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曰,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or 할아버지 세대 때는 상주가 매우 큰 도시였다\'카더라\'무려 평양과 비슷한 인구수였다\'카더라\'그런데, 왜 인구가 주는가?외할아버지께서 이르시기를, 당시에 양반(당시 계층을 이르는 말임 ㄳ)들이 철길을 못내게 막았다 \'카더라\'결국 경부선은 딴데로 가게 되었고결국 결론적으론 양반들은 땅을 치고 후회 했다는 소문,..결론: 뻘글
상주 양반이 문제가 아니라 문경새재든 이화령이든 건설하기에는 캐압박 ㅡㅡ 그리고 평양과 인구가 비슷하다는 건 오버 정조 때 한성 20만일 때 평양이 12~14만이었다고 하니...
호남선이 전주를 빗겨난것도 이와비슷한 이치겠지요.. 호남이 차별받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당시 지역유지들이 공장 들어서는걸 극렬반대..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이죠
인구변화의 주요인이...교통시설물이니...// 철길(고속도로)에서 벗어난 지역과 통과하는 지역의 차이가 뚜렷했지..// 밀양 - 대전
상주가 인구 쩔었던건 당시에 갱상도에서 한양 갈라면 닥치고 상주 통과해야 했거등. 새재 안 넘어가면 한양 갈 방법이 없뜸. 사람이 모이다보니 상권이 형성되고 사람이 모이기 시작함. 조선시대 제 3의 도시였을 듯.
어딜가나 도시의 흥망성쇄는 존재하는 법이지요... 줄 잘못섰다간 제대로 망한다는
조선시대 제 3의 도시는 계속 바뀌죠. 그리고 정조 이후로는 대구가 제 3으로 등극한걸로 알고 있듬... 아마 상주보다도 전주, 공주, 나주가 훨씬 컸을 거요...
상주 피해간건 역시 지형문제 ㅇㅇ 조선시대때 영남과 서울을 잇는것은 현재 중부내륙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 루트. 꾸준히 나와주는 중부내륙철도와 비슷한 코스라능...
현재에도 서울-대구 등 영남권으로 바로 가는 데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훨씬 유리.
청휘// 중부내륙임. 중부는 아니었음. 서쪽은 배로 제물포, 영등포 루트
댓글돌이 소환
상주도 그렇지만 공주가 더 타격이 컸음
밀양도 꽤나 삽질을 했죠... 밀양시지도 펴지면 밀양역이 밀양중심부에서 남쪽에 우체국이랑 나란히 있음(그때 당시로 변두리)
철도가 들어스면서 쇠락한 도시하면 강경이 제일 아닐까?
청주도 상주처럼 반대가 심했지만 그래도 조치원이 가까워(이름 그대로 과거에도 조치원은 교통의 요충지) 도시발전의 심각한 저해까지는 면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