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짤방은 재활용이지만, 현재 영국 선로에서 굴러다니는 HST 열차요. 아래 짤방은 저 열차의 심장인 Napier 사의 Deltic Engine 이오. 해상용 또는 철도차량용으로 쓰인다고 하오. 삼각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실린더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라 할 수 있소. 아주 어벙하게도 "고 속도 열차"라는 이름의 약자로 명명된 HST 열차는 그 이름 만큼이나 기술적으로도 밋밋한 철도차량이라 할 수 있소. 외형은 꽤 미끈하게 빠진 형상으로 잡았지만, 내부에 들어가는 엔진부터 시작해서 차량의 구조 자체가 지독히도 오소독스한 그런 녀석이오. 그럴만도 한게, HST 프로젝트 자체는 APT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그 완성이 늦어지거나 할 경우를 우려해서, 중간계투 내지는 땜빵용도로 1970년대에 착수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오. 그래서 최대한 기존에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하고, 기술적 모험은 최소화한 그런 차량이라 할 수 있소. 그렇기 때문에 아직 경험에서 부족함이 남은 전기나 가스 터빈 대신에 디젤엔진, 그것도 이미 있던 엔진을 채용하고, 전기식 구동장치를 사용하며, 대차의 구조도 혁신적인 연접대차나 틸팅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았소. 사실 객차 자체도 원래 있던 Mk. III 객차를 그냥 써버렸던가 그렇다고 들었고 말이오. 심지어는, 문짝 조차 수동식, 그것도 영국 전통의 창열고 손을 내밀어 밖에서 열어야 하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보수적이다 못해 수구적이기 까지 한 철도차량 설계라 할 수 있소. 하여간에 APT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면 이 차량은 어중간한 간선이나 중거리 여객 용도로나 쓰였을 녀석이지만, 문제는 APT가 완전히 망해버렸다는데 있었소. 그래서 HST 열차는 주요 간선에 투입되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달리고 있는 실정이라 할 수 있소. 그것이 HST의 성공요인이자 바로 한계점이 되었고 말이오. HST는 새마을 동차와 유사하게 PP형으로 설계된 차량이오. 출력은 각 기관차가 2,250마력 씩 2개를 묶어 4,500마력을 낸다고 하오. 그럼에도 의외로 준수한 속도인 200km/h를 내는 차량이지만, 틸팅 같은 건 전무하기 때문에 속도제한에 숨죽이며 다녀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었소. 결국 다른 나라들이 250km/h 대역이나 그 이상의 철도영업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도 영국은 재래식 차량으로 200km/h 운전에 만족해야만 했었소. 그러나, HST가 실패한 것은 아니었소. 이 녀석이 데뷔함으로서 15% 정도의 매출 증가가 일어났다고 하니, 적어도 시작은 허접했지만, 결과는 좋은 케이스라 할 수 있었소. 다만, 불행은 그 적정한 후계자가 없었다는데 아픔이 있는 셈이오. 현재에도 HST는 수십 편성이 영업중에 있소. 데뷔한지 거의 30년이 가까워 오는 시점에도, 영국에는 마땅한 대안이 개발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HST가 여전히 영업일선에서 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오. 현재 펜돌리노의 도입이나 유로스타 직결 등에 의해서 그 투입노선의 폭이 줄기는 했다지만, 여전히 HST가 최고등급으로 다니는 곳이 있다고 하오. 나이도 먹은 상황에 잦은 가감속과 장거리 운전 덕에 꽤 노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뛰고 있는 상황이고, 덕분에 정비 비용이 상당히 든다고 하오. 장기계획 하나가 완전히 개판된 덕에 정말 고생하는 케이스 그 자체라 할 수 있소. 물론, 전기화가 된 노선에는 Class 91 견인 객차편성이 동일한 영업속도를 내면서 다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선에서 물러나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있는 상황이오. 이 녀석은 여러모로 우리나라 새마을 동차와 유사성이 보이는 녀석이라 할 수 있소. 전면부 디자인의 경우도 묘하게 비슷한 면이 보이기도 하고, 또 그 입지라는 면에서도 그렇고 말이오. 물론 새마을과 HST는 다른 면도 상당히 있소. 일단 영업속도면에서 새마을PP동차가 훨씬 약하고, 구동방식도 새마을 쪽은 유압식 변속기를 채용하는데다 출력도 더 적은 독일제 MAN 엔진을 쓰고 있소. 아울러 HST 기관차는 객실은 없지만, 소화물이나 우편용의 공간이 설치되어 있지만, 새마을 동차는 20석짜리 객실이 부속되어 있소. 이점은 외려 독일철도의 디젤식 PP동차와 닮은 면이 많아보이기도 하오. 허나, 영업적 측면에서 고속철 프로젝트와 재래선 열차의 간극을 채우고, 꽤 오랫동안 국가의 간판열차기도 했다는 점은 비슷한 면이 많다 할 수 있소. 아마도 개념적으로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5공시절의 일이니 알 방법은 마땅히 없기는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