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본은 아니지만 (진품이면 벌써 TV쇼 진품명품에 출연했겠죠)우연한 기회에 철도건설국에서 보존용으로 재발행한 경인철도 설계도를 입수했다오. 스캔한 화면의 비는 무려 12000*7500 픽셀, 거의 110MB가 되지만, 디씨의 업로드 용량 제한으로 어쩔 수 없이 대거 리사이징해서 2048*1024 픽셀로 줄였다오 안습ㅠ.ㅠ “화륜거 구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구한말, 우리나라는 늦게나마 철도의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당시 조정의 재정은 빈궁하여 독자적으로 철도를 부설할만한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비록 개화는 늦었지만 전기와 전신, 전차 도입 등은 일본과도 거의 격차가 없었을 정도로 대한제국은 선진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었지만, 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지요. 또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열강들 사이에 노골적인 이권쟁탈의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중에서 호시탐탐 대륙 침략을 꿈꾸던 일본제국은 조선을 그들의 병참기지로 삼고자 '정한론' 이후 각별하게 준비하여 선수를 칩니다. 특히 개화가 30년이나 늦었음에도 대한제국은 선진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이는 일본에게 위기감을 줍니다. 우선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경쟁자인 청국을 꺾어버렸고, 다음은 취약한 한국정부를 억누르고 '함일잠정합동조관' 체결을 강요하여 한국의 철도 부설특권을 일방적으로 강탈해갑니다. 하지만, 1896년 3월 29일 일본은 커녕 쥐도 새도 모르던 사이에 철도부설권은 미국인 James R. Morse에게 넘어갑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고 말썽 많은 이권이 일개 미국인에게 넘어가게 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전해지는 1895년 8월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있고나서 왕의 아관파천 등 배일기운이 농후한 시기에 3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환부한 일본의 위신은 형편없이 떨어져서 구미제국에게 사면초가로 놀림을 받는 형편이라 감히 이권을 탐할수도 없던 때였으며 여기 미국인 모오스가 경인철도 부설권을 얻게된 데는 주한미국전권공사로 21년동안이나 한국에서 살고, 한국인들과 친밀했던 앨런의 숨은 노력이 컸습니다. 그리하여 1897년 3월 22일 오전 9시 경인가도상의 우각현 (지금의 도원역 자리)에서 기공식을 거행, 공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약 350명의 일꾼들을 모아 시작한 공사였지만, 시멘트와 폭약부족 문제, 기술적인 난제 등으로 더 이상의 진척이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1898년 5월 10일 모오스는 공사중인 경인철도를 170만 2452원 75전 (당시 1백만 달러)으로 대륙침탈을 꿈꾸던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양도하였습니다. 결국 경인철도는 일본인의 손을 거쳐 1899년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간 33km 구간이 개통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