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부장형 아니라 누가 대답해주셔도 관계는 없소만~
저 아래에 조사부장형이 태백선의 개통역사에 대해 작성한 명문을 보다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떠올라서 이제야 질문을 올려보오.
태백선에 전력공급선이 깔리고 전철화가 된 건,
분명히 태백선 선로만 먼저 놓고 그 위에 열차가 운행하는 상태에서 이루어 졌을건데,
그럼 대체 터널 안에는 어떻게 전력선 설비를 넣는거요?
시공 방법도 궁금하지만, 공사 외적인 부분들이 많을거잖소.
짧은 터널이야 별로 문제가 안되겠지만, 굳이 정암터널까지 들지 않더라도
조동-자미원 사이라든가 영월 근처에도 꽤나 긴 터널들이 다수 포진해있잖소?
요즘의 최첨단 공법으로 24시간 공사한다고 쳐도 총연장 4505m의 정암터널에
전력선을 넣는다는건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따로 대피터널도 없는 긴 터널에 어떤 방식으로 전력선을 넣었는지 매우 궁금하오.
작업하다 말고 기차온다! 며 조낸 밖으로 달려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잖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시설물을 설치하며,
그 기간동안 열차운행은 어떻게 조정했는지,
그리고 말발굽형 터널들은 터널 단면적을 늘리지 않아도
전력선을 넣을 공간이 충분한건지도 궁금하구료.
참, 조사부장형 팬 해야겠소 앞으로 ㄲㄲ
짤방은... ㅌㄹ역이오. 예전 #1222 통일붕붕 타고가다 찍은거.
일단 당시 산업선은 지금의 일반전기철도보다 낮게 전차선이 설치되었소. 기억이 맞으면 4750mm인가 4850mm인가. 수도권이 거의 5m 이상 높이에 설치된거에 비해 상당히 낮게 설치되었다오. 터널의 경우 60년대 공사 구간은 단면을 확보했던 것 같소. 그 이전 구간은 좀 불명확한데, 충분치는 않지만 확대 단면을 적용한게 아닌가 싶소. 공사 자체는 지금도 일반 노천에서는 열차 운행에 관계없이 공사하는 택이고, 터널 내부 공사도 차단시간을 확보해서 시공했을게요. 어차피 있던 전차선 고치는게 아니라, 새로 금구류를 붙이고 하는 거니 부담은 적지 않았겠소. 터널 내부라고 해도 작업원이 피해 있을 공간까지 같이 잡아두고, 이걸 못잡는 경우라도 대개 몇십m 마다 벽면을 조금 파 내어 놓은 곳이 있어 거길 쓰오.
아..그럼 태백선타고가다보면.. 구멍뚤린데...그거였구나??
관계자분 말씀에 의하면 죽령터널 같은 경우에는 1942년에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에 있을 전철화공사에 미리 대비하여 터널 상부에 애자를 미리 다 설비해 놓아서 후에 전차선을 걸 때 용이했다고 하더군요. 아마 태백선의 터널도 마찬가지로 건설당시에 미리 전차선 설치를 위한 구조물을 시공해놓지 않았나 싶네요.
하긴 굳이 전차선 부설 공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로 터널내부 보수 하려면 대피공간 정도는 당연히 설계가 되어있긴 하겠네요. 어쨌거나 죽령터널 이야기는 훈훈하네요. 조사부장형, 철도여행자형 감사~
중앙선, 일제시대 당시의 경경선은 원래 경원선과 함께 전철화 공사 예정이 잡혀있었다오. 전기기관차 검수 시설 설치가 1942년인가 1944년에 제천에 이루어졌는데, 경경선 보다는 경원선이 급했는지 여기에 일본에서 도입된 전기기관차 3량이 선행 배치되어 버렸고, 그걸로 해방을 맞으면서 남한에서는 전기철도가 없게 되었다오.
다만 그때 고려한건 직류전화1500V나 3000V였기 때문에, 터널단면적은 그걸 기준해서 잡았고, 우리가 1968년에 전철 공사를 할때는 프랑스의 교류전화 기술을 수입했기 때문에 그 높이가 부족해서, 산업선 전철 규격이 낮게 잡힌게 아닌가 싶소. 뭐, 전철화 이전에 건설된 경원선 한강구간 터널을 생각하면 저거라도 있는게 다행이다 싶긴 하오만.-_-
그럼 교류/직류의 터널 단면적이 어떻게 다른가요? 또 왜..?
일단 직류쪽이 안전이격거리 같은게 약해서 터널단면을 줄이는데 유리하오. 교류는 반대로 좀 이격거리가 커야 해서, 미묘한 차이지만 터널 단면이 조금 더 커져야 하오. 전기애자 설치하는 방법만 봐도, 분당선과 서메, 도철공 노선이 다르다오. 산업선의 경우, 1950년대 건설한 노선들은 터널단면이 부족해서, 전차선 높이를 낮추고(표준에서 30cm가까이), 또 설치방법도 특별한 걸 적용해서 겨우 설치했다고 하오. 공사시에 터널 천정에 내려온 고드름 덕에 꽤 애를 먹었다고 하오.
다만, 함백선 구간(1960년 이후) 부터는 전철화를 염두에 두고 건설을 했다고 하오. 저런 설치의 애로가 생긴데는 1950년대 공사했던 영동선 철암~영주간과 태백선 제천~영월간이 문제였던 모양이더구랴. 중앙선 제천~풍기간인가 여긴 일제때 전철화 계획이 잡혀서 1945년 10월에 착공이던가 완공 계획이 있었다고 하오. 광복으로 이게 나가리되고, 이후 여길 다시 해볼까 라고 50년대 말쯤 생각했는데, 태백선에 밀렸다고 하오. 뭐, 그러다가 이후에 하기는 했지만 말이오. 중앙선도 원래 구둔~양동간 복선화 계획이 있었는데, 전철화 계획이랑 붙었다가 그대로 나가리가 났다오. 당시 복선이냐 전철화냐를 두고 갈등을 했었다는데, 돈은 없고 공사는 빡세고 하니 전철화로 가닥을 잡았었다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