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별로 선명하지 못해서 보기가 쉽지 않을 듯 싶소. 1967년 당시의 철도 노선도로, 여기엔 계획선과 공사중 노선이 포함된 것이오. 아래 범례는 거의 뭉개져서 그런데, 위 부터 기설선, 협궤선, 시공선, 계획선의 순서라오. 이 중 실제 공사가 시행되어 완공된 노선도 있고, 아예 공수표로 끝장난 노선도 있소.

 위 자료는 철도년보 1967년에 기재된 것으로, 당시엔 연보의 기준일을 10월 정도로 맞추어 했는지, 발행일이 1967년 11월로 되어 있었소. 따라서, 등재 내용은 1967년 연말 기준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하오.

전부다 등재되진 않았지만, 중간에 건설 중 노선으로 언급되어 있는 각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게 되어 있소. 아래의 내용은 건설노선명, 구간, 연장, 기공일 순으로 적었소.

 김삼선(金三線) : 김천~진주 158.7km 1966.11.9.
 충남선(忠南線) : 논산~서천 64.0km 1966.11.20.
 동해북부선(東海北部線) : 경포대~대진(大津) 160.0km 1966.12.12.
 북평선(北坪線) : 북평~삼화 16.0km 1966.12.19.
 서해안선(西海岸線) : 김제~학교(鶴橋) 124.0km 및 대야(大野)~죽산(竹山) 22.3km 1967. 4. 12.
 광주공업단지선(光州工業團地線) : 신광주~공장 2.5km 1967.4.24.

이 외에 교통백서 동 년(1967)에는 건설노선에 대한 지도와, 건설중인 노선의 목록이 또한 존재하오. 이는 국토개발5개년 계획에 의거하여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오.

 여기에 대한 설명으로, 신선 건설 사항이 나와 있는데... 위 그림의 내용을 참고하면 되오. 위의 텍스트 딴 것 보다는 조금 더 정확? 하오.

이것보다 더 다양한 건설구상이 자리잡은 노선 구상이 철도건설사(1969)의 언급인가 그런데, 여기서는 강원도 지역 등지에 협궤선 부설 같은 거의 가망없어 보이는 수준의 건설계획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다만, 이건 당시 철도청 등지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사항이 별다른 정책적 필터링 없이 등재된 것이거나, 조금 더 이전의 계획이 걸러지지 않고 나온게 아닌가 생각되오.

 일단 1967년에 나왔던 구상들 자체는 사실 상당히 그럴듯한 것이었고, 개 중에서는 일제시대부터 구상이 나오던 노선들이나 하다 만 노선들의 부활 계획이 여럿 잡혀있었소. 아울러, 산업단지 건설 계획에 맞춘 계획선도 몇개씩 자리잡고 있고 말이오.

 그러나, 실제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가 되었는데, 일단 표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재정적 과제라 하겠소. 다른것 보다도, 당시에 이미 철도적자선 문제가 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소. 지금과는 좀 논지가 다른게, 당시의 적자선 논의는 전체가 적자가 아니라, 노선 구간의 절반 가까이가 적자상태에 있으니 수익이 나쁘다라는게 주 논의였소. 그래도 빡빡한 실정이라는 건 다를게 없기는 하오만, 지금처럼 근본 문제 보다는 선구별 적자가 문제의 축에 있었다 하겠소.

 하지만, 더 사실은 누가 언급했다시피, 박통의 3선이 관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재선 이후 헌법을 만져가면서까지 3선을 하려고 했던게 당시의 박통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그럴싸한 떡밥이 필요했다 하겠소. 그래서 저런 식의 공사 부풀리기를 자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면이 있소.

이것이 단순히 억측이면 좋겠지만, 1970년의 교통백서를 보면 이런 의심이 더더욱 명확해 지는데, 일단 진짜 건설하고자 했던 주요 노선은 1~2년 간격으로 개업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외의 노선들은 중단했는지 어쨌는지 언급도 없고, 또 기공 자체도 모조리 빠져있소. 말 그대로 처음 부터 없던 모양으로 싹 지워진 것이오. 물론, 당시의 인프라 공사에 대해서는 중간 취소가 발생하면 흐지부지 덮어버리는 예가 있긴 하지만, 이정도로 싹 없어진건 참 뭔가 낚시의 의혹을 지우기 어렵소.

 거시경제적으로 보더라도, 1960년대 말 경이라면 큰 문제도 없던 시기고, 아직 유신도 들어가지 않은 타입인데 이런 결론이 나오는건 참 괴이하다 할 수 있소. 1960년 이전에는 자료도 제대로 안남거나, 지나치게 소략한 경우도 많은데 비해 1960년대 이후의 자료들은 나름대로 체계성이나 논리가 잘 서있고, 자료들도 지금 관점에서 꽤 잘 다듬어진 예가 많소. 즉, 관료나 국민들은 적어도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소.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이런 식의 떡밥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당대의 정치인, 권력자들 수준이 얼마나 저질인가를 웅변하는게 아닌가 싶소.

조금 정밀하게 본다면... 서천~비인(庇仁)간 구간과, 광주~금지(金池)간 구간, 동해북부선 구간은 나름대로 건설을 할 의향이 있었던 것은 맞는 듯 하오. 1965년의 철도연감에도 비슷한 계획지도가 있는데, 여기서는 저 노선들이 건설 중으로 묘사되고 있소. 서천~비인간은 아마도 서천화력선으로 실현된 듯 싶은데 이건 뭐 영업선도 아니고 비영업선도 아닌 어정쩡한 위상의 노선이 되었고, 가장 안타까운건 광주~금지라 하겠소. 1965년에 착수를 한 듯 한데, 이 구간이 되었다면 대구선과 비슷한 위상의 연결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죽어버렸으니 말이오. 또, 동해북부선은 저런 것 외에 꽤 진지했던 사업인 듯 싶소. 이건 조금 더 전의 자료에서 1963년에 착공식 이야기까지 나오는 듯 싶은데, 어떤 이유인지 하다 만 듯 하오.

그러나, 그 외의 노선들, 충남선이나 서해안선, 김삼선은 거의 떡밥 수준이라고 봐도 될 듯 하오. 이건 딱 1967년 계획에만 반짝 드러난 것일 뿐이니 말이오. 김삼선이 일제당시 건설 계획이 있었던 것 정도가 그나마인 판인 노선들이니.

 이러한 커다란 계획 외에도 소소하게 눈에 띄는 미완성 계획들도 존재하오. 우선 1960년의 교통백서(1962년 간행)에 언급된 황지본선의 개황과 계획이 있소. 이 계획에서는 스위치백도 우회철도선으로 해결할 계획이 묘사되어 있소. 

위의 황지본선 지도에서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저 통리재 구간의 철도가 지금의 것과는 조금 다른, 아마도 수해 등으로 인해 노선이 일부 개축되거나, 추가적인 피암터널을 설치하는 등 개량이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소. 또한, 스위치백 구간도 우회선으로 개축하고자 하는 계획이 서 있었음도 볼 수 있소. 아마도 흥전역이 있는 산을 한바퀴 돌고, 나한정역 뒤쪽 어디로 교량 같은걸 세워서 골짜기를 넘는 식이 아닌가 싶은데... 결국 이건 쿠데타 등으로 취소된 듯 하오. 이후 40년 뒤엔 당시엔 꿈도 못꿀 16km짜리 루프터널을 파버렸으니 저 지도를 작성한 분은 격세지감을 절실히 느낄듯 싶소.

 이것 외에도, 수도권전철에 관한 구상도 1971년에 존재하고 있소. 산업선 전철화를 하면서 같이 구상했던게 아닌가 생각되는 사항인데, 그 계획도가 하나 존재하오.

위의 수도권전철 그림에서 중간에 점선이 1호선 계획선이라고 보면 되겠소. 경부선은 전철화가 빠져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철화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소. 여기서 주목할만한건, 경원, 경인 노선의 전철화 계획 외에, 용산선의 전철화가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오. 실제 용산선의 경우는 복선 노반이 있는데다, 실제 전차선 부설이 있었음을 볼 수 있는데, 정작 경원선이 지연된 탓인지 결국 전철화에 이르지 못하였소.

 이 계획들을 보고 있자면 참 정치인들 떡밥던지기는 예나 지금이나....라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저것들 다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소. 도로화의 압박이 무섭기는 하지마는, 저때 계획이 다 구축되었다면 도로화의 압박 범위도 좀 줄고, 철도의 지역교통 기여 정도도 상당했음직 싶기도 하오. 이젠 부질없지만 말이오.

 근래 저때 이야기도 나오고, 마침 자료도 찾던게 있던 만큼 적어보오.

P.S.1:
 이 외에, 개인적으로 추적을 하고 있던 해방후 미국제 증기기관차 도입 기종에 대해서도 파악을 할 수 있었는데, 미카나 파시가 아닐까 했는데 소리형이라고 하오. 댓수는 불명인데 해방후~한국전까지 53량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이오. 1967년 자료랑 맞춰보면 한국전 이후 도입량은 저 중 4량인 듯 한데...이게 아마 미국산 소리형이 아닌가 싶소. 1950년대 자료까지 가면 더 확실하게 파악이 되겠지만 이건 역량 밖이니 더 깊게 확인은 안되는구랴.

P.S.2:
 실명제가 시작되는 모양이오. 나름대로 좀 정도 들고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노출은 별로 반기고 싶지 않은 만큼 실명 전환은 하지 않을 예정이오. 만일 실명만이 쓸 수 있게 된다면 이후에는 블로그만을 운영하게 될 듯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