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차륜 식 차량의 최고속도 기록은 현재로서는 TGV가 가지고 있소. 정확히는 TGV-Atlantique 모델의 특수편성이오. 기록 달성은 1990년 5월 18일, 당시 영업이 시작되지 않은 대서양선에서 이루어진 기록으로, 515.3km/h 를 성취하였소. 이후로는 철차륜에 의한 속도기록 갱신 경기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아마도 그대로 이것이 철차륜의 최고속도 기록으로 남을 것으로 추정되오. 이젠 자기부상 시스템으로 넘어가려는 추세니 말이오. 철도차량 최고속도 경쟁이나 영업속도 경쟁은 역사적이오. 민족주의와 과학만능주의, 사회다윈주의가 판치는 19세기 유럽에 그 기원이 있다 할 수 있소. 영국의 경우 개업 초반부터 기관차의 속도경쟁 시합 같은게 있기도 하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서로간에 기관차의 최고속도나 표정속도를 두고서 엎치락 뒤치락을 했소. 벤치마킹을 위한 근본적인 비교가 아닌,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하기 위한 행위로, 흡사 이 동네에서 날뛰는 일부 신칸센 이상심리자들의 마인드 그 자체라 할 수 있소. 역시나 검증이 뭐가 중요하고 엔지니어링이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에게는 신칸센이 있는데! 라는 마인드가 그대로, 19세기 유럽에 있었다고 보면 되겠소. 이런 속도경쟁의 첫 주자는 요즘은 캐허접으로 치부되는 영국이 되겠소. 동해안선과 서해안선의 경쟁이 그 최초라 할 수 있소. 관심있는 분들은 레일로드 타이쿤3의 Flying Scotsman 이라는 미션을 기억할지도 모르겠소. 이 "플라잉 스코츠맨"이 바로 이 동서대결에서 동해안선의 대표열차 이름이오. 서해안선의 대표열차 이름은 "데이 스카치 익스프레스(Day Scotch Express)"요. 각각이 달리는 노선의 길이가 400km 대 500km던가 그렇고, 당초에는 급행열차로 9시간~10시간에 런던-에든버러 간을 끊었다가 경쟁이 붙으면서 7시간때 가지 줄이고, 표정속도 역시 80~90km, 심지어는 100km를 넘기던 무지막지한 열차들(19세기의 증기엔진열차들이오) 까지 나오게 되오. 결국 회사간에 "신사협정"을 체결하면서 이 경쟁은 좀 진정이 되지만 이미 그 시절부터 속도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소. 세계 최고속의 증기기관 역시도 그런 식인데, 이때는 미국, 영국, 독일이 대결을 벌인 셈이었소. 승자는 1938년의 영국이었소. A4형 증기기관차 중 최고속 개조를 받은 "The Mallard(청둥오리)"호가 6량의 객차, 약 240톤을 달고 202km/h를 낸 것이었소. 약간의 하구배 선로에서 낸 속도였고, 그래서인지 미국이나 독일 애들은 이걸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소. 지금도 시비거는 케이스는 별로 없지만. 이후에는 디젤에 의한 최고속도 등으로 경쟁이 있고, 또 이런 최고속 경쟁은 기술적인 역량을 상당히 요구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를 상당히 야기하였소. 경쟁은 어느정도 까지는 모두에게 효용이 있는 법이니 말이오. 하여간 1955년에 프랑스 친구들이 사고를 하나 치오. BB9004 전기기관차로 331km/h의 속도를 달성하였소. 정확한 컨피그레이션은 모르겠소만.... 이 기록을 본 일본 친구들이 탄환열차 계획이 되겠구나 라는 영감을 얻어 최초의 200km/h 운전 열차 신칸센을 만든 셈이오.기실 탄환열차 계획은 1940년대 군부 또라이들의 계획인데, 증기나 디젤 견인으로 200km/h를 낸다 외에는 별다른 기술적 배경이 없었소. 즉, 망상에 불과한 짓인 셈이오. 대신 토지 매입을 하고, 선로를 깔겠다는 의지는 있어서 1944년 착공 준비를 진행중이었다 하오. 이후, 1970년대 이르러서 유럽애들은 전기나 디젤, 심지어 가스터빈으로 160km/h 이상의 속도로 운전을 시작하게 되지만, 역시 일본의 성과는 그리 녹녹히 보아 넘길 것은 아니었소. 전용 트랙에 전용의 열차를 투입해서 뺀 결과라는 것은 일견 돈지랄로 보이고, 유럽의 경우 역간거리가 상당히 길기도 하고 해서 표정속도 면에서는 그리 손해볼 일은 없었기도 하오. 하지만, 유럽인 특유의 존심 같은게 있고, 또 재래선로의 한계도 명확했기 때문에 전용 선로에 의한 고속 서비스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오. 그리고 기술 개발에 들어갔소. TGV의 히스토리는 1970년에 시작되는데, 당시에는 가스 터빈에 의한 경량 고속 열차로서 시작하게 되오. 신칸센은 아시다시피, 상당히 육중한 시스템이오. 단면적이 크고, 차체의 설계 역시 육중한 편이며, 모터 중량 역시도 상당한 편에 속하오. TGV는 신칸센의 개념과는 반대로 단면적과 차중을 억제함으로서, 가스 터빈이라는 고출력이지만 효율이 좋지 않은 시스템을 최대한 울궈먹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하오. 이는 철저하게 보수적 공학 개념에 입각한 ICE와도 어느정도 대비되는 특성이오. 이후 오일쇼크의 압박으로 TGV는 전기쪽으로 회귀하고, 그것이 현재의 TGV로 이어지게 되었소. 신칸센은 1972년 951계(9xx시리즈 신칸센은 시험열차 번호)로 281km/h, 1979년 961계 시험제작차로 319km/h를 내게 되오. 이 때가 사실상 신칸센의 첫번째 전성기라 할 수 있소. 그러나, 전통의 강호 유럽의 압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소. 고속신선(LGV : Ligne a Grand Vitesse) 개념을 채용한 노선이 등장하고, 그 구간을 TGV-PSE(Paris-Sud Est;빠리 동남선)이 270km/h로 빼버린 것이오. 물론 200계 신칸센이 1980년 등장해서 275km/h를 내기는 했지만, 일본국철의 입장에서는 속도경쟁에 있어 상당한 강적이 나온 셈이라 할 수 있소. 사건은 1981년에 터지오. 프랑스가 TGV의 시험 편성을 바탕으로, 380km/h운전을 1981년에 해치워 버리오. 원래도 프랑스 애들이 이런 자기자랑에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정말로 저질러버리게 된 셈이오. 이 기록의 의미는 상당히 큰데, 300km/h 전후가 차륜식 철도의 상한이라 생각하던 게 단박에 깨져버린 것이오. 이후, 차륜식의 최고속도는 400km/h로 오르게 되고, ICE가 시제차로 1988년에 409km/h를 내 실증함으로서 역시 이것이 한계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소. 그러나, 이때가 황금기던 프랑스는 또 하나의 기록을 남기게 되오. 그것이 위의 515.3km/h 되겠소. 자세한 사항은 http://www.railfaneurope.net/tgv/rec-intro.html 를 보시기 바라오. 이 당시의 기록 주행 장면은 디스커버리 쪽에서 방영한 일이 있을 것이오. 일단, 이 기록주행을 개략적으로 설명하자면, 특수하게 개조된 시험 편성(EL+3T+EL)을 투입하여, 당시 개업 준비중이던 TGV 대서양선(Atlantique) 상에서 최고속을 돌파한 것이라 할 수 있소. 정확히는 파리에서 르망 방향으로 뻗어나가던 노선에서 보르도 방향으로 분기한 신선에서 달성한 기록이오. 르와르(Loir) 교량 상에서 해당 속도가 나왔다고 하오. 그 개략도가 바로 위의 짤방이며, 역시 앞서 언급한 링크에 올라와 있는 사항이오. 이 구간은 완만한 하구배 지형으로, 약간의 굴곡이 존재하지만 매우 미미한 수준이고, 따라서 최고속 기록에 있어 사장 적합한 위치라 할 수 있소. 차량의 준비는 아래 짤방의 것과 같소. 일단, 내부가 시험차 용도로 개조되어 있고, 주행에 따른 가선과 판토그래프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카메라 부착, 차륜의 계측기 부착, 전면 카메라 등의 실험적 세팅 외에도, 공력부속들, 즉 에어댐 및 페어링의 연장, 연접대차부의 페어링 처리, 판토그래프 문제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 설비, 그리고 최후미차량에 스포일러 설치 등이 이루어졌소. 그리고, 이 짤방에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모터 부분의 튠 업과 전기부속의 개량과 선별도 어느정도 이루어졌으며, 가장 큰 개조가 바로 동력대차에 실시되었소. 차륜 직경을 키우고, 기어비를 변경한 것이오. 사실 앞에 언급한 개조와 차륜경 등의 개조 등을 실시하여 이 친구들은 1990년 2월 1일, 482.4km/h 의 세계기록을 세우오. 그러나, 여기서 만족을 하지 않고, 500km/h 돌파에 도전하게 되오. 이때 1090mm 직경의 초대형 차륜이 채용되고, 차량 간의 에어댐 설치, 객차 상부에 설치된 전선의 개조 등 공력 부분에 대한 상당한 개조가 병행되오. 말 그대로, "30년간 엄접하지 못할 최고속"을 노렸다고 할 수 있겠소.-_- 그리고, 앞서 말한 5월 18일, 기록 주행이 실시되고, 공학 책을 다시 쓰게 되었소. 차륜의 한계는 이제 500km/h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이는 단순히 고속철도 기술에만 파급된 것이 아니라, 당시 진행되고 있던 여러 자기부상열차 연구에도 파급된 것으로 추정되오. "300km/h 이상에서는 결국 차륜의 마찰이 문제가 될 것이다" 라는 명제 하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초전도식의 고속 자기부상열차인데, 차륜으로도 500km/h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증명되면서 자기부상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격이 되오. 또, 프랑스 애들은 이때의 기록을 가지고 여러가지 사기를 좀 쳤던 모양이고 말이오. -_- 이후의 속도경쟁은 최고속 경쟁이 아닌 다시 영업속도 경쟁으로 내려오게 되지만, 그럼에도 TGV 계열 차량의 잠재력이 엄청나게 높게 평가됨으로서, 1990년대 국제입찰시장에서 TGV는 엄청나게 각광을 받았소. 이 계기를 바탕으로 1992년 8월에 WIN350는 350.4km/h의 속도를, 1996년에 300X(955형 시제차)가 443.0km/h를 내지만, 당시 프랑스발 충격은 상당했던 모양이오. 이후 한국에서의 입찰 실패, 그것도 아예 경합에서 거의 제외되다시피 할 정도의 취급까지 받았으니 정말로 위기의식이 상당했었던 것으로 보이오. 1994년의 300X제작이나, 1996년의 500계 데뷔 같은 것으로 추정컨대 말이오. 일부 찌질이들은 이전의 The Mallad의 기록을 비평하듯이, 하구배, 특수개조 하에서의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나올 것이오. 특히 FASTECH 360의 데뷔 이후의 일본계 찌질이들의 DDR은 여러모로 기대(?)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소. 정비신칸센과 풀규격신칸센 양쪽으로 FASTECH 360계획이 진행중인데, 이후 영업운전을 하면서 "역시~" 라는 식으로 흐를 것이 예상된다 할 수 있소. 그러나, 공학적 계산에서의 "한계속도"와, 실제 시제품을 통해 입증되는 "한계속도"는 그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소. 앞의 것은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라면, "적어도 이렇게 하니 가능하다" 가 가지는 힘은 엄청난 것이오. 또한, 실제의 실험 데이터가 존재한다는 것은, 앞으로 해석과 개발 여하에 따라서 상당한 위력을 가진 기초값으로 쓰일 수 있고 말이오. 간접 경험과 실제 경험의 차이는 무서울 정도고, 이것은 충분한 공학인력과 역량을 가진 프랑스라면 절대 헛되게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 명백하고 말이오. 현재 일본의 경우 700계의 데뷔로 2번째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분위기라 할 수 있소. 반면 프랑스의 경우 알스톰의 심각한 부진 덕에 듀플렉스나 탈리스 이후로는 이렇다할 물건이 안나오고 있고 말이오. 또, 만년 2등의 설움을 겪던 ICE가 1997년의 대형사고 이후 무섭게 치고 오는 중이라는 것 역시 괄목할 점이오. 2007년 데뷔를 목표로 ICE-3가 나오고 있고, 이 녀석은 320km/h의 영업최고속도를 목표로 하는 눈치요. 또, 다전압 시스템 등을 설치해서 지금것 수세던 베네룩스 지역 경쟁에 도전하고 있고,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새로운 고속철 시장에도 뛰어들고 있소. 2010년도의 지형도가 사뭇 궁금해진다 할 수 있소. 고속철과는 또 별개의 이야기지만, 협궤, 특히 1067mm 협궤에서의 경쟁 역시 재밌는 부분이 많소. 이 부분은 남아공과 일본의 대결구도라 할 수 있소. 일본의 1950년대 쿠모야93형 전차가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케이프궤 173km/h를 냈는데, 종주국 남아공이라고 놀고 있지는 않았소. 이후 전기기관차에 객차를 연결한 실험편성으로 254km/h를 내버렸던 것으로 알고 있소. 이후 재래선의 경쟁은 거의 사그라들었고,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소. 일본의 경우 160km/h급 틸팅을 재래선에서 쓰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는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소. 탈선계수던가 계산식 보면 케이프 궤간에 일본규격이 표준궤에 표준차량규격 대비해서 30% 정도 약하게 잡히는 눈치던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소. P.S.: 어제에 이어 커뮤니케이션의 가치가 없는 인종들의 덧글은 발견 즉시 삭제처분토록 하겠소. 양해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