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6호선과 8호선은 잘알려져있다시피 지선 성격이 매우 강함. 7호선의 경우는 보기엔 간선 같지만 지선의 집합체임, 경인선 광명 미경유 보완, 2호선 강남구간 보완, 중랑천 동부지역 간선망 접근성( 2호선, 5호선 ) 강화 등. 5호선은 박통 때부터 계획된 간선.
사과맛ㅅㅌ(idexist)2010-07-17 13:57
그런데 7호선이 이렇게 중요 간선망으로 뻗어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지. 애초에 지선으로 계획된걸 간선으로 키울려니 시망일수 밖에.
사과맛ㅅㅌ(idexist)2010-07-17 13:59
당시 마인드로 볼 때 \"도시철도 = 완행운행으로 충분\"이란 인식이 더 지배적이었음... 1993년에 계획된 3기지하철도 그 골자는 1,2기와 바찬가지도 완행만 운행이었음... 그러는 사이 광역전철인 경인선 구간을 2복선화 해 급행이란 개념을 도입하면서 도시철도에도 도입해도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해 IMF 를 전후하여 살아남은 9호선을 완급운행 형식으로 설계변경하여 건설한 것임...
실크로드(218.39)2010-07-17 14:00
그리고 도봉산역이 2홈 4선이 된 배경에는 건설당시 급행운행을 염두했던 것 보다는 그 시기 경원선을 통해 화물운송이 많아 도봉산역에서 대피를 고려했었고 도봉산역이 단선철도였을 시절에는 인근에 누원신호장이란게 있었고 삼양식품 등 대형 공장이 있었어서 그곳에서 열차가 교행이 가끔 있었고 공장으로 선로변환도 았었음...
실크로드(218.39)2010-07-17 14:04
온수, 광명사거리, 청담 같이 선로가 3개 있는 역은 조금만 손 보면 중간 선로를 대피선이나 추월선으로 쓸 수 있음
미나미하루카(jjhcap08)2010-07-17 14:07
시범적으로 광명사거리역 선로 구조를 뜯어고쳐서 온수 - 철산 구간만 무정차하는 급행을 운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미나미하루카(jjhcap08)2010-07-17 14:10
참고로 2기노선이 지어질 시기에 발생한 그 사건도 영향이 클듯.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저 지어진 것 만으로도 감사 해야 할지도...
yellowsupe(yellowsupe)2010-07-17 14:18
그래도 대피선 지을 공간만이라도 확보해 두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
미나미하루카(jjhcap08)2010-07-17 14:19
생각해보니 막상 지어지던 시기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데 그때도 재정상황이 지금보다 나빴다면 나빴지 좋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yellowsupe(yellowsupe)2010-07-17 14:21
2기지하철이 첫 착공되던 1009~1991년은 3저형상과 아시안게임, 올림픽으로 대표되던 경제호황기의 후반기로서 당시 경제규모에 비교하여 기업의 설비투자 및 SOc 투자가 활발하던 시기였음... 오히려 그 사건 때보다도 투자환경은 훨씬 더 좋았지요...
실크로드(218.39)2010-07-17 14:25
ㄴ 당시 민생경제 공익광고를 보면 \"과소비 및 유흥/향략으로 인한 헛된 소비를 줄입시다\" 등을 부르짓던 시기였음... 그만큼 내수 경기가 좋았고 과열됐던 시기 + 그만큼 물가상승률도 높아지기 시작한 시기...
실크로드(218.39)2010-07-17 14:27
ㄴ 기성세대들은 흔히 아시안게임, 올림픽 이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가 국가경제가 곪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IMF를 겪게 됐다고 표현함...
실크로드(218.39)2010-07-17 14:28
근데 당시 도시철도에 급행을 운행하는 사례가 뉴욕지하철하고 도쿄지하철 토자이선과 신주쿠선 빼고는 없지 않았나..
미나미하루카(jjhcap08)2010-07-17 14:29
3저 현상 =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 / 80년대 우리나라를 지배한 경제기조로 이때 우리나라는 가격경쟁을 앞세운 수출 위주로 한 무역과 거의 0%가 가까웠던 물가상승률의 혜택을 보면서 10%대의 경제성장을 지속했음...
일단 6호선과 8호선은 잘알려져있다시피 지선 성격이 매우 강함. 7호선의 경우는 보기엔 간선 같지만 지선의 집합체임, 경인선 광명 미경유 보완, 2호선 강남구간 보완, 중랑천 동부지역 간선망 접근성( 2호선, 5호선 ) 강화 등. 5호선은 박통 때부터 계획된 간선.
그런데 7호선이 이렇게 중요 간선망으로 뻗어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지. 애초에 지선으로 계획된걸 간선으로 키울려니 시망일수 밖에.
당시 마인드로 볼 때 \"도시철도 = 완행운행으로 충분\"이란 인식이 더 지배적이었음... 1993년에 계획된 3기지하철도 그 골자는 1,2기와 바찬가지도 완행만 운행이었음... 그러는 사이 광역전철인 경인선 구간을 2복선화 해 급행이란 개념을 도입하면서 도시철도에도 도입해도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해 IMF 를 전후하여 살아남은 9호선을 완급운행 형식으로 설계변경하여 건설한 것임...
그리고 도봉산역이 2홈 4선이 된 배경에는 건설당시 급행운행을 염두했던 것 보다는 그 시기 경원선을 통해 화물운송이 많아 도봉산역에서 대피를 고려했었고 도봉산역이 단선철도였을 시절에는 인근에 누원신호장이란게 있었고 삼양식품 등 대형 공장이 있었어서 그곳에서 열차가 교행이 가끔 있었고 공장으로 선로변환도 았었음...
온수, 광명사거리, 청담 같이 선로가 3개 있는 역은 조금만 손 보면 중간 선로를 대피선이나 추월선으로 쓸 수 있음
시범적으로 광명사거리역 선로 구조를 뜯어고쳐서 온수 - 철산 구간만 무정차하는 급행을 운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참고로 2기노선이 지어질 시기에 발생한 그 사건도 영향이 클듯.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저 지어진 것 만으로도 감사 해야 할지도...
그래도 대피선 지을 공간만이라도 확보해 두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
생각해보니 막상 지어지던 시기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데 그때도 재정상황이 지금보다 나빴다면 나빴지 좋지는 않았을거 같은데...
2기지하철이 첫 착공되던 1009~1991년은 3저형상과 아시안게임, 올림픽으로 대표되던 경제호황기의 후반기로서 당시 경제규모에 비교하여 기업의 설비투자 및 SOc 투자가 활발하던 시기였음... 오히려 그 사건 때보다도 투자환경은 훨씬 더 좋았지요...
ㄴ 당시 민생경제 공익광고를 보면 \"과소비 및 유흥/향략으로 인한 헛된 소비를 줄입시다\" 등을 부르짓던 시기였음... 그만큼 내수 경기가 좋았고 과열됐던 시기 + 그만큼 물가상승률도 높아지기 시작한 시기...
ㄴ 기성세대들은 흔히 아시안게임, 올림픽 이후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가 국가경제가 곪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IMF를 겪게 됐다고 표현함...
근데 당시 도시철도에 급행을 운행하는 사례가 뉴욕지하철하고 도쿄지하철 토자이선과 신주쿠선 빼고는 없지 않았나..
3저 현상 =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 / 80년대 우리나라를 지배한 경제기조로 이때 우리나라는 가격경쟁을 앞세운 수출 위주로 한 무역과 거의 0%가 가까웠던 물가상승률의 혜택을 보면서 10%대의 경제성장을 지속했음...
오타정정 : 1009~1991년은 3저형상과 -> 1990~1991년은 3저현상과 (그외 정정할 오타가 많지만...)
5,6,7호선은 원래 계획이 간선이었는데. \'ㅅ\' 다만 노선이 개통되고 나서 6호선은 이용률, 이용형태가 지선형태가 되어 버린거고. 무엇보다 대피선 놓는건 지간선 구분없이 둘다 해놓을 필요가 있는게 아닌가.
오늘도 룰루룹은 깝칩니다
경제호황도 호황이지만, 1987년 민주화로 노동자 임금이 많이 오르면서 서민들 살기 정말 좋아졌었지. 1987~1997 대한민국의 최고 태평성대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