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도의 가상 역사 보론으로 적어본다. 


  유림의 반대가 심해서였다고 하는 흔한 떠도는 말이 있고 전부는 아니어도 그것도 원인의 하나이지 않았겠느냐는 갤러가 있어서 댓글 대신 글을 대신 적어봐. 


  우선 천안에서 공주로 가는 길을 자세한 지형도로 확인해 봐. 전부 산악 지형이고 가장 낮게 넘을 수 있는 고개가 차령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차령 높이는 254m이고 추풍령보다 높아. 지형도로 확인해 본 결과, 만일 경부선이 차령으로 갔으면 경부선에서 가장 어려운 공사 구간이었을 거라고 봐. 물론 그 시대였어도 불가능하지는 않았겠지만 추풍령 지나가는 경부선 놓고 있는데 굳이 그런 어려운 공사를 할 필요가 없지. 더 평지인 가까운 길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그 밖에 경부선이 공주 들렀다 가는 평탄한 길은 조치원 쯤에서 공주 갔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유턴 길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보같은 짓이지. 둘러가다 못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거니까. 


  만일 그 때 공주가 당시 평양쯤 되는 지역중심지여서 차령쯤은 넘어 향할 가치가 있는 도시였다면 우리는 지금 경부-호남선 분기점이자 대전을 대신해서 대도시로 큰 공주를 보고 있겠지만 구한말에 공주가 그 정도 큰 도시는 아니었지.


  말할 필요도 없이 충주,상주,전주 등이 철도 경유지로 선택받지 못한 이유도 지형 때문임. 청주는 지금 경부고속도로 가는 길로 갔으면 지날 수 있었겠지만 그 쪽은 조치원 통과보다 좀 돌아가는 길이라서 경부선이 약간 더 길어졌겠지. 당시 일제가 유림 반대 같은 걸 뭐 그리 신경썼겠냐? 당시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여론을 그렇게 하나하나 신경썼으면 제국주의도 안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