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철도 이용객이 적다.
적은 이유는 버스가 가성비가 좋고 철도의 인프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다들 동의하는 부분이지?

철도의 인프라가 떨어지는 이유는 호남사람 때문이다.

이 명제를 반대하는 거지?

일제가 우리나라에 경부선 부설권을 쥔 것은 부산이 일본과 가장 가까웠고 당시 조선의 개항 세 곳 중 하나였기 때문에 무역(사실상 침탈)에 용이했지.

평양~한양~안성(평택으로 바뀜)~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축을 짓고나니 이번엔 호남지방의 쌀을 수탈해야됨.

호남지역은 당시 평야가 많고 전주, 광주같은 큰 고을도 많아서 인구도많고 이는 착취할 노동력도 풍부하다는 뜻이 되겠지.

근데 전라도는 택리지,세종대왕,태조왕건,광개토대왕,정약용은 물론이고 제주도에 표류하여 처음 온 서양인이었던 하멜도 깠던 지역 아니냐.. 까는 이유들 중 공통점은 불같이 화를 잘내고 일단 반발하는 폭동(반란)을 많이 일으킨다는 것임

동학농민운동도 신태인에서 발기해서 전주도 점령할 정도였으니까..

마찬가지로 일제가 호남선 철로를 놓겠다고하자 봉건사상에 빠진 전라도의 유생들은 폭동을 일으킴.

철로 깐다고 알리기만 했더니 갑자기 고을 관아가 털리고 횃불들고 불지르는 방화에다가 양반들은 상투를 자르고 심지어는 목숨을 끊기까지함.

여론이 너무 안좋아지자 결국 호남선은 당초 전주와 광주에서 한참 벗어난 이리와 송정리를 지나게 됨.

지금와서봐도 20~30km면 차타고 가도 시내 길막히고 신호먹고 주차까지하면 시골길이라도 30분은 잡아야되는데 옛날엔 길도 좁거나 없고 아스팔트 포장같은것도 없으니 비라도 오면 한두명 건너면 진흙밭이되서 건너기가 엄청 까다롭고 주요이동수단인 도보로는 하루이틀은 잡아야될만큼 먼 거리였지.

결국 그 총칼정치에 힘만 앞세운 일제도 어쩌지못한게 호남선 철도인데 안놔주겠다가 아니라 오히려 놓아주겠다고 한건데 그렇게 피꺼솟하면서 반대해놓고서 이제와서 광주착발이 어쩌니 이러는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

놓으면 놓는다고 지랄, 안놓으면 안놓는다고 지랄..


그나마 깨어있던 젊은 학생들은 철도라는 신문물의 이점을 깨달아서 철도를 요구했고 결국 익산~전주는 좁은 협궤로나마 깔리게 되었지.

지금 기차역 승객수 3위가 어디지? 1위는 단연 서울이고 2위가 부산 3위가 용산인가? 1920년의 승객수 3위역이 익산이라는 것만봐도 당시 호남인구와 전주새끼들이 얼마나 익산역을 많이 이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거라 본다.