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랗던 17살, 기차의 바퀴가 무엇으로 되었는지도 몰랐던 어린 소년이 어느덧 3회차의 정년연장을 하고 퇴직을 기다리는 녹슨 철마가 되었구나.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960년대부터 나는 구로에 뼈를 묻고 살았다.
17살에 철도청 관제직으로 특채되어 바로 수려선의 관제를 맡게 되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때는 일단 막 시키고 하면서 배우는게 관습이었다.
일제시대에 친일해서 기관사가 된 친일기관사들이 \"마다 꼬모도자나이\" 하면서 어리다고 나를 무시했지만, 나는 그 기관사들에게 예고없이 부본선 진로를 내서 탈선 직전 상황에 이르게 만들어서 복수를 하였다. 그러니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였다.
관제사로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구로의 급식이 폐급이라는점이다. 관제센터가 너무 외진곳에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먹기도 힘들고 보안구역이라 배달도 안된다. 50년간 맛없는 음식을 소식하며 살으니 세상만사 지피지기라고 이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관제십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제 철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말하노라.
나처럼 매일 통근하면서 제티를 사먹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노라.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960년대부터 나는 구로에 뼈를 묻고 살았다.
17살에 철도청 관제직으로 특채되어 바로 수려선의 관제를 맡게 되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때는 일단 막 시키고 하면서 배우는게 관습이었다.
일제시대에 친일해서 기관사가 된 친일기관사들이 \"마다 꼬모도자나이\" 하면서 어리다고 나를 무시했지만, 나는 그 기관사들에게 예고없이 부본선 진로를 내서 탈선 직전 상황에 이르게 만들어서 복수를 하였다. 그러니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였다.
관제사로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구로의 급식이 폐급이라는점이다. 관제센터가 너무 외진곳에 있어서 밖으로 나가서 먹기도 힘들고 보안구역이라 배달도 안된다. 50년간 맛없는 음식을 소식하며 살으니 세상만사 지피지기라고 이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관제십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제 철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말하노라.
나처럼 매일 통근하면서 제티를 사먹으면 무병장수할 수 있노라.
절단레일님 추천드려요. 고생 많으셨어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