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는 사실 영등포역의 위치가 좀 달랐기에 루트 조정이 좀 애매한 면이 있기는 하다오. 지금 위치는 예전의 기차역 부지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치우친 구조던가 그렇고, 원래 영등포 전철역은 현재 플랫폼의 북쪽 끝단에 붙어있었소. 백화점 여의도 방향 주차장 진입로가 원래 전철역 입구였소. 승강장이 꽤 비좁고 곡선이기까지 한데... 이렇게 된건 74년 당시에는 전철역 남단에 영등포공작창 인입선이 있었기 때문이라오. 현재 플랫폼 쪽은 당초 유치선으로 쓰던 부지를 저래놓은거고, 특히 급행선 승강장이 그 유치선 부지를 쓰고 있다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0:18
80년대 들어와서 영등포공작창이 폐지되고 이게 대전으로 내려갔고, 90년인가에 우리나라에선 민자역사 1호로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현재 역이 된 것이오. 이런 위치변동이 있었음에도, 5호선의 위치선정은 옛 역의 위치를 기준한 노선을 그냥 답습해서인지 저만치 떨어져 있고, 그래서 신길역이 새로 생긴 셈이었소. 2호선 루트를 영등포 경유로 하려면 경로 뽑기가 상당히 애매했는데, 만약 뽑았어야 한다면 경인로를 따라 북상해서 여의도-마포를 지나는 루트로 잡거나, 아니면 보라매공원 일대를 관통해서 신길동 신길로를 따라 북상, 현 영등포역 지하를 관통하는 루트를 잡아야 할게요. 어느쪽도 그리 쉽진 않은데, 영업성이라는 면에서는 둘 모두 대박이라 하겠소.
조사부장(218.54)2007-06-05 10:30
여의도 루트는 사실 당시 정치풍토가 개같아서, 주요시설 보호를 명목으로 담박에 짤렸을거고(이건 유신때도 그렇지만, 역시 29만원의 위력이 크다 하겠소), 신길동 루트는 교통난 해소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신길동은 서민동네기도 한데다, 도로도 열악하니), 기술적으로 보면 터널구간이 필요하고, 또 영등포 지하 관통 문제가 있게 되오. 아울러 당시 위세를 부리던 군부를 생각하면, 보라매공원 인근에 지하철을 판다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오(저 루트 인근엔 아직 군 소유 부지가 꽤 있소). 또, 어느것도 영등포구청 접근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가 남기도 하오. 뭐 그래도 아쉬운건 아쉬운 거긴 하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0:34
아직 당시의 승강장 구조물이 상행 1선의 끝쪽에 남아있죠. 지금은 공원화된 \'영등포역 동측광장\' 자리입니다. \'뉴삼보웨딩타운부페\'던가 약 10층쯤 되는 붉은 빌딩 뒤인데 약간의 역무시설이 남아있는것 외에는 승강장도 버려지고 많이 바뀌었죠.
철도병원(165.194)2007-06-05 10:40
덤으로 상부든 하부든 영등포역 관통은 당시 기술수준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비용면에서 무리였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신풍~옛 OB맥주쪽 루트로 지었더라도 당시에는 \'프론트잭킹\'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영등포역의 선로를 건들지 않으면서 영등포역 하부로 지하철이 지나가기는 \'불가능했다\'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전에 ㅇㅇ라는 개또라이가 \'왜 일본은 가능한데 열등조선은 영등포역 지하로 못뚫지\' 라고 난리친 적이 있었는데 국회도서관에서 일본의 \'(주)종합토목연구소, 기초공 22-4권, 1994\'를 찾아보면 당시 \'JR동일본\'에서도 70년대에는 프론트잭킹 기술이 없이 개착공법으로 시공을 진행했다는 바를 알 수 있겠소.
철도병원(165.194)2007-06-05 10:55
결론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70년대는 지상 교통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선로 밑을 횡단하는 방법 자체가 사실상 없었다오. 오로지 개착공법으로만 진행해야 하는 바, 영등포역 지하에 지하철 구조물을 설치하는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1. 과도한 비용상승과 2. 공기중 선로 이설로 인한 영등포역 여객 및 화물취급에 장애 3. 안전사고 발생의 가능성 위의 3가지 이유로 인해 영등포역 하부 통과는 일찌감치 대안에서 제외되었다오. \'철도기술연구원, 엄기영, 국내외 철도지하횡단공사 현황분석, 2000\' 논문에도 \"가받침/특수선공법과 같은 개착공법은 여굴 및 매립에 의한 노반교란으로 본 구조물의 완공후에도 노반의 궤도이완, 침하 및 이상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라고 개착식 공법의 단점이 언급되었소.
철도병원(165.194)2007-06-05 10:56
즉 2호선이 신도림역으로 지나가게 된 건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수십년간 서울남서축의 교통결절점 \'허브\'를 해 온 영등포역의 기능을 분산하며, 영등포역 이용 승객들이 불편하도록 환승하게 만들었고, 나아가서 강남/서초 권역을 철도사각지대로 만들어버린 참으로 아쉬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70년대 당시의 기술로 2호선 영등포역 통과는 어림도 없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오. 영등포구청~신풍 루트로는 영등포역 업무를 중단시키지 않고는 지하철을 팔 방법이 없고, 조사부장 본좌께서 언급하셨듯이 신길~여의도 루트로도 뚫릴 가망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오
철도병원(165.194)2007-06-05 11:01
일반 선로 부지라면 선로를 이설해 가면서 공사를 할 수 있을거고, 당시 신도림역은 역이 없고 주변에 연탄공장하고 유수지 밖에 없으니 이게 용이했소. 그러나, 영등포역은 현재 역 입구쯤에 옛날 역 건물이 있었던데다, 당시엔 화물취급이 있었기 때문에 승강장을 바꿔가면서 공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을게요. 아울러, 영등포 인근은 대체부지가 없는 동네라서, 2호선 공사 대부분 구간들 처럼 개착식으로 착공하면 막장이 되기 좋은 곳이니 견적이 안나오는 동네라 하겠소. 고가화해서 통과하는게 그나마 대안이긴 한데, 거긴 또 지하상가가 들어가 있는데다, 주변 상가들이 워낙 밀집해 있어서 고가 교각을 깔았다간 도로나 보행자 통로가 안나올 지경이었고 말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1:03
무엇보다도, 2호선 건설을 한참 하던때인 1980년 경에는 우리나라 국가 재정 수준이 참 안습 그 자체였고, 또 2호선 자체가 순환선화 하면서 노선 연장을 지나치게 늘려버린 덕에 공사비 부족에 허덕이던 노선이라는 점이오. 당장에 비용 문제로 교외구간은 고가화 하라는 자문이 들어오던 상황이었으니 저런 절체식의 개착공사는 당시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었을게요. 또 영등포역이 서울의 다른 역들처럼 한산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서울, 청량리와 함께 양대 관문역이라 할만큼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소. 이걸 절체공사화 하는건 안전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하겠소.
조사부장(218.54)2007-06-05 11:08
마지막으로 철도하부 횡단에 최초로 도입된 \'비개착식\' 공법은 \'프론트잭킹\'인데 국내에서는 1986년에야 (주)특수건설이라는 회사에서 처음 도입했던가 할게요. 원래 일본의 \'우에무라 연구소\'가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프론트잭킹보다 PCR공법 (Prestressed Concrete Roof)이 많이 쓰인다오. 기술 자체도 당시에는 없었거니와 돈도 없었으니 -_- 아쉬워도 어쩔수 없다오;;
철도병원(165.194)2007-06-05 11:10
뭐, 당시에 이런 비개착 공법이 있거나, 하다못해 외국에 발주를 내도 적용은 어려웠을게요. 일단 영등포역의 횡단거리가 선로와 승강장만 해도 100m에 달하는데, 이걸 프론트 재킹으로 처리하는건 지금도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오. 거기다가 공사 양쪽으로 개착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인로쪽은 지하상가 떨어내고 교통 문제를 각오하더라도 역 시설 설치때문에 일단 대규모 개착구를 둘 수 있지만, 신길동 쪽으로는 당시에도 공간이 없던 곳인 만큼 도저히 견적이 안나오게 되오. 거기다가 그쪽은 언덕 아래라서 공사의 위험부담도 크고 말이오. 했어야 한다면 고가 뿐이고, 이건 동네 꼬라지가 꼬라지인 만큼 도저히 고려대상이 안되오. 지금도 난공사가 될 구간이니 당시엔 피해갈 수 밖에 없던 셈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1:31
4호선 명동역 처럼 NATM으로 역을 파버리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긴 한데, 영등포역 앞쪽은 예전엔 범람원에 가까웠던 곳이라 아마 NATM으로는 도저히 안될게요. 쉴드 공법으로는 단면을 이리저리 바꾸는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지하역 만드는게 거의 불가능하니 논외에 가깝고 말이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영등포역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지상 역을 새로 건설할만큼의 돈을 들여가면서, 지하철을 다른 구간의 2배쯤 돈 들여가면서, 영등포 일대의 도로교통을 3년 이상 포기해 가면서 하지 않으면 못하고, 그정도의 재정부담은 당시로선 도달범위 밖이오. 아예 도시계획을 새로 하면 모르겠지만, 이건 르메이 장군이 뜨거나 관동대지진 수준의 재해가 생기기 전엔 고려할 수 없는 일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1:37
2호선 지을때 영등포역을 고가화 했으면 어땠을까요?;;
ㅈㅇㅌ(59.152)2007-06-05 12:03
흠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영등포로터리~오목교~목동~신월동까지 오목로 구간... -_- 원래 \'인천수도수송관거\'가 묻혀있는 자리라오. 노량진수원지에서 정수된 물을 본동 꼭대기의 노량진저수장 (현 동양중학교 자리) 까지 펌프질한 뒤 인천수도국 (동인천역 북쪽에 있는 수도국산-_-)까지 보내던 수도관인데 80년대까지만 해도 실제로 사용되고 있었던 만큼, 만일 2호선이 영등포역 앞을 지나가려고 했으면 함부로 개착도 못해서 그야말로 교통지옥을 만들었을 거라오 -_- 그나마 현 루트인 문래역~영등포구청역 쪽이 당시는 저밀도 공장밖에 없었으니 개착공사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라오 (현 진로아파트 자리... -_-)
철도병원(165.194)2007-06-05 12:11
지금은 인천광역정수장이 갈산동 경인고속도로변으로 옮겨갔고, 목동신시가지 공사를 하면서 도림천 방면으로 광역상수도관을 이설했기에 예전같은 문제는 없다오. 2호선 문래역과 영등포구청역이 강서방면 주 가도인 오목로 선상에 지어지지 못하고 양쪽으로 한블럭씩 떨어져서 지어진 연유도 저 \'인천수도수송관\' 때문이라오 ㄳ
철도병원(165.194)2007-06-05 12:13
르메이 장군께서 친히 B-29 슈퍼포트레스 몰고서 소이탄으로 씨밤쾅 해주셨다면....ㄷㄷㄷ 2차대전 때 르메이 장군이 조선반도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랄까....ㄲㄲㄲ
인천토박이(163.180)2007-06-05 12:07
(당시를 기준) 무궁화,통일호 정차역을 영등포가 아닌 구로로 했음 좋지않았을까?인천 방향으로의 연결이 편리해서 철도 수입 증대에도 도움이 되었을텐데
차라리(58.120)2007-06-05 12:49
당시의 구로역은 그리 공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80년대에는 거의 변두리 공단지역에 가까운 곳이어서 그렇게까진 못했을게요. 이전에는 화물열차가 구로역에서 기관차를 옮겨붙이고 경인선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부지가 없진 않았겠지만, 대신 경인급행선 공사는 애먹지 않았을까 싶소. 이게 그 유치선을 없애고 만든거라서 말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3:31
엄청나네..ㄷㄷ
슈나(121.147)2007-06-05 14:11
조사부장좌 철도병원좌 철갤 두 본좌의 Crossfire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ㄷㄷ(58.211)2007-06-05 15:08
근데 내가 왜 본좌인거심 ㄳ 나보다 더 내공충만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ㄳ 조사부장좌 5135좌가 양대 본좌시고 ARIAKE님 明星님 프림님 8207님 등등 많음ㄳ
철도병원(165.194)2007-06-05 15:49
조사부장님 댓글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서울 2호선 교외구간 ( 요즘으로치면 한강이남? ) 은 지하화 대신 지상화가 논의되었었다는데 어떤 구간이 교외에 포함되었나요? 그리고 지상(고가)화를 하지 않고 굳이 지하화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요?
Dawn(121.130)2007-06-05 16:01
진짜 죽은 사람 불알 만지면 느낌 어떨까요?
근데(123.212)2007-06-05 16:03
지하철건설삼십년사 책에 언급된 범위는 도림천 구간~구로동~당산과, 한양대 이남 구간쪽이 고려되었소. 강남 구간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개발이 들어간 구간이고, 또 2호선이 이를 증폭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지하화 되었소. 문래동 구간쪽은 루트 변경 때문인가로 지하화가 결정되어 현재처럼 된 것으로 알고 있소.
조사부장(218.54)2007-06-05 16:25
영등포 일대의 고가화가 일단 \"실행가능한\" 안에 그나마 가능한데, 기술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오. 일단 경인선 병행은 선로주변부지의 매수관계가 심각한 과제가 되오. 이 일대는 지금은 철도부지로 편입되어 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는 불량주택지구로 지주가 다 갈갈히 나뉘어 있던 지역이라고 알고 있소. 정비하는데만 거의 10년 이상 걸렸고, 여기에 불법건축물이 들어서는 문제 때문에 철망 벽과 나무 식재까지 할 지경이오. 또 지장물도 80년대 당시엔 연탄공장 인입선(IMF이후 폐지), 문래고가교 등이 있어서 2호선 공사 시점에서는 고려할 수 없는 루트였다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7:23
그리고 역을 가로지르는 고가의 경우도 역 정면 도로의 폭 부족과, 심각할 정도의 도로과밀이 문제가 되오. 지금도 그렇지만, 80년대에도 이 구간은 늘 혼잡했소. 거기다가 지하상가가 이미 설치되어 있어서, 고가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지하상가를 전면 재시공해야 하오. 또, 고가화 이후의 보도폭 부족 문제도 도저히 해결가능성이 없고 말이오. 아울러, 이 구간을 넘겨도 당산역의 위치를 변경해아 하고, 여기에 추가적인 용지매수가 부수되어야만 하오. 영등포공작창 인입선 부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원 영등포전철역에서 거리가 떨어지게 되고(약 400m 이상), 또 당산동 방향으로 갈 경우 선형이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오. 고려의 범위 밖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7:10
영등포 일대의 철도시설은 1980년 기준으로 볼때, 공작창이 아직 현역인데다, 드문드문 전용인입선 시설이 있어 손대기가 까다로왔을 것이오. 또 역 위치, 특히, 전철역 위치가 현재 신길역 쪽이어서 대대적인 개축 없이는 실질적으로 제대로 지하철 노선과 접속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소. 아니, 오히려 80년대에 섣부르게 영등포를 환승역으로 잡았다가는 지금처럼 민자역사화를 통해서 시설을 싹 정리할 수가 없었을 것이오.
조사부장(218.54)2007-06-05 17:40
오카야마에서 저아래로 내려가는데 신칸센이 굴러댕기나여?
김상철(211.52)2007-06-05 21:39
구상 정도만 있소. 세토대교 선로가 신칸센 차량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최고속도는 160km/h로 잡혀있던가 그렇소. 어차피 이것도 초기에 계획선으로만 구상된 거라서, 현재 정비 대상으로 묶인 구간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논의가 시작될까말까 하오.
조사부장(124.57)2007-06-05 23:51
김상철//일단 세토오오하시(세토대교) 하층부의 철도구간 노반은 신칸센+재래선 각각 복선으로 2복선의 공간이 마련되었다오. 구상 자체부터 신칸센 직통은 가능하게 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신칸센 연결을 미리 준비하느라 \'코스트 업\'이 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오. 뭐 결론적으로는 현재도 마음만 먹으면 시코쿠신칸센-.-을 금방 지을수는 있소.
80년대에는 사실 영등포역의 위치가 좀 달랐기에 루트 조정이 좀 애매한 면이 있기는 하다오. 지금 위치는 예전의 기차역 부지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치우친 구조던가 그렇고, 원래 영등포 전철역은 현재 플랫폼의 북쪽 끝단에 붙어있었소. 백화점 여의도 방향 주차장 진입로가 원래 전철역 입구였소. 승강장이 꽤 비좁고 곡선이기까지 한데... 이렇게 된건 74년 당시에는 전철역 남단에 영등포공작창 인입선이 있었기 때문이라오. 현재 플랫폼 쪽은 당초 유치선으로 쓰던 부지를 저래놓은거고, 특히 급행선 승강장이 그 유치선 부지를 쓰고 있다오.
80년대 들어와서 영등포공작창이 폐지되고 이게 대전으로 내려갔고, 90년인가에 우리나라에선 민자역사 1호로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현재 역이 된 것이오. 이런 위치변동이 있었음에도, 5호선의 위치선정은 옛 역의 위치를 기준한 노선을 그냥 답습해서인지 저만치 떨어져 있고, 그래서 신길역이 새로 생긴 셈이었소. 2호선 루트를 영등포 경유로 하려면 경로 뽑기가 상당히 애매했는데, 만약 뽑았어야 한다면 경인로를 따라 북상해서 여의도-마포를 지나는 루트로 잡거나, 아니면 보라매공원 일대를 관통해서 신길동 신길로를 따라 북상, 현 영등포역 지하를 관통하는 루트를 잡아야 할게요. 어느쪽도 그리 쉽진 않은데, 영업성이라는 면에서는 둘 모두 대박이라 하겠소.
여의도 루트는 사실 당시 정치풍토가 개같아서, 주요시설 보호를 명목으로 담박에 짤렸을거고(이건 유신때도 그렇지만, 역시 29만원의 위력이 크다 하겠소), 신길동 루트는 교통난 해소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신길동은 서민동네기도 한데다, 도로도 열악하니), 기술적으로 보면 터널구간이 필요하고, 또 영등포 지하 관통 문제가 있게 되오. 아울러 당시 위세를 부리던 군부를 생각하면, 보라매공원 인근에 지하철을 판다는 것도 쉽지 않고 말이오(저 루트 인근엔 아직 군 소유 부지가 꽤 있소). 또, 어느것도 영등포구청 접근을 제대로 못한다는 문제가 남기도 하오. 뭐 그래도 아쉬운건 아쉬운 거긴 하오.
아직 당시의 승강장 구조물이 상행 1선의 끝쪽에 남아있죠. 지금은 공원화된 \'영등포역 동측광장\' 자리입니다. \'뉴삼보웨딩타운부페\'던가 약 10층쯤 되는 붉은 빌딩 뒤인데 약간의 역무시설이 남아있는것 외에는 승강장도 버려지고 많이 바뀌었죠.
덤으로 상부든 하부든 영등포역 관통은 당시 기술수준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비용면에서 무리였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신풍~옛 OB맥주쪽 루트로 지었더라도 당시에는 \'프론트잭킹\'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영등포역의 선로를 건들지 않으면서 영등포역 하부로 지하철이 지나가기는 \'불가능했다\'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전에 ㅇㅇ라는 개또라이가 \'왜 일본은 가능한데 열등조선은 영등포역 지하로 못뚫지\' 라고 난리친 적이 있었는데 국회도서관에서 일본의 \'(주)종합토목연구소, 기초공 22-4권, 1994\'를 찾아보면 당시 \'JR동일본\'에서도 70년대에는 프론트잭킹 기술이 없이 개착공법으로 시공을 진행했다는 바를 알 수 있겠소.
결론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70년대는 지상 교통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선로 밑을 횡단하는 방법 자체가 사실상 없었다오. 오로지 개착공법으로만 진행해야 하는 바, 영등포역 지하에 지하철 구조물을 설치하는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1. 과도한 비용상승과 2. 공기중 선로 이설로 인한 영등포역 여객 및 화물취급에 장애 3. 안전사고 발생의 가능성 위의 3가지 이유로 인해 영등포역 하부 통과는 일찌감치 대안에서 제외되었다오. \'철도기술연구원, 엄기영, 국내외 철도지하횡단공사 현황분석, 2000\' 논문에도 \"가받침/특수선공법과 같은 개착공법은 여굴 및 매립에 의한 노반교란으로 본 구조물의 완공후에도 노반의 궤도이완, 침하 및 이상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라고 개착식 공법의 단점이 언급되었소.
즉 2호선이 신도림역으로 지나가게 된 건 현재의 기준으로 보아서는 수십년간 서울남서축의 교통결절점 \'허브\'를 해 온 영등포역의 기능을 분산하며, 영등포역 이용 승객들이 불편하도록 환승하게 만들었고, 나아가서 강남/서초 권역을 철도사각지대로 만들어버린 참으로 아쉬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70년대 당시의 기술로 2호선 영등포역 통과는 어림도 없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오. 영등포구청~신풍 루트로는 영등포역 업무를 중단시키지 않고는 지하철을 팔 방법이 없고, 조사부장 본좌께서 언급하셨듯이 신길~여의도 루트로도 뚫릴 가망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오
일반 선로 부지라면 선로를 이설해 가면서 공사를 할 수 있을거고, 당시 신도림역은 역이 없고 주변에 연탄공장하고 유수지 밖에 없으니 이게 용이했소. 그러나, 영등포역은 현재 역 입구쯤에 옛날 역 건물이 있었던데다, 당시엔 화물취급이 있었기 때문에 승강장을 바꿔가면서 공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을게요. 아울러, 영등포 인근은 대체부지가 없는 동네라서, 2호선 공사 대부분 구간들 처럼 개착식으로 착공하면 막장이 되기 좋은 곳이니 견적이 안나오는 동네라 하겠소. 고가화해서 통과하는게 그나마 대안이긴 한데, 거긴 또 지하상가가 들어가 있는데다, 주변 상가들이 워낙 밀집해 있어서 고가 교각을 깔았다간 도로나 보행자 통로가 안나올 지경이었고 말이오.
무엇보다도, 2호선 건설을 한참 하던때인 1980년 경에는 우리나라 국가 재정 수준이 참 안습 그 자체였고, 또 2호선 자체가 순환선화 하면서 노선 연장을 지나치게 늘려버린 덕에 공사비 부족에 허덕이던 노선이라는 점이오. 당장에 비용 문제로 교외구간은 고가화 하라는 자문이 들어오던 상황이었으니 저런 절체식의 개착공사는 당시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었을게요. 또 영등포역이 서울의 다른 역들처럼 한산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서울, 청량리와 함께 양대 관문역이라 할만큼 이용객이 많은 역이었소. 이걸 절체공사화 하는건 안전 문제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 하겠소.
마지막으로 철도하부 횡단에 최초로 도입된 \'비개착식\' 공법은 \'프론트잭킹\'인데 국내에서는 1986년에야 (주)특수건설이라는 회사에서 처음 도입했던가 할게요. 원래 일본의 \'우에무라 연구소\'가 상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프론트잭킹보다 PCR공법 (Prestressed Concrete Roof)이 많이 쓰인다오. 기술 자체도 당시에는 없었거니와 돈도 없었으니 -_- 아쉬워도 어쩔수 없다오;;
뭐, 당시에 이런 비개착 공법이 있거나, 하다못해 외국에 발주를 내도 적용은 어려웠을게요. 일단 영등포역의 횡단거리가 선로와 승강장만 해도 100m에 달하는데, 이걸 프론트 재킹으로 처리하는건 지금도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오. 거기다가 공사 양쪽으로 개착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경인로쪽은 지하상가 떨어내고 교통 문제를 각오하더라도 역 시설 설치때문에 일단 대규모 개착구를 둘 수 있지만, 신길동 쪽으로는 당시에도 공간이 없던 곳인 만큼 도저히 견적이 안나오게 되오. 거기다가 그쪽은 언덕 아래라서 공사의 위험부담도 크고 말이오. 했어야 한다면 고가 뿐이고, 이건 동네 꼬라지가 꼬라지인 만큼 도저히 고려대상이 안되오. 지금도 난공사가 될 구간이니 당시엔 피해갈 수 밖에 없던 셈이오.
4호선 명동역 처럼 NATM으로 역을 파버리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긴 한데, 영등포역 앞쪽은 예전엔 범람원에 가까웠던 곳이라 아마 NATM으로는 도저히 안될게요. 쉴드 공법으로는 단면을 이리저리 바꾸는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지하역 만드는게 거의 불가능하니 논외에 가깝고 말이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영등포역을 반신불수로 만들고, 지상 역을 새로 건설할만큼의 돈을 들여가면서, 지하철을 다른 구간의 2배쯤 돈 들여가면서, 영등포 일대의 도로교통을 3년 이상 포기해 가면서 하지 않으면 못하고, 그정도의 재정부담은 당시로선 도달범위 밖이오. 아예 도시계획을 새로 하면 모르겠지만, 이건 르메이 장군이 뜨거나 관동대지진 수준의 재해가 생기기 전엔 고려할 수 없는 일이오.
2호선 지을때 영등포역을 고가화 했으면 어땠을까요?;;
흠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영등포로터리~오목교~목동~신월동까지 오목로 구간... -_- 원래 \'인천수도수송관거\'가 묻혀있는 자리라오. 노량진수원지에서 정수된 물을 본동 꼭대기의 노량진저수장 (현 동양중학교 자리) 까지 펌프질한 뒤 인천수도국 (동인천역 북쪽에 있는 수도국산-_-)까지 보내던 수도관인데 80년대까지만 해도 실제로 사용되고 있었던 만큼, 만일 2호선이 영등포역 앞을 지나가려고 했으면 함부로 개착도 못해서 그야말로 교통지옥을 만들었을 거라오 -_- 그나마 현 루트인 문래역~영등포구청역 쪽이 당시는 저밀도 공장밖에 없었으니 개착공사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라오 (현 진로아파트 자리... -_-)
지금은 인천광역정수장이 갈산동 경인고속도로변으로 옮겨갔고, 목동신시가지 공사를 하면서 도림천 방면으로 광역상수도관을 이설했기에 예전같은 문제는 없다오. 2호선 문래역과 영등포구청역이 강서방면 주 가도인 오목로 선상에 지어지지 못하고 양쪽으로 한블럭씩 떨어져서 지어진 연유도 저 \'인천수도수송관\' 때문이라오 ㄳ
르메이 장군께서 친히 B-29 슈퍼포트레스 몰고서 소이탄으로 씨밤쾅 해주셨다면....ㄷㄷㄷ 2차대전 때 르메이 장군이 조선반도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랄까....ㄲㄲㄲ
(당시를 기준) 무궁화,통일호 정차역을 영등포가 아닌 구로로 했음 좋지않았을까?인천 방향으로의 연결이 편리해서 철도 수입 증대에도 도움이 되었을텐데
당시의 구로역은 그리 공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80년대에는 거의 변두리 공단지역에 가까운 곳이어서 그렇게까진 못했을게요. 이전에는 화물열차가 구로역에서 기관차를 옮겨붙이고 경인선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부지가 없진 않았겠지만, 대신 경인급행선 공사는 애먹지 않았을까 싶소. 이게 그 유치선을 없애고 만든거라서 말이오.
엄청나네..ㄷㄷ
조사부장좌 철도병원좌 철갤 두 본좌의 Crossfire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근데 내가 왜 본좌인거심 ㄳ 나보다 더 내공충만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ㄳ 조사부장좌 5135좌가 양대 본좌시고 ARIAKE님 明星님 프림님 8207님 등등 많음ㄳ
조사부장님 댓글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서울 2호선 교외구간 ( 요즘으로치면 한강이남? ) 은 지하화 대신 지상화가 논의되었었다는데 어떤 구간이 교외에 포함되었나요? 그리고 지상(고가)화를 하지 않고 굳이 지하화를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요?
진짜 죽은 사람 불알 만지면 느낌 어떨까요?
지하철건설삼십년사 책에 언급된 범위는 도림천 구간~구로동~당산과, 한양대 이남 구간쪽이 고려되었소. 강남 구간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개발이 들어간 구간이고, 또 2호선이 이를 증폭하려는 의도가 있어서 지하화 되었소. 문래동 구간쪽은 루트 변경 때문인가로 지하화가 결정되어 현재처럼 된 것으로 알고 있소.
영등포 일대의 고가화가 일단 \"실행가능한\" 안에 그나마 가능한데, 기술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오. 일단 경인선 병행은 선로주변부지의 매수관계가 심각한 과제가 되오. 이 일대는 지금은 철도부지로 편입되어 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는 불량주택지구로 지주가 다 갈갈히 나뉘어 있던 지역이라고 알고 있소. 정비하는데만 거의 10년 이상 걸렸고, 여기에 불법건축물이 들어서는 문제 때문에 철망 벽과 나무 식재까지 할 지경이오. 또 지장물도 80년대 당시엔 연탄공장 인입선(IMF이후 폐지), 문래고가교 등이 있어서 2호선 공사 시점에서는 고려할 수 없는 루트였다오.
그리고 역을 가로지르는 고가의 경우도 역 정면 도로의 폭 부족과, 심각할 정도의 도로과밀이 문제가 되오. 지금도 그렇지만, 80년대에도 이 구간은 늘 혼잡했소. 거기다가 지하상가가 이미 설치되어 있어서, 고가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지하상가를 전면 재시공해야 하오. 또, 고가화 이후의 보도폭 부족 문제도 도저히 해결가능성이 없고 말이오. 아울러, 이 구간을 넘겨도 당산역의 위치를 변경해아 하고, 여기에 추가적인 용지매수가 부수되어야만 하오. 영등포공작창 인입선 부지를 고려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원 영등포전철역에서 거리가 떨어지게 되고(약 400m 이상), 또 당산동 방향으로 갈 경우 선형이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오. 고려의 범위 밖이오.
영등포 일대의 철도시설은 1980년 기준으로 볼때, 공작창이 아직 현역인데다, 드문드문 전용인입선 시설이 있어 손대기가 까다로왔을 것이오. 또 역 위치, 특히, 전철역 위치가 현재 신길역 쪽이어서 대대적인 개축 없이는 실질적으로 제대로 지하철 노선과 접속시키는 건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소. 아니, 오히려 80년대에 섣부르게 영등포를 환승역으로 잡았다가는 지금처럼 민자역사화를 통해서 시설을 싹 정리할 수가 없었을 것이오.
오카야마에서 저아래로 내려가는데 신칸센이 굴러댕기나여?
구상 정도만 있소. 세토대교 선로가 신칸센 차량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최고속도는 160km/h로 잡혀있던가 그렇소. 어차피 이것도 초기에 계획선으로만 구상된 거라서, 현재 정비 대상으로 묶인 구간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논의가 시작될까말까 하오.
김상철//일단 세토오오하시(세토대교) 하층부의 철도구간 노반은 신칸센+재래선 각각 복선으로 2복선의 공간이 마련되었다오. 구상 자체부터 신칸센 직통은 가능하게 했지만, 현 시점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신칸센 연결을 미리 준비하느라 \'코스트 업\'이 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오. 뭐 결론적으로는 현재도 마음만 먹으면 시코쿠신칸센-.-을 금방 지을수는 있소.
인천토박이// 글쎄, 영등포가 도쿄만큼 목조건물 비율이 높진 않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