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직후 보도연맹원의 처형의 정치적 의미 이외에....행정학적으론... 적이 침략하야, 부역의 우려가 있는 자들을 색출, 처형하는 이 실무적 세부계획은 사실은 일제말기, 한반도로 미군이 침공할 때를 대비 "조선총독부"시절에 세부 시행 규칙이 아웃트 라인이 마련되었었다는 것이죠. ㅎㄷㄷㄷㄷ@@ 남한 정부의 기안이 아닙니다.  스탈린 시절 공산주의자들 내부에서 서로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한 것도 사실은 러시아 짜아르 정부시절 감찰기관 오흐라니 의 내분일으키기 역정보 제공 분란일으키기 공작이 적백내전이 끝나고 소비에트 소련이 세워진 다음에야 효과를 본거래요. 사후약방문  이런 역정보에 노출되고 엄청 당했던 스탈린이 임박한 독일의 소련 침공정보 日本의 국제간첩 죠르게의 제보도 우습게 알다 큰 코 다치게 만든 간접 이유라고 함.  아울러 공식집계 80만으로 잡는 스탈린시절의 예조프시나 大숙청은 스페인 인민전선 공화국 수립후 군인출신 우파 프랑코의 쿠테타로 스페인 공화정이  붕괴되는 걸 보곤, 스탈린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내부의 제 5열 제거 작업차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죠. 자긔네도 프랑코 같은 군인이 나와 뿔면 완전 당한돠. 뭐 그래서 소련 군사천재 미하일 투하체프스키가 솝발톱 뽑히곤 처형당하져.  사실, 참여정부의 반값 아파트 공약은 MB때 실현된 셈임. 어떠한 정책이 당대 정권에서 기안하여 그 때 효과 나는 게 없음. 글고, 참여정부가 투덜댄, DJ정부의 경기부양책 부작용 뒷설거지 를 자기들이 하다 쫑났다는 말도 나롬 신빙성이 있죠.  정책은 한 템포 건너뛰어 시간이 무척 흐른 후에야 효과가 나타남.     






보도연맹 학살에 관한 숨겨진 진실.  





보도연맹이란 한국전쟁 발발전 과거의 남로당 활동 경력자들을 보도(바른 길로 유도한 다는 뜻)하는 모임단체(연맹)이란 뜻으로 정부가 주도하여 만들고 대상자들을 반 강제적으로 가입시킨 단체였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주기적으로 모여 대한민국의 정통성, 김일성집단(공산주의)의 허구성,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우월성등을 교육받고 애국가 등을 부른다.(즉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 서약) 

가입하지 않으면 사상전향을 하지 않았다고 각종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순 남로당 가담자는 가입해야 했다. 
물론 극렬분자들도 사상전향은 하지 않고 위장 가입하기도 했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잘 알다시피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어 인민군 치하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보도 연맹원 문제가 나왔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배반자들이다. 
그러나 보도 연맹원들은 가입은 강제젝이었으며 절대로 자신의 뜻이 아님을 눈물로 호소했다. 살려 달라고. 

북의 인민군은 그들에게 말했다. 배반한 죄를 씻으려면 그것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죽창과 몽둥이가 주어졌다. 

이들은 살기 위해 반동 척결의 최선봉에 나서 미쳐 피난 가지 못한 수 많은 우익인사들을 때려 잡기 시작했다. 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보다 잔인하게 죽여야 했다. 

인민재판때의 분위기 메이커, 판결후 집행자, 의용군 징모요원, 선전요원, 각종 공출 요원으로 맹활약, 과거의 과오를 씻기위해 광분했다. 

북의 정규 인민군들은 반동 청소에 이들을 십분 이용했다. 
(지금도 북의 인민군들은 신사적이고 나쁜 것은 남한 빨갱이들이라고 믿고 있다. 북쪽의 교활한 수법이다) 


이러한 보도연맹원들의 만행이 알려지자 공황 상태에 빠진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불신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충성 서약한 그들이 인민군 츼하로 들어가면 최고 열성분자로 날 뛴다는 현실을 보고 야마가 돌았다(공황 상태에 빠져). 

그래서 보도연맹을 긴급소집, 집단처형하게 된 것이 바로 보도연맹원학살사건이다. 

인민군 치하가 되었다고 보도연맹원 모두가 잔인한 북의 행동대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도맷금으로 집단 처형한다는 것은 죄악이며 비극이다. 

그러나 남노당 당수 박헌영이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이 장담한 사실에 유의하자.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 쳐 내려가기만 하면 전국 각지에서 우리 남노당 동지들이 봉기,털도 않 뽑고 부산까지 내려 갈 수 있습니다. 날 믿으십시요." 

인민군은 서울 점령 후 3일이나 쭉치고 있었던 원인 중의 하나가 남한 각지의 봉기를 기다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강 도하장비를 사전 준비하지 않은 것도 민중 봉기를 철석같이 믿었다는 반증이다. 

(그 후 박헌영의 장담이 거짓으로 들어나자 김일성은 잔혹하게 숙청한다. 저 사깃꾼 말 듣다가 망했다고.) 

물론 남노당 지하 잔존세력에 의한 봉기는 전혀 없었다. 
봉기 가능성이 있는 원인(보도연맹원)을 뿌리채 뽑았으니까. 

이 과정에서 봉기할 마음도 없었던 자들도 싸잡혀 학살된 것은 역사의 비극이다.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없었고 개전 초 서울 지역의 전직(?) 보도연맹원들의 난동(아니면 혁명적 열정?)만 없었다면 남한 전역의 대대적 보도연맹 학살 사건도 없었를 것이다. 

당시의 극한적 상황, 아수라장같은 혼란,군경을 비롯한 우익들의 복수심 등을을 상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역사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역사를 오늘 날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는 것도 위험하며 과거 청산은 그래서 복잡하고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감 표명은 해야 한다. 

' 전시라는 특수 상황 아래 점령지내의 일부 보도연맹원들의 망동에 과잉반응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라고. 






한국 해병대(ROKMC)의 용맹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말이 난 김에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한국군 해병대의 용감성에 대해 살펴 보자. 

해병대는 특성상 특정 지역에 투입되는 기동군이므로 강인한 공격정신이 요구된다. 

일본의 해군 육전대, 미국의 해병대처럼 그들은 육군보다 훨씬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한국 해병대의 용감성은 그 혹독한 훈련에 또 다른 역사적 한(恨)에 유래된다. 

즉, 한국해병대의 '한'은 제주도의 '한'이다. 

잘 알다 시피, 제주도는 수 백년간 육지인의 압박을 받았다. 일본과 가깝다 보니 일제 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판에 뛰어 들어 간 자도 많았다. 이들은 일본의 극렬한 좌익 노동운동의 맛,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의 맛을 본 자가 많았다. 그러다 해방이되어 귀국했다. 

이런 배경때문에 해방전후의 좌우익 투쟁에서 제주도는 순식간에 좌익 천지가 되었다. 
제주도 좌익들은 스스로 '제주도는 남한의 모스크바'라고 자부하며 친소 친공(친김일성),극렬 반미, 반이승만 투쟁에 매진했다. 그 결과가 제주 4.3폭동(항쟁)이었다. 

따라서 폭동 진압을 위해 육지에서 군대와 경찰, 반공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이 투입되어 제주도를 쑥밭으로 만들었다. 

육지인들에겐 폭도나 일반 주민이나 그게 그 거였다. 모두 제주도민이라는 동향의식에다 혈연, 지연이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폭도에게 식량 제공, 은식처 제공,정보 제공이 일상사였다. 따라서 육지의 진압군에 의한 과잉진압 결과 무수한 희생자도 나왔다. 

겨우 제주도 폭동이 진압된 싯점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 국민에게 국가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대대적 징병이 이루어졌다.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때 제주도 청년들 다수가 해병대에 지원했다. 

"너희들 제주도인들은 반은 빨갱이다. 이 참에 해병대에 지원하여 몸으로 빨갱이 아님을 보여 줘라. " 라는 해병대 징병관의 설득과 협박에 용약 지원했다. 

이들은 그 후 인천 상륙작전 등에 투입되어 죽자 사자 용감히 싸웠다. 한 풀이 하듯 싸웠다.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다. 싸우는 상대도 그 미운 육지인 놈들 아니더냐. 

이들은 포로를 주저없이 쏴 죽였다. 육지 놈들 맛좀 봐라였다. 전투후 외출 나가면 술 먹고 민간인(육지인)들을 가혹하게 두들겨 팼다(하도 포악해서 해방대를 개병대라고 부르며 모두들 무서워 했다). 새로 입대해 오는 육지출신 신병들을 혹독하게 두들겨 팼다 맛 좀 봐라 였다.. 제주도민이 육지인에게 당한 한 맺힌 앙갚음이었다. 

해병대 고위츨도 이 난폭한 제주도 해병대원을 적당히 봐줬다. 일단 전투에 투입되면 최강의 부대이니 사기진작 차원에서 선처해 줬던 것이다. 

제주도 출신 해병대원의 한 풀이 대상이 되었던 신뱡들이 고참이 되자 다시 신병들을 혹독히 두들겨 패며 군기를 잡았다. 이래서 해병대의 전통으로 정착됐다. 


이런 이야기는 공간(公刊) 해병대사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언자는 무수히 있습니다만 공론화 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뭐 그렇다는 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