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서울로 올라오면서 경부선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여기서 서울로 진학할 수 있었던 사연 한 토막을 소개한다. 그 시절 서울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누님이 이미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박봉으로 나의 서울 진학은 꿈도 못 꿀 때였다. 고민하던 중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마침 방학을 맞아 누님이 부산으로 왔다. 나는 서울로 가고픈 마음을 일기장에 빼곡히 썼다. 마음속으로는 누님이 보게 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일기장을 품고 잠든 체 했다. 계획은 성공했다. 누님이 당시 그 일기장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지, 함께 자취하면 된다면서 아버지를 설득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경부선을 탈 수 있었다. 당시에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완행열차로 13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 긴 시간을 꼬박 서서 갔지만 그래도 힘든 줄을 몰랐다. 흔들거리는 백열등, 날 소금에 찍어 먹던 달걀 맛, 코 밑의 그을음, 희붐한 새벽 녘 종착지를 알리는 부산역의 뱃고동 소리, 그리고 손사래를 치며 반기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흑백 필름처럼 아릿하다. 어둠과 질곡, 많은 아픔을 묻고 격동의 한 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나는 잠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일본 유학길(97)에 올랐다. 오랜 격랑을 해쳐온 다난(多難)한 삶을 되돌아 볼 때, 아마 동경대 유학시절이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학업 이외의 모든 시간은 기차여행으로 보낼 만큼 맹렬한 기차 마니아가 되었던 것이 이 때이다. 훗날 내가 철도공사 사장이 되리라는 것은 어쩌면 이시기에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지어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틈만 나면 JR패스(가장 싸기 때문)를 이용해 신칸센(新幹線)을 타고 일본열도를 쏘다니며 일본철도의 선진시스템을 단순한 여행객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비록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준 애증(愛憎)의 나라였지만 일본 철도의 선진 시스템은 실로 경탄할만했다. 속도도 속도이거니와 높은 정시성과 함께 연계교통망이 거의 완벽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하철과 버스의 연계로 시민들의 편리성을 극대화 하고 있었다. 또 역사 내에 영화관, 선술집, 제과점, 편의점 등의 문화 위락시설을 집중화 시키면서 고객의 편의를 극대화 하는 동시에, 이 시설들을 일본 철도회사가 직영하면서 많은 수익까지 내고 있었다. 기차역이 표를 끊고 기차를 기다리는 단순한 기다림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와 여가, 그리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 결론은 자기도 철도 메니아란 이야기인데;; 뭐 다른 철도청장이나 사장보다는 괜찬았던 것 같기도 하고;;; 일본 패스끈어서 다니면서 느낀점이 새로운 수익창출방법 + 정시성 및 연계성 인것 같은데 한국실정에 맞게 잘 좀 적용해줬으면 하는 바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