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기술로 서울~개성 구간만 한정해서 본다면 산 뚫는 것 보다 좀 더 돌아가도 평지로 가는게 건설비용이 덜 먹혔을 거다.
실크로드™(58.233)2019-11-04 21:49
원당읍은 능곡역이나 대곡역에서 멀리 떨어져있질 않고,
지도읍(현 능곡역 앞 구시가지)와 일산읍도 나름 큰 동네였다. 1기신도시 이전 일산읍이나 원당읍이나 그렇게 크게 차이 없었다. 물론 원당읍이 군청버프 받아서 쪼매 더 크긴 했음.
오히려 통일로 연선이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 벗어나면 노-답. 애초에 그쪽은 평지인 수색로쪽이랑 달리 골짜기 지형이라...
익명(175.223)2019-11-04 23:19
답글
덕양(지도읍, 원당읍)은 크게 봤을 땐 일산보단 발전된 시가지가 맞았으나 원당읍은 현 노선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한 범위내였고, 일산도 논밭뿐이 아니라 읍소재지였다. 애초에 일산역에서 기차타고 만주 올라간 독립운동가 이야기도 있는데.
익명(175.223)2019-11-04 23:22
답글
즉, 님이 말한 전제조건인
1. 일산은 논밭이였다 -> 부터 틀렸고
2. 덕양이 좀 더 발달된 시가지였다 -> 는 일부 맞으나 지금 선형으로도 일산보다 조금 더 발달된 원당읍도 커버는 가능, 조금 덜 발달된 지도읍(능곡)은 바로 지남.
3. 벽제가 좀 더 발달된 시가지였다 -> 개소리. 예나 지금이나 벽제는 읍보다 낮은 면이었다. 즉, 일산보다 작았다.
익명(175.223)2019-11-04 23:25
답글
아 그당시에도 벽제는 별로 크지는 않았구나
꾸라나무아래(byon1993)2019-11-04 23:26
답글
난 처음알았는데 일산보다 벽제가 작았네
꾸라나무아래(byon1993)2019-11-04 23:26
답글
일산'신도시' 부지가 논밭이었던 거지 일산 자체가 논밭이었던 건 아님. 지금도 일산역 북쪽에 일산시장이랑 살아있는데 일부 재개발되었고 지금도 재개발 진행 중이라 완벽히 모습을 유지하곤 있지 않지만 일산역 북쪽 그 일대 전체가 죄다 일산읍이었다고 보면 된다. 속칭 '구일산' 내지는 '중산'.
1기신도시 대응!!
뭔소리여
구한말때 경의선 지을때 왜 일산쪽으로 지은건지 물본건데 무슨 1기 신도시야
당시 기술로 서울~개성 구간만 한정해서 본다면 산 뚫는 것 보다 좀 더 돌아가도 평지로 가는게 건설비용이 덜 먹혔을 거다.
원당읍은 능곡역이나 대곡역에서 멀리 떨어져있질 않고, 지도읍(현 능곡역 앞 구시가지)와 일산읍도 나름 큰 동네였다. 1기신도시 이전 일산읍이나 원당읍이나 그렇게 크게 차이 없었다. 물론 원당읍이 군청버프 받아서 쪼매 더 크긴 했음. 오히려 통일로 연선이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 벗어나면 노-답. 애초에 그쪽은 평지인 수색로쪽이랑 달리 골짜기 지형이라...
덕양(지도읍, 원당읍)은 크게 봤을 땐 일산보단 발전된 시가지가 맞았으나 원당읍은 현 노선으로도 충분히 커버 가능한 범위내였고, 일산도 논밭뿐이 아니라 읍소재지였다. 애초에 일산역에서 기차타고 만주 올라간 독립운동가 이야기도 있는데.
즉, 님이 말한 전제조건인 1. 일산은 논밭이였다 -> 부터 틀렸고 2. 덕양이 좀 더 발달된 시가지였다 -> 는 일부 맞으나 지금 선형으로도 일산보다 조금 더 발달된 원당읍도 커버는 가능, 조금 덜 발달된 지도읍(능곡)은 바로 지남. 3. 벽제가 좀 더 발달된 시가지였다 -> 개소리. 예나 지금이나 벽제는 읍보다 낮은 면이었다. 즉, 일산보다 작았다.
아 그당시에도 벽제는 별로 크지는 않았구나
난 처음알았는데 일산보다 벽제가 작았네
일산'신도시' 부지가 논밭이었던 거지 일산 자체가 논밭이었던 건 아님. 지금도 일산역 북쪽에 일산시장이랑 살아있는데 일부 재개발되었고 지금도 재개발 진행 중이라 완벽히 모습을 유지하곤 있지 않지만 일산역 북쪽 그 일대 전체가 죄다 일산읍이었다고 보면 된다. 속칭 '구일산' 내지는 '중산'.
벽제가 컸다는건 어디까지나 조선시대 얘기 아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