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급히 볼 일이 있어서 내려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아주 오랫만에 기차를 탔음.
여수발 용산행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
그런데 우와~ 요즘은 티켓도 영수증처럼 나오고 개찰구가 없더라.
일본처럼 차장이 뭐 들고 다니면서 그냥 스캔하나부지? 근데 그런 장비들 이름이 뭐야?
여튼 열차를 탔는데 차가 낡아서 구리구리한 거야. 냄새도 상큼하지 못하고. 혹시나 특실이 있나 싶어서 확인해 보니 특실도 없어.
그래서 에잉.. 고속버스 타고 갈껄 그랬나 싶었지.
여튼 열차에 맨 뒤로 들어가서 맨 앞 1호차로 가려고 객차를 이동하는데 오잉? 다 여자들밖에 없는거야.
아~ 역시 여자들은 화장실 문제 때문에 열차 이동을 선호한다더니... 과연...
우리나라는 아직 화장실 달린 고속버스가 나오려면 멀었나. 거리도 짧고 곳곳에 휴게소가 있으니 필요가 없어서 안 만드는건가?
내 자리는 창측이었고 앞 자리 내측에 웬 여자가 와서 앉았는데. 조금 있다가 이 여자가 내 앞 좌석을 뒤로 눕혀버리더라.
자기가 앉은 좌석이 조금 뒤로 눕혀져 있었는데 아마도 틈이 생겨서 내가 보이니까 좀 불편했겠지.
그럼 지가 땡겨서 앉을 것이지 왜 내가 불편하게... 이런 오라질 년.
열차는 출발을 했고. 아, 근데 터널 하나 지나더니 바로 옆으로 해안이 펼쳐지네. 근데 대낮이라 경치는 그닥. 아침이면 죽였을 텐데.
꼭 동해남부선 해운대에서 송정 가는 거기 거기 어디냐. 그래 달맞이 고개. 거기 같더라. 근데 선로가 낡아서 그런지 심하게 덜컹거려서 쫄았지.
열차는 조금 있다가 여천에 도착했고 승객을 태우고서 출발했는데 앞좌석에서 작은 문제가 벌어졌지.
내 앞좌석에 앉은 여자와 여천에서 탄 여자가 좌석에 뭔가 문제가 있었나봐.
서로 표를 확인해보니까 좌석이 같은거야. 뭔가 발매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나 본데 여튼 나중에 온 여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여자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앞 좌석의 여자는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데 내용은 뭐 뻔하지.
어떤 이상한 여자가 와서 자기 자린데 어쩌구 저쩌구... 짜증난다는 둥... 재수없다는 둥...
내가 보기에 그 여자는 그냥 매너 좋게 표를 확인해 보자고 했는데 엄청나게 과장해서 전화하는 중.
그런 뒷담화를 하려면 좀 조용히나 하든가 내가 뒤에서 다 보고 있었는데 거짓말까지 섞어 가면서. 창피하지도 않은가?
그런데 조금 있다가 대반전이 일어났지. 아까 그 여자가 차장을 데리고 온 거야. 차장도 여자분이더라? 요즘에는 여자 차장도 많은가봐?
그래서 표를 확인을 해 봤는데... 이런. 먼저 앉아 있던 여자의 표가 문제가 있었던거야. 좌석과 열차 시각은 맞는데 날짜가 다른 표였나봐.
쉽게 설명하면 3일 14시 표를 가지고 하루가 늦은 4일 14시 열차를 탄 거.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운지.
이 여자가 그걸 알고 탄 건지 모르고 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여자한테 선입견이 생겨버리니까
저 개념없는 여자가 제 시간에 기차를 못 타고 표를 취소해서 새로 사기도 귀찮고 그러니까 일단 타고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어쨌거나 표를 잘못 가지고 탔으니까 뭔가 차지를 물어야 하나봐. 차장 아줌마가 요금이 어떻고 그러는데 여자가 사정사정 하더라고.
뭐 나야 요즘 시스템이 어떤지 모르는데 유럽처럼 객차 안에서 차지를 좀 물고 표를 살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네.
여튼 그 여자는 자리를 비워줘야 했는데 두 자리가 다 비어 있는 앉을만한 자리가 하필 나와 같은 열의 건너편 자리 인거라.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 이런. 내가 그만 제스처를 취해버리고 말았어. 내가 평소에도 제스처나 표정이 풍부한 편이야.
그 서양 사람들이 잘 하는 제스처 있잖아. 참 안됐소... 하면서 어깨 으쓱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거나 입을 푸~ 하는거. 그걸 해 버렸네.
뭐 그렇게 열차는 계속 달렸고. 잠시 후, 이 아가씨 어디론가 사라지더군. 순천에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그런데 자리를 따낸 아가씨. 아 이 아가씨도 그 여자가 사라지자 마자 전화기를 드는 거야. 아... 여자들은 다 비슷하구나... 하려는데.
방문하려는 서울 사는 친구에게 서울 지리만 간단하게 물어보고 딱 끊더군. 캬~ 뭐 대단한 것도 없는데 그냥 캐감동.
철갤 여러분. 연애는 모르겠고 나중에 마누라감을 고르려면 이런 아가씨를 골라야지 앞에 이야기한 그런 아가씨를 고르면 집안이 피곤해 집니다.
여튼 열차는 순천역에 들어서는데 순간 급똥이 마려워서 화장실로 ㄱㄱ.
2일 묵은 똥을 간신히 배출하고 객실로 돌아 오니 역시 순천에서 승객이 잔뜩 타서 기차가 북적거리네.
근데 내 자리에는 웬 여자애가 앉아 있는 거라. 너 뭐냐? 싶어서 가서 실례합니다. 하니까 애가 화들짝 놀라면서 복도쪽 자리로 이동.
창측이 비었으니까 창 밖이 보고 싶어서 냉큼 앉은 모양. 잠시 후 차장 아저씨가 들어 왔는데 차장 아줌마와 교대 한 듯.
그리고 잠시 있다가 순천에서 탄 것으로 추정되는 카트가 왔는데... 근데 이거 요즘도 홍익회에서 하나? 헉. 여자애가 서빙을 하네.
예전에는 칙칙한 회색 옷 입은 홍익회 아저씨들이 했는데 이제 이런 것도 도우미 유니폼 입은 어린 여자애들이 하는 건가?
여튼 맥주 하나 딱 사서 여수에서 챙겨 온 초밥 도시락을 먹으려고 딱 꺼냈는데. 이런. 앞좌석에 선반이 없네... 내가 탄 건 무궁화였지 참...
그런데 원래 무궁화 호에 선반이 없나? 아니면 객차가 너무 구형이라 없는건가? 아 보니까 젓가락도 어디다 빼 먹고 왔어.
아주 궁상스러운 자세로 초밥을 까 먹으면서 차창 밖을 보니 아... 섬진강변을 달리네... 봄이었다면 경치가 참 좋았을 것을...
기차는 그렇게 구례구를 지나 곡성을 지나 남원을 지나 전주를 향해 가는데 맥주도 먹었고 밥도 먹었고 하니 급잠이 쏟아지네.
옆을 보니 이 여자애 창 밖 구경이 얼마나 좋으면 고개를 쭈욱 빼고 반대 쪽 창을 바라보고 있는거야. 하긴 내 쪽으로 쭈욱 빼면 좀 부담스러우니...
웬지 측은해 보여서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 보니 평택. 읽을 만한 책은 있냐고 물으니 없음. 나 잘 거니까 자리 바꿔 주겠다니까 좋아라 하는데.
이미 좋은 경치는 다 지나가 버렸단 말이지... 아니다 여름 풍경이니까 호남평야의 벌판이 보기에는 더 시원하겠구나 싶었지.
그러고서 나는 쿨쿨 잠에 빠져 들고... 잠시 후 눈을 떠 보니 신탄진. 아, 많이도 왔네 하면서 옆을 보니 얘는 그때까지 창에다가 코를 박고 있네.
다들 알겠지만 낯선 남자가 여자에게 창측을 양보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지. 여자들도 십중 팔구는 꺼리는 편이고. 성범죄의 위험이 높으니까.
그런데도 얼마나 창 밖이 보고 싶으면 자리 바꿔 준다니까 냉큼 바꾸고 해가 거의 다 져서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창에 코를 박고 잇는 모습을 보니
아... 걍 순천에서부터 그냥 내가 복도쪽에 앉아서 올껄 하는 측은지심이 호숫가의 잔잔한 파도마냥 몰려 오더라.
나도 뭐 그다지 할 꺼리가 없어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는데 빌 브라이슨이라고 글빨 죽여주는 미국 아저씨가 쓴 영국 여행기야.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기차타면 지루할 거 같아서 여수에 있는 서점에서 하나 샀는데. 아 이거 재밌더만. 딱 내 스타일.
카트에서 산 TOP를 홀짝홀짝 마셔가면서 책을 읽다 보니 시간도 후딱후딱 잘 가고 어느 새 천안 도착.
근데 내 옆에 있던 여자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 무릎을 팍 치고는 후다닥 나가버리네. 아니... 야. 너 평택까지 간다면서.
과연 천안은 소문대로... 기차는 가축 수송 열차가 되어 버렸고 여기저기 서 있는 입석 승객들이 많으니 화장실 가기도 부담스럽네...라고는 하지만
사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통근통학 수요가 별로 없어서. 듬성듬성 빈 자리가 많았음.
나는 계속 책에 코를 파 묻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중년 아저씨가 여기 자리 있습니까??? 네? 아... 잘 모르겠습니다. ㅋ
보통 같으면 없는 거 같네요... 앉으세요. 할텐데... 아까 여수-순천에서 봤던 자리 문제가 불현듯 스쳐 지나가서 그랬던 걸까?
자리를 따낸 그 아가씨는 아직 앉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뭐 서울까지 간다고 들었으니 있겠지 뭐.
그렇게 기차는 영등포에 도착을 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오랫만에 기차를 타니 나름 좋았네. ㅎㅎ 이번 주말에는 책 두 권 사 들고 중앙선이나 타 볼까 생각 중인데. 자리나 있으려나.
책 읽기에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기차인거 같음.
그리고 무궁화 호. 생각보다 많이 싸서 놀랐음. 이제 제일 싼 열차가 되었으니. 다운 그레이드 되면서 정말 특실은 없어진건가?
그런 여자들 짜증나죠 정말... 물론 여자만 있는건 아니지만 자기 보인다고 옆 의자를 눕히다니 ㅋㅋㅋ 이런 일기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