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제때 군들 크기가 커진거임? 시흥군보니까 금천군+과천군+ 안산군이던데 왤케 다 묶어놨데?
안양이 과천군이였다니!
철이:안산선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와 군포시 금정역을 연결하는 노선입니다
댓글 20
아마 일제 생각으로는 행정구역을 크게 묶으면 지네들이 통치하기 편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임.
wangchobo1(myulgong)2012-11-12 22:14
관리할 인구도 적고
개봉역(121.88)2012-11-12 22:14
어차피 그때만해도 다시골 농촌이라서 세분화할필요가 없었을껄... 강남송파강동성남이 다 광주군이었느네
ㅕㄹ(182.211)2012-11-12 22:15
군만 커진게 아니라 면도 커졌음. 말단행정구역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엔 기존 면들은 너무 작은데다 수가 많았고 그렇다고 군에서 통치를 마무리하자니 이건 너무 커서 군과 면을 동시에 키움.
大元帥(eodnjstn)2012-11-12 22:16
일제때 지역행정 정책이 아마 군 보다는 면을 강화하는 쪽이었다고 본것 같음;면 마다 주재소 두고 장악했었다니
3218(wooya0119)2012-11-12 22:17
부수적으로 이질적인 지역들을 한데 묶어서 조선인 주민들의 단합을 저해하는 효과도 있었음
大元帥(eodnjstn)2012-11-12 22:17
수도권이 죄다 몰려살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121.139)2012-11-12 22:17
참고로 조선시대까지 면은 별 기능이 없었음
大元帥(eodnjstn)2012-11-12 22:18
일제때 커졌다기보단,,, 그 전에 을미개혁 때 전국을 13도 나누고 대한제국때 조금씩 고쳐서 그렇게 되었음.
됻다호라(turist)2012-11-12 22:19
그럼 조선시대땐 어느지역인구밀도가 제일 높았음?
경상돈가??
씨방새(203.90)2012-11-12 22:20
한편으로 조선시대 행정구역들은 현물세 시스템에 기초를 둔 탓에 역외지가 존나게 많은 꽤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음. 인천부 이포면이 한 예고 전주부가 법성포 근처 바닷가에 면이 있고 뭐 하여간 이런것도 한 번 정리할 필요 있었음.
大元帥(eodnjstn)2012-11-12 22:21
을미년 개편땐 군단위에는 크게 변동 없었음
大元帥(eodnjstn)2012-11-12 22:22
안양,과천은 전부 시흥군인데 뭔소리 ;;
이레일㈜(sid2434)2012-11-12 22:34
일제 개편 전엔 과천 안양 군포는 과천군이었음. 식민 통치 후 시흥군과 통합시킨거지
이레일//(121.139)2012-11-12 22:37
이레일// 1914년 이전기준으로 안양 과천은 과천군 관할이엇음. 단 안양의 석수동과 박달동은 금천(시흥)군 관할. 1914년 금천군 과천군 안산군이 시흥군으로 통합됨.
도철(175.252)2012-11-12 22:37
오홍 나는 일제때 말하는줄 알았지ㅋㅋ
이레일㈜(sid2434)2012-11-12 23:05
너무 큰 게 아니라 그게 전국 다른 지역이랑 비슷한 크기다. 아, 경기도가 조선시대 때 수취가 심해서 빈궁하고 큰 고을 몇 개 (수원 광주 양주)가 주변을 다 먹어치운 점도 있긴 하다.
고전압(jkw89)2012-11-12 23:08
그리고 일제가 행한 건 그냥 현대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제대로 말단까지 통제할려면 인적 구성도 싹 물갈이하고 중요도에 따라서 규모와 등급에 차등도 두고 해야지, 주요 읍내들 (12개 부 논외)도 전부 별개 면으로 두고 면장 군수들을 지역 유지로 앉힌 건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단 거임. 헌병주재소는 그야말로 파출소 같은 개념이라서 지방행정이랑 상관없이 요소마다 일괄적으로 배치했고.
고전압(jkw89)2012-11-12 23:12
덧붙여서 조선말~일제초기 (농업사회)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은 압도적으로 전라도. 괜히 전라디언이 많은 게 아니지. 지도에서 보면 좁아보여도 경상도와는 달리 완만한 구릉지대여서 삼림지대가 적었다.
고전압(jkw89)2012-11-12 23:13
공업화 이전까지는 경상도=전라도 > 충청도 > 경기도 > 평안도 > 함경도 > 강원·황해도 순이었음.
아마 일제 생각으로는 행정구역을 크게 묶으면 지네들이 통치하기 편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임.
관리할 인구도 적고
어차피 그때만해도 다시골 농촌이라서 세분화할필요가 없었을껄... 강남송파강동성남이 다 광주군이었느네
군만 커진게 아니라 면도 커졌음. 말단행정구역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기엔 기존 면들은 너무 작은데다 수가 많았고 그렇다고 군에서 통치를 마무리하자니 이건 너무 커서 군과 면을 동시에 키움.
일제때 지역행정 정책이 아마 군 보다는 면을 강화하는 쪽이었다고 본것 같음;면 마다 주재소 두고 장악했었다니
부수적으로 이질적인 지역들을 한데 묶어서 조선인 주민들의 단합을 저해하는 효과도 있었음
수도권이 죄다 몰려살지 않았으니까
참고로 조선시대까지 면은 별 기능이 없었음
일제때 커졌다기보단,,, 그 전에 을미개혁 때 전국을 13도 나누고 대한제국때 조금씩 고쳐서 그렇게 되었음.
그럼 조선시대땐 어느지역인구밀도가 제일 높았음? 경상돈가??
한편으로 조선시대 행정구역들은 현물세 시스템에 기초를 둔 탓에 역외지가 존나게 많은 꽤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음. 인천부 이포면이 한 예고 전주부가 법성포 근처 바닷가에 면이 있고 뭐 하여간 이런것도 한 번 정리할 필요 있었음.
을미년 개편땐 군단위에는 크게 변동 없었음
안양,과천은 전부 시흥군인데 뭔소리 ;;
일제 개편 전엔 과천 안양 군포는 과천군이었음. 식민 통치 후 시흥군과 통합시킨거지
이레일// 1914년 이전기준으로 안양 과천은 과천군 관할이엇음. 단 안양의 석수동과 박달동은 금천(시흥)군 관할. 1914년 금천군 과천군 안산군이 시흥군으로 통합됨.
오홍 나는 일제때 말하는줄 알았지ㅋㅋ
너무 큰 게 아니라 그게 전국 다른 지역이랑 비슷한 크기다. 아, 경기도가 조선시대 때 수취가 심해서 빈궁하고 큰 고을 몇 개 (수원 광주 양주)가 주변을 다 먹어치운 점도 있긴 하다.
그리고 일제가 행한 건 그냥 현대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제대로 말단까지 통제할려면 인적 구성도 싹 물갈이하고 중요도에 따라서 규모와 등급에 차등도 두고 해야지, 주요 읍내들 (12개 부 논외)도 전부 별개 면으로 두고 면장 군수들을 지역 유지로 앉힌 건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단 거임. 헌병주재소는 그야말로 파출소 같은 개념이라서 지방행정이랑 상관없이 요소마다 일괄적으로 배치했고.
덧붙여서 조선말~일제초기 (농업사회)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았던 곳은 압도적으로 전라도. 괜히 전라디언이 많은 게 아니지. 지도에서 보면 좁아보여도 경상도와는 달리 완만한 구릉지대여서 삼림지대가 적었다.
공업화 이전까지는 경상도=전라도 > 충청도 > 경기도 > 평안도 > 함경도 > 강원·황해도 순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