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짤방은 누군가가 웹 상에 올린 APT용 훈련교재의 그림들이오. APT 특유의 전면 연결기구 보호 구조라던가, 동력차의 얼개를 보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되오. 사진 자료는 검색쳐 보면 다 나오게 되어 있으니 생략토록 하겠소. 아래 짤방은 아마도 시험운행중이거나, 잠깐 영업운전을 하던 당시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오. 살짝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틸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케이스로 보이오. 영국의 APT 프로젝트는 당시의 고속화 분위기에 맞추어 1966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라 할 수 있소. 1964년의 도카이도 신칸센 개업, 독일 철도의 200km/h 운전 실험 등은 기존의 최고영업속도 160km/h 대역을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어떤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소. 따라서, 영국도 고속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면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여 프로젝트에 착수하였소. 영국은 이때 프랑스나 일본의 발상과는 다른, 이른바 "고성능 철도차량을 재래선에 투입하여 고속운전을 달성"이라는 접근방향을 결정하게 되오. 이는 사실 타당한 발상이기도 한게, 영국은 전반적으로 국토가 완만한 편이고, 철도 산업의 초기부터 기관차성능의 부족 등으로 인해 직선화와 평탄화를 대부분 추진해 둔 바 있기 때문이었소. 브루넬의 초광궤 철도 선로로 인한 큰 완화곡선의 영향도 있기도 하고 말이오. 초기부터 좀 더 개선된 기관차 시스템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근본적으로 지형 굴곡이 심해서 지형을 추종하지 않으면 안되던 유럽 대륙국가나 미국에 비해서 영국이 가진 어드밴티지가 바로 이 부분이라 할 수 있엇소. 그러나, 재래선에서 200km/h 심지어 250km/h를 내는데 있어 한계가 존재하였소. 우선, 아무리 직선화를 했다 하더라도 재래선인 이상 그 곡선반경은 아무리 펴 놓았다 하더라도 1,000~1,500m 정도고(대개 고속선들은 2,500m~5,200m 정도요. 한국의 7,000m 곡선반경은 정말 뜨악한 규모인 셈.-_-) 이 정도 곡선반경에서 당시의 기관차 견인 시스템, 대개 증기나 디젤 기관차로는 130km/h~160km/h 정도가 한계였소. 그러나, 곡선반경을 늘릴 바에는 차라리 신선을 까는게 나을 정도인 경우가 많고 해서, 이 곡선반경에서도 고속을 낼 방법을 고르게 되오. 그것이 바로 틸팅 시스템이었소. 틸팅에 대해서는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하면 개소리가 될 듯 싶소. 여기서 틸팅 관련한 글을 찾아 보시던가, 아니면 예전에 내가 쓴 "고속화와 틸팅의 상관관계"라는 글을 참고하시길 부탁드리오. 틸팅은 근본적으로 캔트 부족량을 차량을 기울임으로서 극복하는 방법인데, 이를 통해서 부족한 곡선반경이라도 더 고속으로 통과하는게 가능해지오. APT의 경우 개발 스펙으로 9도의 틸팅각을 주도록 결정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30~40km/h의 곡선속도 향상이 가능해 지게 되었소. 이러한 속도향상은, 막상 프랑스의 고속신선과 비교하더라도 생각외로 경쟁력이 있었는데, 최고속도에서는 20~50km/h 까지 쳐지고 곡선에서 깎아먹는 속도 손실이 있긴 하지만 표정속도 면에서는 막상 큰 차이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하오. 또한, APT의 스펙 결정에서 또 검토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신호시스템 부분이었소. 즉, 우선 200km/h 운전시에는 신호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가망이 매우 높았고, 그래서 별도의 지상자를 설치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소. 이는 TVM시리즈나 근래 언급되는 ATS 기반 열차자동제어랑 비슷한 면이 보이오. 다만, 이러한 조처도 APT의 고속을 받쳐주는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신호주기였소. 즉, 하나의 폐색블럭 단위가 250km/h 운전 차량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짧아서, 재래식의 답면제동이나 디스크제동만으로는 폐색에 맞춰 멈춰서는데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였소. 물론, 당시의 기계식 제동 시스템 신뢰성에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고 말이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APT는 브레이킹 시스템의 보강을 실시하는데, 이른바 유체동력식 브레이크라는 것을 탑재하오. 이는 전동차의 회생제동이나 발전제동과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되는데, 전동차는 전동기의 유도저항력을 이용하여 바퀴의 회전력을 전기에너지로 전환을 하는데 비해, 이것은 기계적으로 이를 구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면 빠르오. 즉, 차축에 터빈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 유체를 투입함으로서 터빈의 회전저항을 늘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로 유체동력식 브레이크라 생각하면 되오. 즉, 공기를 휘젓기는 쉽지만 물 같은 걸 휘젓기는 어렵다는 점에 착안한 셈이었소. 다만, 이렇게 휘저어진 유체는 발열을 하게 되는데, 그 발열을 차량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를 이용해 해결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소. 즉, 운동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바꾸는(이는 기계제동도 매한가지지만) 것을 이용하되, 이를 고정된 디스크가 아닌 유체를 이용함으로서 상당히 강력한 제동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는게 가능해졌소. 그 외에 APT는 편성 구조도 매우 독특한데, 프로토타입인 APT-P의 경우 선두차는 동력차가 아닌 단순한 제어부수차이고 그 뒤의 5량(또는 4량)과 함께 연접 대차로 이어져 있는 구조였고, 이러한 한 그룹의 객차 사이에 제어기능이 없는 동력차가 1개 또는 2개가 붙은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소. 이는 고속 틸팅 운전시에 급전 문제나 안정성 문제 때문에 취한 조처였다고 하오. 아무래도 중간차에 있는 것이 차량의 탈선을 막기도 용이하고 가선 접촉에서도 좀 더 안정성이 높아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오. 또, 횡압 부분, 즉 선로에 주는 부담력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대차 자체 중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하오. 자기조향 대차기술을 적용하지는 못했지만(다만, 1축 자기조향 대차 개발은 영국이 꽤 열심히 했었다고 하오. 실용화는 못한 모양이지만서도), 연접대차를 적용해서 최대한 대차 수를 줄이고 차체에 알루미늄 합금을 적용하여 아예 근본적인 경량화에 착수하였소. 또, 동력원도 이런 경량화 기조에서 출발해서 선정하는 방향으로 잡았고 말이오. 이러한 노력을 통해 200km/h가 넘는 주행에서도 160km/h 급 열차가 다니는 수준의 부담만을 선로에 줄 수 있었다고 하오. APT 시리즈의 차량은 크게 APT-E와 APT-P로 나누어지오. APT-E는 틸팅 등의 혁신적인 메커니즘 적용의 타당성을 실증하기 위한 하나의 개념실증차량이라고 보면 되오. 4량 연접대차 식의 단편성이고, 가스 터빈 엔진을 탑재해서 경량의 엔진으로 최대한의 성능을 내는 방향으로 설계가 진행되었소. 그러나, 당시 노사분규도 있고, 또 재정적인 부담이나 비협조가 있어서 APT-E는 제대로 된 엔진 탑재도 포기되고, 실험도 제대로 못하는 등의 난항을 상당히 겪었다고 하오. 이 녀석이 1960년대 말의 APT였소. APT-P는 이러한 어려움을 겪어가며 개발한 시제차 겸 선행양산차량이라 할 수 있소(어째 건담같구랴-_-). 일단 개발도 마땅히 된 바 없고, 연비가 나쁜 가스터빈은 배제되었소. 또, 당시에는 APT에 필요한 수준의 가볍고 고출력의 디젤엔진이 존재하지 않았었소. 안그래도 영국은 터빈 엔진 쪽에선 강해도 내연기관엔 좀 모자란 편이었지만, APT급에 맞을만한 디젤엔진은 당시 독일에서도 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되오-_-. 그래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전기동력이었소. 각 동력차는 총 3,000kW의 출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 것을 1대 편성하면 최대 200km/h 운전이 가능한 저출력형 APT-P, 2대 편성하면 250km/h 운전이 가능한 고출력형 APT-P가 되는 방식이었소. 저출력형의 경우 양단의 제어객차를 포함해서 총 11량(6+5), 고출력형의 경우 12량(6+6)으로 편성하며, 객차들은 모두 연접대차로 이어져 있는 구조를 취했다고 하오. 이 APT-P는 총 3 편성이 생산되었다고 하오. 다만 양산에 들어가서는 3량씩 편성된 연접대차식 객차를 1유닛으로 잡아 총 3 유닛으로 구성한 다음, 한쪽에는 제어부수차를, 한쪽에는 동력차를 두는 방식으로 설계하고자 하였다고 하오. 여기서 동력차는 최후미에 있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듯 싶지만 결국 APT가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이는 꿈속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소. 하여간 APT-P는 1978년에 완성, 3편성이 생산되어 실험이 실시되기에 이르렀소. 또, 1981년에는 영업시운전 방식으로 몇몇 인사를 초청해 운행하기도 하고, 이후 일시적으로 영업운전을 뛰기도 하였다고 하오. 그러나, 본격적인 양산과 투입에 이르지 못한채로 APT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소. 기술적으로는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만 했건만, 영국철도 및 정부의 경영적 오판, 기술적인 완성도 부족으로 인해 APT 프로젝트는 좌절을 먹었다 할 수 있겠소. 우선, 당시 영국 철도는 일본과 비슷하게 노사분규 등과 같은 여러모로 말기적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고, 이러한 기술혁신에 대해서 매우 적대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오. 또한, 프로젝트 진행 도중에도 여러 차례의 예산 일괄 삭감과 같은 정부 재정의 난맥도 존재하고 있었고 말이오. 실제 APT-P의 경우 8편성을 개발사와 매칭 펀드 식으로 돈을 대어 만들려고 했었지만, 삭감 덕에 4편성으로 줄고, 또 여기서 1편성이 짤려서 3편성 만이 실제로 완성을 볼 수 있었다고 하오. 물론 시간적으로 겐세이를 엄청나게 먹기도 했고 말이오. 거기에, 기술적으로도 여러모로 미성숙한 부분이 많았었소. 가장 먼저 말썽을 부린건 틸팅 메커니즘 이었다고 하오. VIP를 모시고 실시한 시운전에서 일단 가는 건 잘 갔는데, 돌아올때는 틸팅 기구들이 고장나서 매우 고역을 치루었다고 하오. 아마도 제어 시스템의 문제(실제 이 부분은 몇차례 재설계가 들어갔었다고 하오), 그리고 차량을 기울이는 유압 시스템의 문제 등이 겹쳐진 말 그대로의 "종합병동"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너무 과격한 방향을 취했던 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되오. 이러한 메커니즘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만한 정비능력같은 것도 부족한 구석이 있었던 듯도 싶고 말이오. 또한, 제동부분인 유체동력식 브레이크가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 환경에서는 좀 문제가 있었다고 하오. 특히, 혹한과 같은 지극히 나쁜 날씨에 문제가 빈발했는데, 이는 해당 기구에 사용한 유체가 "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오-_-. 열전도성에 비추어 가장 만만하게 다룰 수 있던게 물이었던 모양인데, 그 덕에 기온이 급강하를 하면 브레이크 자체가 얼어붙어버려서 작동이 안되는 등의 문제가 빈발했었다고 하오. 부동액을 혼입하는 센스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간에 너무나 어이없는 문제점인 셈이었소. 무엇보다, 영국사람들의 보수성이랄까, 그런 인식 차원의 문제도 발생하였소. 일단, 9도씩 좌우로 건들거리는 객차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하오. 또한, 승차감도 상당히 안좋아서(자연틸팅식은 특히 더 심하지만, 유압제어식인 APT 역시 안좋았던 모양이오) 사람들이 그리 선호하지도 않았고 말이오. 영국 사람들은 거기에 선두 객차에 앉는 걸 지극히 꺼리는 편이어서, 결국 APT-P는 선두차에 디젤발전기(200kWA)를 넣거나 심지어 소화물용도로 쓰기까지 했던 모양이오. 여기에, 기술적 미성숙 덕에 고장이 빈발한 덕에 언론으로부터도 엄청나게 두들겨 맞기까지 했었다고 하오. 오죽하면 별명이 "사고다발 열차(Accident Prone Train)" 이었다고 하니. 결국 잠깐의 영업운행을 마치고서는 APT는 전부 일선에서 철수당하고, 향후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소. 양산은 물론이고, 시제차들 역시 거의 폐차되어 버려서, 박물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1편성이 남아있는게 전부라고 하오. 이후, APT-E 계획 등에서 파생되어, 철저하게 보수적인 기술적용을 통해 200km/h 운전을 하는 HST 열차(1,680kW x 2, 객차 7량 및 기관차 2량 편성)이 투입되어 영국철도의 간판 역할을 하게 되었소. 그 덕에 영국은 유럽 국가들이 300km/h 운전에 착수하는 동안에도 약간의 유로스타 구간을 제외하면 200km/h를 넘는 선구가 없다는, 철도 발상지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상황을 겪게 되었소. 켄트 주 등에서 히다치 제 고속철도 차량(아마도 미니신칸센을 BR 차량규격에 맞춘 축소판이라는 듯 하지만)과 관련 시스템 도입을 하겠다고 하기는 하지만, 결국 스스로는 고속철도 차량에 대한 기술이 전혀 없는, 전형적인 기술도입국가의 몰골이 되어버리기까지 한 걸 보면 참으로 안구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쏟아지는 느낌이오. 그러나, 영국의 APT가 유럽 철도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고, 90년대에 들어서는 정말 APT에서 도입되었던 기술들이 제대로 구현되면서 APT의 가치가 재평가되기에 이르렀소. 물론, 그렇다고 APT 프로젝트가 다시 착수된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오. 아마 당시의 영국정부나 영국철도로서는 엄청나게 통탄할 일들이 줄줄히 나온 셈이랄까. 우선 APT에서 거의 처음 시도된 알루미늄 합금 차량은 이후 최신 고속철도 차량에 대거 도입되기에 이르렀소. 당장에 G7-HSR350x 열차도 알루미늄 합금 차량이니 말이오. 일본이나 유럽의 90년대 차량들이 알루미늄을 고려해 볼 수 있던건 APT의 시도 덕이라 할 수 있을 듯 하오. 또한, 유압제어식의 틸팅 열차는 이탈리아에 의해서 상당히 발전을 하게 되오. 펜돌리노라는 브랜드의 이탈리아 열차들은 유럽 각지의 틸팅 수요를 엄청나게 잡아먹었소. 미국의 아셀라도 펜돌리노의 틸팅 기구가 응용되었던 걸로 알고 있소. 이후 영국의 여객 철도회사인 Virgin Trains에서 이탈리아의 ETR460인가 470이라는 펜돌리노 열차를 도입하면서, 영국은 자기가 버린 기술을 20년 뒤에 재수입하는 아이러니를 체험하게 되기도 하였소. 이외에 스웨덴의 X2000 틸팅전동차라던가, 스페인의 Talgo 틸팅객차라던가 하는 식으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지되고 있을 지경이니 말이오. 그리고 제동 부분에서의 유체동력식 브레이크는 그 후계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이후 대개의 틸팅 동차들이 전동차 방식을 취하면서 회생제동이나 발전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 계기로서 작용한 감이 있소. 고속철도의 경우는 막상 제동거리면에서 부담이 적은 탓인지 최근의 TGV 조차 기관차에만 발전제동을 적용하는 감이 있지만, 틸팅은 급격한 브레이킹 거리가 요구되는 탓인지 거의 동차화 되는 경향을 볼 수 있소. 당장에 브레이킹 거리가 길면 폐색구간을 늘려야만 하는 만큼, 대대적인 공사와 선로용량의 저하를 각오해야 하는 면이 있으니 이런 발전은 필연적인 면도 있고 말이오. 우리도 TTX를 개발하고 있는 실정이오. 유럽의 주류급 틸팅열차들에 비하면 그 최고속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이라지만 우리가 영업최고 180km/h, 유럽이 240~250km/h 정도), 그럼에도 재래선 최고속도를 단박에 40km/h 이상 올리는 기술을 개발 중이고, 곧 시제차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소. 다만, TTX의 개발과 영업 투입에 있어서 영국 APT가 어떻게 좌절을 먹었는가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고 보오. 우선 최대한의 기술적인 신뢰성 확보와 이를 위한 제반 시설, 정비나 신호, 선로의 정비와 개량이 반드시 부수되어야 할 것이고, 또한 영업적인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불안감과 불편을 줄이기 위한 많은 준비가 따라야 할 것이오. 그 외에도, 기술개발과 보유 측면에서 정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기술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기술적인 모험을 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과 관리 역시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 할 수 있소. P.S.: 우리나라의 틸팅이 겨우 200km/h 최고속도, 180km/h 영업속도를 낸다고 찌질대는 인간들이 있을 듯 싶소. 그러나, 전형적인 일빠 증후군의 희생자 다운 소견머리 되겠소. 우리나라는 곡선 선로의 비중이 거의 스위스랑 비슷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오. 현재 선로개량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면서 그 비중을 많이 낮출 것으로 기대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안좋은 선구들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소. 거기에, 우리나라의 기후조건은 매우 열악한 편이어서, 유럽에 비해 그 적용 온도와 습도의 범위가 극단적인 수준이오. 남한 만으로도 영하 25도에서 영상 40도의 연교차가 나는 건 예사고, 일교차도 20도씩 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되오. 또한, 강수량의 편중 같은 것도 정말 극악한 수준이어서, 유럽에 비하면 정말 기후조건이 나쁘다 할 수 있소. 그런 와중에서 유럽과 같은 고급의 선로 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소. 못할 건 없지만, 역시 돈과 인력, 사회 인프라와 직결되는 부분이오. 또한, 우리는 이미 300km/h의 고속철도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50km/h 틸팅 열차를 투입하는 것은 서비스 끼리의 제살 파먹기를 일으킬 가망이 다분한 실정이오. 이탈리아의 경우는 ETR4x0 시리즈 틸팅열차와 ETR500의 300km/h 급 고속열차가 공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틸팅이 먼저 개발되어 운영되고 나중에 디렉티시마 선구 전용의 고속열차가 투입되었기에 생긴 좀 특이한 구조라 그런 것이지 보편적인 경우라 말하기는 어렵소. 따라서, 두 열차가 서비스 영역을 불필요하게 중복하지 않도록 일정한 조정이 따라야 할 부분이오. 아울러, 운행거리 면에서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짧은 편이어서, 억지로 속도를 올려봤자 표정속도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소. 물론 고속신선은 그럼 왜 파버렸냐 라고 반문할 여지가 있긴 한데, 그 쪽은 용량 부족에 대처하고, 또 그럴 바에는 확실히 고속성능에서 경제성이 있는 속도를 맞추는게 나았기 때문이오. 특히, 틸팅 투입이 예정된 선구들, 장항선이나 태백선은 역간거리나 총연장 면에서 보면 더 고속을 낸다고 해서 영업시간 단축 효과가 크게 늘어날 가망이 없기도 하오. 그렇기 때문에, 틸팅을 180km/h급으로 맞추어 개발하는 것으로 보이오. 실제 틸팅의 주 대상 범위를 고속철도가 들어가지 않는 기존 새마을호의 커버 범위로 잡고 있는 것도 그런 의도하에서 나온 듯 하고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