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해군은 왜 미국과의 전쟁에 찬성했을까?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에 자신이 없었으면서도 전쟁에 찬성했다.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이 미국과의 협상이 파탄에 이르자 야마모도 연합함대 장관에게 물었다.
\" 개전하면 해군은 승리에 자신 있는가?\"
야마모도의 답변은. \"자신없다\'였다.
고노에의 후임으로 도죠 히데끼(東條英機)중장(곧 대장으로 진급)이 수상이 된 후 일본해군 수뇌부에 개전할 경우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때 해군이 \'자신없다. 개전에 반대한다\'고 했으면 도죠는 개전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때 해군의 태도는 묵묵무답. \'개전이 결정되면 싸울 뿐.\"이라고 묵시적으로 개전에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 해군은 일본의 막대한 국방비를 육군과 나누어 먹으면서 \'상승해군\', \'무적해군\'이라고 국민들에게 허풍을 쳐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때가 되니 \'솔직히 말해 자신없다. 미국 해군에겐 진다.\"라고 고백할 수가 없었다.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다.
해군 일부에서도 자신없는 전쟁에 완강히 반대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세는
\' 군인이란 자신 있을때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조국, 천황의 명령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군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자신없다고 싸움을 회피하는 것은 무사도가 아니
다.\"였다.
그 얕삽한 체면때문에 승산도 없이 자포자기로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예상밖의 압승에 도취되어 오버 액션하다 자멸했다.
해군의 어리석은 장군들.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일본 해군에 대해 말할 때, 개전 결정의 경위에 관하여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해군은 육군과 달리 동원 준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전에 앞서 1940년 8월 출전준비대책을 협의했을 때, 해군은 미영으로부터 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시다 해군대신은, \"일본해군은 미국과 1년밖에 싸울 수 없다. 미국은 지구전으로 나갈 것이다. ....... 1년간의 지구전으로 전재에 뛰어드는 것은 호랑이에게 대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짓이다.\"하고 결론지었다.
요시다 해군 대장 뿐만 아니라 해군의 중추부에서는 미일전쟁에 대하여 적극론보다는 전도에 대한 비관론, 전쟁불가론이 많았던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전쟁에 반대한 것은 마지막까지 없었다.
제3차 고노에 내각에 의한 미일교섭이 막바지에 이른 1940년 가을 오이카와 해군 대신은, 비공식으로 가끔 \"이길 자신이 없다.\"고 언명하고 있고, 도조 육군대신에게도 직접 그렇게 말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 장소에서만 있었던 것으로 해주시오.하고 입막음을 시키고 화.전을 협의하는 공식 장소에서는 오로지 수상에게 일임한다고만 계속 말했다.
해군측의 진의를 충분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노에 수상의 무능, 무책임함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이나 체면에 사로잡혀 주장해야 할 것을 주장하지 않은 오이카와 해군대신의 책임의 중대성은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의 취임 자체가 문자 그대로 최대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동안 무적 해군이라고 과장해온 권위가 국민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그 따위 별볼일 없는 해군이라면 예산을 삭감하라\'라는 말을 듣기가 걱정이 되었던지, 아니면 우익 테러에 위협을 느꼈던지, 국가 민족의 운명과 관계되는 큰일을 앞두고 주전론 앞에 몸을 숙여 진실을 말할 용기마저 없는 \"이런 인간이 해군대신이야!\"라고 마음에서 분노와 경멸이 끓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인물이 해군대장이 되고 해군대신이 되는 일본 해군을 속물 집단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더 해군과 개전에 관하여 기술한다면 오이카와의 후임으로 태평양전쟁에 돌입했을 때의 해군대신인 시마다 시게타로 대장은, 도조의 뜻대로 움직여 도조의 부관이라고 불릴 정도의 천하에 악평을 들었고, 오이카와의 전임자 요시다 대장은 삼국 동맹체결이 미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사실 그러했다- 육군을 저쪽으로 돌려서 큰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하의 말에 \"야단났구나!\"하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엎어졌다고 한다. 그날 밤 요시다 대신은 고민한 나머지 쓰러져 입원했다.
일본 해군은- 적어도 그 상층부는 좋게 말해서 여성적, 나쁘게 말하면 썩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직에 있는 자는 일상적 업무를 결재하는 일은 부차적이고, 큰일에 임하여 한몸을 걸고 자기 주장을 지키는 것이 없어서는 아니될 조건일 것이다.
출처-일본 군국주의를 벗긴다. 와카쓰키 야스오. 화산문화사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에 자신이 없었으면서도 전쟁에 찬성했다.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이 미국과의 협상이 파탄에 이르자 야마모도 연합함대 장관에게 물었다.
\" 개전하면 해군은 승리에 자신 있는가?\"
야마모도의 답변은. \"자신없다\'였다.
고노에의 후임으로 도죠 히데끼(東條英機)중장(곧 대장으로 진급)이 수상이 된 후 일본해군 수뇌부에 개전할 경우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때 해군이 \'자신없다. 개전에 반대한다\'고 했으면 도죠는 개전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이 때 해군의 태도는 묵묵무답. \'개전이 결정되면 싸울 뿐.\"이라고 묵시적으로 개전에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 해군은 일본의 막대한 국방비를 육군과 나누어 먹으면서 \'상승해군\', \'무적해군\'이라고 국민들에게 허풍을 쳐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때가 되니 \'솔직히 말해 자신없다. 미국 해군에겐 진다.\"라고 고백할 수가 없었다.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이다.
해군 일부에서도 자신없는 전쟁에 완강히 반대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세는
\' 군인이란 자신 있을때만 싸우는 것은 아니다. 조국, 천황의 명령이 있으면 싸우는
것이 군인의 도리이고 임무이다. 자신없다고 싸움을 회피하는 것은 무사도가 아니
다.\"였다.
그 얕삽한 체면때문에 승산도 없이 자포자기로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예상밖의 압승에 도취되어 오버 액션하다 자멸했다.
해군의 어리석은 장군들.
제2차 세계대전에 있어서의 일본 해군에 대해 말할 때, 개전 결정의 경위에 관하여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해군은 육군과 달리 동원 준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전에 앞서 1940년 8월 출전준비대책을 협의했을 때, 해군은 미영으로부터 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시다 해군대신은, \"일본해군은 미국과 1년밖에 싸울 수 없다. 미국은 지구전으로 나갈 것이다. ....... 1년간의 지구전으로 전재에 뛰어드는 것은 호랑이에게 대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짓이다.\"하고 결론지었다.
요시다 해군 대장 뿐만 아니라 해군의 중추부에서는 미일전쟁에 대하여 적극론보다는 전도에 대한 비관론, 전쟁불가론이 많았던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전쟁에 반대한 것은 마지막까지 없었다.
제3차 고노에 내각에 의한 미일교섭이 막바지에 이른 1940년 가을 오이카와 해군 대신은, 비공식으로 가끔 \"이길 자신이 없다.\"고 언명하고 있고, 도조 육군대신에게도 직접 그렇게 말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 장소에서만 있었던 것으로 해주시오.하고 입막음을 시키고 화.전을 협의하는 공식 장소에서는 오로지 수상에게 일임한다고만 계속 말했다.
해군측의 진의를 충분히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노에 수상의 무능, 무책임함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해군의 입장이나 체면에 사로잡혀 주장해야 할 것을 주장하지 않은 오이카와 해군대신의 책임의 중대성은 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의 취임 자체가 문자 그대로 최대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동안 무적 해군이라고 과장해온 권위가 국민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두려워 \'그 따위 별볼일 없는 해군이라면 예산을 삭감하라\'라는 말을 듣기가 걱정이 되었던지, 아니면 우익 테러에 위협을 느꼈던지, 국가 민족의 운명과 관계되는 큰일을 앞두고 주전론 앞에 몸을 숙여 진실을 말할 용기마저 없는 \"이런 인간이 해군대신이야!\"라고 마음에서 분노와 경멸이 끓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인물이 해군대장이 되고 해군대신이 되는 일본 해군을 속물 집단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좀더 해군과 개전에 관하여 기술한다면 오이카와의 후임으로 태평양전쟁에 돌입했을 때의 해군대신인 시마다 시게타로 대장은, 도조의 뜻대로 움직여 도조의 부관이라고 불릴 정도의 천하에 악평을 들었고, 오이카와의 전임자 요시다 대장은 삼국 동맹체결이 미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면서도- 사실 그러했다- 육군을 저쪽으로 돌려서 큰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하의 말에 \"야단났구나!\"하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엎어졌다고 한다. 그날 밤 요시다 대신은 고민한 나머지 쓰러져 입원했다.
일본 해군은- 적어도 그 상층부는 좋게 말해서 여성적, 나쁘게 말하면 썩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직에 있는 자는 일상적 업무를 결재하는 일은 부차적이고, 큰일에 임하여 한몸을 걸고 자기 주장을 지키는 것이 없어서는 아니될 조건일 것이다.
출처-일본 군국주의를 벗긴다. 와카쓰키 야스오. 화산문화사
아베도 똑같은 놈이다.
그러니 카미카제ㅔ 같은게 생기는거지 민족 특성상 그런듯
상명하복이 유교잔재인줄 아는 일뽕들 많던데 알고보니 일제와 독재시대 잔재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