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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의 색깔로 보아 6호선일것이었습니다.
응암역의 존재로 보아 단선인 응암루프가 틀림없겠습니다.
따라서 모든 노선을 한번에 직통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을것이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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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식이 철갤에 나타난지도 여러 달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과하지도 뜸하지도 않은 주기로 철갤에 출몰하며, 뭇 일반인들의 욕설이나 궁금증에는 절대 대응하지 않는다는 신비주의적인 전략, 마치 서태지와 같은 그것을 놀랍도록 적절히 이용하여 신선함을 유지하며, 철갤 최고의 인기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아예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골때리는 문장을 싸지르고, 덧글로의 소통도 거부함으로서 과도한 욕설을 하거나 철갤러들의 터부를 건드려 덧글로 얻어 쳐맞는 772들과는 차별된다.
하지만 상식과 내용이 없음에도, 놀랍게도 일정한 형식은 존재한다.
그럼 지금부터 마치 일제 침략기의 시인 이상의 <오감도>를 떠올리게 하는 임두식(式)을 해부한다.

우선 그의 글은 대체로 엄숙하고, 사유가 존재하는 제목을 단다. 이것이 그의 글의 첫번째 특징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낚시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본문과 관련이 없지는 않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이것은 임두식의 글을 학술적인 글로 여기게 만들어 많은 갤러들을 낚음으로서 낚시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과 아예 관련이 없지는 않으므로 낚시라 할 수 없다. 이는 낚시의 관점을 어디에 두는 가에 대한 언어학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 신조어를 특정한 형태로 정의할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의견을 따라 침묵해야 하겠다. 임두식은 아마 낚시가 아닌 낚시를 함으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떡밥에 걸려 파닥거리고 있는 갤러들을 조롱하는 의도일 것이며 이런 식으로 철갤의 아카데믹함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다음 임두식의 필수요소. 더욱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조작된 노선도일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임두식과 비 임두식 글의 가장 큰 차이를 가르는 특징으로 임두식은 놀랍게도 전혀 엉뚱한 노선들을 엮어 한 노선도를 만든다. 이것은 임두식이 뜬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선 그의 노선도는 무서울 정도로 신선하다. 철갤러들은 항상 노선도를 쳐다보고 있고 보통 그 라인이나 주요역은 외우다시피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노선도는 다르다.
낯선 장난 노선도라면 철갤 노선도든 망상 노선도든 적지 않다. 이것들은 낯설고 엉뚱하다.
그러나 임두식의 노선도는 놀랍게도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의 노선도의 노선들은 익숙한 라인칼라, 익숙한 토폴로지, 익숙한 역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익숙함 속의 기괴한 파격 때문에 갤러들에게 이 노선도는 몇 배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솔까말 동대구역에 신칸센이 서 있으면 낯설고 엉뚱할 것이다. 하지만 KTX가 철로를 달리고 있는 익숙한 광경을 보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선선이었다면? 소름이 끼치지 않겠는가? 임두식은 이런 노선도를 만들어 낸다.
그 밖에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철갤러들은 정상적인 노선도를 본다. 자기가 마음대로 노선도를 만드는 경우는 있지만 이것은 언제나 현재, 현실에 종속된다. 즉 현재 건설되었거나 건설되고 있는 노선을 건드릴수는 없다.
이것은 철갤러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그 첫번째 이다. 그 어떤 뉴비들도 이미 건설된 철도를 없는셈 칠수는 없다.
즉 갤러들은 언제나 철도 건설 주체. 더욱 나아가 시간의 일방적인 흐름에 종속되고 있는 것이다. 갤러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이런 주종관계에 임두식은 과감히 돌을 던진다. 이미 운행되고 있는 노선을 마음대로 섞음으로서 철갤에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노선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철갤러들의 심층심리에 제 1 욕구로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할 수 없겠다.
왜냐하면 철갤러들이 사랑하는 철도야말로 낙장불입 아닌가? 철갤러들은 항상 분당선 강남리를 폭파하고 싶어지지만 이미 건설된 이상 어쩔 수 없다. ㅇㅅ을 날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인 것이다.
임두식은 제 멋대로 그려진 노선도로 철도의 시간 종속성에 도전장을 내민다. 여기에 철갤러들은 무의식적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물론 내용이다. 그의 어색한 말투도 말투지만, 글마다 상투적으로 비슷한 말이 반복되는 그러나 고장난 라디오 마냥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지 않는 그의 독창성은 따라하기조차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철갤러들은 끊임없이 그의 글을 흉내내지만 진짜 그의 글을 찾아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내용 없는 헛소리만 하는데도 말이다.
그는 예의 노선도와 제목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곧 탈선한다. 철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과감한 탈선은 의미심장하다. 또한 그는 잦은 탈선을 통해 읽는이의 정신머리를 빼 놓으면서 자연스레 글을 모순시킨다. 단순히 틀린 사실을 쓰는 것에서 시작해서 엄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주장까지.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지구촌의 환경문제로 인한 기상 이변과 그로인해 철도가 받는 영향을 언급하며 환경주의자로서의 면모도 보인다. 이 또한 철갤러들에게는 시사점이 있는 것이다. 철도를 자랑할 때는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라 뽐내면서도 철도와 환경의 관계에는 거의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철갤러들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임두식 글에 반드시 들어가는 중요한 특징은 완결되지 않은 마지막 문장이다.
이 싸다만 문장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필자는 과감히 이는 철갤러들의 귀차니즘과 생각없음을 비판하는 완결이라 주장한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쓰다가 질려서 대충 갈긴. 혹은 한 글자 써보지도 못하고 묻어버린. 철갤러들의 지적조루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는 과도한 의미부여일까?
다른 해석도 있다. 이 쓰다만 문장은 잇달은 근성체와 모순과 헛소리로 점철된 문장을 해석하며 억지로 끝까지 읽은 갤러들에게 싸고 안 닦은 듯한 느낌을 선사하여 낚시글로서 최고의 마무리를 한 것이다.
즉, 의미없는 난해한 문장을 해석하려 골때린 자들에게 그 나름대로 최고의 뻑큐를 날려준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임두식은 철갤에 양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찌질이들에 시달려온 철갤러들은 공존을 배웠다.
인간이 세균과의 오랜 전쟁에서 결국 서서히 공존하는 길로 진화해 왔듯이.
현재 철갤이 임두식에 보여주고 있는 태도 또한 그렇다.
임두식은 다른 772이 들과 같은, 철갤에 있어서의 세균이다.
하지만 그는 오래된 글이 숙변처럼 내려가지 않는 정전 철갤에 글을 쑥쑥 밀어주는 유산균과 같은 존재로서 남아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응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