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은 체코쪽 사이트에서 가져온 베니스 생플롱 오리엔트 익스프레스(VSOE) 열차의 사진들이오. 구형 객차를 복원하여 1982년부터 부활 운행하기 시작한 전세열차 되겠소. 과거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에 비교하면 절반 거리도 못가는 열차지만, 호화판 열차의 대명사라는 점은 여전히 먹히고 있소. 직계라기는 어렵지만, 가장 가깝다면 가까운 녀석이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흡사 최고급 열차여행을 상징하는 단어랑 동격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인지도가 높은 이름이오. 특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 열차를 전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그래도 유럽에서는 자체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았나 생각되오. 그래서, 이 이름을 가지고 지금도 여러 회사가 정통을 자처하는 모양이기도 하고. 오리엔트 특급은 1883년 10월 4일에 그 운행을 최초로 하게 되었소. 이 열차는 특정국의 철도사업자에 의해서 운영되는 열차가 아니라, Compagnie Internationale des Wagons-Lits 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행회사에 의해서 운영되는 일종의 전세열차였소. 즉, 선로와 기관차를 빌려서 객차를 운행하는 방식이었고, 오리엔트 특급용의 객차의 소유도 여행회사의 것이었다고 하오. 다만, 비정기 운행 열차가 아닌, 정기 운행열차였다고 하는데, 운행 스케쥴은 항공기 처럼 1주에 몇 회 같은 식으로 계획되었던 모양이오. 이 열차의 루트는 딱 한정짓기는 어렵지만, 최초의 루트는 프랑스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당시에는 독일령), 독일 남부의 뮌헨을 경유,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와 부다페스트(당시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불가리아의 바르나 간을 운행하였고, 바르나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여객선으로 수송을 하였다고 하오. 다만, 동유럽 쪽의 철도 인프라 건설이 상당히 늦은 편이어서 중간에 다뉴브 강을 통한 페리 수송을 하기도 했고, 이스탄불까지 열차 직통편이 정비된 것은 1889년이었다고 하오. 이 루트는 1차대전 발발로 끊기게 되는데, 이후 운행이 재개된건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이었소. 운행 재개 과정에서 새 루트가 추가되는데, 알프스를 넘는 생플롱 터널(Simplon Tunnel, 1982년까지 최장터널로, 19,803m였소. 1982년 다이시미즈 터널, 1988년 세이칸 터널 개통으로 타이틀을 잃었소.) 루트가 1906년에 개업하면서, 이쪽을 경유하는 루트가 생기게 되었소. 파리-로잔(Lausanne, 스위스)-밀라노-베니스-베오그라드(세르비아)-소피아(불가리아)-이스탄불 루트로 달리게 되었는데, 이 루트를 베니스-생플롱 오리엔트 특급(VSOE)이라고 부르오. 1930년대가 이 오리엔트 특급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소. 항공 교통은 아직 시원찮았고, 선편은 너무 오래 걸리는데 비해서, 한큐에 여러 국가를 직통으로 넘어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 여행을 다닐만한 부르주아 계급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선택이었으니 말이오.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이 시대에 쓰여졌고(1934), 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소. 또 루트도 하나 더 추가되어, 런던에서 출발, 페리 편으로 칼레(Calais)를 경유, 파리-취리히-인스브루크-비엔나-부다페스트-아테네 또는 부쿠레슈티를 연결하는 알베르그 오리엔트 특급도 생겨나게 되었소. 이 시대에 있어서 오리엔트 특급은 말 그대로 유럽이라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특급 열차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후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오리엔트 특급은 중단되게 되오.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프랑스 지역의 철도망이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져서(1950년대까지 복구가 안된 구간이 있었을 정도), 또 전쟁 피해나 경제적 어려움 덕에 이런 고급열차 여행에 대한 선호가 떨어졌다는 점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고, 이후 동서냉전의 발발, 그리고 항공기의 발달로 인해 오리엔트 특급의 경쟁력은 날로 떨어졌소. 결국, 1962년에는 베니스-생플롱 오리엔트 특급을 제외하고는 영업을 중지하게 되었소. 1962년에는 이 루트의 명칭도 직통 오리엔트 특급(Direct Orient Express)로 바뀌고, 운행시간도 늘어났으며, 운행 계통도 베오그라드 까지는 매일, 이스탄불과 아테네 까지는 주 2회의 운행으로 단축되었소. 또, 객차도 여행사 소유에서 각 국의 국영철도회사에 매각처분하였소. 다만, 승무원과 티켓 판매만을 여행사가 담당하는 형태가 되었다고 하오. 그렇게 했음에도 역시 운행의 어려움은 증가해서, 1976년에 아테네 종착 열차를, 그리고 1977년에 이스탄불 종착 열차를 중단하였소. 다만 이름 자체는 남아서, 중간 경유지들(부다페스트 등)에서 종착하는 열차들에 붙여졌다고 하오. 그래봤자, 이스탄불까지 가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한참 떨어지는 셈이오만. 이후에, 이 이름이 아무래도 상징성이 크다 보니, 여러 군데에서 눈독을 들였소. 우선 프랑스의 SNCF는 1970년대 중반에 독일이나 동유럽 권으로 가는 직통열차에 대해서 이 이름을 붙였지만, 아무래도 좀 사이비 틱 했고... 오스트리아의 ÖBB도 이 이름으로 1977년부터 파리-부다페스트간을 운행했다고 하오. 또 미국에서도 American Orient Express라는 이름으로 철도와 유람선, 호텔을 연계하는 서비스를 했다고 하고. 도 1990년대에는 중국이나 인도도 이 이름을 차용한 열차들을 운행하고 있다고 하오. 그러나, 개 중에서 좀 독보적인 것은 1982년부터 운행한, 위 짤방의 열차를 운행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회사쪽이오. 이 회사는 철도 팬인 사업가에 의해 런칭이 된 사업인데, 1920년대의 객차들을 불하받아, 이를 복원하여 VSOE 열차편을 운행하기 시작한 것이었소. 이 열차는 주 당 1회 운행을 하고, 또 3월에서 11월 사이에만 영업을 하오. 객차의 내장은 거의 목조로 되어 있고, 매우 고전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고 하오. 또, 유명한게 열차 내에서 식사할 때 드레스 코드를 맞춰야 한다고 하오.-_- 그래도, 나름대로 호응이 있는지 티켓 가격이 1200파운드(요즘 시세로 216만원 정도)에 운행 시간은 30시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껏 영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오. 이 열차는 일본에서도 한번 뛴 적이 있소. 버블이 한참이던 1988년의 일인데, 오리엔트 특급 차량을 일본까지 끌고와서 일본 국내에서 운행을 한 일이 있었소(오리엔트 급행 `88). 일본의 후지테레비와 JR동일본이 벌인 이벤트인데, 당시, 프랑스에서 독일, 폴란드, 러시아, 중국을 거쳐 홍콩에서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객차를 그대로 가져와서 운행을 한 것인데... 이 운행을 위해서 한 짓들이 말 그대로 돈지랄의 극치를 달린다 할 수 있었소. 예를 들면, 대차 교환은 기본이었고(폐 객차의 대차를 유용), 차량 한계의 초과(폭은 괜찮았지만, 차량 길이가 일본 표준보다 긴 23.5m였소)로 인해 무려 주요 곡선부 800개소 중 300개소의 궤조 위치를 조정했다고 하오. 뭐, 이거야 해두면 나중에 장물차 같은걸 위해서도 도움이 되긴 한다지만... 그 외에, 연결기가 유럽식의 버퍼+사슬식 구조여서 편성 양 끝에 공차(밀거나 당기는 기능을 하는 연결차량)를 수화물 차량을 개조하여 연결해서, JR 기관차와 연결하게 했다고 하오. 수화물차에는 또 큐폴라라고 차 지붕을 살피는 돌출부가 있는데, 이게 또 차량한계를 초과해서 또 별도로 제작 교체하였다고 하고, 조리실 설비의 일부 개조나 추가, 중량 경감을 위하여 냉방기의 철거 등 꽤 많은 개조를 했고... 여기에 JR선 운행을 위해서 차적 부여에, JR동일본의 UIC가입, 또 세이칸 터널 통과를 위한 특별 인허가 취득(석탄난로나 목재내장이 화재예방에 위배되지만, 당직근무자 배치 및 방송/경보기 설치를 전제로 허용)까지 말 그대로 별 짓을 다 했다고 하오. 뭐...그야말로 버블시대에나 할 짓이었는데, 이후 JR동일본은 럭셔리 열차에 삘받아서 "유메쿠칸(夢空間)"같은 컨셉 객차(3량짜리 초호화판 객차-_-. 지금도 가끔 임시운행을 한다고 하오)나, E26계 카시오페이아용 고정편성 객차 같은 것을 만들어 굴리고 있는 상황이오. 우리나라의 철도공사도 이런 걸 해보고 싶어하는 눈치가 좀 있긴 한 것 같소. 결국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독일월드컵 열차(부산이나 서울발로 북한, 러시아를 경유해서 독일까지 가겠다던-_-)나, 또 얼핏 나온 이야기지만 고급 호텔과 맞먹는 침대열차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을 보면 무언가 해 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한 것 같소. CEO의 의향같긴 하지만.... 그러나, 누구말따나 꿈은 저 위에 있는데 현실은 시궁창같다고 할 수 있소. 당장에 장거리 야행열차들은 합리화의 모토 아래 모조리 도륙이 났고(전설의 1221/1222 통일호 같은 것 외에, 침대열차 고정편성이던 열차들이 2000년대 들어서 모조리 폐지되었소), 또 침대열차들은 쓸데를 못찾아 이리저리 임시열차에 덤 처럼 붙어다니는 상황이오. 물론, 우리나라의 철도영업구간 치고 6~10시간씩 다닐 구석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고(일본같은 경우 정기열차 중에 20시간 이상을 달리는 트와일라이트익스프레스가 있소), 또한 이런 고급 열차에 대한 사회적인 저항감도 큰 경향이 있기는 하오. 그러나, 당장에 야행열차 자체를 전폐하여 아예 수요 자체를 지워버린 상황에서, 럭셔리건 이코노미건 간에 이를 부활시키는 건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소. 인원도, 차량도, 서비스 내용도 아무것도 사회적으로 인지되는게 없는데, 무엇이 가능하겠소? 럭셔리 편이건, 국제편이건 간에 국내에서 그런 비슷한 서비스 감각이 있고 나서야 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오. P.S.: 일본의 장거리 야간 열차들은 쟁쟁한 열차들이 많소. 유명한 카시오페아(우에노-삿포로)나 호쿠토세이(우에노-삿포로), 트와일라이트 익스프레스(오사카-삿포로), 후지(도쿄-오이타), 선라이즈세토/이즈모(도쿄-이즈모/타카마츠)같은 침대특급들이나, 노토, 다이센, 하마나스, 키타구니 같은 야행 급행(침대와 좌석 또는 좌석 열차), 또 문라이트 에치고나 문라이트 나가라 같은 쾌속 등급 열차들이 존재하고,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를 구축하고 있소. 대개, 그 특징을 본다면, 신칸센 영업종료 시점에서 다음날 첫차 운행 시점 사이를 파고들거나(이 시간 대역에 주요 역에 도착하오), 아니면 아예 신칸센이 가지 않는 지역(산인본선이나 큐슈 지역 같은)을 연결하는 경우가 많소. 또, 침대특급의 경우 심야시간대(0~4시 정도)에는 여객 취급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경향이 있어, 이 시간대에 걸리는 곳이 오사카 같은 대도시라고 해도 여객취급을 아예 하질 않소. 특히 "운전정차"라고 해서, 여객취급 없이(아예 객차 문을 열지 않소) 역에 정차하는 시간대를 잡아서, 선로의 보수작업 시간대를 맞추거나 시간 지연 등을 벌충하도록 되어 있소. 물론, 도착 시간도 이걸 가지고 조정을 하고 말이오. 좌석이나 어코모데이션 쪽도 주간 열차보다 더 좋고 편한 좌석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고, 또, 공용 샤워실이나 로비 카 같은 프리스페이스 같은 걸 제공해서 야간 이용을 유도하기도 하오. 이에 비교했을때, 국내의 경우는 그냥 밤에 다니는 무궁화호일 뿐이고, 객차도 야간 운행차는 허접한 걸 연결하는 경향이 있소. 이래가지고는 야간열차는 그냥 애물단지에 머물 뿐이오. 침대차 연결도, 침대차만 달아놓지 이를 위한 서비스가 뭐가 필요한지는 완전히 깜깜한 것 같고 말이오. 오리엔트 특급같은 고급열차만 보고 눈만 높히지 말고, 일본에서 굴러다니는 야간 급행같은 것만이라도 잘 보고 서비스를 디자인해 보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하지 않나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