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여 년 전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서 율전으로 통학하던 때다. 집에서 출발하여 율전캠으로 가는 길에, 희안하게도 수원역서 전철로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수원역 맞은편 분당선 연장 공사현장 계단앞 문턱에 앉아서 전차 부품을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철도 관련 토목공학을 전공하던 때이니만큼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레일과 침목을 한 짝 씩 사가지고 가려고 어설픈 흥정실력으로 그것들 좀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했더니,

 


부품 몇 개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 더니, 이제는 침목을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침목이 내가 주문했던 사이즈보다 조금 더 작아질 것 같았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전철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집안 구석에서는 레일을 만들려고 하는지 쇳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주형이고 나발이고 온데간데 없었다.

 



침목만 되어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쇠가 되지, 아무 쇳물이나 붓는다고 레일이 되나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기다린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전철을 놓치겠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

 


그럼 프랑스로 가서 사든지. 난 안 팔겠소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전철은 어차피 놓친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가 그만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 이번에는 깎던 침목은 대충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던져두고는 판금장비 근처에 가서는 선반위에 쇳물을 부을 틀만 올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담배를 다 핀 후에야 주형에 쇳물을 붓고는 두 시간정도 기다리라 하더니 주형을 깨고 나서는 레일을 여기 저기 줄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제대로 찍혀 나온 것 같은데도 막무가내더니만 좀 있다 보니 다 됐다고 내준다. 주물이 찍혀 나올 때 부터 다 되어 있던 것이었다.

 


전철을 놓치고 다음 전철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가내수공업이라지만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AK플라자 전광판에 비치는 소녀시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그 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다음 날 대학에 와서 침목과 레일을 내놨더니
, 교수님은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야단이다. 비록 손으로 만들었지만은 꽤나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제나 이거나 별로 다른 것 같지 가 않았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 보니, 침목이 너무 크면 정비할 때 쓸데없이 시간이 많이 걸리며, 레일도 여기저기 줄로 긁지 않으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제아무리 기존선에 맞게 개량한 KTX도 철차륜 플렛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레일에는 여기 저기 작은 물결무늬가 나 있었는데 이런게 종각드리프트에 설치해도 쇳소리 하나 안 난다고 한다. 건설 중인 수인선 시제품에 레일을 끼워 보더니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18
세기부터 깎아내려온 프랑스, 영국제 지하철 부품들은 한 번만 궤간을 맞추면 특대형 기관차가 지나가더라도 좀처럼 비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북경지철이라는 짱개가 선전하는 중국제제 부품은 생긴 것도 조악하거니와 특대만 지나가도 맞아도 걷잡을 수가 없다. 프랑스에서는 철로 부품을 깎을 때 경력이 20년이 넘은 마이스터들만 고용해서 단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도상을 조립할 때는 침목 하나당 두세명의 숙련된 일꾼이 붙어 있었다. 워낙 품질이 좋아 오죽하면 외계인을 고문해서 얻은 능력이라고도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공장에서 떡 찍듯 찍어져 나온다. 금방 만든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믿지도 않는 선로 최고 설계속도 따위 때문에 며칠씩 걸려 가며 쇠를 깎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침목만 해도 그렇다
. 옛날에는 침목이라고 하면 북한식 통나무 침목은 최하품, 철근 없는 중국제 PC침목은 하품, 나무침목은 중간, 국산 PC침목은 상품 해서 값으로 구분했고 슬라브 도상은 세 배 이상 비쌌다. 슬라브 도상이란 철근콘크리트로 자갈 없이 만든 도상이다. 눈으로 봐서는 시맨트만 들었는지 사이에 철근이 다섯 겹으로 들어있는지 열 겹으로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판매자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뙈놈이 남이 보지도 않는데 슬라브 도상 사이에 철근을 많이 넣지도 않을거고, 또 그것을 믿고 값을 더 줄 사람도 없다. 파리메트로 건설 당시 사람들은 건설은 건설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예술적인 선로를 만들어 냈다.


비록 분당선 연장이긴 하지만 이 두 부품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 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소주에 수원갈비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래서 그 계절학기때 수원역 분당선 연장 구간을 재방문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노인이 바라보던 AK플라자 전광판을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AK플라자 건물의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침목을 깎다가 우연히 AK플라자 전광s에 나타난 소녀시대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採菊東籬不 (채국동리불)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도연명의 시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 현장으로 돌아갔더니 연구원들이 아직도 15년이 넘게 수인선철로를 조립하고 있었다. 요즘 세상에 손으로 만든 침목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종각드리프트의 쇠가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萬戶擣衣聲(만호도의성)\' 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15년 전 침목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