에 MBC에서요 -_-
아, 위의 시대는 70년대이고 방송이 5년전입니다. ㅋㅋ
ㅋㅋ. 재밌소. 조사부장의 친절한 설명 감사하오. 내 기억으로도 10량 2편성으로 운영했던거 같아요. 당시 고한역에 근무하는 직원중에 안면이 있던분이 있어 놀러가니 워낙에 태백산 넘기가 빡세서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철도병원행.. 끔찍하니 그런얘기는 아지 맙시다.-- 무서워서.. 좌우지간 그쪽은 역간의 표고차가 상당한 관계로 어떤 이유로든 간에 보조기관차가 많은 역할을 했을걸로 생각이 됩니다.
EEC가 485계와 근연관계가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소. 꼭 근연관계를 찾고자 하면 초저항 전동차이지 485계는 아니오. 겉모습만 보고 485계라고 하는 왜놈 찌질이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오.
일본쪽의 한국철도 애호가랄까, 그쪽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확실히 좀 섣부른 이야기인 것 같구랴... 대차 설계쪽도 그렇고. 신성능 저항차 쪽으로 가면 어떤 의미에서는 다 한 집안에 근접한다고 하긴 하오만... 그래도 좀 섣부른 결론이긴 하오. 감사하오.
운전원(x) - 기관사(o) ㄳ
EEC가 485계와 근연이라면 왜 10량 1편성으로 만들었는지부터 해명해야 할게요. 왜놈들의 정보는 왜놈 유리하라고 만든 참고용 정보일뿐... 판단의 재료는 될 수 없다는 진리인 셈이오.
참고로 그 열차는 대우중공업에서 제작했다는 명판이 객실에 붙어 있었다오. 조립만 한건지 개발 한건지는 모르겠소만..
보조기관차의 역할은 두가지요. 일단 급구배를 등판하기 위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 그리고 내리막에서 제동취급시 보기쪽에 가까운 화차의 제동관의 공기를 신속히 빼내기 위해 뒤쪽에서도 제동을 취급하여 전체적인 열차의 찰상을 방지하고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역할이오. 주공기관이 없는 화차는 공기압장치들의 특성상 반응이 매우 늦소. 그래서 기관차에서 제동을 취급하여도 맨뒤의 화차에 매달린 제동관의 압력까지 떨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할 수 있소.
여기 덧글에다가는 내 미스를 많이 내었구랴. 이거 안면이 근질거리오.-_- 내가 보기의 원리를 좀 거꾸로 알고 있었구랴. 증기기관차 시절의 증언에서는, 제동변의 공기압 문제가 중요해서 잘못해서 압이 너무 떨어지거나 하면 제동이 안드는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서 그렇게 이해했는데, 공기 브레이크 방식을 그래서 거꾸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소. 아무튼 감사하오.
EEC의 조기폐차 이유는 바로 내한설계 부족이었소. 수도권 초저항이랑 동일한 설계로 만들다보니 수도권에 비해 훨씬 추운 강원도와 제천지방에서 차가 자주 퍼졌고 그래서 구원기관차가 투입되는가 하면 예비차로 남겨둔 객차로 조성해서 투입하는 일이 다반사였소. 그러다보니 철도청은 이놈 고쳐쓰느니 폐차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법정 수명 채우자마자 폐차해버린거요. 객차들이 모자라는것도 아니었고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가 하락하는것도 아니니 손해볼것이 없었다는 계산이었던 모양이오. 운용이 어려웠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소. 차량 배속은 구로기지였고 구로에서 출고해서 급행선타고 청량리까지 회송시키는 짓을 20년동안 하면서 잘만 써먹었소.
보조기관차를 연결한 상태에서 제동을 체결하였을 때에 화차의 제동관 공기가 빠지는 곳은 본무기관차쪽입니다. 보조기관차의 제동부분의 역할은 발전제동뿐 입니다.(물론 비상제동시는 예외)
아마 고구마님이 보신 표지가 [제동주의]표지가 아닌가 합니다. 삼각형 팻말에 기차가 경사진 선로를 내려가는 그림이 도안되어 있죠. 영동태백선에서는 흔한표지인데 그 주변에 찾아보시면 10이상의 하구배를 나타내는 표지가 아마 있을 겁니다.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비승비강해서 입환작업하는데 많이 다치고...죽기도. 가장고속에서 비강하는 것을 들은 속도는 약 80키로에서 노숙자가 손과 발사이가 거의 붙게 잡고 몸을 접힌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손발을 동시에 떨어뜨리고 데구르르......요세는 문이 자동으로 잠겨서 그럴일은 없지만 열차가 가는 방향으로 내려야 안전한데 반대방향이면 아찔함.
사각표판 이구요. 제동금지가 맞습니다. 아마 지금도 있을겁니다. 5년전에 제가 보고 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